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

 

이제 이 책까지 포함하면 저자의 책 3권을 읽었다. 이 책을 끝으로 당분간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쓰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같은 나라, 같은 시대를 같은 나이와 같은 성별로 살더라도 사람마다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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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시 정해진 법적 성별이 남성이었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지하는 MTF(male-to female) 트랜스젠더들의 옷차림을 탈코르셋 운동의 맥락에서 반동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인정받지 못해 고통받았던 숱한 시간들 속에서 온전한 자신이 되고자 외모를 꾸미는 길을 찾은 이들을 두고서, 가부장제가 강요한 여성의 옷을 입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폭력이다. 시스젠더 여성과 MTF 트랜스젠더는 같은 시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전선에 서 있기 때문이다.(31-32p)

 

 

또 하나는 모든 인간은 특정한 맥락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의 피해자였던 한국인이, 한국에서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여성 결혼 이민자나 이주 노동자에게 인종차별의 가해자일 수 있습니다. 남성이 권력을 가진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성과의 관계에서 약자인 여성들이, 시스젠더만을 정상적인 몸으로 취급하는 성별 이분법의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와의 관계에서 기득권일 수 있습니다.(47p)

 

 

하지만 실제 그 사회가 평등한지는 다른 문제이다. '원칙-실행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흑인이 자신이 원하는 지역에서 집을 살 수 있었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으면 95%가 넘는 사람이 "그렇다"라고 답하지만 집주인이 상대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집을 팔지 않는 것을 금지하는 법에 찬성하는지 물으면 65%만이 "그렇다"라고 답한다. 주거뿐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인종차별 금지 원칙에 찬성하는 것과,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것 사이에는 대부분 30%가량의 차이가 존재한다.(68-70p)

 

 

사람들은 보통 차별을 두고 특정한 경험이나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설문지를 이용한 연구로 차별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이 따로 떨어진 사건들이 아니라 연속적인 상태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소수자들은 차별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행위와 무관하게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하고 그 긴장은 삶을 지배한다. 나는 이러한 관점이 기존에 진행된 일반적인 차별 경험과 건강에 대한 연구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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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경계심 측정'설문지로 실제 차별 경험이 아니라 차별을 경험할 것 같다는 우려만으로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가령 집을 떠나기 전에 미리 오늘 어떤 일을 당할지 걱정하고 무시나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등의 스트레스가 삶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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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적인 환경은 삶의 모든 시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72-73p)

 

 

김승섭: 제도적 차별은 법률로 막을 수 있고, 일대일 관계에서 누군가를 차별하는 행동은 혐오 발언 규제 등으로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차별적 행동으로 드러나는 무의식적인 편견과 고정관념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윌리엄스: 내가 타인을 차별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한 번도 누군가를 차별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차별적인 행동을 하기에 최적화된 사람일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편견은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풀 때 더 쉽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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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가진 대상을 계속해서 직접 만나 관계를 맺는 것 역시 내재적 편견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76-77p)

 

 

연구자가 고통받는 이들의 삶과 건강에 대한 연구를 하더라도, 모든 고통이 동등하게 주목받지는 않는다. 2015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던 당시, 나는 해고 노동자의 아내가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못했다.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었던 '와락'에서 아내분들을 만나 인사하면서도 그분들을 고통의 '당사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111p)

 

 

피부색은 피부에 존재하는 멜라닌색소의 양에 따라 결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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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부색을 결정하는 멜라닌색소는 선크림처럼 자외선 흡수를 방해합니다. 멜라닌색소가 풍부한 흑인의 경우, 백인과 같은 양의 비타민D를 합성하려면 자외선에 5배가량 더 노출되어야 합니다. 햇빛 노출량이 많은 적도 부근 지역에 피부색이 진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멜라닌색소가 많아도 비타민D를 합성하는 데 필요한 햇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고, 멜라닌색소가 많아야 피부암에 덜 걸릴 수 있으니까요. 이는 반대로 위도가 높은 러시아나 북유럽 지역에 상대적으로 백인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햇빛에 적게 노출되는 지역에서는 피부색이 연한 이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높았고, 수만 년 동안 그런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치며 결국 연한 피부색을 지닌 이들이 다수가 된 것입니다. 즉, 피부색은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한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니라 일조량에 따른 진화의 결과물입니다.(130-131p)

 

 

야간 교대 노동이 발암 요인이라는 근거는 학술적으로도 확고해지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2007년 생체리듬을 파괴하는 "교대제 근무"를 납과 같은 등급인 유력한 발암물질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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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국제암연구소에서 주최한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 27명은 2007년의 분류 결정 이후 출판된 논문을 재검토한 후,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습니다. 이들은 교대제 근무를 여전히 유력한 발암물질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다며, 그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발암 물질의 이름을 "야간 교대제 근무"로 바꿉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어 그 위험을 감지하지 못할 뿐, 야간 교대제 근무는 유력한 발암물질입니다.(134p)

 

 

2017년 미국질병관리본부의 AIDS팀에서 공식적으로 'U=U'를 발표했다. '검출되지 않으면, 전염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HIV 감염인이 치료 약을 꾸준히 복용해서 체내 바이러스 농도가 일정 수준 미만으로 내려갈 경우, 콘돔 없이 성관계를 하는 경우에도 비감염인 파트너가 감염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174-175p)

 

 

그런 측면에서 저는 감염인을 'HIV 보균자'라고 부르는 일이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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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 감염인을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뿐, 자신의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어로 HIV 감염인을 PL, 즉 'HIV 감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187-188p)

 

 

우리는 타인의 성적 지향이나 인종을 포함한 여러 정보를 이유로 그 사람에 대해 쉽사리 판단하곤 합니다. 스스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가 상대방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고정관념은 편리한 만큼, 그릇된 것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215p)

 

 

피해자는 항상 고통받고 있어야 하고 항상 슬퍼야 하고 절대로 행복해선 안 되고···이런 것들이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죽어도 장례식장에서 유족은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농담도 하지요. 일상을 살아가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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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고 확신에 찬 생존자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거 같아요.(254p)

 

 

이제 질문을 해야 할 시점이다. 인종주의와 비장애중심주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소외된 흑인 맹인의 삶에 가슴 아파하고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헬렌 켈러와, 중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를 의사의 판단에 따라 안락사시키는 일을 두고 "뛰어난 인간애"라고 말했던 헬렌 켈러는 다른 인물인가? 후자를 헬렌 켈러가 젊은 날 저지른 실수로 치부하거나, 혹은 짐짓 무시하며 헬렌 켈러의 삶에서 지우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앞서 말했듯, 그것은 헬렌 켈러의 삶을 구미에 맞게 변형시켜 박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질문해 볼 수는 없을까? 1915년은 어떤 시대였기에 헬렌 켈러조차도 하이젤든 박사의 행동을 옹호하는 글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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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당시는 우생학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둘째, 당시 농과 맹을 지니고 있던 헬렌 켈러는 '신생아 볼린저'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헬렌 켈러는 신체적 손상이 사회적 관계와 맥락 속에서 장애가 된다고 보는 현대 장애학의 관점, 몸의 차이를 긍정하고 장애를 정체성과 자부심으로 여기는 장애 인권 운동의 감수성을 접할 수 없는 시대를 살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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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시간을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냈던 헬렌 켈러의 삶에는 많은 사람이 경이롭게 생각하는 성과만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한계와 모순이 함께 새겨져 있다. 그 모든 점을 함께 바라 본다고 해서 헬렌 켈러라는 놀라운 인간이 폄하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는 '장애를 극복한'박제된 영웅보다, 오류와 모순을 품고 당대를 살아낸 한 인간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길 원한다.(279-285p)

 

 

 

ㅡ 김승섭,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中,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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