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中, 바다출판사

mediokrity 2021. 5. 21. 16:24

2021/5/21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중독을 다룬 꼭지들이 특히 좋았다. 드링킹도 조만간 읽어봐야지.

 

 

친구는 중얼거렸다. “늘 혼자 있다니. 얼마나 즐거울까.”

글쎄,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내가 누리는 이런 수준의 고독이 즐거운 것은 사실이다. 사치와 안도감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자유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가 잠시 벗어난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을, 쉴 시간과 빈 시간을, 고독과 고립을 헷갈리고 있다는 것도 안다. 마치 내가 일하지 않는 동안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집 안을 어슬렁거리며, 빵을 굽고, 끝도 없이 거품 목욕을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친구는 이 시간에서 끝없는 평온과 고요만을 보았다. 나로 말하면, 이 시간에서 그보다 좀 더 걱정스러운 것, 그보다 분명 더 어려운 것을 본다.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것은 그 시간을 늘 혹은 틀림없이 즐기기 때문이 아니다. 내게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 같기 때문이다.(17p)

 

 

우정은 때로 아주 실질적이고 긴요한 것이지만, 여러 관계들 중에서 가장 일시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느 정도의 마모는 자연스럽고 예측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변하고, 각자 자기 갈 길을 간다.(96p)

 

 

내 집이 있는 진짜 내 동네는 요즘의 여느 도시 동네처럼 기능한다. 한마디로 전혀 기능하지 않는다.

(...)

도시 삶의 현실, 내가 의문을 제기해본 적조차 드문 이 현실이 나는 대체로 마음에 든다. 이 현실이 우리의 도시 생활이 쇠락해가는 몇몇 이유를 알려주는 건 사실이다.

(...)

그래도 대체로 나는 이웃들과의 거리에 대해서 특이할 것 없고 설명하기 쉬운 이유를 갖고 있었는데, 그 이유란 집이 내게는 은둔처라는 것이다. 집은 내가 고독과 프라이버시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나는 내 집 현관문 너머까지 소속감을 확장해야 할 급박한 필요성을 대체로 느끼지 못하고 지냈다.

하지만 개 주인 모임이 이런 시각을 약간 바꿔놓았다.

(...)

유난히 스트레스가 많았던 날이라면, 나도 모르게 어서 그 시각이 되기를 고대한다. 어서 개 주인 모임에 나가고 싶다. 이것이 바로 이웃이라는 느낌일 텐데, 나는 이 기분을 지리적 동네에서는 느끼지 못하고 지내다가 이제야 그동안 내가 이걸 몰랐구나 하고 깨닫는다.(111-112p)

 

 

우리가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맨 처음 알게 되는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는 죽음을 끔찍하게ㅡ지독하게ㅡ잘못 다룬다. 상을 당한 사람에게 주는 휴가는 보통 사흘. 그 후에도 6주쯤은 사람들이 당신을 조심조심 대하고, 너무 많은 걸 바라지 않으면서 부드럽게 대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당신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애도 기간을 끝난다. 이후에는 사무실에서 멍하닌 앉아 있거나 하루에 세 번씩 빨개진 눈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다시 정상적으로 행동하고 정상적으로 느껴야 할 듯한 압박이 든다.

나는 이게 싫다. 가끔은 길 가는 사람들을 잡아 세우고 말하고 싶다. “우리 부모님이 죽었다고요. 우리 부모님이. 알겠어요?” 너무 많은걸 억누르고 삼켜야 한다. “정말 우울해요.” 몇 주 전에 내가 남자 동료에게 이렇게 말하자, 그는 멍청히 나를 보면서 말했다. “왜요?” 그 목소리에는 진심으로 놀란 기색이 있었다. 우울해요? 왜? 나는 그를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130p)

 

 

예를 들어, 사실 그런 통화에는 암호가 듬뿍 담겨 있었다. 모녀의 역학 관계를 이루는 물밑 메시지들이 담겨 있었다. 이제 나는 어머니가 외부적인 문제들로 투덜거렸던 것은 자신에게 더 깊은 불안을 안기는 문제들을ㅡ자신의 건강을, 변함없는 슬픔을, 두려움과 회한을ㅡ투덜거리기에는, 특히 딸에게 투덜거리기에는, 너무 내밀하고 자존심 강한 삶이라서였음을 안다. 어느 정도는 나도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그 밑에 깔린 불안을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 반응으로 불쑥 짜증과 죄책감을 느끼곤 했던 것은, 아마 어머니의 괴로움을 직면한 나 자신이 무능하고 혼란스럽게 여겨져서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불안에 괜히 내가 불편한 것,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고 느끼지만 방법을 모르는 데 대한 답답함, 어머니의 불안이 가라앉고 모든 것이 저절로 괜찮아지기를 바라는(아마도 유아적인) 마음.(148-149p)

 

 

어머니가 즐겨 하신 말씀 중에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술을 끊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저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여름에 밤이면 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애통해할 때, 나는 실제로 애도한 게 아니라 애도를 연습한 것이었다.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 않다. 술과 자신감의 방정식, 술과 불안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성인이 된 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 밑바탕에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렸고,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렸고, 내게 맞는 남자나 직업이나 신발, 옷, 헤어스타일 따위가 휙 하고 나타나서 나를 바꿔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행복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외부에서 내게 주입해주기를 기다렸다.

(...)

술은 효과가 있다. 술은 사람을 달래고, 느긋하게 만들고, 차분하게 만들고, 기분 좋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성장하도록 돕진 않는다.(155-156p)

 

 

나한테 문제가 있는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내가 거식증인 것 같다고. 지금 기억나는 것은 두 분의 눈뿐이다. 걱정과 약간의 두려움이 깃들어 있지만 주로 무력한 표정이었던 눈. 두 분은 공감하지 못했고, 나는 설명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에게 이 일이 벌어져도ㅡ어쩌면 그 경우에 더욱더ㅡ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머니가 우편으로 보낸 쪽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이렇게만 적혀 있었다. “먹어라.”(170p)

 

 

시행착오와 데이터 수집. 이것은 수고가 들고 힘든 일이다. 나는 개와 함께 미들 섹스 펠스 자연보호 지구를 걷는 일을 700번 한 뒤에 발견했다. 그래, 나는 이게 좋다, 개와 함께 숲에 오는 일이 좋아. 재봉틀과 900번 씨름해서 족족 패배한 뒤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 나는 이게 싫어, 난 바느질에 필요한 인내력이 없고 이걸 하면 내가 무능하다는 느낌만 들어. 너무 사소한 발견들이 아닌가 싶겠지만(실제로 사소하다), 그래도 이런 교훈들은 주야장천 술만 마실 때는 배울 수 없고 우리가 견고한 자아 감각을 구축하려면 꼭 필요한 작은 벽돌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내 욕구는 이것이야, 내 특별한 강점과 약점은 이것이야, 하는.

(...)

금주한 지 일이 년 뒤에 다시 마시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 무렵은 뿌연 안개가 걷히고 앞으로 해야 할 어려운 일이 드러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술을 끊는 일은 기차 사고에서 빠져나오는 일과 좀 비슷하다. 당신은 멍하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일어나서, 한동안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다 머리가 맑아지고 트라우마가 잦아들면, 자신도 모르게 망연히 잔해를 보며 서 있게 된다. 저 기차에서 내린 나는 이제 누구지? 이제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지? 거기까지 어떻게 가지? 이것은 겁나는 시기이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것이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자주 상기시켜야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키인 건 맞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시기이기도 하다고.(198-199p)

 

 

알코올 중독에는 정확함이란 게 없으니까요. 어떤 하나의 사건 때문에 건강했던 사람이 아파지는 게 아니고, 어ᄄᅠᆫ 하나의 비정상 세포가 분열하거나 돌연변이를 거쳐서 사람의 미래를 바꾸는 게 아니니까요. 그저 느리고 불분명한 과정이 있을 뿐이죠. 우리는 자신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죠. 알지만 알지 않으려 하죠. 자신이 충분히 끊을 수 있다고, 관리할 수 있다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불안해서 홀짝홀짝, 부정하려고 벌컥벌컥.(205p)

 

 

지금도 나는 그때의 나란 사람이 그때의 처지에서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애니타 힐의 이야기가 처음 상세히 알려졌을 때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꾸 힐에게 왜 클래런스 토머스가 부적절하게 행동했던 그 순간에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고,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고.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그렇게 취약한 위치에 있을 때는 그런 접근에 대응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것이다.(248-249p)

 

 

ㅡ 캐럴라인 냅, <명랑한 은둔자> 中, 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