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국내소설

ㅡ 백온유 외,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中, 문학동네

mediokrity 2025. 5. 7. 11:55

2025/5/7

 

 

비슷한 맛이다.

 

 

신오는 원경과 사 년을 만나고 헤어졌다. 원경과 함께 와인을 마시고 누워 서로를 조용히 더듬고 있던 중에 원경이 혹시 내 가슴에서 뭐가 만져지면 알려줘, 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원경의 어머니 쪽 집안 내력이라고 했다. 유방암이. 어머니도 여러 번 재발한 유방암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그때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신오는 어쩔 수 없이 상상했다. 결혼 후 원경이 암에 걸린다.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다. 신오는 모든 일을 제치고 병원에 있어야 할 것이다. 원경은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항암 치료로 원경이 수척해진다. 신오는 원경을 돌보기 위해 요리도 배울 것이다. 몇 년간은 정기 검사를 함께 다니며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안도한다. 그러다 다시, 이 모든 일이 반복된다면? 정말 기꺼운 마음으로 원경을 돌볼 수 있을까? 원경의 병을 지겨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전자 문제로 발생하는 암은 끈질기고 예후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신오는 알고 있었다. 이런 상상을 해버린 이상 원경과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그 사람이 가지고 올 불확실한 미래까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면, 신오는 지금까지 누구도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누군가를,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사랑하기란 불가능할 것이었다. 신오는 원경과 헤어지고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에 집중했다. 연애도 한두 번 했지만 처음부터 언젠가 끝나겠거니 생각했고 실제로 어떻게든 끝이 왔다.(201p)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띤 은정을 보며 우미는 마지막 대학 동기 모임을 떠올렸다. 서른을 넘겼는데도 친구 넷 중 셋이 월 이백을 간신히 넘겨 받았다. 쌓아봤자 물경력. 도시 빈민의 기로에 선 여자들 사이에선 앓는 소리만 나왔다.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 나왔는데 이게 말이 되냐? 근데 솔직히 민속학과 나와서 할 게 없긴 하지. 탈출 출 것도 아니고. 무용과도 아닌데 웬 탈춤. 야, 무용과는 시집이라도 잘 가지. 민속학과는 씨발, 뭐 있냐? 향이 언니는 어떻게 삼성 갔대? 그 선밴 경영 복전했잖아. 사랑 선배는 뭘 하길래 맨날 유럽에 있어? 그 선배 원래 부자야. 맞다, 너네 중에 유선이랑 연락하는 애 있어? 걔 고향 내려가서 공무원 할걸? 걔도 공무원이야? 진짜 공무원 말고 할 게 없구만. 아니, 할 거 있는데 우리만 모르는 걸 수도 있지. 다 이러고 살진 않을 거 아냐. 야, 우미 넌 전과하길 진짜 잘한 거야. 우린 미래가 없어. 우리 팀 대리는 퇴근하고 코딩 학원 다녀서 이직했는데 나도 코딩 배울까. 그것도 체력이 있어야 하지. 기르면 되지. 수영 어때? 내 친구 구청에서 하는 체육 센터로 수영 다니는데 좋다더라. 그런 덴 물이 좀 지저분하지 않아?

그럼 다라이에 물 받아놓고 발이라도 휘저어····· 싫은 소리하고 싶은 걸 꾹 참고 헤어진 뒤로는 연락할 마음이 안 들었다. 더구나 아이를 낳을 거라고 하면 돌아올 말은 뻔했다. 혼자 힘들지 않겠어? 누가 같이 키우는 게·····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 걱정인 건 알았다. 근데 그런 걱정이랄까, 패배자의 사고 자체에 전염되고 싶지 않았다.(256-257p)

 

 

ㅡ 백온유 외,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