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US)

from Movie 2019. 3. 31. 02:26

감독의 전작인 ‘겟 아웃’도 그랬지만 이번 영화도 개봉 전부터 워낙 화제가 됐던지라 몹시 기대하며 보러갔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겟 아웃’보다는 덜 좋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겟 아웃’은 동시대 관객들에게 머나먼 얘기일 과거 노예제 시기의 흑인 처우와 차별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당대의 관객들이 더 와 닿을 수 있을, 현시대의 흑인이 당하는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방식의 차별을 대단히 예리하게 풍자하며 명확하게 메세지를 드러냈다. 딱 떨어지는 이 완결성이 나에게 좋은 감상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런데 ‘어스’는 조금 달랐다. 정교한 상징과 미장센은 여전해서 ‘겟 아웃’과 마찬가지로 반복 관람이 훨씬 영화를 풍부하게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면은 비슷했으나 한층 모호한 주제로 복잡한 해석을 요구했다. 그리고 후반부는 명백히 무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영화를 다 보고서도 관객에 따라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전달하려는 주제의 모호함ㅡ감독이 의도한 결과겠지만ㅡ은 영화의 완성도와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전달하는 방식에서 조금 무리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공식 의견은 현재 미국 사회에 대한 영화(US=United states)라고 한다. 이 말을 고려해서 나는 크게 두 가지 면을 생각해봤다. 첫 번째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 영화도 흑인의 차별 문제를 다루는 영화인가. 둘째, 모든 개인에게 존재하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서로를 견제하며 우위를 점하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인가. 우선 나는 별다른 의식 없이 흑인이 주요 배역으로 나오는 영화다 보니 경험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흑인 문제를 다룰 거라는 쉬운 생각을 했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극 중 흑인 배우들은 기존의 수많은 영화에서 백인배우들이 맡았던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백인’의 역할을 연기한다. 반면 배역이 역전된 백인들은 보조적인 역할로 등장하여 잔인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다. 이것을 보고 지금까지 백인이 맡아 왔던 역할을 흑인이 대신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인종 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고, 물론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좀 더 폭넓게 본다면 배우가 흑인일 뿐이지 꼭 특정 인종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던 게 아니라 미국사회 전체에 대한 커다란 얘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나를 구성하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현 시대에 진정한 적은 나와 다른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일부분이지만 보기 싫어서 억압하고 외면했던 나의 그림자 아닌가. 지금까지는 이런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고 윤리적이고도 정치적인 이유로 억제하고 드러내지 않았다면 대 트럼프 시대에 이르러 드디어 그 모습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찬 받는 시대까지 되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에 미국과 멕시코를 가로지르는 시대착오적인 장벽이 세워졌을 것이다. 극 중 지하 인간들(=어두운 면)은 지상의 인간을 죽이고 손에 손을 잡고 벽을 만든다. 이 장면을 위의 말과는 달리, 무시당하는 소수인종들이 잠깐이나마 사회의 주류를 제압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하나 과거 캠페인의 결과처럼 일시적인 깜짝쇼로 기능하고 궁극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풍자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하 인간들(=어두운 면)이 잠식한 현시대가 과거의 캠페인처럼 일시적 사건에 불과하고 곧 사그라질 거라는 희망적인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의 의견을 믿고 싶다.

 

 

cf)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이 그랬듯이 이 영화도 감독이 참조한 레퍼런스를 참고하면 한층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식스 센스, 새, 샤이닝, 퍼니 게임, 장화홍련 등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