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문학사상사
2015/11/24
대단한 하루키 열풍에도 불구하고 하루키통이 아니라 몇 권의 소설과 몇 권의 에세이를 읽은 게 다다. 인상적인 구절들이 있지만 대단한 사유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거나 이런 건 아니다. 이건 하루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루키는 그런 작가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루키에게 감탄하는 점은 성실성이다. 다른 예술 분야에서 이런 성실성을 보여주는 사람으로 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우디 앨런이 있다. 이들은 짧지만 빛나는 전성기에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금방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전성기에는 못 미칠지라도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한다. 이게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그러기 위해서 하루키는 담배를 끊고, 일찍 자고, 달리기를 한다. 그럼 우디 앨런은? 에스콰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우디 앨런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A corned-beef sandwich would be sensational, or one of those big, fat frankfurters, you know, with the mustard. But I don't eat any of that stuff. I haven't had a frankfurter in, I would say, forty-five years. I don't eat enjoyable foods. I eat for my health.” 이것만 봐도 이 양반이 어떻게 살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성실함이 작품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일을 위해 이렇게나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편 달리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잠깐이나마 생겼는데 겨울이라서 쏙 들어갔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주위의 누군가에게 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달리는 것은 근사한 것이니까 모두 함께 달립시다.” 같은 말은 되도록 입에 담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만약 긴 거리를 달리는 것에 흥미가 있다면, 그냥 놔둬도 그 사람은 언젠가 스스로 달리기 시작할 것이고, 흥미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권한다고 해도 허사일 것이다.(73~74p)
ㅡ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中, 문학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