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토마스 C. 포스터, <교수처럼 문학 읽기> 中, 이루
2024/6/27
좋아요, 그 말이 사실이고 작품을 읽는 데 꼭 필요한 문학적 관습이 정말 존재한다고 쳐요. 그럼 어떻게 해야 그런 건 알아볼 수 있죠?
카네기홀에 데뷔하는 방법과 똑같다. 계속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평범한 독자는 소설을 읽을 때 당연히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집중한다. 이들이 누구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놀라은, 또는 끔찍한 일을 겪는지 주시하는 것이다. 이런 독자들은 일단 작품의 감정적 차원에 반응하는데, 개중에는 오직 감정적인 차원에만 반응하는 이들도 있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기쁨이나 혐오, 웃음, 슬픔, 근심, 고양감을 느끼고 거기에 감정적, 본능적으로 휘말리는 것이다. 종이든 컴퓨터든 어딘가에 작품을 쓰는 소설가는 원고를 출판사로 보낼 때 자기 책이 독자들로부터 바로 이런 반응을 얻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문학 교수들이 책을 읽을 때는 이야기의 감정적인 차원에도 반응하지만 대개는 다른 요소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20p)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궁금할 것이다. 작가들은 왜 폭풍이 몰아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씨를 좋아할까? 왜 영주의 저택이나 오두막, 피곤에 지친 여행자들을 심한 비바람에 시달리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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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에서 날씨는 절대로 그냥 날씨가 아니다. 비가 그저 비가 아니라는 말이다. 눈, 태양, 더위, 추위, 그리고 어쩌면 진눈깨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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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비가 특별한 이유는 뭘까? 우리가 땅으로 기어 올라와 살기 시작한 때부터 물은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강은 주기적으로 범람하여 그동안 우리가 이룩해 놓은 문명을 집어삼키고 우리를 다시 물로 끌고 들어가려 한다. 많은 비, 대홍수, 방주, 큐빗, 비둘기, 올리브 가지, 무지개가 등장하는 노아의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고대 인류에게 정말 큰 안도감을 선사했을 것이다.(121p)
폭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장 개인적이고 은밀한 행위 중 하나이지만 동시에 문화적, 사회적 함의를 갖고 있다. 그것은 상징적이거나, 어떤 주제를 내포하거나, 성서적이거나, 셰익스피어 풍이거나, 낭만주의적이거나, 우의적이거나, 초월적일 수 있다. 반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그저 폭력일 뿐이다. 누군가가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당신의 코를 후려치는 것은 그저 단순한 공격 행위일 뿐이다. 현실 속의 폭력에는 그 이상의 의미는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문학에서의 폭력은 문자 그대로의 폭력이면서 동시에 다른 의미도 갖게 마련이다. 누군가의 코를 후려치는 주먹은 문학에서는 뭔가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주먹일 수도 있다.(155p)
「써니의 블루스」는 1957년에 출간됐다. 볼드윈으로서는 당시 자기가 지닌 최대한의 지식을 동원해 이 작품을 썼고, 약물 중독에 관한 연구 논문이 아니라 형제간의 관계를 파헤치는 것이 목적이었다. 「써니의 블루스」는 속죄에 대한 글이지 약물 중독 치료에 대한 글이 아니다. 만약 후자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는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의 눈과 마음을 볼드윈이 살았던 1957년으로 이동시키지 못한다면 소설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든 완전한 감상에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을 지니고 있고 그것이 정상이다. 뭔가를 보고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이 납득할 수 있는 일정 수준의 개연성을 갖고 있고, 우리가 아는 세계와 어느 정도 유사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허구의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세계와 모든 면에서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는 경직된 자세를 갖는다면 작품을 읽는 즐거움을 놓치게 될 뿐 아니라 제대로 작품을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대치는 어느 정도여야 적정한가? 작품에 대해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그건 여러분에게 달렸다.
(...)
당신만의 눈으로 읽지 말라.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서기 2천 몇 년이라는 현재의 입장에 고정되어 있는 당신만의 시각으로 작품을 대하지 말고, 그 이야기가 쓰인 역사적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관점에서,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고유의 사회·역사·문화·개인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관점에서 바라보라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점이 없지 않지만, 나중에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다.(339-340p)
ㅡ 토마스 C. 포스터, <교수처럼 문학 읽기> 中,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