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내소설

ㅡ 김영하, <작별인사> 中, 복복서가

mediokrity 2023. 3. 31. 09:24

2023/3/30

 

 

“태어났다면 느낄 기쁨을 태어나지 않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그게 참으로 손해일까요? 손해라 느낄 존재가 아예 없는데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태어나지 않은 존재는 아무거도 아쉬울 게 없습니다. 고통의 근원인 자아가 아예 없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태어나게 되어 고통을 겪으면, 그 고통은 해악입니다. 태어나지 않는 쪽이 분명히 낫습니다. 기쁨도 느끼니까 그 유익으로 고통의 해악이 상쇄될까요? 어떤 사람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상황을 생각해보세요. 너무 억울하겠죠. 감옥에서는 간수와 수감자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끔찍한 것들을 먹고,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공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친구도 사귀게 되고, 감옥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가끔 소소한 즐거움도 누립니다. 그러다 몇십 년 후 재심이 열려 그가 무죄였음이 밝혀지고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참으로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에게 감옥 생활은 괴로움도 크지만 기쁨도 있다, 그러니 경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만약 큰 기쁨을 항상 누릴 수만 있다면 태어나는 게 이득일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이 휴먼매터스의 연구자 집에서 태어나는 것 같은 상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분명 당신은 행복과 안전이 약속된 것 같은 환경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수용소에 갇히고, 죽음의 위기를 여러 번 넘기고, 앞날은 알 수 없습니다. 기쁨과 고통을 마치 장부상의 흑자와 적자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과연 그럴까요? 임계점을 넘어가는 극한의 고통은 나중에 그 어떤 기쁨이 주어지더라도 장부상의 숫자처럼 간단히 상계되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체에 내장된 프로그램은 고통을 피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생존을 도모하고 번식에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살면서 기쁜 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괴로움에 시달리거나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잠깐의 기쁜 순간을 한없이 갈망하며 보냅니다. 갈망, 그것도 고통입니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보내게 되고, 죽음은 잊지 않고 생명체를 찾아옵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를 살려서 이제 더는 겪지 않아도 될 이 모든 고통을 다시 겪게 할 것인가요? 그게 정말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일까요?”(148-150p)

 

 

인공지능이 인간적 요소들을 흡수한 반면, 나는 오히려 최박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나의 의식이 인공지능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영생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삶을 수백 배, 수천 배로 증폭시켜주는 놀라운 장치로 ‘살 수도 있었던 삶’을 상상속에서 살아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필멸하지 않을 나로서는 점점 흥미가 떨어졌던 것이다.(275-276p)

 

 

ㅡ 김영하, <작별인사> 中, 복복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