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31

 

상은 그냥 상이다.

 

 

 

이제야 요나는 제대로 된 무이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요나가 5박 6일간 본 무이는 일부에 불과했다. 진짜 무이는 그 5박 6일에 서너 배의 그림자를 더 붙인 것이었다. 카메라 속에는 그 모든 것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5박 6일 동안 찍힌 것과 그 이후에 찍힌 것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있었다. 그러나 진짜 재난은 두 세계 어디에도 찍혀 있지 않았다. 미이의 재난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있었다. 그것도 사진 따위로는 찍을 수 없는 형태로 존재했다. 그런 종류의 재난에 대해서 요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163-164p)

 

 

이 계획에서 직업 누군가를 칼로 베거나 구덩이에 밀어 넣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희생되는 사람은 정보에서 소외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을 구덩이에 매몰할 것이었다. 그 일에 대해 사람들은 침묵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누군가가 말한 대로 학살의 한 형태였으나, 학살의 책임자는 없었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열중했다. 요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수정된 계획을 듣고 요나는 놀랐지만 며칠이 지나자 충격이 서서히 가시기 시작했다. 요나는 가끔 이 일의 전체적인 줄거리에 대해 생각하곤 했지만, 그 생각 끝에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사건 이후 여행 프로그램을 짜는 것뿐이라는 자위 혹은 변명이 따라붙었다. 누군가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밀어서 구멍에 던져 넣으라고 요구했다면 요나는 단숨에 이 일을 거절하고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이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요나는 가만히 있었고, 상황에 익숙해질수록 이 일이 미칠 영향력에 대해 둔감해졌다.(182-183p)

 

 

 

 

ㅡ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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