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7

 


수치심, 죄책감, 창피함 등의 감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좀 더 상세히 논의를 전개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좀 가벼움.





많은 사례들에서 수치와 수치 주기는 부당한 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 수치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수치를 유발하는 규범인데 말이다. 의사들이 실수를 저질러 놓고 너무 수치스러워서 그것을 인정하거나 털어놓지 못한다면 진짜 문제는 수치가 아니다. 의사는 실수를 해선 안 되며 실수를 하지도 않는다고 규정하는 규범이 문제라는 얘기다(이는 주로 소송의 위협 때문일거라고 나는 생각한다).(56p)

 

 

창피함과 수치심 둘 다 누군가가 지켜볼 때 나타나는 감정이지만 수치심의 경우 목격당하는 것이 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인습적인 규범을 모르고 위반했을 때에는ㅡ어떤 행사에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했거나 신발에 화장지가 붙어 있는 것을 누군가가 봤을 때ㅡ창피함을 느끼겠지만,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그것을 실패로 간주하는 좀 더 확실한 사회적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낀다. 동료 학생들 앞에서 암산을 하게 한 UCLA 실험에서 학생들이 보인 감정은 창피함보다는 수치심에 가까웠다. 암산 능력은 자아와 관련된 무언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창피함은 개별 사건과 관련되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잊히는 반면, 수치심은 그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오래 지속된다.(64p)

 

 

외모를 통제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에 달린 일이지만 대기나 여타의 환경 문제에 대한 개인의 영향력은 그렇게 크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자유 시장 논리에 따라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죄책감을 덜어주는 제품들은 대부분 가격이 더 비싸다. 따라서 과거에 부자들이 돈을 내고 면죄부를 사서 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듯이, 이제 부자들은 돈을 내면 환경 파괴와 그에 관한 죄책감에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75p)

 

 

물론 친환경 소비자운동은 조금 거슬리거나 실망스럽긴 해도 분명히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알렉스 윌리엄스는 2007년 「뉴욕 타임스」패션과 스타일 면에 실린 기사에서, 환경 운동가들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면서 그러한 행동이 실제로 큰 차이를 만든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은 아니라고 썼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그저 ‘선한 첫걸음’일 뿐이며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도덕적 면허’에 관한 연구들은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선한 첫걸음이 된다는 가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그 후 탐욕과 거짓말, 도둑질을 좀 더 쉽게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79p)

 

 

대부분의 사회 및 환경 라벨들의 경우, 해당 산업의 일부, 즉 죄책감을 느끼기 쉬운 양심 있는 소비자들의 구미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일부만 변화하면 된다. 나머지는 계속해서 살충제를 사용하거나 불공정 무역을 하거나 파괴적인 조업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제품들은 더 낮은 가격에 판매하면 된다. 그 다음 단계, 즉 규칙을 제정하여 업계 전체를 바꾸는 단계는 생략된다. 이 모든 게 사실은 계획의 일부이다. 생산자들이 올바른 일ㅡ유기농 식품을 재배하거나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ㅡ을 하게 만드는 주요 인센티브는 물건 값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니까 말이다. 프리미엄 가격을 받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이 규칙이 되어선 안 되고 예외가 되어야 하며, 따라서 해당 시장은 극소수 소비자들의 가책을 덜어주되 해당 업계에 장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은 피해야 한다. 이른바 ‘죄 세탁’ㅡ죄책감과 죄책감 완화 시법을 기만적으로 활용하여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차별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ㅡ을 하는 셈이다.(81-82p)

 

 

2009년 미국 7개 도시의 시민 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장 효과적인 에너지 절약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전깃불을 끄는’ 것이었다. 조명을 언급한 응답자는 20퍼센트에 가까웠던 반면, ‘자동차 사용을 줄인다’고 답한 사람은 13퍼센트에 불과했다. 개인의 차량 사용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은 전체 미국 가정의 탄소 배출량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미국 전체의 탄소 배출량 가운데서도 무려 15퍼센트를 파지하는데 말이다. 미국 가정의 에너지 사용량 가운데 자동차 사용으로 인한 소비량이 조명에 비해 6배 이상 더 많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작 문제로 지적해야 할 것은 조명이 아니라 자동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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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한 번 탈 때 마다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비닐봉지를 73만 개 사용하거나 주전자에 물을 17만 6천 번 넘치게 받는 것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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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휴대전화 충전기의 플러그를 뽑아 놓으라고 자주 권고하지만 이를 통해 절약되는 에너지는 평균 자동차를 1초 동안 몰지 않았을 때 절약되는 에너지와 비슷한 양이므로 오히려 정신만 산만해질 뿐이라고 시사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매케이는 정작 필요한 것은 개인의 행동이 아니라 법안이라고 말했다.(83-85p)

 

 

수치 주기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 미래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폭로 대상인 개인이나 기업에게 집단에 다시 편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하다. 가장 효과적인 수치 주기의 경우에는 행동 변화에 대한 보상으로 명예가 따라오기도 한다.(161p)

 

 

플로리다 주 범인 식별 사진을 올리는 웹사이트들이 있는가 하면, 이들과 공모하여 돈을 받고 사진을 내려주는 사이트들도 있다. 돈을 받고 웹에 있는 콘텐츠를 삭제해주는 시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241p)

 

 

우리는 개인주의 정신과 자유 시장 이념에 사로잡혀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은 바로 소비자로서 참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죄책감이 패권을 장악하면서 지속 가능한 해산물과 유기농 식품, 탄소 계측기 같은 제품의 판매를 장려해왔다. 소비자들은 재활용 봉투와 머그컵을 사용하고 전깃불을 끄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이는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졌는데 비타민 C를 섭취하는 것과도 같다.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규모 협동의 딜레마들은 소수의 사람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이 소수의 사람들이 소비자로서 죄책감을 갖고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분명히 충분하지 않다. 좀 더 신속하게 그리고 좀 더 대규모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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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는 규범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우리의 미래에 수치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는 미래에 어떤 규범이 남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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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규범, 좀 더 중대한 규범들이 요구된다. 수치를 현명하게 활용한다면 그러한 규범을 만들고 시행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269-271p)

 

 

 

ㅡ 제니퍼 자케, <수치심의 힘> 中,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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