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외소설

ㅡ 엠마뉘엘 카레르, <콧수염> 中, 열린책들

mediokrity 2024. 12. 10. 13:17

2024/12/10

 

카레르가 3주만에 쓴 데뷔작이라고 한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계속 읽으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여러 번 끊어 읽었다. 책의 완성도는 나무랄 데 없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몰아가는 책이라 힘들었다. 왕국이나 리모노프도 언젠가는...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사무실이나 집에서 그를 정신병자 수용 시설에 처넣지 않고 없었던 일로 하면서 전처럼 다시 시작하자고 암묵적인 합의를 하면, 아마 삶은 다시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영원히 망가져 버릴 것이다. 이 일에 대한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대화 도중에 이 끔찍한 일이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는 위험, 사건의 후유증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그가 두 사람의 공통된 기억, 어떤 사람 혹은 물건에 대해 아무 뜻 없이 언급할 때 아네스가 창백해지면서 입술을 깨물고 한참 말이 없는 것만 봐도 <또 시작이구나>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다시 와해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지뢰밭 위에서의 생활, 언제 다시 우르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채 더듬더듬 앞으로 나가는 생활, 이런 생활을 어느 누가 견딜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을 상대로 음모가 꾸며졌다는 터무니없는 가정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도망쳤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ㅡ 엠마뉘엘 카레르, <콧수염> 中,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