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야망계급론> 中, 오월의봄
2024/7/11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을 썼던 100여년 전과 달리 요즘 지배적 문화 엘리트들은 단순한 과시적 소비 대신 과시적 생산, 과시적 여가, 비과시적 소비에 참여하는 쪽을 선호하는데, 이 모든 행태가 물질적 재화의 소비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도 은밀하게 계급 격차를 확대한다는 이야기.
내용 이해에는 크게 무리가 없으나 개인적으로 번역이 너무 별로.
과시적 소비는 참으로 자본주의적인, 산업혁명 이후의 스펙터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인간은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 계속해서 지위 전쟁을 벌였다. 베블런은 20세기 전환기에 자신이 관찰한 많은 현상이 이미 선사시대부터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대 로마 사회에 관한 앤드루 월리스해드릴의 연구를 보면, 서기 79년보다 한참 전부터 과시적 소비가 넘쳐났음을 알 수 있다. 평면스크린 텔레비전과 저금리 할부 자동차가 등장하며 현재의 계급 구분선을 흐릿하게 만들기 수천 년전에도 부유하지 못한 이들은 상층계급을 모방했다.(21-22p)
너무도 많은 사람이 사치품에 돈을 쓸 수 있게 된 탓에 그런 상품이 더는 구별짓기의 표지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의 과시는 '철 지난'행동으로 간주되며 이제 과시적 소비는 최상위 부유층보다 오히려 다른 모든 계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되었다.
(...)
그리하여 진정한 엘리트들은 부와 소비 습관 대신 암묵적인 지위의 표지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26p)
이 새로운, 지배적인 엘리트 문화집단을 아주 간단하게 야망계급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들의 상징적 지위는 간혹 물질적 재화를 통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지식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문화적 기표들ㅡ디너파티에서 신문 칼럼을 놓고 나누는 대화, 정치적 견해와 그린피스 지지를 나타내는 범퍼 스티커, 농민 직거래 시장에서 장보기 등ㅡ을 통해 드러난다. 이런 행동과 기표들은 야망계급의 가치관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런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 또한 넌지시 드러내준다. 오늘날의 야망계급은 커리어에서부터 식품점에서 구입하는 식빵 종류에 이르기까지 온갖 선택을 하고 의견을 형성하는 데서 가치관과 문화적·사회적 의식, 지식 습득을 소중히 여긴다. 이들은 크고 작은 선택을 할 때마다 자신이 사실에 근거해(유기농 식품, 모유 수유, 전기차 등의 장점에 관해) 올바르고 합당한 결정을 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결정이 식견 있는 것이며 정당하다고 느끼고 싶어 한다. 요컨대 베블런의 유한계급이나 데이비드 브룩스의 '보보스'와 달리, 이 새로운 엘리트는 경제학적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야망계급은 특정한 가치관과 지식 습득에 기반한 집단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지식을 얻는 데 필요한 희소한 사회적·문화적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40-41p)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인의 소비 행동에는 세 가지 중요한 거시적 추세가 있었다. 첫째, 부유층과 상층 중간계급ㅡ즉 소득 상위 1퍼센트와 상위 5퍼센트 및 10퍼센트 계층ㅡ은 과시적 소비에서 미국인의 평균 지출액 대비 덜 지출하는 반면, 중간계급ㅡ소득 상위 40~60퍼센트ㅡ은 더 많이 지출한다. 둘째, 지출 비중으로 볼 때 중간계급은 소득에 비해 과시적 소비의 비중이 큰 반면, 부유층(그리고 극빈층)은 적다. 셋째, 부유층의 과시적 소비는 '비과시적 소비'로 대체되고 있다. 즉, 이들의 소비는 더 많은 여가를 얻고, 장기적으로 삶의 기회를 창출하는, 비과시적이면서도 고가인 서비스로 대체되고 있다. 교육, 의료, 육아, 보육, 정원사, 가사도우미 같은 노동집약적 서비스가 여기에 포함된다.(55p)
다른 모든 요인을 통제하고 인종의 영향만 살펴본 찰스와 동료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흑인과 히스패닉은 동일한 소득 및 교육집단에 속하는 백인에 비해 소득에서 더 많은 비중을 과시적 소비에 쓴다. 찰스는 이런 결과를 차별의 영향으로 추측한다. 이들은 소수자로서 백인이나 아시아계보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더 큰 압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좋은 차를 타고 잘 차려입은 모습 등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계급을 암시한다. 차별을 겪은 역사를 지닌 소수자들에게 과시적 소비는 사회적·경제적 위치를 효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차별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 된다. 이러한 결과는 상층계급 와스프WASP 문화에서 관찰되는 것과 거의 정반대다. 어떤 차별이나 억압도 경험하지 않은 와스프집단은 물질적 재화를 아무렇지 않게 무시한다. 피부색만으로도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68-69p)
물질적 소비는 더 이상 교육이나 은퇴, 의료같이 중요한 지출에 자원을 투자하는 것보다 우선시되지 않는다. 교육, 은퇴, 의료 등에 대한 소비는 모두 높은 가격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동시에 야망계급 지위를 재생산하고 이들이 나머지 전체와 자신들을 한층 더 분리하는 결정적인 통로다.
이런 소비에는 많은 돈이 들지만, 언뜻 보면 지위를 드러내려는 시도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실제로는 지위를 드러낼지라도 말이다). 이처럼 비과시적 소비는 두 가지로, 거의 양분된 형태를 띤다. 매니큐어 색깔이나 특정한 문화적 지식같이 그리 비싸지 않고 돈과 무관하다시피 한 기표들인 정보비용이 드는 비과시적 소비와, 육아, 의료, 대학 수업료같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들의 삶의 질을 크게 개선하는 동시에 기존의 계급 구분선을 강화하고 보강하는 대단히 갑비싼 비과시적 소비가 그것이다.
(...)
거의 모든 비과시적 소비의 핵심은 아는 사람만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비가시적이며, 따라서 암묵적 정보나 상당한 돈이 없으면 모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비과시적 소비는 새로운 계급 구분의 원천이다.(94p)
사회학자 더글러스 홀트가 이야기한 예시를 빌리자면, 오페라를 관람하는 행위는 문화자본이라기보다는 공연 일정이 언제이고 어디서 표를 사야 하는지에 관한 지식, 음악을 감상하는 법, 다른 주제를 논할 때도 공연을 참고할 수 있는 능력, 그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 여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페라 관람이 가치 있는 시간 활용임을 인식하는 능력으로 결합된 결과물이다.
(...)
(송구스럽지만) 크루그먼의 시각이 아니라 그의 이름과 <뉴욕타임스>를 아는 것이 문화자본을 보여준다.(98p)
돈과 무관한 비과시적 소비와 지위의 관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건 야망계급 내에서도 경제적 하위집단의 행동이다. 잉글랜드 여왕이나 시티뱅크 은행장과 파티에 참석하는 건 고사하고 집세나 간신히 낼 정도의 돈을 버는 힙스터ㅡ영화계 종사자나 시나리오 작가, 출판계에서 일하는 20대 젊은 도시인ㅡ들 말이다. 이 우스꽝스럽고 아이러니한 하위문화에서는 무엇이 쿨하고 알 만한 것인지에 관한 정보야말로 그들이 가진 전부이며, 따라서 이들 또한 돈과 무관한 비과시적 소비에 몰두한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블로그와 트위터 글을 읽고 참조하며, NPR 에코백을 들고 다니고, 픽시 자전거를 타는 식으로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규정할 수 있기 때무이다. 그들은 우유 대신 헴프 밀크를 마시고, 중고 혼다 어코드 대신 식물성 기름으로 달리도록 개조된 낡은 메르세데스를 몰며, 맥도날드보다 푸드트럭에서 패스트푸드를 사 먹는다. 가격이 대충 비슷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식물성 연료 차량과 아몬드버터는 야망계급의 문화자본을 보여준다. 이는 실천과 제품이 값이 비싸지는 않지만, 도시의 하위문화와 골목 안쪽에 자리한 좁고 어둑어둑한 술집, 특정 푸드트럭의 위치 등에 관한 내부자 정보 게임을 통해 확인되고 선택된다.(106-107p)
21세기의 모유 수유는 모성의 다른 많은 측면과 마찬가지로 계급과 그에 따른 수단의 문제가 되었다.
양육은 베블런이 말한 과시적 유한에 참여하는 새로운 통로가 되고 있다. 모유 수유와 출산은 베블런 시대에 스포츠나 그리스어 공부처럼 과시적 유한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사례다. 루이비통 가방이나 고급 자동차와 달리, 이 기표들은 명백하게 비싼 건 아니지만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소중한 재화가 되었다. 베블런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과시적 유한은 대부분 돈을 연상시킨다. 모성의 많은 측면ㅡ출산 선택, 아이와 함께 자기, 아이 안고 다니기, 모유 수유 등ㅡ은 돈이 들지 않는 듯 보이지만, 이런 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시간과 여가가 풍부하고 이런 형태의 모성을 장려하는 문화적·사회적 집단에 속해야만 한다.(143p)
모유 수유는 주로 특정한 문화적·계급적 집단에서 활발하게 이뤄진다ㅡ교육수준이 높아 모유 수유의 장점에 관해 배우는 여성들, 그리고 24시간 상주 간호사와 모유 수유 강습을 제공하는 수유 상담사, 값비싸고 효율적인 유축기, 산모의 입원 기간 동안 내내 도움을 주는 신생아 친화적인 병원에서 출산할 정도로 넉넉한 보험을 든 고소득집단 여성들 말이다. 모유 수유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또 다른 중요한 지표는 출산휴가 기간이다.
(...)
미국에서 넉넉한 출산휴가는 모든 여성에게 희귀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휴가를 받는 이들은 주로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표면상 심한 압박을 받는 일을 하는 여성(가령 관리자, 법률가, 최고 경영자)이 넉넉한 출산휴가를 받으며, 따라서 모유 수유에 성공할 확률도 높다. 물론 그들의 교육수준과 모유 수유의 장점에 관한 지식 접근성(또한 전문직 종사자라는 사실)은 그들의 선택과 밀접하게 연결된다.(147-148p)
베블런 시대의 지위는 제품 자체로 좌우됐지만, 21세기의 지위는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원산지는 어디인지에 달려 있다. 과시적 소비와 달리, 오늘날 많은 재화는 과시적 생산을 통해 그 지위를 획득한다.(195p)
과시적 생산으로 만들어진 재화는 야망계급 소비의 핵심 영역이다. 야망계급이 볼 때 우리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것 그 자체이면, 이 때문에 일부 재화의 불투명한 생산과정은 매 단계에서 투명성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 투명성은 단지 더 많은 문화적 가치를 더하는 게 아니다ㅡ투명성 자체가 가치다. 우리는 농민 직거래 시장에서 더 작고 못생긴 사과를 사 먹는다. 직접 농부를 만났고, 그가 과일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뿌리지 않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새롭게 구성되는 경제 및 문화 시스템에서 과시적 지위 표지의 핵심은 소비가 아닌 생산에 있다. 이것이 바로 할리우드의 성공한 시나리오작가와 실업자 힙스터를 같은 카페에서 보게 되는 이유다. 수백 년간 정반대에서 대립한 끝에 마침내 야망계급으로 한데 뭉친 이 두 집단은 똑같은 물건을 원하고 높이 평가한다. 21세기에 과시적 생산이 등장한 데는 세 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 세계화에 대한 반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투명한 정보에 대한 선호, 탈희소성 포스트모던 사회와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의 결과로서 이런 일들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사치가 그것이다.(204-206p)
하지만 홀푸드의 성공은 유기농도 맛 좋은 식품 때문도 아니다. 홀푸드의 성공 비결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싶어 하는 정체성과 스토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창조했는지에 있다. 홀푸드 및 과시적 생산 운동 전반을 이해하는 열쇠는 상품 자체가 아니라 과정과 거기에 내포된 의미의 중요성이다. 홀푸드에서 식료품을 산다는 것은 소비자 의식, 동물권 의식, 환경 의식, 그리고 좀 더 광범위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식견 있고 양심적인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함의한다.(209p)
이 책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의 소비주의ㅡ특히 과시적 소비ㅡ는 오늘날 새로운 미국 내부에 존재하는 거대한 불평등을 감춘다. 21세기 미국의 야망계급은 역사적으로 지위를 드러내온 많은 물질적 수단을 거부한다. 그들은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더 높은 사회적·문화적 기준을 열망하고 있다. 이런 열망은 계급적 위치를 보여주기 위한 새로운 수단의 활용으로 이어진다. 이 지배적 문화 엘리트들은 단순한 과시적 소비 대신 과시적 생산, 과시적 여가, 비과시적 소비에 참여하는 쪽을 선호하는데, 이 모든 행태는 물질적 재화의 소비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계급 격차를 확대한다.
(...)
오늘날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이들은 한가하게 빈둥거리기는커녕 자신과 자녀의 물리적·정신적 이득을 취하고자 생산에 몰입하는 야망계급이다. 이들의 소비 행동은 과거 물질적 과시에서 벗어나 암묵적이면서도 은근히 암호화된 수단으로 사회적·경제적 위치를 보여주고 부를 재생산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야망계급은 소비주의의 보편화에 따른 '월마트 효과', 즉 대중시장의 물질적 재화를 경멸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자신을 한층 더 구별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제조업 소비재의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계급 구분선을 가로질러 많은 이가 이러한 재화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 착취와 유해 화학물질 사용, 열대우림 파괴 등 가격 인하에 따라 인간과 환경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도 드러났다. 그 결과로 과시적 생산이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제품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훨씬 중요해졌다.
(...)
이 새로운 엘리트층의 소비 실천은 중간계급의 과시적 소비에 대한(그리고 평범한 미국인들과의 차별화를 위한) 단순한 대응이 아니다. 대학 교육이나 풀타임 아기 돌보미 같은 소비는 좋은 차나 코치 핸드백 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며, 단순히 지위를 보여주는 물질적 신호로서의 소비보다 한층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소비 선택에는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야망계급이 내리는 결정과 이들이 확립하는 규범은 과거 유한계급의 소비주의가 사회에 미친 영향보다 훨씬 더 유해하다. 은수저를 사거나 장기 휴가를 가는 대신 교육과 건강, 은퇴, 양육에 쏟는 투자는 어떤 물지적 재화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녀들이 계급(그리고 종종 부) 재생산을 보장한다. 이와 같은 문화자본과 그 산물의 재생산을 통해 우리는 찰스 머리가 말한 '새로운 상층계급'과 '새로운 하층계급'의 등장을 마주한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격차가 아니라, 전례가 없는 심대한 문화적 격차다. 양육, 지식, 환경 의식 등의 모호한 규범을 둘러싼 문화적 차이에도 그 이면에는 경제적 위치가 자리하며, 이런 상징적 경계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오늘날의 엘리트집단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도덕적이거나 가치로 충만한 선택으로 보이는 행동이 실은 사회경제적 위치의 한 층위로 깊이 내재되어 있고, 이런 선택 중 대개가 거창한 물질적 기표가 아니라 일상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 엘리트, 올리가르히, 금권정치인 등의 사치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에 집착하는 미디어의 행태로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계층화라는 훨씬 더 시급한 쟁점이 가려진다. 슈퍼리치의 삶이 흥미롭긴 해도 이들은 언제나 존재했으며 우리 대다수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위 1퍼센트, 5퍼센트, 10퍼센트 소득구간에 다수가 속하는 야망계급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이들이 점점 더 비과시적으로 행하는 결정과 투자는 중간계급이라면 시도할 수 없는, 따라서 이들은 배제하는 방식으로 부와 상향 이동성을 재생산한다. 과시적 여가와 비과시적 소비ㅡ즉 교육, 의료, 육아, 가족과 보내는 시간ㅡ에 투자할 수 있는 자유는 사회학자 울리엄 줄리어스 윌슨의 용어를 빌리자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야망계급에게만 주어지는 '삶의 기회'에 진정으로 영향을 미친다. 자녀의 중등교육에 투자하고, 장바구니를 과일과 채소로 채우고, 정기 건강검진을 받고, 심지어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까지도 모두 다음 세대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전에는 미니밴과 교외 주택이 있으면 '성공했다'는 의미가 되었지만, 이제 그런 것들로는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지 못하며, 그런 대학(그리고 수업료를 내줄 수 있는 능력)이 점차 부유층과 나머지 모두를 갈라놓는 기준이 되고 있다. 야망계급은 0.01퍼센트가 아닐지 몰라도 이들은 다른 모든 이들과 동떨어진, 완전히 다른 특권적 문화 세계에 산다.(317-321p)
ㅡ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야망계급론> 中, 오월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