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15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이 쾌남의 자세로 솔직하게 지르는 글쓰기가 일품이다. 역자가 후기에서 말하듯이 어느 누구의 심기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런 정치적 입장도 견해도 없이 쓴 글이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하며, 그런 글이 있다고 한들 과연 글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만 봐도 기함하며 쓰러질 것이다. 본디 유머란 누구나 풍자와 희화화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희화화는 원래 'fair'하지 않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 글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코미디다. 유럽 여행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얼른 내려놓고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게 옳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서 유럽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카프리 같은 경우는 꼭 가보고 싶기도 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워낙 글을 화려하게 쓰고 곳곳에 인문학적인 레퍼런스와 비유가 많지만, 빌 브라이슨은 아주 쉽게 쓴다. 빌 브라이슨의 대표적인 대중교양서인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외에도 여행기를 빙자한 ‘투덜 에세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출간되어 있으므로(절판이 많아서 빌려 읽어야 하겠지만) 더 읽어봐야겠다.

함메르페스트는 준비 운동치고는 다소 오래 걸린 감이 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할 참이다.(나에게 본격적인 여행이란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 여행을 말한다.) 나는 돌아다니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영국에는 도저히 들어오지 않을 영화의 포스터도 구경하고 움라우트(독일어의 특수 기호)와 세디유(대개 c 밑에 붙는 s 모양의 기호)가 잔뜩 붙은 각종 상품과 상점 안내문, 그리고 주차금지 표지판 비슷하게 생긴 문자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그 나라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전혀 히트할 가능성이 없는 대중가요도 듣고, 나와는 평생 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전화 박스 사용법부터 저 식품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 도무지 친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국적인 곳에 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어리둥절해하는가 하면 매료되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근사한 대륙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주민들의 말도, 음식도, 업무 시간대도 다르고, 주민들은 한 시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면서도 묘하게도 비슷한 곳, 나는 이런 근사한 대륙의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p57)

나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383p)

ㅡ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中, 21세기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