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中, 문학동네
2024/7/30
중간마다 있는 초단편은 왜 수록한 지 모르겠다. 단편 중에는 '라인벡'이 가장 좋았다.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26p)
불꽃이 튄 적이 없었는데 그건 아마 내 잘못이었을 테고, 설령 불꽃이나 불꽃과 비슷한 뭔가가 있었다 해도 나는 늘 그것을 꺼트릴 방법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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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진척되는 듯했고, 아마 그래서 내가 물러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모르겠다. 얼마 뒤에는 이 관계 역시 근래에 맺은 다른 모든 관계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기엔 바로 그 친밀함이, 그 신뢰가 없었다. 데이비드는 내가 사귀는 여자들을 매번 자신과 리베카의 관계, 혹은 우리 셋의 관계와 비교하는 건 부당하다고, 그 무엇도 이 관계와 진정으로 경쟁할 수는 없다고, 게다가 우리 셋 사이에는 못해도 이십 년의 세월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하려 애쓴다. 세월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친밀함의 문제야, 나는 데이비드에게 말한다. 있거나 아니면 없거나, 둘 중 하나인 그 것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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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제는 누군가와 연인 관계가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저 원하는 척할 뿐이라는 것이라고.(106-107p)
라인벡에서 살던 초기에, 우리 모두 세상을 알아가고 있었고 그 무엇도 영구적이거나 아직 정착되지 않았던 그 시기에, 우리는 걸핏하면 뉴욕시로 나갔다. 우리 중 누구도 그곳에서의 삶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그곳에서 떠나왔다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우리는 금요일 오후에 기차에 올라탔고 가는 길에 호텔을 예약했으며 우리가 좋아하던 술집과 식당을 모조리 훑고 다니다가 대학 시절처럼 새벽 네다섯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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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우리는 뉴욕에 좀처럼 가지 않고, 일 년에 한두번쯤 공연을 보거나 옛친구들을 만나러 갈 뿐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런 감각이 있었다ㅡ지금 생각해보니 나만 그랬을 수도 있겠다ㅡ어쨌든 예전에는 우리가 젊음의 어떤 절정에 도달했다는 감각, 우리가 여전히 젊다는 게 아니라 아직은 그런 척할 수 있다는, 더 젊은 자아로 슬쩍 되돌아가 다시 대학 시절의 그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그건 속임수이자 가장 놀이였고, 우리는 그 놀이를 자주는 아니어도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을 만큼은 이어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멈춰버렸다. 왜 그랬는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주방이 완공되어서, 식당 영업이 바빠져서, 일요일 브런치나 결혼식 피로연 같은 주말 영업을 늘려서 등등의 이유였을 것이다. 가끔 내가 뉴욕에 한번 가자고 말을 꺼내면 두 사람은 힘없이 웃으며, 음, 그래, 다음주에 상황을 보자, 아니면 다다음주, 하고 말했지만, 물론 다음주가 되면 그들은 다시 바빠졌다.(110-112p)
하지만 그 앨범에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사진이 한 장 있다. 맥두걸 스트리트에 있던 내 아파트에서 셋이 함께 앉아 와인을 마시는 사진이다. 모두가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었고 데이비드는 모자를 썼으며 리베카는 귀마개를 하고 나는 장갑을 끼고 있으니 틀림없이 겨울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얼마나 추운지 보여주려고 입김을 불고 있고, 우리의 숨결은 안개처럼 공기 중에 서린 채 멈춰 있다. 그 사진의 재미있는 점은 맥두걸 스트리트의 그 오래된 아파트가 겨울에 얼마나 추웠는지는 기억이 나지만ㅡ난방장치가 늘 고장났다ㅡ그날이 언제였는지, 그 사진을 누가 찍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궁금해진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을지,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지워져버렸을지.(125-126p)
하지만 그래도 어떤 일들은 아직 확실히 기억할 수 있다. 예전에 뉴욕에서 우리 모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청춘이던 그때, 나는 늦은 저녁에 대개는 다른 친구들과 저녁 내내 술을 마신 뒤 둘의 아파트에 들르곤 했다. 86번가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들의 아파트 건물 가장자리가 보이면, 두 사람이 아직 깨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깨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늘 어떤 긴장된 설렘을 느꼈다가, 아파트 이층의 불 켜진 창문이 마침내 보이면서 그들이 집에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찾아오던 그 편안함. 그때는 그저 소박한 일상 같았지만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건물 아래쪽 입구로 걸어올라가 초인종을 울리면 몇 초 뒤 둘 중 하나의 얼굴이 창문에 나타나 나를 내려다보고 웃으며 올라오라고 손직할 때의 그 기대감을, 그런 다음에는 인터컴으로 방금 와인을 땄다고, 빨리 들어오라고, 바깥은 너무 춥지 않냐고 말하던 둘 중 하나의 대개는 리베카의, 그 목소리를.(127-128p)
새로 부모가 된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큰 실수 중 하나는 지나친 기대라고 그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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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 어쩐다, 다들 얘기하잖아요." 린지가 말했다. "뭐, 물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변화와는 다를 뿐이죠. 뻥 뚫린 마음이 채워진다거나 하진 않아요. 무언가를 해결해주진 않죠. 그저 달라질 뿐이랄까요?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전과 다르게."(181p)
ㅡ 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