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9

 

인버스도 읽어야겠다.

 

 

전기차가 경유 승용차의 친환경적인 대안으로 제시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전기차는 실제로 더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하지만 생산과정마저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전기차의 리튬 이온 배터리는 양극재로 LCO(리튬·코발트·옥사이드) 혹은 NCM(니켈·코발트·망간)을 사용한다. 리튬은 대량으로 퍼 올린 지하수에서 해당 광물을 추출하여 생산되는데, 이러한 채굴 방식은 환경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주변 농작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뿐만 아니라 리튬의 주요 산지는 칠레와 페루 같은 남미 국가들이다. 선진국의 땅은 환경오염과 정화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너무 비싼 반면, 남미의 개발업자들은 군·경과 결탁해 약탈적 채굴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를 매달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기차는 희토류 채굴로 인한 환경오염을 제3세계에 떠넘기는 동안만 온전히 친환경적인 셈이다.(56p)

 

 

제본스의 역설이 지적한 것처럼, 세탁기와 청소기가 가사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이란 전망과 달리 실제로는 가사의 기준을 높였던 것처럼, 에너지 효율이 높아질수록 전력 사용량이 더불어 증가하는 것처럼, 발전과 혁신은 새로운 욕망을 빚어낸다. 그리고 이따금 욕망은 개선과 해결을 막는다.(58p)

 

 

사회에 기여하지 않거나 덜 기여하는 행위는 무가치한가? 도덕적으로 훌륭해지는 것 이외의 자향점은 없단 말인가?

수전 울프가 1982년 발표한 논문 <도덕적 성인>은 ‘모든 행위가 가능한 최대 한도로 선한 사람’을 도덕적 성인으로 정의한 후, “도덕을 최고의 기준으로 두고 판단할 경우, 우리의 가치들은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는 논지로 끝을 맺는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도덕적 성인이 되려 한다면 세상은 훨씬 칙칙해질 게 분명하다. 이러한 논변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순수수학, 이론물리학, 천문학, 고생물학···.

그 모든 일은 분명히 인류의 문명에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안겨왔다. 수레바퀴의 기준과는 다른 가치의 체계에 속하는 아름다움일 뿐이다. 수억 광년을 통과해 다가오는 빛을 포착하기, 영어의 음성체계에 대해 고민하고 구조를 분석하기, 그리고 심플렉틱 다양체에 대해 생각하기.(116-117p)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기분?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애들보다 제가 살 만한 건 맞는데, 기분이 묘한 거죠. 내가 남 도울 입장도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도움을 받을 만한 상황도 아니고. 애매하게 끼어서. 저한테 열심히 살았다고 해주는 사람도 없고, 그런데 거기에 억하심정을 가져봤자 여기 말고는 말할 곳이 없으니까···.”(123p)

 

 

지난 11월, 어느 안티휠 만화가가 수레바퀴를 조롱하는 한 컷짜리 만평을 발표했다. 수레바퀴는 악당이 지을 법한 미소와 함께 이런 말풍선을 드리운다.

“내가 바라는 것은···어느 누구도 긍지를 가지지 않는 것,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 믿지 않고 어느 무엇에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 사랑과 따스함이 아니라 원칙과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것, 가족을 내버리고 세상을 고민하는 것, 더디 기뻐하고 분노를 참고 돌처럼 무감각한 것, 더 적은 것을 누리고 거기에 만족하는 것, 너희를 이 땅에서 치워버리는 것.”

그런데 나열된 요건들은 악의적인 왜곡이기 이전에 건조한 사실이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치관만을 보여주는 듯하다. 스스로의 의견에 확신을 가지지 않고 항상 회의하는 것은 나쁜 일인가? 공정한 원리에 입각해 행동하는 것은 나쁜가? 얼굴 모르는 사람들을, 불행의 숫자를 눈앞의 가족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은 나쁜가? 감정적으로 초탈하는 것은 나쁜가? 물질적으로 검소한 것은 나쁜가? 인간이 모두 천국으로 떠나는 것은 나쁜가?

나쁘다라는 서술은 특정한 가치 체계 속에서만 정확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는 정의의 체계와 개인적인 만족감의 체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분명히 내가 만족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정의의 문제라면 반대할 이유가 부족해 보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것과 옳은 것을 곧잘 혼동한다.(173-174p)

 

 

 

ㅡ 단요,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中,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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