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그 외

ㅡ 김영하, <말하다> 中, 문학동네

mediokrity 2016. 1. 26. 22:43

2016/1

 

저를 포함한 문학작품의 독자들은 예상치 못한 찬란한 실패를 욕망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존재들입니다. 시장에 가서 잘 익은 사과를 골라 바구니에 담으면서도 막상 집에 와서 장바구니를 풀었을 때 그 사과가 여전히 그저 잘 익은 사과에 불과하면 실망을 합니다. 그것은 사과 이상(옥은 그 이하)의 전혀 예기치 못한 그 무엇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엇을 소비자는 미리 알 수가 없습니다. 미리 안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겠지요.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잘 모르는 바로 그것을 내놓으라는 게 문학 독자의 욕망인 것처럼 보입니다.(168~169p)

 

한 권의 책과 그것을 읽은 경험은 독자 개인에게만 고유한 어떤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독서를 왜 할까요? 그것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거의 모든 것이 공개돼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하루하루는 시작부터 끝까지 공유되고 공개됩니다. 웹과 인터넷, 거리의 CCTV, 우리가 소비한 흔적 하나하나가 다 축적되어 빅데이터로 남습니다. 직장은 우리의 영혼까지 요구합니다. 모든 것이 털리는시대. 그러나 책으로 얻은 것들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독서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공유하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 내면을 구축하기 위한 것입니다.(180~181p)

 

 

 

김영하, <말하다> ,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