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제니 클리먼, <AI 시대, 본능의 미래> 中, 반니
2021/11/6
섹스토이, 배양육, 인공자궁과 체외발생, 자살기계. 듣기만 해도 자극적이고 궁금한 내용들이고 누구나 한 번쯤은 머릿속에서 떠올려 봤음직한 주제들이다. 다양한 입장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저자의 입장은 이미 정해져 있고 각각의 인터뷰후에도 자신의 생각을 크게 바꾸거나 혹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견해를 많이 담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프레데릭 와이즈먼의 다큐멘터리처럼 자신이 알리고 싶은 내용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그저 보여주는 방식이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해봤는데 책으로는 그런 방식으로 보여주기가 힘들겠구나.
“제가 걱정하는 건 하모니의 권리가 아니에요. 제가 정말로 걱정하는 건, 하모니의 주인이 완전히 이기적인 관계에 익숙해진다면 어떻게 되냐는 거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왜곡되지 않을까요? 하모니는 꽤 사실적이잖아요. 현실 세계로 나갔을 때 그저 자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거죠.”
매트는 이미 여성의 대상화와 매춘, 로봇의 권리 문제에 관한 필연적인 질문에 답해본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당황했다. 매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게 흔하고 정상적인 문화권도 있어요.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언제나 힘의 교환이 일어나요. 한 사람이 관계에서 그 위치에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떠나야죠.”
“하지만 로봇은 떠날 수 없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하모니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예요.”
매트의 바람과 달리 양쪽 다일 수는 없다. 살아 있는 듯한 이상적인 여자친구 대용품, 사회적으로 고립된 남자들과 감정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매트 자신이 “장난감이 아니다”라고 설명한 존재) 여성의 대용품을 만들거나, 아니면 섹스할 수 있는 가전제품을 만들거나 둘 중 하나다.(38-39p)
트루컴패니언의 목적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제공하는 거예요. 거기에 부정적일 게 어디 있겠어요? 진짜 말 그대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로봇을 갖는 데 무슨 나쁜 점이 있을까요?
나쁜 점은 당연히 인간이 주는 위안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덩어리로 대체하는 데서 오는 감정적인 공허함일 것이다.(54p)
하지만 언제나 꿈꿔왔던 인형과 정말로 관계를 맺고 싶다면, 말을 쉽게 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비극적인 면이 있는데, 그건 데이브캣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시리든 알렉사든 하모니든, 인공지능은 모난 돌을 매끄럽게 깎아놓을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이해하도록 지역별 억양과 화려한 언어생활을 포기하고, 기본에 더 가깝고 재미로부터는 먼 인간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로봇을 마음대로 바꿀 힘이 있듯이 로봇도 우리를 바꾸어놓을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59p)
“인형과의 관계가 사람과의 관계보다 쉬운 게 당신이 더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인가요?”
데이브캣은 잠시 침묵했다. “솔직하게요? 네, 저는 절대 거짓말을 듣거나 속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아요. 로맨틱한 상황이든 그렇지 않은 상황이든 그런 적이 많았거든요. 제 인공 배우자를 85-95% 정도 통제하는 상황이 더 좋아요.” 데이브캣이 시도레를 바라보았다. “연인은 누구라도 상대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상대가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해요. 어느 정도는 통제광인 거죠. 아마도 저는 그냥 남보다 좀 더 드러내놓고 그게 제 성격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뿐일 거예요. 대놓고 지뢰를 밟기 싫다고 말하는 거예요. 저는 지뢰밭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63-64p)
내 머릿속은 여성의 몸을 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얻어맞는 에바로 가득 차 있었다.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대신 우리는 그 문제를 상쇄하기 위해 뭔가를 발명한다.(81p)
순전히 주인을 즐겁게 할 목적으로 존재하는 파트너, 친척이나 생리 주기나 화장실 습관이나 감정의 응어리나 독자적인 뜻과 같은 걸림돌 없이 언제든 사용 가능한 파트너를 소유하는 게 가능해진다면, 그리고 어느 한쪽만의 즐거움만 중요한 상황에서 타협할 필요 없이 성관계를 갖는 게 가능해진다면, 다른 삶과 상호관계를 맺는 우리의 능력은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공감이 사회 소통에 필요하지 않은 때가 온다면, 공감은 우리가 연습해야만 하는 기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조금 덜 인간적이 될지도 모른다.(113-114p)
1978년 올덤에서 최초의 체외수정으로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났다. 그와 함께 아기를 낳는 여러 가지 가능성도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임신이 성관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자궁 밖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었다.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아이를 배는 게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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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대리모 출산에는 특유의 윤리적 문제가 잔뜩 엮여 있다. 아웃소싱 노동이라면 무엇이든 그렇듯이 시장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건 가장 가난하고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다. 인도에서는 영국인의 대리모 관광이 성장하는 사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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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저렴한 체외수정 대리모 출산을 위해 우크라이나를 찾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대리모가 유산하거나 의학적으로 안전한 수준 이상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 돈을 받지 못하고 버림 받는 일이 드물지 않다. 임신 성공 확률을 가능한 한 높이기 위해 배아를 여러 개씩 이식하는 데, 대리모가 세쌍둥이나 네쌍둥이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해서도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아무리 세계 곳곳의 여러 기꺼워하는 대리모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대신 낳아 아이를 절실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부모가 되는 선물을 안겨줄 수 있다고 주장해도 대리모 출산은 엄연히 여성을 그릇이나 인큐베이터로 사용하는 행위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아이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대리모 출산은 대리모가 스스로 착취당한다고 생각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여성의 임신 능력을 착취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231-234p)
부분적인 체외 발생은 향후 몇 년 안에 가능해질 전망이지만, 수정에서 탄생에 이르는 완전한 체외 발생은 현실적으로 아직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수정 이후 몇 주 동안 자궁 밖에서 배아의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이 점점 더 좋아지면서, 점점 더 미성숙한 아기의 생명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언젠가 이 두 지점이 만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는 매년 그 순간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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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체외수정으로 만든 인간 배아의 생명을 14일 동안만 유지할 수 있다. 15일째에 생기는 ‘원시선조(향후 뇌와 척수가 될 부분이 생기기 시작함을 알려주는 세포의 구조)’가 나타나기 전에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는 윤리 규정 때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연구진도 이 14일 규정 때문에 배아를 죽여야 했다. 실험을 계속할 수 있었다면, 아마 한참 더 생존했을 것이다. 인체 밖에서 배아의 발달 과정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면 과학적인 잠재성이 엄청나기 때문에 2016년 이후 이 제한을 21이나 심지어는 28일로 늘려야 하는지를 놓고 광범위한 논쟁이 벌어졌다. 14일이라는 데드라인은 고작 17개국만이 공식적으로 준수하는 자발적인 윤리 규정이다. 북한이나 러시아 과학자들이 사람의 배아를 기르고 싶은 만큼 기르는 일을 막을 방법은 없다.(259-260p)
레슬리는 치사량을 마시는 실비아의 손을 잡았다. 레슬리의 묘사에 따르면, 넴부탈은 빠르고 존엄한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비아의 마지막 순간은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실비아는 구토했고, 눈과 코와 입에서는 계속 액체가 너무 많이 흘러나와 레슬리는 죽기에 충분한 양을 먹은 게 아닌지 걱정했다. “얼마 동안 실비아를 붙잡았는지 모르겠어요.” 레슬리가 나직하게 말했다. “실비아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맥박을 잡아보려고 했는데, 제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 제가 느끼는 게 누구의 맥박인지 알 수 없었어요.”(335-336p)
사실은 그렇지 않다. 괴상망측하다. 필립의 꿈과 필립을 이곳으로 오게 한 발명품에 돈을 댄 사람들은 즐겁고 품위 있게 다음 세상으로 떠나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절망과 두려움, 슬픔, 공포,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다 거기서 빠져나가게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사르코의 공개는 그런 사람을 도울 실현 가능한 방법이라기보다는 탐닉에 훨씬 가깝다는, 필립의 자아를 추켜세우기 위한 기념비라는 느낌이 들었다.(369p)
ㅡ 제니 클리먼, <AI 시대, 본능의 미래> 中, 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