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17

 

 

친구들과의 대화도 읽어볼까 싶다.

 

 

 

메리앤이 세면대에서 블라우스를 빨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다들 그냥 우스울 뿐인 척하지만, 코넬은 그 이야기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메리앤은 학교에서 어느 누구와도 사귄적이 없어서 아무도 그녀가 옷을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남자를 좋아하는지 여자를 좋아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그녀 또한 아무한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녀의 그런 점을 못마땅해한다. 코넬이 생각하기로는 바로 그런 이유로 그들이 그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것 같다. 보는 것이 금지된 대상을 볼썽사납게라도 쳐다보고야 마는 수단인 셈이다.(15p)

 

 

이제 몇 주 후면 메리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될 것이고, 삶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그녀 자신의 몸속에 갇힌 똑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녀가 거기서 벗어나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 그게 뭐가 중요한가?(84p)

 

 

그는 나무랄 데 없는 미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는 그림, 영화, 심지어 소설이나 텔레비전 쇼도 미적 감각이 조금이라도 부족해 보이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때로 메리앤이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한다. 그 영화는 내 기대에는 못 미쳐. 이렇게 탁월한 안목을 지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님을 그녀는 깨달았다. 그는 옳고 그름에 대한 진정한 판단력은 조금도 기르지 않은 채, 섬세한 예술적 감수성만 간신히 키워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메리앤은 혼란스럽고, 갑작스럽게 예술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235p)

 

 

문학은 교육받은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감정적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서, 그들이 즐겨 읽은 소설 속에서 그들을 대신해 그 여행을 경험하는 사람들, 즉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맹목적인 숭배를 받았다. 설령 작가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그의 책이 정말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책이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마케팅이 되고, 모든 작가가 어느 정도는 이 마케팅에 가담한다. 아마 이것이 문학계가 돈을 버는 방식일 터였다. 문학은, 이런 공개적인 낭독회에서 드러나듯, 무언가에 저항하는 형식으로서는 발전 가능성이 조금도 없었다.(271-272p)

 

 

 

ㅡ 샐리 루니, <노멀 피플> 中,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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