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13

 

 

많은 등장인물을 등장시키면서도 매끄럽게  정리하며 속도감 있게 진행하는 작가의 공력이 느껴진다.

 

 

순전히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시간이라는 연속선 어딘가에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존재할 것이다. 형국이 끝내 뒤집히는 시점이 있고, 그 시점을 지나면 무슨 짓을 해도 고무나무를 살릴 수 없다. 목요일 오후 5시 35분에 물을 주면 고무나무는 살겠지만, 목요일 오후 5시 36분에는 누가 물병을 들고 나타나 봤자 소용없다.(53p)

 

 

아무튼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운명은 화살이 이미 꽂힌 자리 주위에 그려 넣는 과녁일 뿐이에요.(434p)

 

 

그 불행의 이름은 ‘엘피스(Elpis)’, 즉 희망입니다. 온갖 나쁜 것 중에서도 가장 나쁜 것이죠. 인간의 행동을 가로막는 것이 희망, 인간의 불행을 오래 끄는 것도 희망입니다. 상황이 명백한데도 ‘다 잘될 거야.’라고 말하잖아요? 일어나선 안 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우리가 매번 제기해야 할 진정한 질문은 이거죠. ‘주어진 관점을 수용하면 어떤 점에서 나에게 좋을까?’(439p)

 

 

ㅡ 에르베 르 텔리에, <아노말리>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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