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내소설

ㅡ 단요, <목소리의 증명> 中, 위즈덤하우스

mediokrity 2024. 11. 7. 16:21

2024/11/7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기계가 있었다. 80억 명의 소식을 한데 모아 전해주는 웹사이트가, 설명을 듣고 상상한 그림을 그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생각만으로 사물을 움직이는 시대를 열겠다며 장담하던 사업가가, 사람의 머리에 칩을 꽂아 넣으려는 과학자들이 있었다. 생각하는 기계들과 어디에도 없던 생물이 있었다. 그 모든 기술과 욕망이 만들어낸 시대가 있었다······. 사악할 만큼 게걸스럽고 충격적으로 다양한 시대였다······. 새 휴대폰을 얻지 못해 죽음을 꿈꾸는 아이와 굶어 죽어가는 아이가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시대였다.

걷기부터 계단 오르기까지 일상의 모든 움직임을 기계에게 맡긴 다음 건강 산업에 돈을 가져다 바치고, 어떤 나라의 공장에서는 매일 새로운 티셔츠가 찍혀 나오는데 바로 그 나라의 빈민가에서 누더기의 산이 자라고, 아이들은 그 산을 타고 오르며 입을 만한 옷을 줍고, 유명인들의 삶, 꾸며진 삶,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삶을 탐내느라 모두가 불행해지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어디에도 없었던 사진이 마법처럼 생겨나고, 그 사진들은 거짓말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할 이유가 되고,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으니 기쁨과 고통 또한 무의미하고, 진실과 거짓이 그 자체로 헛소리가 되면 끝내 남는 것은 찰나의 쾌락과 갈망, 갈망, 갈망······.(7-8p)

 

 

아이들은 자유에 무슨 나쁜 점이 있느냐며 묻고, 선생들은 이런 예시를 댄다.

 

서론: 외관상으로는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사탕 두 개가 있는데, 하나에는 독약이 들어 있고 다른 하나는 무해하다고 하자. 이때 어떤 사람이 독약이 든 사탕을 골라 죽게 되었다고 해서, 그가 자유롭게 죽음을 선택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어떤 행동이 자유의 산물이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에 근거해 결과를 추론하고, 그에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전제 되어야 한다.

 

정신질환자의 예시: 약을 정기적으로 먹지 않으면 망상과 환각을 겪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망상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온전히 돌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스스로는 꾸준한 복약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강제로라도 약을 먹여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둬야 할까?

 

혹은 이런 것도 있다.

 

마약중독자의 예시: 어떤 사람이 마약에 중독되어서, 마약에 대한 충동과 갈망 외에는 어떤 것도 떠올리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대로 내버려둘 경우 이 사람은 가진 약을 모두 써버린 다음 다른 약을 구하려 할 것이고, 그만큼 재활에서 멀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편 본론은 이렇다.

 

욕망과 기술의 문제: 인류의 역사는 기술과 욕망의 역사다. 욕망은 기술을 발전시키며 기술은 다시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낸다. 편히 일하려는 욕망이 증기기관을 발명한 것처럼, 기관차와 철도의 도입이 광범위한 물류 배송을 가능케 한 것처럼, 그에 따라 시장의 규모가 확대된 것처럼······. 하지만 이런 순환이 반드시 좋은 것인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인류는 그 순환을 지배하는 대신 그저 휘둘리지 않았던가? 그게 과연 자유인가?(9-10p)

 

 

"여자애보다는 나 자신을 비웃었던 거죠. 내 처지 말예요. 머릿 속의 생각들이 그대로 전해지면 여자애는 도망갈 게 분명했거든요. 반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여자애가 계속 나를 좋아한다면, 그 애는 내 곤란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그게 아주 지겹더라구요. 나한테 남은 문제는 그 지겨움이에요. 3호가 시키는 대로 하고, 순순히 몸을 넘겨주는 일에 익숙해지더라도 끝나지 않는 문제죠. 아니, 오히려 더 커지기만 해요.“

"그 지겨움을 자세히 읊어봐라.“

"말 그대로예요. 아무나 붙잡고 이렇게 떠든다고 생각해봐요. 내 머릿속에 살인마인지 방화범인지 모를 게 사는데, 미친 짓거리를 말리느라 아주 지친다고요. 보통은 내가 허세를 부리는 줄 알죠. 반사회적인 걸 멋지다고 생각하는 애들이 종종 있잖아요. 그런데 상담 일지를 보여주고 증인들을 데려다놓으면, 비웃던 사람들이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져서 도망가는 거예요. 거리를 두려 하죠. 머릿속에 그런 목소리가 있거니와 가끔 유혹에 흔들리는 사람은 가까이할 상대가 아니니까요.“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해를 구할 수 없고, 이해받더라도 손해란 말이구나.“

"무슨 패를 내더라도 질 수밖에 없는 게임 판에 선 셈이죠. 크게는 세 가지 결말이 있는 것 같아요. 페널티가 다를 뿐이지 셋 다 패배고요. 하나는 완전히 이해받은 다음 모두와 멀어지는 거고,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이해받지 못한 상태로 이해한다는 눈빛을 받거나 비웃음거리가 되는 거고, 마지막 하나는 침묵하는 거죠. 기대도 하지 않고요. 기권을 선언하는 거예요."(171-172p)

 

 

"심리검사라거나 상담이라거나, 그런 건 아무 소용도 없어요. 심리검사에 나오는 문장들, 그러니까 작은 동물을 괴롭히고 싶다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걸 좋아한다거나 하는 문장들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똑같은 거예요. 그렇다에 체크하면 그런 사람처럼 보이고, 아니다에 체크하면 아닌 사람처럼 보이죠. 그뿐이에요. 말은 그냥 하면 나오는 거고 검사지는 체크한 대로만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멀쩡한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 이거지?“(183p)

 

 

"기억은 감각과 한 묶음이지. 감각이 라벨 역할을 하는 거야. 내가 빗소리를 들으면 사고를 떠올리듯이.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비가 세차게 오고 있었거든. 마찬가지로 고통은······ 고통을 선택하고 간직하는 작업은 나를 과거에 붙들고 내 삶을 완성시키지. 이 통증이 없으면 흉터를 남겨둘 이유도 없을 테고, 그렇게 사건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다면 그 순간을 계속 생각할 이유도 사라질 테니 말이다.“

"살면서 들은 이야기 중에서 손꼽힐 정도로 정신 나간 소린데요."

"성장에는 상처와 아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포함되지. 지나간 기억은 희미해지고, 평생토록 타오를 것만 같던 감정도 어느 순간 보면 불이 꺼져 있단 말이다. 그건 즐거운 일만은 아니야. 감정을 지탱할 힘이 사라진다는 의미니까. 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헐거워지는 것처럼 마음도 느슨해져서, 더 이상 분노하거나 원망할 수 없게 된다. 답을 알기 전까지는 결코 눈을 감을 수 없을 듯한 의문도, 복수심도, 아무려면 괜찮은 문제들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시간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워하는 나를 세상에 남겨두려면?"(228-230p)

 

 

나이가 들면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그러려니 넘기게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법했다. 그런 태도는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깨달음과는 다르며 휴머니즘과도 거리가 먼 것이다. 그냥 지치고 힘들고 귀찮아서 눈감아버리는 일을, 느물거리는 미사여구로 장식하는 것이다. 꾸미지라도 않으면 비참하고, 눈을 감지 않으면 고통스러우니 어쩔 수가 없다.(281p)

 

 

 

 

ㅡ 단요, <목소리의 증명> 中,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