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듀나,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中, 구픽

mediokrity 2022. 4. 12. 15:36

2022/4/12

 

 

오랜만에 짧은 책 한 권을 읽었다.

책을 의식적으로 읽기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까지 장기간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처음에는 걱정도 되고 의무적으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그 스트레스가 오히려 더 꺼리게 만든 것 같다. 책 안 읽는 게 뭐 대수라고 정 읽고 싶다면 자연스레 다시 펼쳐들겠지.

 

 

우리가 영화사의 공부를 통해 배우는 걸작들의 계보는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계보가 아닙니다. 끊임없는 양의 되먹임을 통해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탑이죠. 그래서 중요해요. 모두가 공유하는 일반 교양이니까요. 하지만 그 작업 바깥엔 이들만큼, 심지어 이들보다 더 훌륭한, 적어도 더 재미있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

걸작만으로 이루어진 영화 경험은 그냥 빈약해요. 이건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걸작만 보시나요? 그러고 싶으신가요? 아니잖아요. 하지만 옛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갑자기 까다로워집니다. 세월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영화들은 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럴 리가요. 모든 경험은 어느 정도 잡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한 것도 보고 나쁜 것도 봐야 자신의 경험을 통제할 수 있지요. 그리고 형편없는 영화, 평범한 영화를 보는 것 역시 중요한 경험입니다. 전 과거의 평범한 영화들을 보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입니다. 종종 이들의 역사적 데이터로서의 가치는 걸작보다 더 큽니다.

(...)

그중에는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경험도,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경험도 있습니다. 모험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32-34p)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다 보면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 경외감 같은 걸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런 마음은 작가가 아닌 작품을 향하도록 해라.(설사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인간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112p)

 

 

 

ㅡ 듀나,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中, 구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