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김수정, <아주 오래된 유죄> 中, 한겨레출판

mediokrity 2020. 12. 10. 11:14

2020/12/10

 

며칠 동안 새로 나온 책에 관심을 덜 두었더니 보고 싶은 책 엄청 많네. 언제 다 읽지?

 

 

A씨의 범행으로 제공된 영상자료는 타인에게 유포될 위험성이 있고 유포 시 피해자는 돌이키기 어려운 인격적 피해를 볼 수 있다. A씨의 범행을 알게 된 피해 여성은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은 물론 커다란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A씨는 피해를 변상하거나 용서받지 못했다. 다만 A씨가 B씨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듣게 되자 술을 마신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 젊어서 자신의 성행을 개선할 가능성이 기대되는 점 등을 고려했다.(부산지법 형사3단독 이영욱 부장판사)

 

한마디만 하자. 말세다.(29-30p)

 

 

대체 어린 여자아이들의 성매매를 자발적/비자발적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인위적인 구분 때문에 피해자로 보호받아야 할 위기의 아이들이 구금되고, 처벌받고 있다. 의지할 어른도, 의지하고 싶은 어른도 없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성구매자들인 성인 남성들은 이처럼 취약한 여자아이들의 상태를 이용해 성을 착취하고 임신이나 성병 감염과 같은 위험까지 이들에게 전가한다. 그런데도 자발적인 성매매라는 이름으로 여자아이들은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성구매자인 성인 남성은 잠시 ‘쪽’팔리고 말면 그만. 심지어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들에게는 이것도 하나의 무용담이자 자랑거리가 된다. 얼마나 어린 여자아이와 했는지···.

(...)

이에 반해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 성착취의 형태로 성매매를 명확히 열거하고 있고, ‘아동 성매매’라는 용어 대신 ‘성매매 상황에 있는 아동 성착취’라는 용어를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성매매에 동원된 아동은 아동의 합의나 동의 여부를 떠나 성매수 범죄의 피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에서 13세 이상 아동이 성행위에 동의할 수 있다고 취급되어 성착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간주된 아이들은 범죄자로 취급되고 보호처분에 의해 구금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신고를 못 하는 것은 물론 법률적 조력 및 성폭력 피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성매매 아동·청소년의 지위를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로 분류할 것을 촉구했다.(60-62p)

 

 

남성들이여, 제발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동의’나 ‘사랑’을 했다고 말하지 말라. 그렇게 사랑한다면 아직은 어린 그들이 건강하게 무사히 성인으로 성장하게 지켜보라.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라. 미성년자가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자발적이라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성을 사는 사람이 누구인가.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묻지 말라. ‘남성’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66-67p)

 

 

낙태를 하는 여성도, 낙태에 찬성하는 여성도, 그 누구도 생명이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 속의 태아일 때든 태어난 뒤든, 아이를 감당해야 할 ‘이미 태어난 사람’인 여성이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온갖 어려움은 오롯이 여성에게 짊어지게 하면서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고귀함만을 내세우는 것은 위선이다. 그렇게 생명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여 여아인 경우 수없이 낙태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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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금하는 것은 여성의 사정, 여성의 결정에 의한 낙태뿐이다.(139-140p)

 

 

1951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 보낸 아동의 수는 무려 11만 1,148명으로 추정된다. 아시안게임이 있었던 1986년에는 8,600여 명, 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에는 6,400여 명의 아이가 해외로 입양되었다. 그들 중 90퍼센트가량이 미혼모의 아이였다고 한다. 이는 해외 입양이 전쟁고아보다 미혼모 아이의 입양을 위해 활용되었음을 보여주는 통계 수치다. 해외 입양이 한국 내에서 보호하기 어려운 아동을 구제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었다고 하더라도, 미혼모 아이의 수가 지나칠 만큼 많은 이 입양 통계는 가부장 사회가 결국 결혼하지 않고 아이 낳은 여자를 수치스러운 존재로 치부해 모성을 존중하지 않았음은 물론, 그 아이조차 한국 내에서 용인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154p)

 

 

오늘날의 대리모 산업은 “부자 나라 불임 부부에겐 꿈에도 소원인 예쁜 아기를, 가난한 나라 빈곤층 여성에겐 온 가족을 먹여 살릴 일확천금을”이라는 슬로건하에 ‘여성이 여성을 돕는다’고 미화하면서, 결국 가난에 내몰린 여성을 착취하고 도구화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등 부유한 나라에서 아이를 원하는 커플들이 인도, 네팔,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가난한 나라 여성들의 자궁을 이용하고, 이를 중개하는 블루드 등의 기업은 이 과정을 관리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들은 대리모 계약을 체결하면서 엄격한 조건(술·담배는 물론 성관계를 비롯하여 많은 금지 목록이 부여되고 위반 시 엄청난 위약금을 물게 된다)을 거는데, 기형아를 임신하는 경우 낙태한다는 항목이 있으며, 낙태하지 않고 출산하는 경우 의뢰인은 양육비 등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내용을 담기도 한다.

(...)

필리핀 등 가톨릭 국가의 여성이 대리모인 경우 종교적 이유로 낙태를 거부하는데, 쌍둥이 중 하나가 장애아로 태어나자 의뢰인 부부가 비장애인 아이만 데려가는 사례도 있었다. 대리모 계약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철저히 돈의 지배하에 놓이고, 인격을 가진 여성은 사라지며, 생명은 선별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성행하고 있는 대리모 계약의 민낯이다.(173-174p)

 

 

 

ㅡ 김수정, <아주 오래된 유죄> 中,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