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4

 

흥미진진.

 

 

 

내겐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우리의 유년기는 폭력으로 가득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매일매일 별의별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특별하게 기구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고 타인들도 우리 인생을 힘겹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다.(40p)

 

 

선생님께 책을 돌려주면서 릴라는 이제 「작은 아씨들」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과 그 책을 아직 읽지 못한 나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84p)

 

 

아다와 카르멜라와 나는 솔라라 형제와의 일이 일어난 후부터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우리에게 던지는 저속한 말을 못들은 척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릴라는 달랐다. 그녀와 함께하는 일요일 산책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면 시선을 맞받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뭐라고 하면 정말 자신에게 말을 거는 건지 의심스럽다는 듯이 멈춰 서서 가끔 호기심 어린 태도로 대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우리에게 던지는 저속한 농담을 오히려 릴라에게는 하지 않았다.(188p)

 

 

우리뿐만이 아니다. 릴라의 아버지도 마치 예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양 행동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도, 나의 어머니도, 나의 아버지도, 리노마저도 별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스테파노의 식료품점은 이전에 파스콸레의 아버지인 알프레도 아저씨의 목공소였다. 돈 아킬레의 재산과 솔라라 집안의 재산은 모두 과거에 축적된 것이다. 릴라는 자기 부모님과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런 이야기도 하려 하지 않았다. 파시즘에 대해서도 왕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권력남용이나 폭정, 착취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그들은 분명 돈 아킬레를 증오하고 솔라라 집안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모른 척하고 돈 아킬레 자식의 가게나 솔라라네 가게에서 자신들이 번 돈을 쓰고 때로는 우리를 그곳으로 심부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고는 솔라라네 가족이 원하는 것처럼 파시스트나 왕정복고주의자들에게 투표를 한다. 그들은 이전에 일어난 일들은 모두 과거일 뿐이니 조용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그냥 덮어두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직도 과거의 일에 영향을 받고 있었고 우리까지 그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밀을 되풀이하고 있었다.(210-211p)

 

 

그는 그해 여름 바라노의 넬라 아주머니네 집에서 나를 다시 만나지 못해 괴로웠다고 했다. 오직 내 생각만 했고 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했다. 우리의 사랑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많은 시를 썼고 내게 그 시를 읽어주고 싶다고 했다. 나를 다시 만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며 거부하면 죽어버리겠다고 했다.(379p)

 

이런 새끼들이 아가리만 털고 절대로 자살하지 않지. 제발 좀 죽어라.

 

 

하지만 이제 그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신경이 곤두섰다. 그도 결국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아버지만큼이나 공허한 사람인가. 다른 이들이 자신을 원하고 사랑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건가. 자신의 재능 말고 다른 이의 재능은 견디지 못할 정도로 오만한 사람이란 말인가.(403p)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2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러면 끝이지.”

“아니, 절대로 멈추지 마. 필요한 돈은 내가 줄게. 넌 항상 공부해야 해.”

나는 조그맣게 웃어 보인 후 릴라에게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학교 공부를 마칠 수밖에 없어.”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부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416p)

 

 

그들과의 이질감 때문에 생긴 불행한 소외감을 처음으로 명확하게 느낀 것은 오라치오 가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가던 바로 그 길에서였다.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자랐고, 이들의 행동은 내게도 자연스러웠다. 그들의 거친 언어는 내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6년 동안 매일같이 이들이 전혀 모르는 길을 걸어왔다. 학생들 중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모든 과정을 훌륭히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땐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조금도 사용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자제해야 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학교에서의 내 모습을 잠시 접어두어야 했다. 기껏해야 나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해서 내 주장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을 때만 그런 모습을 잠깐 내비칠 뿐이었다.(426p)

 

 

ㅡ 엘레나 페란테, <나의 눈부신 친구> 中,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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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4

 

즐거운 연말 리스트의 시간이다. 올해가 10년대의 마지막 해이다보니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best 말고도 2010년대의 best도 같이 뽑아놓은 경우가 많았다. 그 중 반복되는 책이 몇 권 있었는데 그 중 하나라 집어 들었다. 책 제목이 끌리기도 했고.

각 챕터마다의 화자가 다르다. 한 이야기에서 지나가듯 등장하거나 큰 비중이 없던 사람이 다른 챕터에서는 중심 화자로 나오는 식으로 이야기가 확장되며 이어진다. 마치 이야기로 이어달리기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끝까지 보면 모든 등장인물이 유기적으로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과정을 되게 매끄럽게 잘 썼다. 이 책과 같이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책을 처음 보는 게 아니라서 대단히 신기하거나 엄청 새롭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파워포인트 같은 경우는 재밌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형식도 형식인데 내용 자체가 흡입력이 있다 보니 독자의 입장에서 화자가 수시로 바뀌고, 등장인물이 많은 경우에 흔히 느낄 수 있는 산만함이나 복잡함을 주지 않고 이야기의 긴장을 잘 유지하며 끌고 가는 점이 훌륭했다.

 

다음 책은 아마도 아직도, 여전히 안 읽은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

 

 

 

 

그가 말한다, 이 세상엔 병신새끼들이 널리고 널렸어. 리아. 그 사람들 말은 듣지 마라ㅡ내 말 들어.

그리고 나는 루야말로 그 숱한 병신새끼들 중 하나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그의 말을 새겨듣는다.(94p)

 

 

질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내가 루에게서 벗어나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들에게 맞섰다면, 스코티가 앨리스를 받아들였듯이 베니도 나를 받아들였을까? 단 한 번의 계기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을까?(95p)

 

 

그러나 이런 결과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일 뿐, 대부분은 다시 만나도 삼십오 년 전에 사파리 여행을 같이 갔다고 해서 피차 통하는 게 많지는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고, 헤어져 제 갈 길을 가면서 정확히 자신이 뭘 바랐던 것인지 알 수 없어질 것이다.(114p)

 

 

구조적 불만 : 훨씬 짜릿하고 호화로운 삶을 경험하고 돌아와, 한때는 즐거웠던 일상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음을 발견하는 것.(128p)

 

 

“나 인터뷰도 하고, 티브이 출연도 하고 싶어. 뭐든 말만 해,” 보스코가 말을 이었다. “그딴 걸로 내 인생을 꽉꽉 채워줘. 지지리 궁상떠는 짓거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는 거야. 이런 게 현실 아니겠어? 이십 년 지나면 반반했던 얼굴도 맛이 가. 뱃살의 반을 잘라낸 사람은 더하지. 시간은 깡패잖아? 그게 제대로 표현한 거 아냐?”(194p)

 

 

바닥에 앉아 오후시간이 흘러가는 걸 느끼던 테드는 어느새 수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짝 다른 수전이 아니라 수년 전 어느 날의 그녀ㅡ그의 아내ㅡ를. 테드가 그의 욕망을 접고 접어 조그맣게 만들기 전이었다. 뉴욕에 놀러 갔을 때 둘 다 한 번도 타본 적도 없고 해서 재미 삼아 스테이튼 아일랜드 유람선을 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수전이 불쑥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늘 오늘처럼만 살자.” 그 시절만 해도 두 사람이 한마음이었던지라 테드는 왜 아내가 그런 말을 하는지 더없이 잘 알았다. 그날 아침 섹스를 해서도, 점심식사 때 푸이 퓌세를 마셔서도 아니었다. 아내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337p)

 

 

“쉼표가 나오면 노래가 끝날 거라고 생각하게 돼. 그랬다가 사실은 노래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알면 마음이 놓이지. 그렇다 한들 노래는 곧 진짜로 끝나버려. 모든 노래엔 절대적인 끝이 있어. 바로 그거야.

시간.끝.이.라.는.게.정.말.존.재.한.다.는.것.”(388p)

 

 

ㅡ 제니퍼 이건, <깡패단의 방문>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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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0

 

경찰이 필요악이기 때문이야. 누구든 불현 듯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알지. 직업 범죄자들조차 그래. 제아무리 도둑이라도 자기집 지하실에서 뭔가 달각대는 소리가 들려서 밤중에 잠을 깨면 어떻게 할 것 같나? 당연히 경찰을 부르지. 하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이 자기 일을 방해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히면 어떤 방식으로든 두려움이나 경멸을 표현하기 마련이야.

(...)

물론 문제의 핵심은 따로 있어. 경찰 직업 자체는 최고로 지적이며 정신적, 육체적,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수행해야 하는 일이건만, 이 직종에는 그런 자질을 보유한 사람을 끌어들일 매력 요소가 전혀 없다는 점이야.(199p)

 

 

ㅡ 마이 셰발, 페르 발뢰, <웃는 경관> 中, 엘릭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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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30

 

처음 30p 정도 까지가 고비. 지금까지 여자들이 글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여자들에게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저자가 방문하는 장소와 관련시켜 조금은 장황하게 늘어놓는데, 그러다보니 초반에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번에 문장이 묘사하는 풍경과 생각의 흐름이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조금만 참고 저자의 생각을 따라 흘러가는 그 문체에 점점 익숙해지고, 묵독만으로 읽는 게 아니라 입으로 문장을 되뇌며 읽다보니 크게 난해한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의미로 문체가 독창적인 이유는 아마도 저자가 살았던 당대 남성들이 사용하는 문체가 아니라 여성, 특히 자신만의 문체를 고안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일 거라고 본다.

 

 

 

어느 성에게나 삶은 힘들고 어려운 영속적인 투쟁입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용기와 힘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같이 환상을 지닌 피조물에겐 그것은 아마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필요로 할 겁니다. 자신감이 없다면 우리는 요람에 누운 아기와 마찬가지이지요. 이 측정할 수 없이 가벼운, 그러나 무한한 가치가 있는 자질을 어떻게 해야 가장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함으로써 가능하겠지요. 자기 자신에게 다른 사람보다 천성적으로 우월한 점이 있다고 느낌으로써 가능할 겁니다. 그러므로 통치해야 하고 정복해야 할 가장에게 있어서 다수의 사람들, 사실 인류의 절반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은 막대한 중요성을 가질 겁니다. 그것이 실상 그의 권력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겠지요.

(...)

여성은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 노릇을 해왔습니다. 그 마력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마 지금도 늪과 정글뿐일지도 모르지요.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폴레옹과 무솔리니는 여성의 열등함을 아주 힘주어 강조합니다. 만일 여성이 열등하지 않다면 거울은 남성을 확대시키기를 그만둘 테니까요. 그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무척 빈번히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일면 도움이 됩니다. 남성이 여성의 비판을 받고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설명해 주지요. 여성이 남성들에게 이 책은 좋지 않다거나 이 그림은 형편없다거나 그 밖의 어떤 비평을 할 때마다, 똑같이 비평하는 남성들에 의해 야기되는 것보다 더 큰 분노를 일으키고 더 큰 고통을 준다는 사실도 설명해 줍니다. 만일 여성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다면, 거울 속의 형체는 오그라들 것이고 삶에 대한 적응력도 감소될 것입니다. 아침 식사와 저녁 식사에서 최소한 실제 크기의 두 배인 자기 모습을 볼 수 없다면 그가 어떻게 계속해서 판결을 내리고 원주민을 교화하며 법률을 제정하고 책을 집필하며 정장을 차려입고 연회에서 장광설을 늘어놓을 수 있겠습니까?(55-57p)

 

 

여성이 남성들이 쓴 픽션에서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녀를 최고로 중요한 인물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매우 다양하며, 영웅적이거나 비열하고, 빛나거나 천박하며, 무한히 아름답거나 극단적으로 가증스럽고, 남성만큼 위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 생각엔 남성보다 더욱 위대한 인물이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픽션에 나타난 여성입니다. 실제로는 트리벨리언 교수가 지적하듯이 방에 갇혀 구타당하고 내동댕이쳐졌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주 기묘하고 복합적인 존재가 생겨납니다. 상상에 있어서 여성은 더없이 중요한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전적으로 하찮은 존재입니다. 시에서는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여성의 존재가 고루 퍼져 있지만, 역사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픽션에서 그녀는 왕과 정복자들의 삶을 지배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손가락에 강제로 반지를 끼워준 어느 부모의 아들에 딸린 노예였습니다. 문학에서는 영감이 풍부한 말들, 심오한 생각들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녀는 거의 읽을 줄 모르고 철자법도 모르며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67-68p)

 

 

우선 조용한 방이나 방음장치가 된 방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그녀의 부모가 보기 드문 부자이거나 대단한 귀족이 아니라면 19세기 초까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아버지의 아량에 달려 있던 용돈은 옷을 사 입는 데나 족할 정도였으므로 그녀는 키츠나 테니슨, 칼라일처럼 가난한 남성들에게도 허용되었던 도보 여행이나 짧은 프랑스 여행, 누추한 곳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가족의 압제와 권리 주장으로부터 보호해 줄 독립된 숙소 등 그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었습니다. 그런 물질적 곤경도 만만치 않았지만 비물질적 시련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키츠와 플로베르와 그 밖의 천재적인 남성들이 몹시 견디기 힘들어했던 세상의 무관심이 그녀에게는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적대감이었습니다. 세상은 남자들에게 말하듯이 “네가 원한다면 써라. 내게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글을 쓴다고? 네가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라고 말하지요.(81-82p)

 

 

그러나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은 남성과 맺는 관계를 통해서만 제시됩니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까지 픽션의 모든 위대한 여성들이 다른 성의 눈으로 보였을 뿐 아니라 다른 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보였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남성과의 관계는 여성의 삶에서 아주 자그마한 부분밖에 차지하지 못하는데 말이지요.

(...)

아마도 이런 이유로 픽션의 여성들은 특이한 성격으로 나타나겠지요. 놀랄 만큼 극단적으로아름답거나 극단적으로 혐오스러운 존재이고, 천사 같은 선함과 악마 같은 사악함 사이에서 동요합니다. 한 남성이 자신의 사랑이 상승하는가 침체하는가에 따라서, 또는 순조로운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서 여성을 보기 때문이지요.(126-127p)

 

 

예를 들어 남성이 문학에서 오로지 여성의 애인으로만 묘사되고, 다른 남성의 친구 또는 군인, 사상가, 공상가로 제시되는 일이 전혀 없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그들이 차지할 수 있는 역할이 얼마나 적고, 문학은 얼마나 극심한 손상을 입었을까요! 아마 오셀로 같은 인물이 대부분이고 안토니 같은 인물도 상당수 있었겠지만 시저나 브루투스, 햄릿, 리어, 자크는 없었을 것이며, 문학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해졌을 겁니다. 여성에게 닫힌 문 때문에 실제로 문학이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해진 것처럼 말이지요.(128p)

 

 

남성은 응접실이나 아이 방의 문을 열고 여성이 아이들 가운데 있거나 무릎 위에 수놓을 천을 올려놓고 앉아 있는 것을ㅡ어느 경우이건, 삶의 다른 질서와 다른 체계의 중심으로서 그녀를ㅡ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와 법정이나 하원 같은 그 자신의 세계의 대조로 인해서 이내 그의 심신은 상쾌해지고 활력을 찾게 될 것입니다. 아주 간단한 대화에서도 자연스러운 견해의 차이가 드러날 것이며 따라서 그의 고갈된 생각들은 다시 풍부해지겠지요. 그녀가 그와는 다른 매개체를 통하여 창조하는 광경을 봄으로써 그의 창조력은 되살아나고, 그의 메마른 마음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무엇인가를 다시 도모하게 될 것이며, 그녀를 방문하려고 모자를 썼을 때 자기에게 결여되어 있던 어구나 정경을 발견할 것입니다. 존슨 같은 이에게는 트레일 같은 여성이 있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집착하는 것입니다.(132-133p)

 

 

나는 그 책을 펼쳤습니다. 남성의 글을 다시 읽는 것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여성의 길을 읽은 후에 그것을 읽자 아주 직선적이고 대단히 솔직하게 느껴졌지요. 그 글은 마음의 자유와 일신의 자유분방함, 스스로에 대한 커다란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

그러나 한두 장을 읽고 나자 어떤 그림자가 책장을 가로질러 드리워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곧고 검은 막대기로 'I'자 모양의 그림자였지요.

(...)이 'I'가 더할 나위 없이 존경할 만한 'I'이고, 정직하고 논리적이며, 견과처럼 단단하고, 몇 세기 동안의 훌륭한 교육과 질 좋은 영양 공급으로 다듬어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 'I'를 존경하고 경탄합니다. 그러나 가장 곤혹스러운 점은 그 'I'라는 글자의 그림자 속에서 모든 것의 형체가 안개처럼 사라졌다는 것입니다.(150-151p)

 

 

“지난 백 년 동안의 위대한 시인들은 누구인가? 콜리지, 워즈워스, 바이런, 셸리, 랜더, 키츠, 테니슨, 브라우닝, 아널드, 모리스, 로제티, 스윈번ㅡ여기서 멈춰도 될 것이다. 이들 중에서 키츠와 브라우닝, 로제티를 제외하곤 모두 대학 출신이며, 이들 세 명 중 한창 젊은 나이에 목숨을 빼앗긴 키츠만이 유복하지 않은 유일한 시인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야만적이며 서글픈 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로서, 시적 재능이 내키는 대로 바람처럼 불어 가서 빈자에게나 부자에게 똑같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거의 진실성이 없다. 엄연한 사실로서, 이 열두 명 중에서 아홉 명이 대학 출신이었고, 이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건 영국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엄연한 사실로서, 나머지 세 명 중에서 브라우닝은 알다시피 유복했다. 만약 그가 유복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사울」이나 「반지와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스킨도 아버지의 사업이 번창하지 못했더라면 「현대 화가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로제티는 적지만 개인 수입이 있었으며, 게다가 그는 그림을 그렸다. 그중에 키츠만 남게 되는데 운명의 여신은 그가 젊을 때 그를 살해했다. 정신병원에서 죽은 존 클레어나 낙심한 마음을 잠재우려고 상용한 아편으로 살해된 제임스 톰슨처럼 말이다. 이런 것들이 끔찍한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을 직시하기로 하자. 영국의 어떤 결함으로 인해서 요즈음뿐 아니라 과거 이백 년 동안에도 가난한 시인들은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다는 것ㅡ한 국민으로서 우리에게 대단히 불명예스러운 일이긴 하지만ㅡ은 명백한 사실이다. 진심으로 말하건대 우리는 입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지만, 실제로 영국의 가난한 집 아이들은 위대한 작품을 산출하는 지적 자유로 해방될 희망이 아테네 노예의 아들만큼이나 없는 것이다.”(162p)

 

 

ㅡ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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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9

 

 

 

“그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뭐?”

“그게, 그러니까 엄마 말은, 그 사람하고 결혼해도 되지만 안 해도 상관없다는 거지.” 엄마는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저녁으로 샌드위치든 수프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툭 던졌다.

“엄마 지금 그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이야?” 내가 물었다.

“아니, 그 사람은 좋아.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다만 곰곰 생각하다보니까, 결혼식을 취소하는 것도 강행하는 것만큼이나 별 거 아니라는 걸 너한테 얘기해주고 싶었어.”(33-34p)

 

 

“어허이.” 그가 말했다. “몇 달 동안 나한테 꼬리쳤잖아. 아니라고 하지 마.”

“소가 웃을 소리!”

“여자가 나한테 꼬리칠 때를 난 놓치지 않아. 난 그쪽으론 보통 틀리는 법이 없어.”(49p)

 

 

누가 ‘짐작한 그런 일이 아니다’라고 할 때는 거의 틀림없이 짐작한 바로 그 일이다.(64-65p)

 

 

“아니지, 엄마는 머리가 잘 돌아가니까 절대 ‘뚱뚱’하다는 말은 안 해ㅡ내 체중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뿐이지. 바른 먹거리를 먹었는지, 물은 마셨는지 확인하고. 원피스 몇 벌이 좀 조이는 것 같다고 지나가듯 말하고.”

(...)

“엄마가 맨날 자기 몸매에 신경쓴다고 해서, 어마가 디저트는 절대 세 입 이상 안 먹는다고 해서, 엄마가 미친 사람처럼 운동한다고 해서, 내가 엄마랑 똑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67-68p)

 

 

“딴건 다 못해도 자식 하나만은 똑소리나게 키운 줄 알았는데.”(81p)

 

 

“너는 아비바를 너무 친구처럼 대했어. 부모 노릇은 못하고.”(95p)

 

 

그 남자는 집단 괴롭힘에 반대한답시고 미사여구(포괄성, 안전 환경, 불관용)를 늘어놓지만, 내 단언하는데 실제로 그는 모든 게 다 루비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끔 루비가 좀 조심만 하면 모두가 편할 텐데요.(136p)

 

 

“그거 알아요? 남자의 구십 퍼센트가ㅡ사람의 구십 퍼센트인가? 기억이 안 난다ㅡ마주 걸어올 때 길을 비키지 않는대요.”(142p)

 

 

사람들은 종종 결혼식까지 가는 몇 달의 여정 동안 최악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끔 그 최악의 모습이 본모습인 경우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바로 그런 경우라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이르기 전까진 알기 어렵다.

(...)

“물어볼 수도 있고, 말해줄지도 모르지. 그래도 그건 남의 사정이야. 네가 알 권리가 있는 과거는 오로지 너 자신의 과거뿐이야.”(148-149p)

 

 

“하지만 내가 웨스에 관해 틀렸다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겠죠.” 프래니가 말했다.

“안 그래요.” 내가 말했다. “만약 당신이 실수한 거라고 해도 돌에 맞아죽지 않아요. 당신 가슴에 주홍글씨로 ‘이혼녀’라고 새길 리도 없고요. 당신은 21세기에 살고 있어요. 변호사를 불러서 당신이 왔던 그대로 싸들고ㅡ아니면 뱉어내고ㅡ나오면 되고, 원래 쓰던 성으로 되돌리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로 시작해도 돼요.”(158p)

 

 

“과거는 과거일 뿐이지.”

과거는 절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바보들만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162p)

 

“오늘 파티에 올 수 있어?” 엠베스가 물었다.

“네, 당연히 가야죠, 레빈 부인. 빠질 순 없죠! 제가 직접 드레스를 만들었어요. 상의는 빨간 코르셋이고 하의는 검정 후프 스커트예요, 그리고 앙증맞은 검정 레이스 반장갑을 낄 거고요, 머리는 하나로 묶어 틀어올리고 조그만 베일을 쓸 거예요. 굉장히 드라마틱하겠죠.”

“그런 것 같네. 내 장례식 때도 그렇게 입고 오면 되겠다.”(234p)

 

 

운전사는 백미러로 그녀를 힐긋 쳐다봤다. “그래서 아는 얼굴 같다고 한 건 아니고. 이혼한 아내의 언니하고 닮았네. 성질은 개같았지만 침대에선 끝내줬지.(280p)

 

 

당신은 절대 그와 싸우지 않는데, 왜냐면 당신도 알다시피ㅡ당신의 마음 한구석은 알고 있다ㅡ만약 당신이 뭐라도 하나 큰소리를 내면 그는 당신과의 관계를 끝낼 것이다. 당신은 힘이 없고, 모든 힘과 권한은 그에게 있다. 그래서 때때로 당신은 절망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에게 키스했다. 그건 당신의 권한이었다, 안 그런가?(327p)

 

 

다들 매트리스에 매달린 여자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미워하면서), 아무도 폭풍우에는 관심이 없어 보여 참 희한하다고, 당신은 생각한다.(350p)

 

 

어릴 때 좋아하던 <끝없는 게임> 시리즈를 읽는다. 당신은 더 이상 그 책의 타깃 연령층이 아니지만, 그해 여름 당신은 그 게임북에 완전히 빠져든다. 게임북을 보면 당신은 각 장면의 말미에서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고, 그 선택에 해당하는 페이지로 넘어간다. 이 얼마나 인생과 흡사한가.

다만 <끝없는 게임>에서는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결말을 알고 싶다면 뒤로 다시 돌아가서 다른 것을 선택하면 된다. 당신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삶은 가차없이 앞으로만 흘러간다. 다음 쪽으로 넘어가든가 그만 읽든가 둘 중 하나다. 읽기를 그만두면, 이야기는 끝난다.(359p)

 

 

 

ㅡ 개브리얼 제빈, <비바, 제인> 中, 루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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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6

 

 

아이들의 즐길 거리가 크게 많지 않았던 19세기 후반에는 아이들을 매혹시킨 이야기였겠지만, 흥미 거리가 넘쳐나는 21세기에 다른 걸 제쳐두고 우선 순위에 넣을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읽은 책이 아니라서 어린이가 읽은 감상은 또 어떨지 궁금하지만, 보물섬이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등을 알고자 문학을 공부하는 성인 독자가 아니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매일이 비슷하게 지겹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지라 모험과 보물이라는 낭만적인 말을 들으니 설레는 감정이 들기는 해서 어렸을 적 즐겼던 각종 모험을 다룬 만화와 영화 등이 떠오르긴 했다. 우연에 많이 기대는 책.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요. 럼주 한 잔 마신다고 죽지는 않소. 하지만 당신은 한 잔을 마시면, 또 한 잔 그리고 또 한 잔을 마시게 되오.(38p)

 

 

“그 모두가 바로 이런 조급함, 조금함, 조급함 때문이야. 내 말 알아들어? 그래도 내가 바다에서 한두 가지는 본 사람이야. 내가 말이야. 너희들이 지금 정해진 방향대로 전진하기만 하면, 그리고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한 포인트 돌리기만 하면, 너희들은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어. 너희들이 말이야. 하지만 너희들은 안 돼! 나는 너희들을 알아. 너희들은 내일이면 입안 가득 럼주를 들이부을 거고, 그래서 결국은 목이 매달릴 거야.”(147p)

 

 

 

ㅡ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보물섬> 中,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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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31

 

공쿠르 상을 받았다고 해서 읽어봤는데 인상적이진 않다.

 

 

 

사람들은 역사를 무겁게 짓눌러서 우리 고통의 책임을 역사의 주역들에게 지우려고 한다. 우리는 결코 옷 주름에 낀 때, 누렇게 바랜 식탁보, 수표책에 붙은 쪽지, 커피가 남긴 얼룩을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사건의 그럴듯한 측면만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128p)

 

 

ㅡ 에리크 뷔야르, <그날의 비밀>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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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9

 

 

“도대체 누가 당신 머릿속에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집어넣었죠? 당신은 작가로서의 경력, 머릿속의 생각, 성공, 이런 것에 얽매여 있어요. 당신 조건의 노예인 거지. 글을 쓴다는 건 종속된다는 거요. 당신 책을 읽은 사람들 혹은 읽지 않는 사람들한테 말이오. 자유라니, 어떻게 그런 멍청한 소리를! 이 세상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요. 당신 자유의 일부는 내 손안에 있고, 마찬가지로 내 자유의 일부는 회사 주주들의 손에 있으니까. 인생이란 그런 거요, 골드먼. 이 세상에 자유로운 사람 같은 건 있지도 않아요. 정말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모두들 행복할 테죠. 혹시 당신 아는 사람 중에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있나요?

(...)

적어도 미국 땅에선 불가능한 일이지. 선량한 미국인들은 모두 시스템에 매여 있고, 이누이트들은 정부 보조금과 알코올에 매여 있어요. 인디언들은 자유로울지 모르지만, 보호구역이라고 불리는 인간 동물원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관광객들을 앉혀놓고 그 안에서 끝없이 가련한 기우제 춤을 춰야 한단 말입니다. 자유로운 사람 같은 건 없어요, 젊은 양반.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매여 있고, 우리 스스로에게 매여 있어요.“(48-50p)

 

 

경찰이 없으면 불안하지만, 경찰이 너무 많으면 겁이 나는 법이다.(206p)

 

 

 

ㅡ 조엘 디케르, <HQ 2권>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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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5

 

호주 여행 중 읽은 책. 여행지에서 심각한 책 싸들고 가봐야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는 만고의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술술 잘 넘어간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깨우쳤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보다 못한 사람들 틈에 있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모든 것은 겉으로 어떻게 보이느냐에 달려 있었다.(70p)

 

 

“내 형사 경험을 믿게. 사람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그건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야. 특히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그렇지.”(86p)

 

 

 

ㅡ 조엘 디케르, <HQ 1권>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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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27

 

 

그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의 문제는 일단 이것저것 해보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해결되기 마련이었다.(24p)

 

 

에이제이가 책을 사랑하고 서점을 하고 있긴 하지만, 딱히 작가들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후줄근하고 나르시시스트이며 배려나 양식도 없고 대체로 불쾌한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책을 쓴 작가의 경우 괜히 책에 대한 좋은 감정까지 망칠까봐 되도록 직접 만나는 것을 피했다. 다행히도 그는 대니얼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첫번째 책도 별로였다. 그렇다면 사람은? 흐음, 같이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즐겁다. 말인즉슨, 대니얼 패리시는 에이제이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중 하나란 소리다.(53p)

 

 

그러나 또한 생각건대, 근자의 내 반응은, 인생의 시기마다 그에 딱 맞는 이야기를 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해주는구나. 명심해라, 마야. 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동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57p)

 

 

“아까 기분 나쁘게 했다면 미안해요.” 에이제이는 바지를 도로 입으며 말했다. “자서전 말예요.”

로지는 손을 내저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을 어쩌겠어요.”

에이제이는 그녀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 잘났고, 연애에는 쑥맥이다. 딸을 키우고, 서점을 운영하고, 책이나 읽으며 살겠지. 그만하면 차고 넘친다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137p)

 

 

어째서 이 책은 저 책과 다른 걸까? 책이 저마다 다른 건, 에이제이는 결론을 내린다. 그냥 다르기 때문이야. 우리는 많은 책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는 믿어야 한다. 때로 실망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이따금 환호할 수도 있다.(287p)

 

 

 

ㅡ 개브리얼 제빈, <섬에 있는 서점> 中, 루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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