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수전 로저스, 오기 오가스, <당신의 음악 취향은> 中, 에포크
2024/10/2
이 책은 이렇게 반응이 나뉘는 주된 이유가 여러분이 받은 음악 훈련의 수준이나 10대에 어울렸던 친구들, 심지어 여러분이 태어난 연도도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러분에게 최고의 만족을 선사하는 음악은 음악 청취의 중요한 일곱 가지 차원으로 정해진다. 진정성, 사실성, 참신성, 멜로디, 가사, 리듬, 음색이다. 이런 각각의 차원에 여러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합쳐져서 여러분만의 독특한 '청취 프로필'이 만들어진다. 여러분의 청취 프로필은 여러분이 음악을 들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몸으로 반응하는지를 결정한다.(36-37p)
사실적 예술을 선호하느냐 추상적 예술을 선호하느냐가 그 사람의 지성이나 성숙도, 세련된 문화적 소양에 관한 뭔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각자의 뇌가 만족스럽게 여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정신적 활동을 비출 뿐이다. 슬프게도 그리고 부정확하게도 인상파나 입체파 같은 여러 추상예술 운동을 문화의 '진전'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전기자동차와 아이폰이 기술의 진전을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다. 앞서 있었던 것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추상화가 사실주의 회화보다 지적으로 뛰어나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얀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보고 절묘하게 세공한 디테일에 놀라든, 피터르 몬드리안의 「구성 10」에 표현된 번뜩이는 기하학적 구성에 감탄하든, 그것은 회화가 내 안에 불러일으킨 감흥을 나의 신경 연결망 배치가 어떻게 즐기는지 반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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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성향을 연구한 흥미로운 자료를 보면 사실성에 대한 욕구는 예술 형식마다 다르다고 한다. 인간의 시각 회로는 미각 회로와 대체로 독립적으로 발달하며, 미각 회로는 청각 회로와, 청각 회로는 후각 회로와 대체로 독립적으로 발달한다. 이 말은 여러분이 시각적 자료에서 얻는 보상이 맛, 촉감, 냄새, 소리를 통해 경험하는 보상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생물학적 사실은 우리의 개인 성향에서 놀랍도록 모순적인 대목을 설명할 수 있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사실적 음반을 대단히 선호하는 편이지만, 장미셸 바스키아와 사이 트웜블리의 추상적인 그림을 무척 좋아한다.(101-102p)
음악에 한정시키자면 익숙함과 참신함은 주관적인 속성이다. 여러분에게 음악적으로 익숙한 것이 나에게는 전례 없이 새로울 수 있으며, 반대도 마찬가지다. 특정 문화의 음악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 문화에 속하는 곡을 듣고 일반적인 쪽인지 아방가르드한 쪽인지를 분류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각각의 음반은 동일한 음악 규칙을 따르는 다른 음반들과의 관계로 듣게 된다. 특정한 음악 체계에 익숙하지 않은 청자라면 그런 양식으로 된 모든 곡이 참신하게 들릴 것이다.
중동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전설적인 레바논 가수 파이루즈의 음울하고 딴 세상 같은 노래들은 미국인의 귀에 이국적으로 들린다. 인도의 라가 음계는 미분음(피아노에서 인접한 검은건반과 흰건반 사이에 놓이는 음)을 사용하는데 서양 음악에서는 극도로 드물다. 라가에 익숙한 청자라면 이를 듣고 참신성의 정도에 따라 쉽게 분류할 수 있겠지만, 서양의 청자에게는 모든 라가가 똑같이 낯설게 들릴 것이다.(110p)
지금까지 우리는 청취 프로필의 세 가지 차원인 진정성, 사실성, 참신성을 알아보았다. 이 셋은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정성, 사실성, 참신성은 감각 양식에 특화된 단일한 연결망을 가동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여러 연결망을 동시에 가동하여 처리된다. 각각을 처리하는 뇌의 연결망은 비단 우리가 음반을 들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영화, 소설, 춤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창작 예술에 대한 반응에 관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성, 사실성, 참신성을 청취 프로필의 미적 차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어지는 네 개의 장에서 우리는 음악에 국한된 청취 프로필의 네 가지 차원을 살펴볼 것이다. 멜로디, 가사, 리듬, 그리고 과소평가되는 차원인 음색이다. 미적 차원과 음악적 차원 사이에는 두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미적 차원은 두 개의 항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각각의 미적 차원에서 최적 지점이 양쪽 극단(목 위와 목 아래, 사실성과 추상성, 참신성과 익숙함) 사이를 오가는 하나의 축에 놓인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음악적 차원은 두 개의 항이 아니다. 우리는 멜로디를 별개의 여러 특질을 가진 것으로 인식하며 특질마다 나름의 축이 있다.(엄격히 말하자면 청취 프로필의 네 가지 음악적 차원은 실은 '음악적 공간'이라고 해야 옳지만, 명료함과 일관성을 위해 차원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멜로디는 넓은 음역을 가질 수도, 좁은 음역을 가질 수도 있다. 스타카토 양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레가토 양식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말소리를 흉내 내서 특정한 감정을 부를 수도 있고, 모호하게 들리는 방식으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둘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멜로디의 차원에서 여러 특질에 대응하는 여러 개의 최적 지점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가사, 리듬, 음색의 차원에서도 여러 개의 최적 지점을 가질 수 있다.(144-145p)
송라이터나 프로듀서가 새로운 노래를 평가하면서 이런 음악적 차원 중 어느 것을 앞세워야 청자에게 최고의 보상을 안겨줄지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샤워하면서 흥얼거리기 쉬운가? 그렇다면 이 노래는 멜로디가 좋은 것이다. 종이에 써놓고 봐도 좋은가? 그렇다면 가사가 괜찮은 것이다. 운동하면서 들을 때 머릿속에 들어오는가? 그렇다면 이 노래의 으뜸가는 특징은 그루브가 된다.(146p)
음악을 듣는다는 기대도 안 했는데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소음의 불협화음에서 아무렇지 않게 피아노 음만을 따로 떼서 듣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복잡한 소리의 망에서 특정한 음색 하나를 골라내는 것은 시야에서 어디에 집중할지 선택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정신적 도전이다. 시야에 있는 대상들은 각자의 위치가 있다. 빛이 여러 대상의 표면에 맞고 반사되면 그 위치에 따라 망막의 여러 부위가 활성화된다. 뇌는 위상적으로 구별되는 이런 시각적 경계들을 가지고 시각적 광경을 구성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청각적 대상들ㅡ달그락거리는 식기, 잡담하는 목소리, 멜로딕한 피아노ㅡ은 하나의 복합적인 음파로 묶여 여러분의 고막에 도달한다. 만약에 시각이 청각과 같다면, 여러분은 고양이, 자동차, 신발, 입, 노트북, 피아노의 이미지가 모두 한데 겹쳐진 모습으로, 마치 여러 장의 슬라이드 필름을 겹쳐서 프로젝트에 영사하는 것처럼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소리의 속성들은 음파에 담긴 세 가지 유형의 정보로 추출된다. 멜로디, 가사, 리듬, 음색, 세기, 공간의 위치, 움직임 모두 주파수, 진폭, 위상으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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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러분의 뇌는 어떤 흐름에 집중할지 선택해야 한다. 음향의 출처 가운데 일부, 예를 들어 교통, 에스프레소 기계, 에어컨, 보행자는 혼란스럽고 체계적이지 않은 소리 패턴을 만들어낸다. 여러분의 뇌는 평범한 환경 소음은 무시하도록 배운다. 하지만 흐름에 정렬된 주파수 패턴이 들어 있으면 여러분의 뇌는 주목한다. 일차 청각피질은 체계적인 소리 패턴을 더 주목해서 처리할 대상 후보로 올려둔다. 더 강력하게 나서는 다른 흐름이 없다면, 체계적인 흐름은 의식적으로 주목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선택된다. 전경의 흐름foreground stream이 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이 옆자리의 대화를 엿듣는 것보다 흥미롭다면 피아노 소리가 전경의 흐름이 된다. 피아노 흐름은 이제 음악적 차원(멜로디, 가사, 리듬)를 처리하고 소리 위치를 파악하는 일을 전담하는 고차적인 뇌 연결망으로 보내지고, 마침내 미적 평가(진정성, 사실성, 참신성)를 전담하는 연결망으로 넘어간다. 그 전에 먼저 전경의 흐름이 가는 곳은 음색 지각 연결망이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소리(예컨대 '삐걱거리는 의자' '화난 고객' '짹짹거리는 참새')를 학습하고 범주화하는 일을 맡는다.
음색 연결망은 전경의 흐름을 일으킨 출처가 악기임을 알아본다. 이렇게 흥미로운 소리의 출처가 확인되고 나면 우리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 하며 소리를 의식하게 된다. 소리가 의식 속으로 뛰어들어 책을 향하던 우리의 주목을 낚아채고 다른 소리의 출처들을 모두 잠재우는 것이다.(273-277p)
ㅡ 수전 로저스, 오기 오가스, <당신의 음악 취향은> 中, 에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