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박상현, <친애하는 슐츠씨> 中, 어크로스
2024/8/11
이렇게 거대한 조직이나 사회에 스며든 습관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기복제를 한다. 내가 중국어를 배울 때 사용하던 교과서는 중국에서 제작한 것이었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 담배를 권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대화로 가르쳤다. 논산 훈련소에서는 두세 시간의 훈련이나 작업을 마친 후에 흡연을 위한 휴식 시간을 제공한 것은 물론 훈련생에게 담배를 무료로 지급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흡연을 권한다면 담배를 끓는 것이 과연 '개인의 선택, 개인의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15p)
2017년 <버즈피드>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실험에 참가한 남성 네 명의 옷에 달린 주머니를 꿰매어 사용할 수 없게 하고 일상생활을 하게 한 것이다. 실험 참가자들은 밖에 나가면서 사원증이나 지갑을 놓고 나가는 실수를 했고, 테이크아웃 음식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데 애를 먹었으며,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서 폰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고생했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본 남자들은 여자가 현대 사회에서 주머니 없이 사는 건 전기가 발명된 세상에서 어둠 속에 사는 거나 다름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머니가 없거나 지나치게 작고 적은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고 살아온 여자들은 하루 실험에 참여한 남자들보다는 익숙하게 일상생활을 할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불편함에 익숙해진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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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남성과 여성 중 남성만이 기능하는 옷을 입을 수 있고 입게 될 것을 당연하게 기대하고 그걸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자가 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기여는 제한적이라는 사고방식, 여자를 전통적인 위치에 묶어두려는 태도가 여자의 옷을 만드는 데 반영된다.(122-123p)
사람은 단순히 남성 Y염색체를 갖고 있다고 해서 체력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원래 AIS는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젠 무감응 증후군이기 때문에 이걸 가진 사람은 체력과 경기력을 높여주는 남성 호르몬의 덕을 보지 못한다. 애초에 조직위가 선수의 염색체까지 살피면서 여성임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호르몬으로 인한 불공정한 이점을 없애려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마르티네즈 파티뇨 선수는 애초에 자신에게 있지도 않은 이점 때문에 그 모든 일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을 겪은 세계육상연맹은 성염색체를 기준으로 한 성별 검사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마르티네즈 파티뇨 선수에 비하면 캐스터 세메냐의 경우는 다른 여자 선수들에 비해 호르몬상 분명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평균 여성들에 비해 몇 배나 많은 테스토스테론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운동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를 악용하려는 도핑은 경기조직위원회의 감시 대상이다. 문제는 이 호르몬을 주사하지 않았는데도 몸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다. 스포츠중재재판소는 2019년에 세메냐는 몸에서 평균 여성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테스토스테론이 나오기 때문에 강저젝으로 수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여성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언뜻 들으면 과학적인 판단인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
똑같은 일이 남성 선수에게 일어나면 어떨까? 테스토스테론이 평균보다 많이 나오는 남성은 남들보다 키가 큰 농구선수처럼 그저 '신체적 조건이 유리한' 선수일 뿐이다. 엘리트 체육의 꽃인 올림픽은 물론이고, 프로 스포츠계는 그렇게 신체적 이점을 타고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서 같은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면? 그건 부당한 이점이라는 것이 스포츠중재재판소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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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남자가 여자 종목에 몰래 들어와서 경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별을 확인하는 절차를 만들었는데, 과거에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생각했던 성이 살펴볼수록 복잡해서 칼로 자르듯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연구를 해보니 외부에 드러난 생식기도 성염색체도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주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158-160p)
나와 다른 인종이나 문화를 '배려'하는 것과 다양성의 가치를 아는 것은 다른 얘기다. 후자의 경우에는 다양성이 조직과 사회에 실질적인 이익임을 아는 것이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내가 '베푼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내가 힘들거나 반대에 부딪힐 경우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193p)
소셜미디어를 떠돌며 앰버 허드를 조롱하는 영상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허드는 어설픈 연기를 한다. 그게 연기이기 때문에 허드의 주장은 거짓이다. 그리고 그런 뻔뻔한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그가 소시오패스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세 주장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설프게 우는 연기와 폭행 사건과 관련한ㅡ증거가 필요한ㅡ사실 관계는 서로 무관하고, 소시오패스 여부는 정신과의사의 진단이 필요한 문제이지, 몇 초짜리 영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을 하는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분노한 사람들(압도적으로 남성이다)에게서 "그럼 앰버 허드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냐"라는 말을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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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재판에서 다루는 증거(팩트)와 피고의 성격 혹은 평판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203-204p)
앰버 허드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허드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허드는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고, 뎁과 허드 둘 모두 미성숙한 사람들로 보인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비폭력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마하트마 간디의 경우 아내를 공개적으로 조롱했고 아들들을 학대했다. 아버지의 학대에 분개한 간디의 아들들이 훗날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사실은 이제는 잘 알려진 일이다. 하지만 간디가 그랬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를 소시오패스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부부가 서로 폭력을 주고받았음에도 사람들은 조니 뎁을 소시오패스라고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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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대중은 앰버 허드와 같은 여성에게 ‘착하고 죄 없는 피해자’혹은 ‘남자를 속이고 괴롭히는 소시오패스’중 하나의 역할만을 허용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남성은 독특한 면이 존재하는 입체적 인물인 반면 여성은 평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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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피해자도 완벽하지 않다. 어떤 피해자도 완벽한 필요가 없다. 상대 여성이 완벽하지 않은 한 때리는 남성이 폭력적인 인간으로 규정 될 수 없다면, 도대체 여성은 얼마나 완벽해야 때리면 안 되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서두에서 언급한 메리 웹스터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완벽하지 않은 여성을 공격하는 일은 인류가 가진 아주 오래된 습관임을 알 수 있다. 성격이 유별난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말해도 그저 ‘유별난 사람’, ‘독특한 사람’으로 인식될 권리는 남자들에게만 부여된다. 여자가 유별나다면? 17세기에는 마녀였고, 21세기에는 소시오패스가 된다.(214-217p)
옷 벗기를 원치 않는 어린 여자 배우의 노출 장면을 찍기 위해 50대 남자 감독과 남성 스태프들이 짜고 거짓말을 했고, 여자 배우에게 알리지 않은 채 쥐를 떨어뜨려서 나체를 찍었다는 얘기다. 김 감독은 일단 그렇게 여자 배우의 몸을 도둑 촬영한 후에 “미스 윤 마음대로 하라”고 했단다. 많은 돈이 투자된 영화의 성공이 달려 있는 상황에서 어린 여자 배우에게 “마음대로 하라”는 말은 한마디로 영화를 위해 네가 희생하라는 압력임을 모르는 사람은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357p)
ㅡ 박상현, <친애하는 슐츠씨> 中, 어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