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23

 

 

작가 이름을 알게 된 건 제법 오래 됐는데 드디어 한 권 읽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소름끼칠 정도는 아니었으나 좋은 작품이었다.

 

 

자고 있는 손자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긴 속눈썹과 둥근 뺨이 아이들 어릴 때 모습을 닮았다. 문득 아카시가 어른이 되는 건 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시가 중년이 되는 걸 볼 수 없다는 사실, 자신이 늙었다는 단순한 사실에 서글퍼졌다. 몇 년이 지나면 아카시가 바로 이 방을 차지하고, 루마와 로미가 했던 식으로 문을 닫아놓을 것이다. 그건 피할 수 없을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도 부모에게 등을 돌려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더 이상 개의치 않게 된, 야망과 성취라는 것 때문에 그들을 저버렸었다.(65p)

 

그는 갑자기 못 견디게 떠나고 싶어졌다. 앞으로 남은 24시간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내일이면 펜실베이니아로 돌아간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리고 2주 후면 박치 부인과 함께 프라하를 여행 하면서 매일 밤 그녀 옆에서 자게 될 거라고. 딸이 여기서 함께 살자고 했지만 그건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제 자신을 위해서였다. 전에는 딸이 그를 필요로 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딸은 평생 그가 해준 것에 더하여 그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딸의 제안이 더 언짢았다. 자신의 일부는 언제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그 제안을 뿌리쳐선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건 달랐다. 즐거운 경험이긴 했지만 일주일을 지내보니 그 사실이 더 확실해졌다. 그는 다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복잡함과 불화, 서로에게 가하는 요구, 그 에너지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딸 인생의 주변에서, 그 애 결혼 생활의 그늘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들이 커가면서 잡동사니로 가득 찰 커다란 집에서 사는 것도 싫었다. 그동안 소유했던 모든 것, 책과 서류와 옷가지와 물건을 최근에 정리하지 않았던가. 인생은 어느 시점까지 규모가 불어난다. 그는 이제 그 시점을 넘겼다.(68p)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삶이 얼마나 황폐한지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일을 한 적이 없었고 낮에는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유일한 일은 아빠와 나를 위해 청소하고 밥을 하는 것뿐이었다. 외식은 드물었다. 아빠는 싸구려 음식점에서조차, 집에서 먹는 것보다 얼마나 비싼지 항상 지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엄마가 교외에서 사는 게 얼마나 싫고 얼마나 외로운지 불평을 할 때마다 아빠는 위로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불행하면 캘커타로 돌아가지”라고 하면서, 떨어져 있어도 자긴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나도 아빠에게 엄마를 다루는 방법을 배웠고, 그래서 엄마를 두 배로 외롭게 했다. 내가 전화를 너무 오래 하거나 방에만 있다고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맞받아 소리치는 걸 배웠다. 엄마가 한심하다고, 나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는 말도 했다. 내게 더 이상 엄마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엄마와 내게 모두 갑작스레 분명해졌다. 프라납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96p)

 

 

“아이들을 데리고 L.A.에 와. 바닷가에 있는 라이언의 별장에 놀러 와야 해.” 팸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 우리 별장.”

“정말 가보고 싶어요.” 메건이 말했다. 하지만 아밋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고, 팸의 세상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이유는 별로 없었다.(130p)

 

 

그래도 아밋은 자기가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모니카가 태어나고부터, 함께 시간을 보낼 궁리보다는 어떻게 하면 각자 혼자 시간을 보낼까 궁리하지 않았던가? 쉬는 날 아내가 아이들을 볼 동안 그는 공원에 가서 조깅을 했고, 또 거꾸로 아내가 서점에 가거나 네일 살롱에 갈 수 있도록 그가 아이들을 보았다.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혼자 있는 그 순간을 그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오죽하면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가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이라 생각했었는지 말이다. 인생의 짝을 찾는다고 그렇게 헤매고서, 그 사람과 아이까지 낳고서, 아밋이 메건을 그리워한 것처럼 매일 밤 그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절실하게 혼자 있길 원한다는 건 끔찍하지 않은가. 아무리 짧은 시간이고, 그조차 점점 줄어든다 해도 사람을 제정신으로 지켜주는 건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140-141p)

 

 

수드하는 엄마가 불쌍하고 한심했다. 자기가 모르던, 불쾌하고 인정하기 힘든 사실이라는 이유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아들을 탓하는 대신 미국과 그 법을 탓하고 있었다. 아빠는 이해한듯했지만 대화에 끼려고 하지 않았다.

(...)

그녀의 부모는 자식들이 괴로워하는 일은 언제나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엄마가 점심 도시락으로 이상한 음식을 싸주어서 비웃음을 사는 것도, 감자 카레 샌드위치를 싸면 원더브레드가 초록색이 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세상에 불행하다고 생각할 게 뭐가 있느냐? 부모님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울증’이란 단어는 외국어였고 미국의 것이었다. 고생과 부당함은 그들이 인도를 떠날 떄 두고 왔고, 자기 자식들은 절대 그런 일을 겪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소아과 의사가 아이들에게 평생 고통 없이 살라고 면역 주사라도 놔주었다는 식이었다.(173-174p)

 

 

“런던에 언제라도 놀러와.” 이렇게 말했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에 슬퍼졌다.(185p)

 

 

발목에 뭔가 스쳐서 내려다보니 닐의 식탁에 묶여 있던 풍선이었다. 이제 줄 위에 떠 있지 못하고, 다시 부풀어 오르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빠진 채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줄을 가위로 잘라 통째로 쓰레기통에 구겨 넣었더니 놀랍게도 그 속에 쏙 들어갔다. 그녀는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남편과 이제 막 울기 시작한 아이와 그날 아침 쪼개져 열려버린 자기 가족을 생각했다. 다른 가족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210p)

 

 

“미안해, 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네가 키스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어.”(226p)

 

 

그녀가 그의 선물을 사는 걸 떠올리니 우울해졌다. 그들은 친근하게 지냈지만 친구는 아니었다.(241p)

 

 

 

ㅡ 줌파 라히리, <그저 좋은 사람> 中, 마음산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