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




요즘 너무 소설을 안 읽은 것 같아서 찜해 뒀던 책 중 하나를 골라 읽음. 




한 번도 과자 회사같은 곳에 진지하게 관심을 둬 본 적이 없었다. 과자라는 건 그냥, 슈퍼마켓에 가면 있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들, 혹은 어른이 돼서도 어린이 입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것을 진지하게 만들고, 진지하게 포장해서, 진지하게 파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입사 지원서를 낼 수 있는 세상은 M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몇 십 년 전에 이미 끝나버렸다. 지금은 아무리 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과자 회사가 사원 모집 공고를 낸 이상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 의무가 된 세상이다.(24p)

 

 

지금도 기억나요.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새로 산 이 시계를 손목에 차고 비인지 눈인지 모르는 것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뭐랄까,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서 한 발짝 멀어진다는 느낌? 그런 게 몰려오더라고요. 가족들과는 사이도 좋고 집도 여전히 안락한 곳이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제가 가야 하는 세계는 다른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거긴 이렇게 앞도 잘 안 보이고 가족이 이해 못 하는 외로운 곳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반드시 그곳을 향해 걸어가겠다. 열일곱 살이 진지하니까 엄청 우습죠? 그곳이 어딘지, 어떤 곳인지는 지금도 계속 찾는 중이에요. 이 시계와 함께.(62p)

 

 

그래도 엄마가 점점 좋아지고 있다니 다행이야. 걱정 많이 했는데 수술하지 않고도 깨끗이 나을 수 있다니 기적 같아. 이제 열흘 후면 연수도 끝나니까 그때까지 더 건강해져야 해. 그럼, 나는 아무 문제없이 잘하고 있지. 엄마, 아빠, 누나들이 있는 한 나는 무적함대야.”

샤워기 물줄기가 얼굴을 때린다.

만약에 저렇게 서로서로 열심히 쌓아 놓은 이야기 중 진실이 아니라고 판명 나는 게 있다면비유하건대 방금 짓다 온 빈터의 그 집들처럼꼬마는 어떻게 될까. 저 귀여운 세계가 흔들린다면.(84p)

 

 

제 말은 단순한 구경꾼이었다는 뜻이에요. , 구경꾼도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자기가 구경꾼이라는 걸 모른 채로 평생 살 수 있다면. 하지만 자기가 구경꾼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엔 밖으로 뛰어나와야죠.(103p)

 

 

인간은 본래 자기가 직접 보지 않은 것에 대해 좋은 것은 덜 좋게, 나쁜 것은 더 나쁘게 상상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야 안전해질 수 있다.(136p)

 

 

형사님, 이 세상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게 뭔 줄 아세요? ······남들보다 못한 인간으로 도태되는 것? (고개를 젓는다.) 사람들한테 머저리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것? (고개를 젓는다.) 이마에 최저 인간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고개를 젓는다.) 가장 수치스러운 건 말이죠······. (어느새 뺨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죄를 눈감아 주는 거예요. ······ 아무 벌도 내리지 않는 거예요. ······하느님이라도 된다는 듯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거······. 나를 이해한다는 거······.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게 없어요······.(228p)

 

 

 

박지리,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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