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김유태, <나쁜 책> 中, 글항아리

mediokrity 2024. 5. 13. 17:07

2024/5/13

 

 

자신이 고른 금서가 왜 금서가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설명, 책의 요약, 그리고 자신의 감상 및 이 책의 현대적 의의로 한 편의 글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런 글을 30개 모아서 낸 책이다. 서평을 다루는 책의 너무나 전형적인 구성이라 뻔하고 개성이 없다.

 

 

왜 우리가 기억하는 금서는 언제나 과거로만 향하는가. 과연 그 논쟁적 주제가 과거의 문제이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금서는 안타깝게도 현재의 문제다. 우리가 안전한 책들 사이에 파묻혀 살아간다고 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2024년에 금서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다.(13p)

 

 

브랜디의 이야기는 세 가지 시사점을 줍니다. 사람의 신체 세포는 7~8년이 지나면 새것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첫째, 정신을 육체와 분리할 수 없을 경우 '진짜 나'의 규정은 과연 어느 시점에 가능한 걸까요. 또 인간은 누구나 신체 속에 미생물이나 세균을 갖고 있습니다. 불결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인간은 그것들이 몸속에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둘째, 인간이 '내가 아닌 것'과 공존해야 생존하는 존재라면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의 구분은 과연 가능한 걸까요. 브랜디가 던지는 철학적 사유는 점점 깊어집니다. 한 사람을 규정하는 조건이 단지 그 사람 고유의 의지만으로 가능할까요.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이미 누군가가 떠올렸던 생각의 조합이 아니었던가요. 그러니 묻습니다. 셋째, 우리 내부에서 진행된 사유를 타자의 것과 분리할 수 없다면 '내 고유의 생각'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인비저블 몬스터」는 세 난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입니다.(117p)

 

 

왜 몇 세기 동안 역대 파라오들이 피라미드를 지었는지를 쿠푸에게 말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은 고문헌과 전승을 넘나들면서 파라오에게 피라미드의 비밀을 일러줍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러했습니다. '피라미드는 왕권의 상징 따위와는 별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왕정 국가 이집트의 진짜 위기는 파라오의 힘이 약화됐을 때가 아니라, 이집트의 부가 더없이 풍요로웠을 때 발생했다. 생활이 안락해지면 백성은 독립적인 정신을 가지고 파라오의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피라미드 건축은 파라오가 '선택'할 문제가 아니며, 마땅히 시행되어야 할 과업이다.' 대신들은 목숨을 걸고 파라오에게 주장합니다. 자신들이 다스려야 할 세계를 백성에게 영구히 내주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육체의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그들의 힘을 소진시키고 무에 가까울 정도로 고갈시켜 피폐한 정신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만에 하나 벌어질지도 모를 사회 변혁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심신을 지치게 하고 파괴하는 동시에 철저히 무용한"일은 바로 피라미드 건축이었습니다.(196-197p)

 

 

그런 까닭에 오늘날의 전쟁은 옛날의 전쟁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단지 사기 행위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소나 염소 같은 반추동물들이 뿔이 잘 못 나서 피차 상처를 입힐 수 없는 상태에서 싸움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잉여 소비품을 소모시키고, 계급사회가 요구하는 특수한 심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쟁이란, 뒤에서 말하겠지만 순전히 국내의 문제이다. 과거에는 모든 국가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이 공동이익을 인정하고 전쟁으로 인한 파괴의 범위를 제한해가며 서로 전쟁을 치렀고 승자는 늘 패자를 약탈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결코 서로 적대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전쟁은 각 지배집단이 그 백성에 대해 싸우는 것이며, 또 전쟁의 목적이 영토 확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체제를 고스란히 지키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전쟁'이라는 바로 그 낱말도 잘못 쓰인 것이다. 전쟁은 늘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375-376p)

 

 

 

ㅡ 김유태, <나쁜 책> 中, 글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