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中, 문학동네

mediokrity 2024. 9. 11. 11:24

2024/9/11
 
 
소설의 전 과정을 바쳐 뜸 들이는 것에 비해 결과로 드러내는 비밀은 겨우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돌아 돌아왔나 싶어 허탈하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되고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시절이었다."(51p)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283p)
 
이렇게 깔아 놓고 뭐 대단할 것 없는 얘기로 끝난다. 이야기의 전말을 다 알고 사후적으로만 이해함 직한 문장을 작품 전체에 흩뿌려놓는 것도 그냥 과시적 기교 뽐내기로 보인다. 두 번 읽으라고? 독자들이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걸 복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쓸데없이 빈번하며 직접적이다. 이렇게 말하면 완전 말도 안 되는 완성도의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허접한 책은 아니다. 꽤나 공들인 노작이다. 읽는데 인내심을 제법 요구하지만 아름답고도 시적인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 나는 그래서 덜 좋았지만...
 
 
 
 
라헬은 공항 라운지에서 빈 의자 쪽으로 걸어가는 승객처럼 결혼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냥 자리에 앉는다'는 기분으로.(34p)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은, 그가 발견한 나방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지 않은 일이었다.(74p)
 
 
벨리아 파펜은 아들에게 주의를 주려 애썼다. 그러나 벨리아는 자신이 왜 심기가 불편한지 딱 짚어낼 수 없었기에 그의 혼란스러운 걱정을 벨루타는 오해했다. 벨루타는 자신이 짧게나마 받았던 교육과 타고난 재주를 아버지가 시샘한다고 생각했다. 벨리아 파펜의 선의는 곧 잔소리와 언쟁, 그리고 부자간의 불화롤 변질되었다. 벨루타는 집에 가는 것을 피해 그의 어머니를 크게 실망시켰다. 늦게까지 일을 했다.(110p)
 
 
큰 꿈과 작은 꿈이 있다. "'큰 사람 랄타인' 사히브, '작은 사람 몸바티'" 하고 늙은 비하르인 쿨 리가 소풍 때문에 기차역에 온 에스타 학교의 아이들을 보고 (변함없이 매년) 꿈에 대해 하곤 했던 말이다.
'큰 사람'은 '랜턴', '작은'사람은 '촛불'.
'거대한 사람은 플래시라이트', 그가 미처 못한 말이다. 그리고 '작은 사람은 지하철역'.
그가 아이들의 짐을 가지고 뒤에서 터벅터벅 걷는 동안 '선생님들'이 그와 값을 흥정했는데, 그의 휘어진 다리는 더 휘어졌고, 잔인한 아이들은 그의 걸음걸이를 흉내냈다. 아이들은 그를 '괄호 안의 불알'이라고 불렀다.
'가장 작은 사람은 정맥류', 그는 그 말을 하는 것은 완전히 잊은 채, 요구했던 금액의 반도 못 되는, 실제로 받아 마땅한 금액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돈을 들고 휘청휘청 자리를 떴다.(127-128p)
 
 
어린아이였을 때, 그녀는 읽으라고 받은 '아빠 곰 엄마 곰' 이야기를 곧 무시하게 되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아빠 곰'은 '엄마 곰'을 놋쇠 꽃병으로 때렸다. '엄마 곰'은 조용히 체념하고 그 구타를 겪어냈다.
암무는 크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무서운 거미줄을 잣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는 손님들에겐 매력적이고 세련된 사람으로 처신했고, 손님들이 어쩌다 백인일 때는 거의 아첨에 가깝게 행동했다. 그는 고아원과 나환자 진료소에 기부를 했다. 자신을 교양 있고 관대하며 도덕적인 사람으로 대중에게 알리고자 상당히 애썼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뿐일 때면 엄청나게 의심 많고 흉포하고 교활하게 변했다. 그들은 구타를 당했고 모욕을 당했으며,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를 두었다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부러움을 받아야만 했다.
(...)
더 자라면서 암무는 이 차갑고 계산적인 잔인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부당함을 용서하지 않는 고결한 판단력을, 그리고 '누군가 큰 사람'에게 평생 괴롭힘을 당해온 '누군가 작은 사람'에게서 나타나기 마련인 고집스럽고 무모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다툼이나 대립을 피하기 위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러한 것을 찾아냈고, 어쩌면 즐기기까지 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251-252p)
 
 
‘위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들은 것이고 다시 듣고 싶은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든 이야기로 들어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것이다. 스릴과 교묘한 결말로 현혹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내용으로 놀래키지도 않는다. ‘위대한 이야기들’은 지금 사는 집처럼 친숙하다. 혹은 연인의 살냄새처럼, 결말을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귀기울인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대한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누가 살고, 누가 죽고, 누가 사랑을 찾고, 누가 사랑을 찾지 못하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알고 싶어한다
그것이 ‘위대한 이야기들’의 신비이자 마법이다.(319p)
 
그렇다면 이 소설은 위대한 소설은 아니라 하겠다.
 
 
벨루타는 필라이 동지의 몸이 문간에서 흐릿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실체는 없는, 높은 목소리만이 남아 슬로건들을 외쳤다. 텅 빈 문 입구에서 깃발들이 펄럭였다.
(...)
그리고 또 늘 같은 이야기였다.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는 또하나의 종교. 인간의 정신이 만들고 인간의 본성이 훼손하는 또하나의 체계.(394p)
 
 
 
 
 
1. 전체적인 느낌 및 감상
2.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인상적인 구절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3. 이 책의 구조는 비선형적이며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 구조가 여러분이 책을 이해하거나 감정을 느끼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해봅시다.
4. 이 책에는 복잡한 내면을 가진 여러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 중 특히 베이비 코참마의 말과 행동으로 사건이 파국으로 치닫는데요. 이 인물이 그런 행동을 한 동기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보기.
5. 이 책에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제목의 일부이기도 한 '작은 것들의 신'과 '작은 것'과 관련된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만일 그가 그녀를 만지면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없었고, 그가 그녀를 사랑하면 떠날 수가 없었고, 그가 말을 하면 들을 수가 없었고, 그가 싸우면 이길 수가 없었다.
그는, 외팔이 남자는 누구였을까? 누구일 수 있었을까?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소름과 문득 떠오르는 미소의 신?’ '시큼한 쇠냄새ㅡ버스의 쇠난간 그리고 그 난간을 잡았던 버스 차장의 손냄새 같은ㅡ의 신?'(303p)


그는 누구였나? 그는 누구일 수 있었나?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소름과 문득 떠오르는 미소의 신’. 그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었다.
그녀를 만지면 말을 걸 수 없었고, 그녀를 사랑하면 떠날 수 없었고, 말을 하면 귀 기울일 수 없었고, 싸우면 이길 수 없었다.(450p)

6. 이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후각과 관련된 서술이 종종 등장하며 소설의 특이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한몫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냄새나 향기는 기억이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어떻게 그애는 그 냄새를 견딜 수 있었을까? 못 느꼈어요? 저들에겐 특이한 냄새가 있어요, 저 파라반들에겐.(355p)


'두 번째 교훈'.
그래도, 냄새는 난다.
역겨운 달콤함.
바람에 실려 오는 오래된 장미향 같은.(423p)

 
 
 
ㅡ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