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8
올해 읽은 책 중 후진 걸로 수위를 다툴 만한 책이다. 모임 책이 아니었으면 읽다가 던졌을 듯. 전반적으로 자신의 주장일 뿐인 분석에 대해 단언하며 어거지로 밀어붙이는 글쓰기 방식이 거슬리며, 페미니즘을 아주 조금 알게 된 기득권 중년 남성이 '이런 거 처음 듣는 얘기죠?' 라며 신나서 이런저런 썰을 풀어놓는데 놀랍게도 재미가 없고, 짜증만 났다.
돌아온 진짜 남편이 화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사달이 벌어지게 된 것에 근본적인 잘못이 남편에게 없지 않지만 일단 그의 분노를 납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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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부모가 길길이 날뛴 것일까? 같이 속아놓고 왜 그들까지 손가락질을 해댄 것일까? 공범이었으면서도 왜 아니라고 회피한 것일까?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타자화의 메커니즘이다. '난 너와 달라'라며 구별 짓는 것으로 시작해서 구별이 차별이 되게 만든다.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여 자기와는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그 문제의 모든 것을 하나의 희생양에게로 전가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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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잘못을 떠넘김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잘못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과격하고 더 극단적인 손가락질을 해대는 것이다. 공범이기에 다급한 그 심경을 감추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26-27p)
아예 결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결혼하면 두 번 다시 결혼하지 말라는 족쇄다. 이전 남편을 버리고 결혼하지 말라는 선의의 말이 아니라 '남편이 죽어도 넌 혼자 살라'는 강압이었다. '과부는 절대 다시 결혼하지 말라'는 협박을 하게 된 데는 미묘한 정치적 속셈이 깔려 있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적서차별'과 함께 고안해낸 것이 '과부재혼금지'였다. 남자들에게 적서차별이 있었다면 여성들에겐 재혼금지가 있었던 것이다. 이 두 제도 밑에는 동일한 메커니즘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한정된 관직 숫자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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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재혼한다면 다시 자식을 낳을 수 있기에 문제가 지속된다. 아니, 정확하게는 다시 아들을 낳게 되니 문제이다. 그러니까 양반 남편이 죽은 뒤 그 부인이 다른 양반 남자의 처가 된다면 또다시 아들을 낳게 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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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가 시집가도 정실부인이지 첩이 되는 것은 아니다. 즉 그녀는 새로 시집가서 '처'가 되지 '첩'이 되는 것은 아니기에 적서차별로 그 아들들의 관직 진출을 묶어버릴 수도 없어 골치가 아픈 것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과부재혼금지다. 한마디로 남자들이 자기들의 한정된 밥그릇싸움 때문에 여자들의 결혼과 출산을 제한한 음모인 것이다.(59-60p)
이런 이야기들은 이른바 <열녀전>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었는데, 그 <열녀전>의 등장인물이나 유포자나 기록자는 모두 여자들이었다. 대놓고 남자들이 나서는 것보다 여자를 대리인으로 여자를 통제하는 효과가 훨씬 위력적이다. 개인은 똑똑해도 군중은 멍청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철저히 악용하는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여기저기서 열녀, 열부가 앞 다퉈 목숨을 끊는다. 이들 열녀들을 보다 보면 조금씩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진짜 열녀도 있지만 열녀이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든다. 스스로 선택해서 열녀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열녀가 되는 경우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런 열녀가 진짜로 존재했다기보다는 존재하게 했다는 것이다. 열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68-69p)
효자 만들기에 비해 열녀 만들기는 위험 부담이 크다. 효자 만들기 메커니즘의 핵심인 먹어버린 산딸기나 푹 고아서 몸보신한 잉어는 일회적으로 사라져버려 절대로 추적할 수 없지만 열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검증하려 들면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 수 있다. 게다가 열녀 만들기 메커니즘의 열녀가 인간이기에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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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장 확실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건 산딸기처럼 잉어처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바로 열녀의 죽음 말이다.
물론 대놓고 여인을 죽일 수는 없다. 살인이 큰 죄인 것은 무모하고 각박한 그들도 안다. 그러니 알아서 죽게 하는 것이다. 자살을 방조, 아니 정확하게는 자살을 강요한다. 왜 그렇게도 많은 집안사람들이 과부가 된 여인에게 관심을 갖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73-74p)
혹시 혼동하실지 몰라 덧붙이자면, 처가 죽으면 새로 처를 맞아들이지, 첩이 승격되어 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첩은 그저 첩일 따름이다.(87p)
ㅡ 유광수, <가족 기담> 中, 북플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