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내소설

ㅡ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中, 문학동네

mediokrity 2024. 11. 22. 15:54

2024/11/16

 

 

이제부터 중요한 건 피가 멈추지 않게 하는 거야.

(...)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 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멍하게 나는 되물었다.

····· 신경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불쑥 인선의 얼굴이 아이처럼 밝아져 하마터면 함께 웃을 뻔했다.

뭐, 썩는 거지. 수술한 위쪽 마디가.

(...)

그렇게 안 되도록 삼 분에 한 번씩 이걸 하는 거야. 이십사 시간 동안 간병인이 곁에서.

삼 분에 한 번?

상대의 말을 따라 할 줄밖에 모르게 된 사람처럼 나는 되물었다.

그럼 잠은 어떻게 해?

난 그냥 누워 있고, 밤에 오시는 분은 깜박깜박 졸다가 바늘로 찔러주셔.

얼마나 오래 이렇게 해야 해?

앞으로 삼 주 정도.

(...)

네 말이 맞아. 그리고 설령 지금 포기한다 해도, 없어진 손가락의 통증을 평생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 의사는 권하지 않는다고 했어.

인선이 정말로 진지하게 포기하려고 했다는 것을 그때 나는 알았다. 삼 분에 한 번씩 저 자리를 찔릴 때마다 그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의료진에게 물은 것이다. 지금 깨끗하게 포기하면 안 되겠느냐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의사가 환지통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지금은 물론 손가락을 지키는 편의 통증이 더 강하지만, 손가락을 포기할 경우 통증은 손쓸 수 없이 평생 계속될 거라고.(40-42p)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요.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225p)

 

 

지면과 연결된 수직갱도 입구에서 탐사 팀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다고 기자는 썼다. 오십 년 동안 입구를 밀봉했던 콘크리트가 부서지자, 갱도를 타고 내려갈 공간도 없이 어마어마한 유해들이 쏟아져나왔다. 그 입구가 처형 장소였던 것이다. 거기 세워진 사람들이 총을 맞고 갱도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자는 썼다. 아래쪽의 제2수평갱도를 시신들이 채운 뒤 그 위로 떨어진 시신들이 제1수평갱도까지 차올라 흩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지상과 맞닿은 수직갱도 입구까지 시신으로 가득찼을 때 군인들이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썼다.

(...)

삼 년 동안 사백 구를 수습하고 2009년에 중단했으니까, 지금도 삼천 구 이상이 갱도에 남아 있어.

(...)

그 삼 년은, 여기뿐 아니라 전국의 학살 터에서 유해가 발굴된 기간이기도 해.(284-285p)

 

 

여기쯤 멈춰 서서 엄마는 저 건너를 봤어. 기슭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물이 폭포 같은 소리를 내면서 흘러갔어. 저렇게 가만히 있는 게 물 구경인가, 생각하며 엄마를 따라잡았던 기억이 나. 엄마가 쪼그려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311p)

 

 

 

ㅡ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