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20

 

 

저자의 문장보다는 인용한 대목이 좋았다. 마음산책의 ‘말’시리즈도 참 재밌어 보이는데 이상하게 손이 안 간단 말이지.

 

 

 

1994년 8월 8일, 나는 황지우의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호」라는 산문집을 펼쳤다.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출신성분에 비해 너무 교육받았다는 것이 나를 불행하게 했다는 생각을 나는 쭉 가지고 있었다.” 그 문장 아래 꾹꾹 누른 짙은 밑줄이 그어져 있다. 나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천품이라는 게 있다고 믿는다. 황지우 시인이 ‘출신성분’이라고 다소 도발적으로 표현한 천성, 천품. 나는 천품에 순응하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천품은 밝고 경박하며 육체적이고 직선적이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나는 청춘 시절 너무 많은, 나의 용량에 비해 너무 많은 책을 읽었다. 황지우 시인의 표현을 따르자면 ‘출신성분’에 비해 너무 많은 책을 읽은 것이다. 그것이 나의 불행을 만들어냈다.(86-87p)

 

 

1980년 4월, 여든한 살의 보르헤스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서 윌리스 반스톤과 나눈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생이, 세계가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꾸는 거죠.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구원은 우리에게 차단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 나는 실패했고, 실패할 것을 알지만, 그것이 내 삶을 정당화할 유일한 행위이니까요.(120p)

 

 

 

ㅡ 김윤관, <아무튼, 서재> 中, 제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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