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3

 

 

도로는 좀 더 느리고 은밀한 방식으로도 지구를 변질시켰다. 기원전 100년경 로마에서 카시아 가도가 완공된 직후부터 그 표면에서 떨어져 나온 불순물들이 라고 디 몬테로시 호수로 흘러 들어가 녹조현상을 일으키는 바람에 호수 생태계가 영구적으로 변했다. 피톱토라 라테랄리스는 편백나무를 공격하는 침입성 곰팡이인데 트럭 바퀴에 파인 홈에 무임 승차하여 가지 못할 곳이 없다. 붉은열마디개미는 코끼리의 눈을 공격하는 무자비한 곤충으로, 가봉에서 이 개미는 벌목 도로를 활용해 60배나 빠른 속도로 전역에 퍼졌다. 포장도로는 미국 전체 면적의 1퍼센트에 불과하지만, 그 도로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 즉 생태학 전문용어로 "도로 영향권"은 20퍼센트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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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로에서는 승자도 탄생한다. 미국 애리조나주 도로변에서는 배수로를 타고 흘러내린 빗물이 사막의 흙을 부드럽게 적시면서 흙파는쥐가 서식하기 적합한 환경이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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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와 큰까마귀를 비롯한 영리한 청소동물들은 로드킬이 제공한 끼니를 먹고 개체 수가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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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 대한 그간의 생태학적 무관심을 자각한 포먼은 곧바로 "도로생태학"이라는 용어를 창안하고, "도로와 차량 이동이 주변 동식물의 삶에 미치는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대략의 정의를 내렸다.(25-28p)

 

 

차의 무게와 속도가 실제 거북에게는 더욱 버거웠다. 흔한 주변 생물들의 자동차 대응 전략을 살펴볼까. 이 동물들은 허리케인 경로에 있는 해안가 주민처럼, 차를 보고도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틴다. 스컹크는 자동차 앞에서 방귀를 뀌고, 오소리는 경고음을 내고, 주머니쥐는 자는 척한다. 호저는 가시를 세우고, 육지거북은 뒷걸음질 친다. 특이하게도 아르마딜로는 점프를 한다. 팀버방울뱀은 독사라는 자부심이 무색하게 몸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제자리에서 꿈쩍하지 않는 전략은 수천 년 동안 효과적으로 코요테나 매 같은 포식자를 물리쳐 왔지만, 자동차 앞에서는 쓸모는커녕 최악의 전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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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희생자의 생물학적 속성을 완전히 장악하여 그 생물이 진화한 역사를 뒤엎고 무능한 부적응자로 만들었다.(55p)

 

 

흰꼬리사슴의 증가는 교통과 야생동물의 관계가 영구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는 신호였다. 도로생태학은 "악마의 마차"가 동물을 치고 갈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 박물학자들의 비주류적 관심사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자동차는 더 이상 침입자가 아니었다. 자동차를 위해 재편된 국가의 독보적인 지배자였다. 사슴이 포장도로로 뛰어드는 실수를 저지르면서 도로생태학자의 바퀴는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동차는 야생동물을 위협하지 않는다. 이제는 야생동물이 차를 위협한다.(70p)

 

 

사슴 로드킬의 위기는 시작될 때처럼 갑자기 소멸했다.

이 기적 같은 결과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슴들은 여전히 갓길에서 배회했다. 그러나 흰꼬리사슴은 I-80이 개통한 이후로 교통량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도로를 건너려는 시도를 중단해버렸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더 빠르고 더 시끄럽고 더 고압적인 차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자 도로 양편을 오가는 일을 아예 단념한 것이다. 고속도로가 더 안전해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심장이 멈출 만큼 위험해지는 바람에 동물들이 아스팔트에 발을 들일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래서 로드킬이 줄었다. 벨리스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 자체가 사슴들이 차로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움직이는 울타리'가 되고 있다"라고 추정했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수십 년 동안 도로생태학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 중대한 깨달음이었다. 자동차는 로드킬을 발생시켰다. 그러나 차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로드킬은 발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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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I-80을 따라 서쪽으로 달리는 3,200킬로미터의 도로에서 차들이 형성한 움직이는 울타리는 야생동물에게 로드킬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온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78-79p)

 

 

그러나 사실 가장 심하게 타격받는 종은 포유류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비늘이 달리고 미끈거리고 껍데기가 있는 파충류와 양서류가 자동차에 가장 많이 희생되는 생물이다. 이들은 도로에 죽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어도 사람의 감정을 동요시키는 동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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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의 커다란 모순이 여기에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희생자는 멸종의 위기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종이라는 점이다. 청설모, 라쿤, 흰꼬리사슴처럼 흔한 동물일수록 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간단한 확률 계산으로 알 수 있다. 길가에 죽어 있는 동물 대부분은 도시에 살고, 회복력이 크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 순위 상위권에 포진한 것들이다. 멸종의 문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동물이다.

그 결과, 로드킬은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는 대량 사멸, 지구 역사상 여섯 번째 일어난 대멸종에서 가장 간과되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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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소의 대표적인 집단이 파충류와 양서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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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식지 소실, 곰팡이 감염병, 오염 등 개구리에게 재갈을 물리는 요인은 많다. 그러나 양서파충류가 유독 로드킬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사실도 우연은 아니다. 파충류와 양서류는 움직임이 굼뜰 뿐 아니라, 태생이 변온동물이라 석회암이든 아스팔트든 따뜻한 표면에 중력처럼 끌린다. 또 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넓은 범위에서 활동한다. 암거북은 알을 낳기 위해 호숫가 주변의 거리를 느리게 가로지른다. 뱀은 함께 모여 동면하려고 고속도로를 건넌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대부분의 양서파충류가 사슴 같은 속도형도, 회색곰 같은 회피형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비반응형이다. 눈앞에 달려오는 차량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중함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무작정 도로에 진입한다.(172-174p)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만도 30여 개의 양동이 단체가 수천 마리의 양서파충류를 실어 나르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벨기에까지 많은 도우미들이 수십만 마리를 옮기고 있다. 뭉클하면서도 신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비가 내리는 추운 날에 밖에 나가서 따뜻함이나 폭신함과는 정반대인 생물을 돕는 걸까? 식물학자이자 도롱뇽 호위대인 로빈 월 키머러는 양서파충류들을 옮기는 것이 "종의 외로움, 즉 나머지 창조물과의 소원한 관계"를 달래준다고 보았다. 어쩌면 사람들이 파충류에게 끌리는 마음은 E.O. 윌슨의 에레모세, 즉 고독한 시대를 완화하려는 열망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사람들이 완전히 이해하고 하는 행동은 아니더라도 말이다.(195p)

 

 

전기자동차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내연기관이라는 요란한 장치가 달려 있지 않으니 엔진 자체는 조용하다. 그러나 전기자동차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시속 56킬로미터 이상에서는 엔진이 아닌 타이어가 차량 소음의 대부분을 생산하기 때문이다.(주간고속도로에서 들리는 단조로운 저음은 도로에 고무가 닿을 때 나는 "리듬감 있는 진동"과 타이어 접지면에서 에어포켓이 터지면서 만들어지는 "패턴 소음"이 뒤섞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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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데스밸리 국립공원에서 "조용한 도로포장(표면에 타이어 소음을 줄여주는 구멍을 많이 낸 도로)"을 시험했을 때 결과는 긍정적이었지만, 흙과 돌이 구멍을 막으면서 효과가 금세 감소되었따. 그렇다고 국립공원 관리청이 유럽 도시에서 조용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배치한 "초대형 진공청소기"처럼 공원의 모든 도로를 쓰레질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259-260p)

 

 

다행히 독수리는 셔틀 자체에 부딪히지는 않았고, 2주 후에 디스커버리호는 무사히 지구에 착륙했다. 그러나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에서 라인바흐는 공포에 떨었다. 과거 컬럼비아호를 재앙에 밀어 넣은 발포 재질의 파편도 900그램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칠면조독수리는 무게가 1.8킬로그램은 족히 나간다. 저 새가 다른 각도에서 부딪쳤다면 "우리는 그 우주왕복선도 잃었을 거예요"라고 라인바흐가 내게 말했다. 그는 독수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312p)

 

 

새로운 생태계는 정의상 제멋대로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놓고 한 발짝 물러서서 거주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둔다. 그러나 슬레이터의 연구는 네크로바이옴이 적극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적절한 상황에서 동물의 사체는 매립지에 파묻혀 있을 때보다 환경에 노출되어 있을 때 더 좋은 일을 한다.

큰까마귀, 흰머리수리와 함께 호모 사피엔스 또한 도로생태계의 한 일원이다. 인간은 이 생태계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모든 영양 단계를 다 차지한다. 우리는 도로의 최상위 포식자이고 종종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 자신을 청소하며, 여느 까마귀 못지않게 죽은 동물을 열심히 탐하는 사체포식자이다.(326-327p)

 

 

반면에 현지의 태즈메이니아인들은 로드킬에 무심하다. 너무 만연해서 전혀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통사고를 겪은 운전자들은 앞으로 발생할 사고를 염려하고 대비하지만, 빈번한 로드킬은 비극에 둔감해지는 반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전 승객이었고 가는 길에 운전자가 동물을 쳤는데 안타까워하기는커녕 저에게 하던 얘기를 멈추지도 않았어요."한 태즈메이니아 생물학자가 내게 말했다. 이들은 운전 중에 도로에서 동물을 보더라도 굳이 피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농부들이 자녀에게 운전을 가르칠 때 차라리 동물을 치라고 알려준다. 그래야 도로에서 벗어나며 생기는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381-382p)

 

 

"가족들조차 당신이 한 생명의 죽음에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생동물 재활은 고통만큼 위안도 제공한다. 영은 과거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돌봄 활동이 그를 살아 있게 했다. "저한테 달린 목숨이 넷이나 있었거든요." 그가 말했다. 또 다른 동물 구조자는 공허함과 싸우던 중에 동물을 구하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 빈 공간을 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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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제 마음에서 통증을 덜어주었습니다." 한슬로가 과거를 떠올렸다. "당시에 저는 반디쿠트, 태즈메이니아주머니너구리, 판데멜론, 포토루(쥐캥거루)를 키우고 있었어요. 또 이름을 더 대보세요. 그 동물도 제가 키우고 있었을 테니. 이 동물들이 저에게 살아갈 의지를 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저 동물들에게 삶을 빚졌다는 기분이 들어요. 그들은 제가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주고 또 저도 그들에게 마찬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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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치유의 힘에도 불구하고 돌봄의 가장 큰 목적은 돌보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운한 동물을 돕는 것이다.(386-387p)

 

 

이런 희망찬 전망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차는 메뚜기 떼를 지나온 자동차 앞 유리보다 버그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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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의 시험 끝에 볼보는 캥거루 소동을 해결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걱정스러운 진실을 드러냈다. 자율주행차와 야생동물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할지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로드킬의 종말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은 안심이지만, 실제로 자율주행차는 대부분의 종을 보호하는 일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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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율주행차는 단순히 누가 운전대를 잡느냐를 넘어선 더 광범위한 변혁을 일으키고, 우리가 사는 곳, 우리가 상품을 받는 방법, 사회가 구성되는 방식까지 모두 재정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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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는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도심을 중심으로 더 넓은 지역까지 준교외 지역을 확장할 것이다. 자율주행은 전기화와 더불어 이동 비용을 낮추고 더 많은 차량 이동을 부추기면서 마치 암세포가 퍼지듯 도시가 무질서하게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412-413p)

 

 

데이턴 스토너 시대 이후로 생물학자들은 동물과의 충돌을 피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차량의 속도를 줄이는 것임을 알았다. 문제는 운전자들이 습관적으로 제한 속도를 어긴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도로의 설계 속도, 즉 도로가 물리적으로 허용하는 속도대로 운전하게 되어있다. 굴곡이 완만하고 차선이 넓고 시야가 긴 고속도로는 설계 속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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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브라질에서 그 느림의 꿈이 실현된다. 카를루스 보텔류 공원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SP-139의 위아래로 굴곡진 물결을 보았다. 도로 바닥이 유아용 롤러코스터처럼 얕게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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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는 법도 법이지만 도로 설계상 차가 빨리 달릴 수 없다. 사실상 내가 지금까지 달렸던 모든 고속도로는 자동차가 매끄럽게 이동하도록 지어졌다. 그러나 SP-139는 야생동물들을 위해 의도적으로 기존의 공학적 이상을 어기고 인간 사용자들을 좌절에 빠뜨렸다.(456-457p)

 

 

그럼에도 드리스콜이 시러큐스의 미래에 대해 무조건 낙관적인 것은 아니었다. 고가 철거는 도시의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I-81이 워낙 철저하게 시러큐스의 모습을 바꿔놓은 터라 철거가 되더라도 큰 격변이 예상되었다. 고가의 해체로 지금까지 이 도로가 수십 년 동안 질식시켜 온 땅이 드러나면서 사실상 최대 7만 3,000제곱미터의 새로운 토지가 생기게 된다. 적극적인 개입이 없다면 과거에 15번 지구였던 그곳이 체인점 식당이나, 고급 콘도, 그 밖에 도시 개발의 다른 잡초 같은 개척종들에 의해 점령되는 미래를 상상하기는 쉬웠다.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우리가 이 장벽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모두 환한 얼굴로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마냥 행복하게 춤을 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드리스콜이 말했다.

게다가 문제가 되는 것은 고가도로 아래의 땅만이 아니었다. 현지인들은 흉측한 오염원이었던 고속도로를 보행자 친화적인 대로로 바꾸었을 때, 인근의 땅값이 치솟으며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속화하고 한 칼럼니스트가 "검둥이 제거 2.0"이라고 부르는 작전이 촉발될 것을 두려워한다. 환자의 심장에서 칼을 뽑아 놓고는 그가 피를 철철 흘리며 죽게 둘 수도 있는 것이다.(472-473p)

 

 

ㅡ 벤 골드파브, <크로싱> 中, 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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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나쁘지 않았다. 소설을 빌려 문학 작법 강의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느낌도 들었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우리가 실수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이 도시에 생겨나고 있다. 이들을 구덩이 속에 가둬두는 게 지나친 처사라고, 전쟁의 허용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그냥 죽여버리든지, 노예로 삼든지, 아니면 돌려보내야 한다고들 하는데, 아, 나는 이 구덩이들이 좋다. 모든 건 결국 변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니까. 1년 전의 아테네인들을 떠올려 본다. 달빛을 받아 파도처럼 번쩍거리던 갑옷, 밤잠을 다 설치게 만들고 개들을 울부짖게 하던 그들의 함성, 우리 섬을 둘러싸고 미끄러지듯 돌던 수백 척의 배들. 먹이를 탐하는 거대한 상어 떼 같았지. 이 구덩이들은 우리에게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러준다.(17p)

 

 

노인은 소년의 외양으로 보건대 해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조만간 죽을 거라고. 아주 많이 아파 보인다고. 그래도 확신할 수는 없다고, 미래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저 다음에 일어나는 일만 있을 뿐. 그래서 양이든 고양이든 개든 그렇게 배를 가르는 거라고. 달리 무엇이 더 있겠느냐고. 그 행위는 무언가였고, 인간은 누구든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거라고.(49p)

 

 

개선문에서 본 조각들이 떠오르지만 그것보다 훨씬 아름답다. 강물에 닿는 빛은 내가 이 세상에서 본 어떤 것과도 다른데도 어쩐지 알 것 같은 빛깔이다. 겔론은 최고의 연극이 바로 그런 것라고 말한다. 충분히 진실하다면, 처음에는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결국 다 알아보게 된다나. 트로이아 전쟁이 비록 호메로스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 알지만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89-90p)

 

 

아닌데, 정말 아니야. 있잖아, 난 네 얘기 듣는 게 좋아. 월식이며 수의 조화며 그런 모든 말들 듣는 게 다 좋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한테 있는 지독하게 불쾌한 면인데, 네가 말하는 내내 내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는 거야. 저 여자, 자기가 너보다 낫다고 생각해. 쟤 눈엔 넌 백수에다 기형인 발이나 끌고 다니는 재수 없는 놈이야. 그냥 적당히 해변 좀 걸어주는 거야. 절뚝거리는 너 때문에 달팽이처럼 느리게 하는 산책. 네가 주인한테 돈 냈으니까 옆에서 어정거리는 것뿐이야. 노예든 아니든 속으로는 자기가 잘났고 너는 하찮은 놈이라는 걸 잘 알지. 그런 말들이 머릿속에서 들려오면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는데 그러지 않아. 내가 느끼는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전가할 말을 내뱉게 돼. 난 빌어먹을 쓰레기야.(191p)

 

 

천둥이 우르르 울린다.

"저게 징조야. 제우스도 우리가 함께이길 바라는 거야."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저건 그냥 구름에 수증기가 차오르는 현상이에요. 공기가 서로 만나면 충돌이 일어나거든요. 경주 도중에 전차가 서로 부딪치는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당연히 소리도 나겠죠? 아버지가 저 현상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어요."

"그래도 징조일 수도 있잖아. 안 그래? 둘 다이면 안 되는거야?"(194p)

 

 

그가 들려준 이야기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알카르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리나르는 좀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내 목숨을 살려주고 자기들 목숨은 잃었다. 나였어도 똑같이 했을까? 절대로 아니다. 내가 뛰어든 건 겔론 때문이었다. 파케스라면 구해주려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조건 도망쳤을 거다. 나 같은 놈이 뭐라고 자기 목숨을 걸면서 구해주려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적어도 알카르는 도와주러 오면서 정말로 위험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시라쿠사인이니 본인은 보호받을 거라고 여겼을까. 아니다, 정말로 그런 확신을 가지고 나를 구했다는 생각은 어쩐지 들지가 않는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돌진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긴커녕 더 불안해진다.(300-301p)

 

 

희망을 걸어볼 길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

엄마와 알렉토는 젊은 시절 무척 가까운 사이였지만 이젠 둘 다 젊지도 않다. 어쩌면 나이가 들었다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의 인생도 얼마 안 남았으니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느낄지도. 하지만 이건 희망 사항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 깊은 곳에선 말이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주름이 생겨도 그 믿음은 안 바뀐다.(324p)

 

 

문득 저 쥐들은 그냥 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들은 이 세상의 모든 망가진 존재다. 무너져 가는 모든 존재, 우리 안에서 무너져 내리길 바라는 모든 것들이다. 저들은 히카라를 불태우던 아테네인이고, 그 아테네인을 채석장에 던져 넣던 시라쿠사인이다.

(...)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이다. 저 쥐들은 무심한 하늘 아래 존재하는 최악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아울로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그에 비하면 몹시 연약할지라도, 바로 우리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한다. 그게 우리가 한번 해보려는 것이다. 이것저것을 만들어내고,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요리하는 우리다. 그게 우리의 입맞춤이고, 한겨울 불가에 둘러앉아 나누는 이야기다. 그게 품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내어줄 수 있는 전부다. 나는 속으로 계속 그렇게 되뇐다. 폐까 타들어 가고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남은 힘이 거의 없지만 계속해서 아울로스를 분다. 나만의 노래를 연주한다.(345-346p)

 

 

요란한 하늘 아래 미미한 우리가 움직이고 있다. 욕망으로 몸을 떨며, 우리가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확신에 겨운 채. 밑으로는 서늘한 땅이 자리하고 위로는 영원이 눈을 끔뻑이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대사를 속삭인다. 이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다정하고 섬세한 일로 여겨진다.(384p)

 

 

 

ㅡ 퍼디아 레넌, <영광 없는 영웅들> 中,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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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5

 

 

그런데 여기서 내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지점이 있다. 나는 '꺼드럭대다'에 대해 말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물론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도 이 표현을 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

잘난 척을 지적하는 말로 잘난 척을 한다.

그 아이러니가 이 말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꺼드럭댄다고 말하는 순간, 나도 조금은 꺼드럭거리고 있다.

언어는 항상 이중으로 작동한다. 뜻을 전달하면서 동시에 이 말을 쓰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전달한다. 그 두 번째 신호를, 우리는 대부분 의식하지 못한 채 보내고 있다. 젠지가 오래된 말을 발굴해 쓸 때도 마찬가지다. 빈티지를 입는 것과 빈티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사이 어딘가에, 아주 멋지게 디깅한 빈티지를 입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마음이 끼어 있다.(34-35p)

 

 

단순한 '모르겠어요'가 아니라, '굳이 대답할 필요 있나요?'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것이 바로 '젠지스테어'였다.

(...)

'아, 내가 지금 굉장히 교과서적이고 뻔한 질문을 했구나.‘

밀레니얼세대라면 예의상이라도 "음····· 슬픔?" 정도는 말했을 텐데, 젠지는 다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다고 본다. 그들의 젠지스테어는 이렇게 번역된다. "선생님, 그 질문 너무 당연한데요? 굳이 말로 해야 하나요?"

(...)

첫째, 말의 인플레이션 시대

둘째, 박제의 공포

셋째, 효율성의 미학

넷째, 완벽한 자기방어(50-52p)

 

 

처음엔 단순한 변덕인 줄 알았다. 젊은 애들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도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 걸 발견했다. 어떤 제자는 월요일에는 "저 정말 열심히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다가 목요일에는 "그냥 소소하게 행복하게 살래요"라고 말했다.

(...)

"선생님, 월요병이랑 목요병이 달라요"라고 했다. 그럴듯하네.

(...)

아마도 기성세대 같으면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했을 것이다. "목표를 정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지" "변덕이 심하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젠지에게는 이게 변덕이 아니라 전략이다. 그것도 꽤 정교한 전략이었다. 그들은 한 가지 모드로만 살기에는 현실이 너무 복잡하고 불확실하다는 걸 안다. 경제는 불안하고,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고, 경쟁은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열심히만 살자" 하거나 "그냥 편하게만 살자" 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신 그들은 상황에 맞춰 마음가짐을 조절한다. 에너지가 있을 때는 최대한 발전시키고, 지칠 때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마치 휴대폰의 절전모드처럼 필요에 따라 모드를 전환하는 것이다.

(...)

사실 이런 고민이 젠지만의 것은 아니다.

기성세대도 똑같은 줄다리기를 해왔다. 다만 그때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뿐이다.

(...)

어쩌면 우리는 세대마다 평생 다른 이름을 붙여가며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자아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젠지의 이런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이 하는 것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균형감각이 아닐까. 우리도 그들에게서 배울 게 있을지 모른다. 완벽한 일관성보다는 유연한 적응력이, 고집스러운 신념보다는 상황에 맞는 유연함이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 필요할지도 모르니까.(117-122p)

 

 

 

ㅡ 이소호, <젠지 사전> 中,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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