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데이비드 메이슨, <처음 읽는 유럽사> 中, 사월의책
2024/8/2
맨날 세계사ㅡ거의 유럽사라고 봐야겠지만ㅡ입문서만 보다가 까먹고 다시 비슷한 입문서 수준의 책만 보니까 발전이 없다. 특정 지역이나 시기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논하는 책을 읽어야 할 텐데 손이 잘 안 간다. 이 책도 1789년부터 1989년까지 200년의 역사를 거칠게나마 개괄하긴 좋지만 주마간산식이라 이대로 일주일만 지나도 또 다 까먹겠지?
19세기의 마지막 15년 동안 유럽 열강은 전 세계에 영향력을 넓히고자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다. 이 제국주의의 시대에는 지구 땅덩어리 중 4분의 1 이상이 유럽 6개국에 점령되었다. 경쟁은 특히 아프리카에서 심했다. 그때까지 아프리카는 해안 지역을 제외하고는 유럽인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유럽인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서, 유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었다. 1880년 당시에는 아프리카의 약 90퍼센트를 아프리카인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20년 후 아프리카 쟁탈전이라 불린 영토 차지 경쟁이 한바탕 휩쓴 뒤에는 사실상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분할되어 유럽 국가들의 손에 넘어갔다.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만이 독립을 유지했다.(167p)
사회다윈주의의 대표적 옹호자인 영국인 허버트 스펜서는 다윈의 적자생존 개념이 생물종만이 아니라 민족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우월감은 극단적인 형태를 띠기도 했다. 한 예로 1904년 독일 함부르크의 한 동물원에서는 사모아인 여자들이 우리에 갇힌 채 전시되었다.(172p)
아프리카 대륙 쟁탈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879년이었다. 당시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는 영국계 미국인 기자 헨리 스탠리를 중앙아프리카의 콩고로 보냈다. 스탠리의 손에는 그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레오폴드 2세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의 합의서가 잔뜩 들려 있었다. 스탠리는 합의서를 들고 500여개 부족을 찾아다니며 각 부족 추장에게 서명을 받아 1884년 돌아왔다. 유럽 내 경쟁 상대가 갑작스레 아프리카 영토를 손에 넣어 버리자, 마음이 급해진 독일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유럽 국가들의 아프리카 대륙 분할에 규칙을 마련하고자 1884년부터 이듬해까지 이어진 베를린 회의를 주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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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회의를 기점으로 아프리카 땅에 대한 미친 듯한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유럽 각국은 서로 선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프리카로 달려들었다. 그로부터 겨우 15년만인 1900년 경,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유럽 열강의 손에 분할되었다.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만이 식민지가 되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고, 그나마 원주민이 직접 통치하는 제국은 에티오피아뿐이었다.(174-175p)
1500년에 유럽 국가들이 지배한 지역은 지구 땅덩어리 전체의 7퍼센트에 불과했지만, 1800년에는 35퍼센트로 늘어났고 1914년에는 무려 84퍼센트가 되었다. 20세기 초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고 제국에 속한 인구는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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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동'과 '극동'이라는 용어는 유럽을 기준으로 해당 지역까지 상대적인 거리를 나타냈다. 1884년 어느 학회에서는 영국 런던 근교에 있는 그리니치를 지나는 자오선을 경도 0도, 즉 본초자오선으로 삼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세계 전역의 표준시간대는 그리니치표준시GMT를 기준으로 하여 몇 시간을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표기하게 되었다.(180-181p)
ㅡ 데이비드 메이슨, <처음 읽는 유럽사> 中, 사월의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