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30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2017년 「관광객의 철학」을 출간했다. 여행자, 순례객도 아닌 관광객에게 무슨 철학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즈마가 노린 건 바로 그 지점이다. 관광객의 철학을 간단히 설명하면, 가벼운 접근이 우연을 만나고 이러한 우연이 우리에게 연대의 가능성을 연다는 거다. 말하고 보니 지나치게 간단해지는데 실은 철학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복잡하고 예민한 문제다. 아즈마 히로키는 「관광객의 철학」을 출간하기 전 「후쿠시마 제1원전 관광지화 계획」을 출간했고 극렬한 비난을 받았다. 책은 제목 그대로 후쿠시마를 관광지로 만들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비난의 세세한 내용을 짚어보지 않아도 어떤 반응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누군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진도항 관광지화를 주장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나 아즈마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이러한 관광화를 실천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체르노빌, 광주 등등 역사적 비극과 재난의 현장에는 공원과 박물관, 투어 프로그램이 존재하고 해마다 수천에서 수십만의 사람이 방문한다. 단지 이곳을 가리키는 단어가 추모, 기억, 순례 등 관광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일뿐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여기에는 언어의 문제가 존재하고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제한한다. 경박한 관광과 진지한 추모의 간극. 아즈마 히로키가 도발하는 건 이러한 태도와 규정이다. 기존의 시선으로는 진짜 사건과 만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추모는 비극을 물신화한다. 추모객은 자신이 보고자 한 것만 본다. 반면 훨씬 가벼운 태도의 관광은 예상치 못한 경로로 사람들을 사건과 조우하게 만든다. 일종의 산책자처럼 말이다.(69-70p)

 

 

 

ㅡ 정지돈, <스페이스 (논)픽션> 中,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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