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편혜영 조해진 김나영 한유주 이주란 이장욱, <술과 농담> 中, 시간의 흐름
2021/11/17
6명의 저자 모두 농담에는 전혀 소질이 없어 보인다.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닥치면 보잭은 언제나 도망치는 쪽을 선택한다. 그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고약한 말로 상처를 주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모략을 꾸미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보잭은 그렇게 살아온 결과로 망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망쳐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그는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려고 사는 사람 같다. 인생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알(것 같)지만 제대로는 모르고, 그나마 아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잘못을 바로 잡고 사과하고 싶지만 그러는 대신 죄책감을 감추려고 더 심술 맞게 구는 사람이 보잭이다.
한편으로 그는 더 나아지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우정을 생각하고 호의를 베풀며 잘못한 일은 잘도 반성하고 원치 않는 일이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해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다정하고 마음 깊은 말을 할 줄 알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끌어안기도 한다.
그럴 때 보잭은 확실히 이전보다 나아진 듯하고 이후로 그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지만, 그때뿐이다. 통찰과 성찰 후에도 그는 변함없이 형편없다.
나아지는 채로 인생이 계속되지는 않는다. 인생에는 나아지는 순간이 있지만 그 순간이 짧다는 게 문제다. 각성과 반성이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 후에도 인생의 실패는 여전하다.
깨닫고 자책하고 새 삶이 열리기를 기대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순간만 그렇다. 삶은 부메랑처럼 언제나 돌아간다. 자기만 알고 상처를 주고 망쳐버리는 데 익숙한 바로 그 순간으로.
(...)
다이앤의 말처럼 보잭은 특별히 나쁘지 않고 특별히 선하지 않다. 그저 보통의 우리와 다를 바 없이 간혹 어리석어 나쁘고 대체로 선량하다.
보잭을 좋아하지 않기란 너무 힘들다. 이런 인물이 나와 영 다른 사람인 척하기도 힘들다. 언제나 이런 사람을 좋아하고 애틋하게 여기고 그들의 행복을 기원했지만 그들은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몰락을 향해 내달린다.(27-29p)
ㅡ 편혜영 조해진 김나영 한유주 이주란 이장욱, <술과 농담> 中, 시간의 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