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0

 

 

그냥 정지돈이 정지돈 했네.

 

 

소년 윌리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었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알게 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진다. 이삭 바벨은 말했다. 나는 새로운 장르를 발명했습니다. 그것은 침묵이라는 장르입니다.(16p)

 

 

선우학원이 처음 소개했을 때 정웰링턴은 그녀를 유쾌하지만 깊이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10년을 넘게 만난 유일한 사람이었다.

깊이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윌리는 헬레나를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병은 사람을 매혹한다는 사실도.(54-55p)

 

 

다시 말해 진실은 기능하지 못한다. 기능하는 것은 진실이라고 인정된 형식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진실이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악명 높은 진실의 상대성, 시대를 앞서간 포스트 트루스? 그렇지 않다. 하셰크의 잘 알려진 소설 「착한 병사 슈베이크」역시 그렇듯 「정신의학의 신비」에도 진실은 명백히 존재한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은 후리흐 씨도 그를 구하는(?) 이발사도 경찰관도 제도도 아니다. 책을 읽는 독자다. 아이러니한 상황은 독자 앞에 명확히 상연되고 오직 독자만이 진실의 증인이 된다. 그러므로 사실상 모호한 것은 없다. 그리하여 하셰크의 세계는 풍자가 되고 계몽이 된다. 반면 카프카의 소설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독자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상황ㅡ왜 오해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우왕좌왕하게 되는 건 독자다. 「시학」에서부터 동시대 영화까지 서사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기율 중 하나는 등장인물은 속이되 관객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카프카는 이 기율을 위반했고 국민 작가가 된 하셰크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건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비판적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역사가 그를 구제하기 전가지 단지 조금 이상하고 실패한 작품일 뿐이다.(145-146p)

 

 

”동지! 스탈린이 그 모든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때 지도부였던 당신은 뭐 하고 있었습니까?“ 흐루쇼프는 연설을 중지하고 연방 각지에서 모인 1,355명의 열성당원을 쳐다봤다. ”누가 말했습니까?“ 죽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 서기장은 회중 시계를 꺼내들었다. ”1분의 여유를 주겠습니다. 누군지 일어나서 다시 말해보시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기다리는 동안 어떤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흐루쇼프는 시계를 호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었다. ”저는 스탈린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을 때 아까 소리를 지른 동지가 한 것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177p)

 

 

 

 

ㅡ 정지돈, <모든 것은 영원했다> 中,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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