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18
기후 슬픔을 소화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수많은 추상들을 한 번에 애도하기를 요구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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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기후 재앙을 초래하는 거대한 체계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역시 나름의 비통함을 품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특히나 불안정하고 유령 같은 형태를 지닌 '예측 애도'도 있다. 언젠가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상승하며 숲은 불탈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다가올 그 상실들을 애도하지만, 이 상실들이 발생할 시점이나 그 정확한 양상은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미래에 벌어질 대규모 재난의 형태와 그 파괴력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우리 개개인을 미래에 대한 책임감과 무력감이 충돌하는 혼란스럽고도 슬픈 상황 속으로 밀어넣는다.(154p)
우리는 사건을 실제 일어났던 그대로 떠올리기보다는 그 사건에 관한 기억memory을 기억remember하려는 경향이 있다. 마치 일종의 카탈로그에 정리해 놓듯 말이다. 개인의 기억은 아무리 생생하게 느껴질지라도 과거의 충실한 재구성이 아니며, 우리가 전해 들은 이야기들, 나누었던 대화들, 방문했던 박물관들, 읽었던 역사책들, 그리고 우리의 SNS 피드 안으로 스며든 정치적 수사들 등 수많은 외부적 힘들에 의해 매개되고 보수된 축조물이다.(이점에 있어서는 고도의 예술이자 인공물로 축조된 기억인 추모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애초에 역사는 사실은 것처럼 꾸며진 선택적 기억에 불과하다. 이 역사 논쟁의 진정한 쟁점은 바로 기억 자체이다.
공적 기억은 시대와 함께 변하기 마련이며, 그와 함께 그 기억을 담은 인공물들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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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기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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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들을 철거하고 학교나 거리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역사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는 작업, 역사를 향한 우리의 주의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작업이다.“
공동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어떤 것이라면, 공동체의 기억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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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셀리그먼에 따르면, 기억이 계속해서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간다는 사실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는 기억의 이런 특성이 "버그가 아니라 기능"이라고 설명한다. 이 설명을 집단 기억에 대입해 보면, 스스로를 재서술한다는 기억의 특성은 우리의 기존 과거와 그것이 기억되어 온 방식을 재검토하도록ㅡ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ㅡ만들어 주는 주요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141-139p)
ㅡ 로런 마컴, <영원 부르기> 中, 기이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