Book/그 외

ㅡ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中, 바다출판사

mediokrity 2020. 11. 26. 08:34

2020/11/24

 

 

하지만 그래서 회고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단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회고록/고백을 믿을 수가 없다. 그 속에 든 사실을 믿지 못한다기보다는 그 의도를 신뢰할 수 없다. 요즘 시대의 회고록을 읽고 내가 받는 느낌은 그 회고록에 작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목적이란 작가가 자신을 무한히 매혹적이며 중요하다고 느끼는 만큼 독자도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작가들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나는 회고록 대부분이 그래서 처량해 보인다. 물론 올해의 미국 최고 에세이에도 회고록 비슷한 작품들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특이한 상황에 대한 글이거나 고백을 훨씬 더 크고 더 풍부한(내가 더 풍부하다고 느끼는) 구도 혹은 이야기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다.(271-272p)

 

 

·····이 시나리오에서 우리는 힘을 빼앗긴 왕 혹은 불안하고 경직된 대통령처럼 정보와 해석에 압도당하는 상황에 빠지거나 냉소주의와 아노미로 인해 마비되거나, 가장 심하게는 특정한 도그마의 논지들에 매혹된다. 정치적 올바름만을 추구하는 논리든 전미총기협회의 논리든 합리주의, 복음주의, “치고 빠지는”외교 정책, “석유를 위해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는 구호이든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누차 말하지만)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객원 편집자의 서문에서 충분히 논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으로 2007년 미국 최고 에세이 선정작을 고를 때 노골적으로 그리고 편파적으로 선호한 에세이는 바로 반사적인 도그마를 약화시키는, 성실하고 전폭적으로 스스로 ‘결정자’가 되려고 시도하는 작품들이다. 공립학교에서 과학과 함께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고집하는 멍청한 근본주의자들이나 모든 진지한 기독교인이 근본주의자들처럼 멍청하다고 고집하는 냉소적인 유물론자들처럼 좁은 구멍에 맞지 않는 현실을 죄다 삭제해버리는 행위를 피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런 행위가 꽤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우리에게 닥친 위급 상황의 일부다. 우리는 편협한 교만, 미리 형성된 입장, 경직된 거름망, 성숙하지 못한 ‘도덕적 명확성’ 속으로 자꾸 후퇴하고 싶어 한다. 대안은 방대한 고엔트로피의 정보량과 모순과 갈등과 불안정과 마주하는 것이다. 개인의 무지와 망상의 새로운 경지를 끊임없이 발견하는 일이다. 요약하자면 오늘날 제대로 정보를 습득하고 교양을 쌓으려면 거의 항상 내가 바보라는 기분이 들게 되고 도움을 구하게 된다. 이 이상으로 더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이 수상집의 작가들은 같은 말을 더 잘, 더 간결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서비스적 ‘가치’라고 할 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지금까지 말한 대로이며, 정치문제나 갈등을 빚는 문제와 동떨어진 주제에 관한 에세이들도 여기에 해당된다. 여러 에세이들이 단지, 가장 높은 경지의 예술적인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한 사실 집합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일부 아이들이 사용하는 주파수 17kHz의 휴대폰 벨 소리, 개가 해석하는 움직임의 언어, 지진을 경험하고 묘사하는 무한대에 가까운 방법, 실존에 대한 제유로서의 무대 공포, 내가 믿고 우러러봤던 대부분의 것들이 제멋대로 만들어낸 쓰레기였다는 깨달음 등 주제는 다양하다.(279-280p)

 

 

 

ㅡ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거의 떠나온 상태에서 떠나오기> 中, 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