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中, arte
2024/12/20
재미없다.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에요. 그 부인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욕망 때문에, 혹은 관습에 따라 결혼했어요. 아이를 하나 낳았고요.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는 안도 알잖아요."
"너보다는 잘 모를 것 같은데. 하지만 거기에 대해 아는 건 있지." 안이 비꼬았다.
"그리고 그 아이를 키웠어요. 부인은 바람을 피우지는 않았을 테니 그런 유의 불안이나 문제는 알지 못했겠죠. 그녀는 많은 여자들이 간 길을 따랐고 알다시피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죠. 젊은 시절 중산층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었고 그 상황에 안주해 거기서 벗어나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 그 부인은 이것도 하지 않고 저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뭔가를 성취하지 않았다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요."
(...)
"요즘 유행하는 생각이구나. 하지만 그건 가치가 없어." 안이 말했다.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지만, 사실 그건 내 견해라기보다는 어딘가에서 들은 말이었다. 어쨌든 나의 삶, 아버지의 삶은 그런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안은 그것을 경멸함으로써 내게 상처를 주었다. 사람은 뭔가 대단한 가치에 목표를 둘 수도 있지만 경박한 가치에 집착할 수도 있다.(50-51p)
엘자는 며칠 동안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 주가 빠르게 흘러갔다. 유일하게 행복하고 유쾌한 칠 일. 우리는 가구를 새로 들인다거나 시간표를 짠다거나 하는 복잡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듯 아버지와 나는 무모하게도 빡빡하고 실행하기 어려운 계획을 짜면서 즐거워했다. 우리가 그런 계획을 실제로 실행할 것이라고 믿기나 했던가? 매일 낮 12시 반 같은 장소로 가서 점심을 먹고,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그런 다음 외출하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아버지는 믿었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가볍게 포기하고 질서로, 품위 있고 체계적인 중산층의 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격찬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나에게 그랬듯이 아버지에게도 공중누각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했다.(70-71p)
나는 사랑받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고 나 자신과 화해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안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는 사랑의 밤이 기다리고 있었고, 내게는 베르그송이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려고, 나 자신을 측은히 여기려고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이미 나는 안을 측은히 여기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패배시키리라는 것을 확신한 사람처럼.(82p)
"그들이 하는 말이 얼마나 단조롭고······ 뭐라고 해야 좋을까······? 조잡한지 깨닫지 못했니? 계약이니, 여자들이니, 파티니 하는 얘기들이 지루한 적 없었어?"
"알다시피 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십 년을 보냈어요. 그들은 행실에 단정한 면이라곤 없는 사람들이고 그 점이 여전히 매력적이에요.“
그것이 마음에 든다는 말까지는 차마 하지 못했다.
"이 년이나 지났는데······. 그건 논리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란다. 감수성이나 직감력의 문제지······." 그녀가 말했다.(154p)
그제야 안은 얼굴을 들었다. 여느 때의 모습은 간곳없이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안은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공격한 대상이 하나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개체였음을. 그녀는 조금 내성적인 어린아이였다가 사춘기 소녀였다가 이윽고 여인이 되었을 터였다. 그녀는 마흔 살이었고 혼자였으며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자 했다. 십 년, 어쩌면 이십 년을. 그런데 내가······. 그 얼굴, 지금 그녀의 그 얼굴, 그 얼굴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차 문에 기대어 온몸을 떨었다.(174-175p)
ㅡ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中, ar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