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9/21

 

 

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은 언제나 표현의 자유를 외칩니다. 혐오 표현을 금지하려고 하면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반박하죠. 이들을 설득할 방법도 필요도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은 근대 국민국가 건설 과정의 산물입니다.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에 비해 약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비판하고 말할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는 국가와 개인 혹은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등장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표현의 자유는 역전된 방식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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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들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하는 것은 그 개념의 원래 맥락을 뒤집는 것입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말할 때는 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하고 싶은 말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허가증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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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근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보다 '표현의 책임'이 더 강조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44-45p)

 

 

저는 세월호 언설과 관련해서 항상 의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잊지 말자"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누구의 관점인가요? 세월호와 무관한 사람들은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잊을 수밖에 없는 처지죠. 반면, 세월호와 관련된 사람들은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잊기 위해 온몸을 다해 노력할지도 모릅니다.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저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에서 일종의 폭력성마저 느낍니다. 그 비극과 무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다짐, 그것이 "잊지 않겠다"라는 말입니다.

아마 현대인에게 가족 또는 가정만큼 극단적인 경험의 차이를 보이는 영역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이에게 가정은 노동과 폭력의 장소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휴식의 공간이지요. 그런데 거의 모든 공동체에서 가정은 '쉬는 곳'으로 인식됩니다.

각자 서 있는 자리의 다름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나의 처지와 상대방의 처지가 다를 때 우리는 미안함, 서러움, 분노, 절망, 죄의식 등 다양한 인지 작용을 경험하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정은 친밀하고 평화로운 공간이라는 가족 신화나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대화의 주제가 될 때도 뭔가 불안하고 불편합니다. 이 모든 주제가 고아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으니까요.(54-55p)

 

 

일레인 스캐리는 그의 역작 「고통받는 몸」에서 각자도생과 불통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확신하는' 것이며 고통에 관해 듣는 것은 '의심하는'것이다." 내 고통은 내 몸 안에서 너무도 확실히 인지되는데, 타인의 고통은 내 몸 밖에 있기에 언제나 믿기 힘든 문제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한가지 사실이 정리되었습니다. 고통은 나눌 수 없습니다. 육체의 통약 불가능성 때문이지요.(59p)

 

 

여성을 위한 것은 남성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제로섬의 사고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장애인을 위한 제도는 비장애인에게 불이익을 주는가?' '동성 혼인이 합법화되면 이성애자의 결혼은 불법이 되는가?'와 같은 질문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보편성이 객관성·과학·중립·공공의 이익으로까지 그 개념이 확대된 경우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인구의 약 15퍼센트인 장애인 관련 책자도 도서관에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 노인과 같은 소수자가 될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도 남성만을 위한 것도 아닌, 인류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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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페미니즘은 협상의 언어로서, 가부장제에 대한 대항 담론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 반대, 대항하는 사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성도, 남성도 모두 가부장제적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가부장제·이성애 중심·인종차별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런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극복(re-covery)되는 것이 아닙니다. 극복할 수가 없죠. 우리에게는 현실을 재발견하고 재해석(dis-covery)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합니다.(79-80p)

 

 

한편, 증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내 경험을 듣고 믿을까?'라는 두려움과 의심에 시달립니다. 결국 자기 경험을 조절하거나 대개는 축소해서 말할 수밖에 없지요. 폭력 피해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담자나 경찰,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못할 것 같아서 상대방의 수용력이나 가치관, 태도에 따라 자신의 피해 경험을 수정하거나 조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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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독한 분열을 홀로코스트 생존자 프리모 레비만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작가인 레비에게 인간이 어디까지 극한의 고통과 참혹함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 증명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를 역사적 증언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지요. 그는 자신이 경험한 그대로 말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기 시작하자 정작 세상은 그의 증언을 온전히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레비는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 사이의 간극을 조정해야 했습니다.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듣는 이들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믿을 수 있을 만큼만 스스로를 검열하며 직접 경험한 고통을 축소하거나 완곡하게 다듬어야 했던 것입니다. 저는 레비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자기분열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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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윤리입니다. 특히 타인의 고통을 듣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의심합니다. 동시에 이에 공감하고 응답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듣는 자의 위치에도 분열이 있습니다. 영어에서 response(응답·반응)와 responsibility(책임)가 같은 어원을 가진 이유입니다. 누군가의 말에 반응한다는 것은 그 이야기와 책임있게 관계를 맺는다는 뜻입니다.(101-104p)

 

 

은유에 무지가 포개져 잘못 사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커밍아웃'인데요, '학력 위조를 커밍아웃하라'라는 헤드라인의 신문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커밍아웃이라는 말이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죠. 학력 위조는 도덕적으로 문제고, 이를 이용해 이익을 취했다면 실정법 위반이므로 불법입니다. 그러나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은 잘못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닙니다.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경우입니다. 전혀 다른 차원이죠. 한편,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은 이성애자 관점의 표현입니다. 동성애자에게는 동성애 커뮤니티로의 '커밍 인'이죠. 동시에 많은 경우 동성애자에게 커밍아웃은 그들의 가족들을 '벽장'에 갇히게 하는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117p)

 

 

만남은 우연한 조우일 뿐 결코 영원한 합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어떤 낯선 타인과 아주 잠깐 말이 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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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찰나의 순간들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불꽃처럼 일어난 이해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고립된 자리, 각자의 개별적인 삶의 문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 짧은 조우는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통의 근원적 불가능성을 처절하게 깨닫고 난 뒤에 마주하는 이 '잠깐의 이해'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연대를 굉장히 관념적으로 이해하거나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짧은 스침을 '평생의 약속'이나 '영원한 연대'로 무리하게 확대 해석하지 않을 때, 우리는 상대에게 덜 상처받고 덜 기대하면서도 그 순간이 건네준 온기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습니다. 소통의 실패를 기본값으로 설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연히 찾아온 작은 이해의 기적을 기쁘게 누릴 수 있게 됩니다.(193-194p)

 

 

저는 극우에 대한 우리의 가능한 태도를 논의함으로써 이 책의 마무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런 경우 "단호한 대처"는 진짜 내전을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폭력'의 반대말은,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지금 한국 상황에서는 '공존을 향한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배려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극우와의 공존은 극도의 인내와 긴장을 동반하는 신경증적 상황의 지속을 말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극우세력과는 "서로 선을 넘지 않는" 협정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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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와의 공존은 그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존재'를 존중한다는 뜻이죠.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들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 '근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근절되는 세상사는 없습니다. 나쁜 통치는 형식을 달리할 뿐이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매번 달라지는 그 통치 형식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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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민이자 당면한 문제는 공존과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약자 혹은 일방의 몫이라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 고민은 사회운동의 이슈와 직결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운동은 공존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 일입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해치고(극우의 논리), "단호히 대처"(진보의 논리)하고자 한다면 대립은 영원하겠지요. 의미있는 대립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서로를 소모하고 엄청난 희생을 초래하는 평행선 달리기죠. 저는 극우에 단호히 대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발상, 즉 상대를 제압하고 제거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상호 인정과 공존만이 모두가 살길이죠. 이 말은 극우의 폭력을 용인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연히 극우는 공존을 수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존을 거부하므로 그들은 극우인 것입니다.

그러나 극우가 공존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극우처럼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진보)는 양보했는데, 상대(극우)는 그렇지 않다는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공존은 상대의 동의 없이도 한쪽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극우의 사고는 누군가의 설득으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죠.

극우는 설득 대상이거나 투쟁의 대상도, 더구나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이들도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은 비판해도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맑스의 말대로 민주주의가 배제 없는 사회라면, 공존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죠. 평화는 갈등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극심한 갈등 상황을 견디는 힘입니다. 새로운 말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새로운 인간성의 출현을 희망하면서 말입니다.(214-216p)

 

 

 

ㅡ 정희진, <당신과 내가 대화할 수 있을까> 中,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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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18

 

 

 

기후 슬픔을 소화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수많은 추상들을 한 번에 애도하기를 요구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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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기후 재앙을 초래하는 거대한 체계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역시 나름의 비통함을 품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특히나 불안정하고 유령 같은 형태를 지닌 '예측 애도'도 있다. 언젠가 빙하는 녹고 해수면은 상승하며 숲은 불탈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다가올 그 상실들을 애도하지만, 이 상실들이 발생할 시점이나 그 정확한 양상은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미래에 벌어질 대규모 재난의 형태와 그 파괴력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우리 개개인을 미래에 대한 책임감과 무력감이 충돌하는 혼란스럽고도 슬픈 상황 속으로 밀어넣는다.(154p)

 

 

우리는 사건을 실제 일어났던 그대로 떠올리기보다는 그 사건에 관한 기억memory을 기억remember하려는 경향이 있다. 마치 일종의 카탈로그에 정리해 놓듯 말이다. 개인의 기억은 아무리 생생하게 느껴질지라도 과거의 충실한 재구성이 아니며, 우리가 전해 들은 이야기들, 나누었던 대화들, 방문했던 박물관들, 읽었던 역사책들, 그리고 우리의 SNS 피드 안으로 스며든 정치적 수사들 등 수많은 외부적 힘들에 의해 매개되고 보수된 축조물이다.(이점에 있어서는 고도의 예술이자 인공물로 축조된 기억인 추모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애초에 역사는 사실은 것처럼 꾸며진 선택적 기억에 불과하다. 이 역사 논쟁의 진정한 쟁점은 바로 기억 자체이다.

공적 기억은 시대와 함께 변하기 마련이며, 그와 함께 그 기억을 담은 인공물들도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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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기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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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들을 철거하고 학교나 거리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역사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는 작업, 역사를 향한 우리의 주의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작업이다.“

공동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어떤 것이라면, 공동체의 기억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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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셀리그먼에 따르면, 기억이 계속해서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간다는 사실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는 기억의 이런 특성이 "버그가 아니라 기능"이라고 설명한다. 이 설명을 집단 기억에 대입해 보면, 스스로를 재서술한다는 기억의 특성은 우리의 기존 과거와 그것이 기억되어 온 방식을 재검토하도록ㅡ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다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ㅡ만들어 주는 주요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141-139p)

 

 

ㅡ 로런 마컴, <영원 부르기> 中, 기이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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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17

 

 

한때는 벗어나려 발버둥쳤지만, 이제는 기억 속 목가적인 풍경으로 남아있는 그곳이 지금의 나를 이루는 밑바탕이 되었다. 어린 시절 산속을 뛰어다니던 날들, 밀 더미 위에 누워 호루라기를 불던 날들, 지붕 위에 앉아 구름을 보던 날들, 오래된 나무 밑에서 선선한 바람을 쐬던 날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리던 날들, 눈밭에서 뒹굴던 날들···. 그 순간순간이 모여 철근 콘크리트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수시로 위로하고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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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도 내가 생각하는 '전원'은 없다. 부모님이 떠난 그곳에는 하루하루 낡아가는 집만 있을 뿐이다. 부모님이 정리해둔 마당도 봄 한 철이 지나면 다시 잡초로 무성해질 것이다.(162p)

 

 

반장의 오후 업무는 여전히 건물 내 엘리베이터 24대의 기록표에 한 시간마다 서명하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다른 미화원들의 청소 상태를 점검하고, 지저분한 곳이 있으면 바로 알려 시정하게 했다.

처음에는 반장의 일이 꽤 수월할 거라고 생 각했다. 그저 서명만 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코로나19 이후, 엘리베이터 문 옆에는 점검표 한 장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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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마다 소독을 하고 서명하려면 반장은 바구니를 자동문 사이에 끼워 엘리베이터가 조금 더 오래 멈춰 있게 해야 했다. 너무 오래 끼워두면 엘리베이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한 바퀴를 다 도는 데 40분이 걸렸다. 한 시간 중 3분의 2가 이미 지난 것이다. 그러고 나면 곧바로 다음 시간대의 서명을 시작해야 했다. 아직 2시 4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위챗에 표시된 반장의 걸음 수는 이미 1만 7천 보가 넘었다.

나는 한 바퀴만 따라 돌아도 너무 반복적인 일이라고 느꼈는데, 반장은 이 일을 하루에도 열몇 차례씩 해야 했다. 잠시 멈출 수도 없었다.(301-303p)

 

 

엄마는 무척 아쉬워했다. 융추 아주머니가 평안하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라면서, 선전에서는 알고 지내던 사람과 너무 쉽게 연락이 끊긴다며 탄식했다. 다들 우연히 만나 잠시 스쳐가는 떠돌이 노동자일 뿐이었다.(335p)

 

 

ㅡ 장샤오만,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中, 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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