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24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복잡해진다. 신파극인지 알면서도 눈물이 나고 눈을 꼬집히면 눈물이 나기 마련인 것처럼, 별 이야기가 아니라고 해도 유독 엄마에 대한 글이나 영상을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친다. 한국에서, 아니 나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인가.

개인적으로 이 책은 그저 여행을 좋아하는 저자 개인이 자신의 여행기를 책이라는 출판물의 형태로 남겼다는 개인적인 보람을 제외하고는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내 기억 속에 조금이라도 남는다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와의 여행기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게 이 책은 목적지인 인도도 중요하지 않고, 이모는 물론이거니와 무얼 했는지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방점은 ‘엄마’와 자식이 함께 무언가를 함께 했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이 책이 다른 어떤 책보다 유달리 엄마와 딸의 관계를 잘 다룬다거나, 생애 처음 해외여행을 하는 엄마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특장점이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책은 흔하다. 모르긴 몰라도 서점의 매대에 꽂혀 있는 여행 에세이 중 이와 같은 테마의 여행기가 수십 권은 있을 것이다. 다만 여행 에세이를 즐겨 읽지 않는 나는, 이런 책을 처음 읽었고 그게 나름의 신선한 경험이었다는 말이다. 같은 테마의 다른 여행기를 읽었어도 아마 비슷한 감상이 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타 여행에세이에 비해 큰 차별점이나 특정 집단에 소구하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인도에 대한 책이므로 인도에 대한 얘기도 잠깐 해보자. 인도에 처음으로 호기심과 관심이 생겼던 계기는 고등학생 때 읽었던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때문이었다. 이 책의 본문에서도 류시화의 인도에 대한 또 다른 에세이인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얘기하며 저자의 인도에 대한 첫 기억이라고 말하는데, 정말로 그럴법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책들이 특별한 어느 누군가의 개인적 경험으로 남기에는 너무 많이 팔렸다. 예전 같지는 않아도 위의 두 책은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고 당시에도 이미 충분히 팔리며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그런 이유로 해외여행에 로망이 있는 사람치고 당시에 소위 ‘인도 뽕’을 맞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고등학생이었던 그때 그 책에서 접했던 인도는 그야말로 신비한 곳이고 살면서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길에서 동냥하는 거지조차 인생의 삼라만상을 꿰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영성으로 충만한 곳으로 묘사했으니 고등학생이라면 혹할만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더 이상 류시화의 책을 읽지 않지만 그 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오늘은 기차역에 대한 새로운 추억도 생겼다. 기차역 소음과 어우러진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 말이다.

“캘커타에서 참 많은 것을 봤어. 살면서 봤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본 것 같아.”(111p)

 

 

스물한 살, 대학 시험에 합격해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밤이었다. 다른 집과 달리 우리 집에선 누구도 날 서울까지 데려다주지 않았다. 아마 부모님은 딸을 데려다주는 것보다 딸이 서울로 가기 위해 필요한 차비를 버는 일이 더 급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기 위해 ‘캐리어’라는 것을 샀고, 그 가방에 옷 몇 벌과 필기도구, 기숙사에서 쓸 만한 것들을 주워 담았다. 그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불 꺼진 방으로 엄마가 들어왔다. 그러고는 내 옆에 슬그머니 누워 내 손을 꼭 잡았다.

“선영아, 혼자 서울 보내서 미안하다.”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생생한 그 말.(227p)

 

 

“선영아, 난 항상 딸을 믿어. 서울 가서도 우리 딸이 당당하게 잘할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제부터 딸은 이 집에 손님처럼 오게 될 끼다.”

“내가 왜 손님이야?”

“그냥. 이제 가면 니가 1년에 몇 번이나 집에 오겠나. 그러니깐 이제부턴 손님이지.”

나는 정말 엄마가 말한 대로 1년에 한두 번 집에 내려갔다. 자주 찾는 손님도 아닌, 드문드문 찾는 손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빠에게 화가 나서 3년 동안 집에 내려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전화도 없고 집에도 안 오던 나에게 어느 날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

“선영아, 니 뭐하고 사나?”

“왜? 왜 전화했는데?”

“보고 싶어서.”

난 엄마의 그 말에 그날 당장 짐을 싸들고 집으로 내려갔고, 3년 만에 엄마를 봤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엄마는 그새 많이 늙어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젊고 건강한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228p)

 

 

 

ㅡ 윤선영, <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 中, 북로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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