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선원 빌리 버드> 中, 민음사

mediokrity 2024. 12. 2. 12:29

2024/11/30

 

 

'필경사 바틀비'는 예전에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세부가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읽었다. 생각보다 웃긴 부분이 있는 소설이었다. 처음 읽은 '선원 빌리 버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것을 묘사할 때 종교적,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명확하게 이해가 가능한 장황한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 정도. 물론 몰라도 내용 이해에 크게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놓치는 부분들이 있겠지. 이 시기에는 이런 정보는 기본 교양으로 깔고 갔던 건가 싶기도 하고. 가령 아래와 같은 식이다.

 

 

그렇지만 클래거트의 질투는 통속적인 형태의 질투가 아니었다. 빌리 버드에 대한 그의 질투는 불안한 마음으로 다윗이라는 잘생긴 청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사울 왕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든 근심에서 나온 질투 같은 것과도 완전히 달랐다.(147p)

 

함장의 준엄한 눈길을 잠시 벗어난 클래거트는 묘한 표정으로 함장의 안색을 지켜봤다. 자신의 전략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고, 막내 요셉을 질투하던 형제들의 대표가 상심한 아버지 야곱을 속이려고 염소 피가 묻은 외투를 보여 주며 지었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182p)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그 사건에 관한 정보를 사건 발생 현장, 즉 후갑판 함장실 내부로만 한정시켰다는 사실은 러시아 야만의 황제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수도의 왕궁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비극적인 사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채택한 방침과 어느 정도 비슷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196p)

 

빌리의 야만성은 현재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면 로마의 게르마니쿠스 장군을 위한 개선식에서 살아 있는 전리품으로서 행진에 포함됐던 동족인 영국인 포로들의 야만성과 비슷했다.(225p)

 

 

앞으로도 내가 살면서 모비딕을 읽을 일은 없을 듯한데 짧은 소설로나마 허먼 멜빌을 느껴본 걸로 만족한다.

 

 

 

 

 

맨 처음 저의 감정은 순수한 우울함과 진지한 연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틀비 군의 외로운 처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면서 그 우울함은 서서히 공포로 바뀌었고, 연민은 혐오로 변해 갔습니다. 비참한 정황을 직접 목격하거나 그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 그 정도가 일정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만 애정을 느끼게 되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더 이상 애정이 우러나지 않게 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실망스러운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성에 내재한 이기심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현상은 오히려 과도한 기질적 질환을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에서 기인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연민이 곧 고통인 경우가 흔합니다. 그리고 그런 연민이 실질적인 구원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면, 그 연민을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상식에 맞는 일입니다.(41-42p)

 

 

마침내 저는 제가 직업상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제가 사무실에 두고 있는 이상한 존재와 관련해 의아해하며 수군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상당히 우려스러웠죠. 그러고는 이 친구가 장수할 가능성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습니다.(59p)

 

아 진짜 뻘하게 터졌네. 이 아저씨 재밌는 사람이네 ㅋㅋ

 

 

그렇게 지어낸 일화는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사건에 깃들어 있는 수수께끼를, 그게 무엇이든 간에, 다소 흥미로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써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런 식의 일화는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앞으로 전하게 될 사건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그 원인은, 그 근본 자체에서 보자면, 천재적인 괴담 작가 앤 레드클리프가 지어낸 「우돌포의 비밀」이란 작품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에 들어 있는 것에 못지않을 만큼 신비하고 원초적인 요소로 가득차 있다.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즉각적이고 깊은 적개심을 느낀다. 이런 적개심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 있을까?(140p)

 

 

어쨌든 이런 사악함은 야만성이라는 비천한 속성의 덩어리가 전혀 들어 있지 않고 일관되게 지성에 의해 좌우되는 종류의 사악함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사례를 구하려면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한다. 문명은, 특히 금욕적인 종류의 문명은 자연적인 사악함의 좋은 토양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그것은 점잖음이라는 망토 속에 몸을 숨긴다. 이런 사악함을 조용히 도와주는 부정적인 덕목들도 있다. 또한 자연적인 사악함은 술이 그 안에 들어오도록 경계를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그 자체에 속하는 자그마한 악이나 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런 유의 사악함은 그런 사소한 악이나 죄악 같은 것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데서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돈을 추구하거나 탐욕스럽지 않다. 간단히 말해, 여기서 말하는 사악함이란 비천한 것이나 감각적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종류의 사악함이다. 그것은 진지하며, 그렇다고 냉소적이지도 않다. 인간에 대해 아첨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폄훼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대표적인 본보기에서 이 예외적 본성을 잘 드러내주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자연적인 사악함을 가진 사람은 안정된 기질과 신중한 몸가짐을 보이며, 그래서 그 사람을 이성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르는 마음의 소유자로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실제 마음속에서는 이성의 법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고 있으며, 이성을 사용하더라도 오직 비합리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교묘한 수단으로서만 사용하는 선에서 그친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사람이 현명하고도 건전한 그리고 차분한 판단을 동원해서 이루려 하는 목적은 그 터무니없음의 정도에서 광기가 개입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성격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다. 그것도 가장 위험한 부류의 미친 사람들이다. 이들의 광기는 연속적이지 않고, 어떤 특정한 것에 촉발되어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광기는 거의 자폐적이라 할 정도로 잘 보호되어 은밀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가장 활발하게 작동할 때조차 보통 사람들은 이를 제정신과 구별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어떤 것이 되었건 그 목적이 절대로 발설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과 실제 드러나는 달성 과정은 언제나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143-144p)

 

 

이미 성숙한 나이의 선원이라도 특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서툰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165p)

 

 

한 무명 작가는 이런 구절을 남겼다. "전투가 벌어진 뒤 사십 년이 지나서 비전투원이 그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했는지를 논하기는 쉽다. 자욱한 포연 속에서 쏟아지는 총탄을 무릅쓰며 그 전투를 실제로 지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현실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 모두를 고려해야 하고, 게다가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꼭 필요한 다른 위기 상황과 관련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안개가 짙을수록 쾌속 증기선은 그만큼 더 위험해지며, 그렇기에 누군가를 치어 죽일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속도를 높여야만 하는 것이다. 선실 안에서 아늑하게 앉아 카드 게임이나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잠도 못 자고 함교를 지키는 사람들이 느끼는 부담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법이다."(213p)

 

 

 

 

ㅡ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선원 빌리 버드> 中,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