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4

 

 

경찰의 일은 현실주의, 정해진 절차, 집요함, 체계에 바탕을 두고 이뤄진다. 물론 까다로운 사건이 우연히 해결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우연이란 융통성 있는 개념이고 요행이나 운과는 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범죄 수사의 성패는 우연의 망을 가급적 촘촘히 짜내는 데 달려 있다. 번득이는 육감보다는 경험과 성실함이 더 많이 기여한다. 명석한 두뇌보다는 좋은 기억력과 건전한 상식이 더 귀한 자질이다.

현실에서 경찰이 하는 일에는 육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육감은 애초에 자질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점성술과 골상학을 과학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61p)

 

 

만약 당신이 정말로 경찰에 붙잡히고 싶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찰관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하는 진실이고, 스웨덴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스웨덴 범죄 역사에는 해결되지 않은 살인 사건이 무수히 많지만 경찰관이 살해된 사건 중에는 미해결 사건이 한 건도 없었다.(88p)

 

 

마르틴 베크의 주머니에 든 보고서에는 새로이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이 몇 가지 적혀 있었다. 일례로, 경찰 일이 다른 직종들 보다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대부분의 다른 직종들이 경찰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했다. 건설 노동자나 벌목 노동자의 삶이 경찰관의 삶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항만 노동자, 택시 기사, 주부도 그렇다고 했다.

그렇지만 경찰 일이 다른 직업보다 더 위험하고 더 거칠고 봉급도 적다는 건 일반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상식이 아닌가? 아쉽게도 그 질문에는 단순한 대답이 있었다. 물론 그런 고정관념이 퍼져 있지만, 그것은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경찰관들만큼 역할 고착을 심하게 겪지 않고 자신의 일상을 드라마틱하게 과장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은 통계가 엄연히 증명하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매년 부상을 입는 경찰관의 수는 경찰에게 학대당하는 사람의 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톡홀름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가령 뉴욕에서는 매년 평균 7명의 경찰관이 살해되는 데 비해 택시 기사는 한 달에 2명, 주부는 일주일에 1명, 실업자는 하루에 1명씩 살해된다고 했다.

(...)

심지어 어느 스웨덴 연구진은 영국 경찰의 신화를 깨부수는 데 성공하여 그들에 대한 인상을 현실화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영국 경찰이 다른 몇몇 나라의 경찰에 비해 폭력적인 상황을 유발하는 비율이 낮다는 걸 보여준 거였다. 덴마크 당국도 이 사실을 깨달아서, 이제 덴마크 경찰관들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무기 소지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스톡홀름은 그렇지 않았다.(90-91p)

 

 

마르틴 베크도 내심으로는 이 작업이 무의미해 보인다는 것을 인정했다.

(...)

하지만 마르틴 베크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고, 장기적으로는 소득이 있는 작업이라도 처음에는 거의 모두 무의미해 보인다는 것도 알았다.(173p)

 

 

 

ㅡ 마이 셰발, 페르 발뢰, <어느 끔찍한 남자> 中, 엘릭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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