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28

 


공동주택에서 사는 부부들의 얘기라길래 이웃끼리 정답게 지내며 따뜻한 이웃의 정을 나누는 훈훈한 줄거리를 예상했는데ㅡ따라서 심드렁했다ㅡ,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인간사에 대한 냉소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글이 매우 마음에 든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볼 의향 있음.





본인이 작정하고 악의를 품어서 뺀질거리는 게 아니라 믿고 싶지만 조효내의 무책임과 게으름은 자기도 모르게 밴 천연 습관이어서 혼자만 무구할 뿐 그것을 감당 및 조율해야하는 상대방 내지 제삼자를 지치게 만들었다.(23p)

 

 

핵심은 시간을 보내는 데 있었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면서 체세포의 수를 착실히 불리는 거야말로 어린이의 일이었다. 그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일은, 주로 시간을 견디는 데 있었다. 시간을 견디어서 흘려보내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일. 그곳에 펼쳐진 백면에 어린이가 또다시 새로운 형태 모를 선을 긋고 예기치 못한 색을 칠하도록 독려하기. 그러는 동안 자신의 존재는 날마다 조금씩 밑그림으로 위치 지어지고 끝내는 지우개로 지워지더라도.(67p)

 

 

신재강이 건넨 내용물의 포장지에는 통밀이니 호밀이니 글루텐 프리, 버터 프리 슈가 프리 밀크 프리 같은 말들이 적혀 있었다. 이것저것에서 모두 자유로워져서 어쩔 작정인지, 보편의 형식이니 기준 같은 것들로부터 벗어난 빵에서는 어떤 맛이 날지 요진은 궁금했고 일단 건강과 관계있어 보였지만 최소한 자신이 그 맛을 쉽게 좋아하지는 못하리라는 예감만은 들었다.(79p)

 

 

웃음,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웠겠지. 표정에는 애매모호한 고까움 대신 세심한 구석까지 신경 써 준 홍단희를 향한 진심 어린 고마움이 담겨 있었겠지.(91p)

 

 

언제나 선을 넘어올 듯 말 듯한 자리에서 신재강의 말과 행동은 종료되었다. 물론 선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니 요진이 어느 순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싸늘하게 자르거나 거절해도 그만이었다. 요진이 불편하고 불쾌하면 곧 그것이 선을 넘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진은 가능한 한 누가 봐도 이상하며 그럴듯하지 않은일에 반응하고 싶었다. 해석의 방식과 범위에 따라 불쾌지수가 널뛰는 일에 낱낱이 발끈함으로써 서로에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초래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피곤한 여자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달려드는 예민한 이웃으로 간주되기 싫었다. 좋은 게 좋은 줄 알며, 사소한 농담에 호응해 주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회인이 되는 게 바람직했다. 호젓하고 의지가지없는 소규모 공동주택으로 이사 와서만이 아니라, 약국에서 수많은 아픈 사람들을 대하는 동안 요진은 세상 모두를 손님으로 인정하고 접객을 할 수도 있을 것처럼 일상의 근육이 잡혀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왜 먼저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여야 하는지, 표정을 지어 보일 적절한 타이밍을 재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가 됐든 그가 어느 순간 멈춰 버린 빈 자리에 대고 항의하는 우스운 꼴은 되고 싶지 않았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 어떤 사람도 이런 소극적인 항의에 정직하게 의중을 밝혀 줄 리 없으며 그럴 경우 반드시 이쪽의 입에서 먼저 말이 나가게 된다. 남의 집 여자가 소리 지르는 거 들어 보고 싶다니 무슨 소린가요? 그게 그런, 뜻으로 하시는 말씀 아닌가요? 당신의 의도는 어떤지 몰라도 저는 듣기 거북합니다. 농담이더라도 앞으로 주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기도 안 찬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 당신 앞에서는 이후로 그 어떤 말도 못 하겠군요. 어떻게 그게 그런, 얘기가 됩니까? 소리 지르는 거 들어 보고 싶다는 말에서 대뜸 교성을 연상한다면 그게 미친거고 네 귀에 음란 마귀가 끼인 거 아니냐, 맘만 먹으면 누구라도 그리 웃어넘기며 손가락질할 상황이었다. 발화 당사자의 미묘한 제스처나 그 자리의 공기, 청자의 심리가 지워진다는 점이, 언어 자체가 지닌 약점이었다.(119-120p)

 

 

데면데면하다 그냥저냥, 정말 그런 걸까. 이 상황이 뭐 좋은 금붙이나 된다고 그렇게 묻고 지나가 버린 다음, 훗날 기회가 닿았을 때 다시 캐내어 더 큰 구멍을 만들고 그러려고 사는 거 맞나, 부부가. 요진은 그와 같은 식으로 은오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묻었던 일들의 목록을 떠올렸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해 온 형태를 깨기 싫어서, 시율이가 볼까 봐, 어른들이 편찮으셔서····· 해결하지 않거나 못하고 다만 안 보이게 덮어 두었던 날들의 날짜를 세었다. 무덤 속 유골보다 깊이 매장한 감정들. 그와 함께 부장품으로 한데 묻은 현실 인식들 모두 근근한 일상 앞에서 사치에 불과했던 순간들을 기억했다.(128p)

 

 

조효내의 사전에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같은 인간 사회 보편의 인사가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어린이가 태어난 이상은 어떻게든 형성되지 않기가 더 어려운 육아 네트워크에서 사양과 감사는 언제나 한 세트로 붙어 다니게 마련이며 시기적절한 미소는 그 세트를 포장한 리본과 같은 것이었는데, 조효내의 대답은 본질적인 타인에게 불필요한 신세를 지지 않겠다는 방어막에 더 가까웠고, 그것이 철저한 자기 관리나 신념에서 비롯하기보다는, 한번 다림이를 부탁하면 다음번 유사시에 자신이 세아와 우빈이를 맡아야 할지 모른다는(그럴 일이 실제로 생길 가능성이 얼마나 희박한지는 제쳐 두고) 계산에서 나온 것 같았다.(133p)

 

 

아이를 위한다는 구실로 일상에서 가벼운 것부터 하나씩 둘씩 무리수를 두다 결국 수치라는 걸 모르게 되고 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148p)

 

 

그러나 따지고 보면 떠드는 내용의 대부분은 은오의 입에서 나온 것으로, 그는 가만히 들어 주고 웃어 주는 여자가 눈앞에 있어서 신이 난 것이었다.(171p)

 

 

어떤 효용이나 합리보다는 철저한 당위가 지배하는 장소. 기회가 닿으면 아이들이 탈 만한 정원용 그네 또는 미니 미끄럼틀 같은 것이나 좀 들여놓으면 될 터였다. 어차피 아이들이 많아질 곳이므로. 각 집에 아이가 둘씩만 있다고 쳐도 꼽아 보면 스물네 명에 이른다. 볕 좋은 날 각 집에서 버너라도 내놓고 바비큐 파티를 하면 좋겠다는 그림이 여자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른 스물네 명까지 합하면 도저히 다 둘러앉을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눈앞의 식탁은 이 주택에서 제일 오래갈듯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향후 몇 가구가 들고 나든지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것만 같은, 이웃 간의 따뜻한 나눔과 건전한 섭생의 결정체처럼. 여자는 왠지 몰라도 이 식탁을 오랫동안 아침저녁으로 보고 지낼 자신이 있었다.(191p)

 

 

 

구병모, <네 이웃의 식탁>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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