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22

 

 

“최후의 상륙지가 지옥의 도시일 수밖에 없다면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지. 바로 그곳에서 강물이 나선형으로 점점 더 좁게 소용돌이치며 우리를 빨아들이고 말테니.”

그러자 폴로가 대답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201-202p)

 

 

ㅡ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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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8

 

 

절대로, 말도 안 돼요! 이걸 직업으로 하라고요? 빅토르처럼 예술학자나 문학자가 되라고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빠. 아빠는 절 존중하지 않는군요. 말재주가 좀 있고, 그림을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예술과 함께하라고요? 오, 아녜요. 괜찮아요. 예술에 온전히 몰두한다는 건 뭔가 자신만의 것을 만들 때만 가능한 거라고요. 이해력이라는 건 나쁘지 않은 머리에 불과해요. 예술에 대한 이해라는 게 직업이 될 수 있나요? 게다가 예술학자라는 말을 들을 때면 웃음이 나온다고요.(15p)

 

 

처음에 난 그렇게 집이 밀집해 있는데 왜 그녀가 커튼을 달지 않았는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이쪽 벽에서 저쪽 벽까지 슬픈 철골 침대와 유모차가 자세히 보이는데 말이야. 얼마 후에야 난 알게 되었어. 그녀는 그럴 여력이 없었던 거야. 매일 밤마다 배고픈 아이의 울음소리에 깨어 베개에서 무거운 머리를 겨우 떼내고, 온몸이 솜 같다가도 동시에 납 같고, 이건 몇 달 동안 매일,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일 잠 반복되는 거야. 그렇다면 창문을 통해 이웃들이 무엇을 보든 말든 신경 쓸 여력이 없어지고, 본다 하더라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되어버리는 거지.(25p)

 

 

맞아요, 당신은 떠나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남지도 않았죠. 그게 가장 무서웠어요. 당신은 지난 오 년간 매일 절 처형했다고요. 전 당신이 떠나기만을 매일같이 기다렸어요. 처음엔 기대하는 구석도 있었죠. 당신이 그렇게도 아이를 사랑하니 언젠간 이해해서 저를, 그의 엄마를 용서해줄 것 같았거든요. 이해와 용서요.

매일 밤 전 마비된 심장을 안고 긴장한 채 누워 복도에 울려 퍼지는 당신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요. 그리고 마침내 당신이 방으로 들어오면 전 당신에게 몸을 던지고, 당신의 무릎을 붙잡고 당신이 절 용서할 때까지 울부짖고, 또 울부짖으며, 기어 다니려고 기다렸다고요. 그러면 우리 사이는 다시 좋아질 테니까요.

아뇨! 당신의 발자국 소리는 변함없이 문 옆을 지나쳤고, 낮에 당신은 방으로 들어오기 전 노크를 했어요. 당신은 정중하게 노크했다고요. 오, 사랑하는 여보. 당신은 예의 바른 사람이에요. 오 년간 우리 아파트는 하숙집이었어요. 그래도 전 여전히 기다렸어요. 그리고 빅토르를 끊임없이 밀어냈죠. 전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사 년 동안에는 혐오스러운 그를 밀어냈어요. 그리고 결국 포기했죠.(75p)

 

 

이 정류장에는 8번 트롤리 버스와 11번 트롤리 버스만이 섰다. 그녀는 11번 트롤리 버스를 기다렸고, 매번 그렇듯이 그녀가 11번 트롤리 버스를 기다릴 땐 8번 트롤리 버스만이 한두 대씩 왔고, 11번 트롤리 버스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8번 트롤리 버스는 백 대나 다니고, 11번 트롤리 버스는 단 두 대만 운행되지만, 그마저도 운전수가 모두 술에 취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196p)

 

 

누군가 아주 멋진 말을 했죠. ‘인생이란 복잡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모두를 지켜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말이에요. ‘인생이란 복잡한 것이다.’ 이 말이면 충분해요! 세상의 모든 실수나 잘못에 대한 완벽한 변명. 전 비난할 수 있는 재판관도, 용서할 수 있는 예수님도 아니에요, 아빠. 저는요 아빠, 그저 무관심한 사람에 불과해요···.(209p)

 

 

꽤 오랜 시간 동안 선생님의 남편은 내게 사고의 대상이었다. 포도를 선물한다는 사실 그 자체와 포도를 선물할 때 따라오는 그의 얼굴 표정 사이의 간극이 놀라웠다. 나는 그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생각했다. 뭔지 모를 힘으로 이끌기 위해 나에게 포도를 선물하는 악당인지, 아니면 바보 같은 바지와 셔츠를 입고 악한 힘이 아닌 다른 힘에 의해 침묵하며 포도를 건네는 면도하지 않은 시무룩한 얼굴을 한 선량한 사람인지···.(226p)

 

 

중요한 건 이 사건 이후 몇 년 내내, 어른이 된 후에도 내 악행에 대한 무서운 비밀을 안고 다녔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어디서 누군가가 강도를 당해 귀중품 삼천 루블어치를 잃었다는 이야기를 내 앞에서 할 때면 나는 속으로 움찔하며 ‘나도 그랬는 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단 일 분이라도 남의 집에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내 안에서 비밀스러운 백작의 병이 깨어날까 봐 두려웠다.(238p)

 

 

예기치 못한 나의 콘서트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의 마음에 큰 반전을 일으켰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예술이 갑자기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단 한 방울로 인간을 유혹해 곱사등으로 만들어 끌고 가려는 악의 바위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동년배 빡빡머리 중 한 명이 복역을 마치고 위대한 힘으로 자신의 운명의 관성에 맞서 싸워 보통의 삶의 궤도로 탈출한다면, 나는 오래 전 그 예술의 한 방울이, 순진했던 나의 그 콘서트가 구제불능이었던 인간의 귀중한 노력에 힘을 보탰다는 생각에 흐뭇할 것이다.(351p)

 

 

ㅡ 디나 루비나, <토요일에 눈이 내리면> 中, 이야기가있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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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4

 

 

 

 

리베로 파르리가 무신론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것은 그저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한두 시간을 내서 조금 알아볼 기회가 있었다면 그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되었을 터였다. 아무튼 그는 신부들을 좋아하지 않았다.(37p)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리기 위해서든 아들이 계속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한 치의 의심도 배어 있지 않은 그 엄격한 태도에서 그는 아버지가 되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갈 줄 아는 것, 어른의 큰 걸음으로 무정하게 걸어가되 아들이 이해하고 작은 걸음으로도 따라올 수 있도록 분명하고 규칙적인 걸음으로 걷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아이의 앞에서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되 아이가 길을 잃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하고 함께 걷는 것이 땅에 쓰여 있는 것처럼 의심할 바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40p)

 

 

어쨌거나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좋다고 생각했어요. 이유는 말하지 않겠어요. 설령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싶다고 해도, 나 자신에게조차 말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야 우리 모두의 마음이 더 편할 테니까요.(67p)

 

 

어느 날 리베로 파르리는 종이 한 장을 가져다가 아들에게 굽이들을 그려주었다. 먼저 산을 그리고, 산꼭대기에 이르는 길을 나타냈다. 그는 산길이 얼마나 구불구불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굽이들을 일일이 강조해서 그렸다. 울티모는 실망하기는커녕 그 그림에 매혹되었다. 울티모는 탁 트인 지평에 변화를 주는 것이라고는 피아세베네 둔덕밖에 없는 평원에서 자랐다. 이런 아이에게는 차가운 뱀처럼 구불거리며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도로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곡선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그 곡선에 손가락을 대고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갔다.

“산 너머도 이와 비슷해. 다만 그쪽은 내리막길이지.”(69-70p)

 

 

이야기야말로 아들과 이렇게 가까이 있는 시간을 길게 늘이는 방법이었다. 그는 울티모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어머니가 호두를 깰 때 아주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며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기상천외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또 어머니가 강물에 빠진 아버지를 건져 올렸던 일이며 아버지랑 다시는 자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연도 이야기해주었다. 이어서 그는 길에 관한 추억을 떠올렸다.

(...)

어찌 보면 우리가 하는 일이란 그저 남들이 다 끝내지 못하고 남겨둔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마무리할 일을 시작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91-93p)

 

 

다른 곳에서는 죽음이 하나의 사건이라면 전선에서는 죽음이 하나의 질병, 그것도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살아 나가더라도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을 거야. 아마 영원히 그럴걸, 하고 그는 말했다.(143p)

 

 

이 유형에서 그들이 알고 있는 기하학은 오로지 적을 앞쪽에 두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유일한 도식에 너무 많은 시간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바쳤다. 급기야 그 도식은 존재의 한 형식이 되고 지각의 확고부동한 틀이 되고 말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선험적으로 주어진 그 기하학의 틀 안에서 벌어졌다.

(...)

그래서 적이 뒤쪽에서 공격 해온다는 가정은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의 목록에서 빠지게 되었다. 완전한 고립이라는 비현실적인 맥락에서 실제로 적의 후방 공격이 벌어졌을 때, 그들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아마도 그것을 전투 상황으로 해석하기보다 전투 자체가 마법적으로 중단되거나 모든 것이 갑자기 붕괴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158-159p)

 

 

도로 하나를 건설하려고 해요. 어디에다 낼지는 모르지만 길을 하나 낼 거예요. 아무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길입니다. 시작하는 곳에서 끝나는 길이죠. 아무것도 없는 땅, 막사나 울타리 따위도 없는 땅의 한복판에 닦을 거예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이 아니라 일종의 경주로입니다. 그 길은 세상 어디로도 통하지 않아요. 자기 자신에게로 통하는 길이니까요. 그 길은 세상 밖에 있게 될 것이고 일체의 불완전함에서 멀리 벗어나게 될 거예요. 그것은 지상의 모든 길을 하나로 아우른 길이며 언젠가 길을 떠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다르기를 꿈꾸는 곳이 될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그 길을 설계할 거예요. 그리고 이거 아세요? 저는 그 작업을 아주 오랫동안 하면서 제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굽이 한 굽이를 차례차례 담을 겁니다. 제 눈으로 본 건, 제 눈이 잊지 않은 것을 모두 거기에 담으려고 해요. 그 어느 것도 빠뜨리지 않을 거예요. 서산에 지는 해의 곡선이나 어떤 미소의 주름까지 말입니다. 제 인생을 수놓은 그 어떤 일도 제가 헛되어 겪은 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특별한 땅이 되고 영원한 그림이 되고 고스란한 자취가 될 테니까요.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한 가지 더 있어요. 그 길이 완성되면, 저는 혼자 자동차를 타고 그 길을 달릴 생각입니다. 처음엔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빠르게 달릴 거예요. 두 팔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 돌 겁니다. 그러고 나면 제가 하나의 완전한 고리를 주파했다는 확신이 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저는 제가 출발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멈출 거예요. 그런 다음 자동차에서 내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겁니다.(230-231p)

 

 

내가 보기에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우리를 배신하는 사람들은 많아. 그들 모두에게 계속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봐. 그건 영리한 일이 아냐. 울티모, 그들을 용서하는 게 현명해.

그건 용서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냐. 나는 카비리아를 용서했어. 하지만 나에게 그는 이제 존재하지 않아. 누구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중요한 거야. 죄인은 없어. 존재하기를 멈추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지. 누군가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야. 그건 정당해.(282-283p)

 

 

우리의 삶은 은둔자들의 삶만큼이나 단조로웠다. 우리는 기이한 망명 생활을 하듯 젊은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으랴. 그저 우리가 가지지 않은 것을 상상할 수밖에.(301p)

 

 

나는 이제 사람들의 고상함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불완전함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그 놀라운 기술을 높이 평가할 줄 안다. 이제 나는 관대하다. 타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러니까 나는 과도하거나 어리석은 짓을 하면서 늙어갈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304p)

 

 

아무튼 과거의 숱한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의 일은 다 끝난 이야기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늙어가면서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과거를 또렷하게 인식하는 현상과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예전에는 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무대 뒤쪽의 실루엣이었던 것들이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와 마치 뒤늦게 시작되는 공연처럼 환한 빛을 받으며 그 형체를 온전히 드러낸다. 그러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마치 뜻밖의 손님을 맞이하듯, 마치·····(304-305p)

 

 

우리 인간에게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는 것 같아. 우리의 현재 상태를 불완전함이나 실수로 돌려버리고 갑자기 성장하는 능력, 부끄러움은 남겠지만 다른 건 문제될 게 없다는 듯 지금까지의 우리 자신에게서 훌쩍 벗어나는 능력 말이야. 인생의 그런 이행기에는 뭔가 장엄한 것이 있어. 자기가 쓸 수 있는 에너지를 한데 모아 어마어마하게 용을 쓰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거든. 그들이 젊은 시절에 보여주었던 기괴한 면모는 경이로운 형태와 비율로 훌륭하게 재구성 돼. 그 형태와 비율을 규정하는 것은 책임감과 경험의 깊이와 성숙한 육체의 느긋한 움직임이야.

(...)

사실 그런 시기를 보낸 뒤에도 대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해동이 멀어지고 겨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339-341p)

 

 

어머니는 괜찮다고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어, 어머니는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므로 예를 들어 내가 신발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도 문제 될 게 없다고 했어, 어머니는 우리가 현실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해내지 못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므로 설령 내가 신발을 신지 못하고 그냥 바라보고만 있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어, 어머니는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겪는 바이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그저 신발을 신는 것이라고 해도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라고 했어. 그러면 나는 신발을 신을 수 있었어.(355-356p)

 

 

그러면서 다른 분야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 서킷 쪽에서도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이 직관적으로 떠올린 아이디어가 아무리 기발하고 천재적이라 해도, 세상 전체를 놓고 보면 언제나 똑같은 발상을 한 사람이 쌔고 쌨다는 사실이었다. 개중에는 비슷한 발상에서 출발하여 훨씬 놀라운 변종을 개발해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었다.(425p)

 

 

그러고는 연인들은 누구나 사랑은 자기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어떤 사랑도 유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애썼다.(438p)

 

 

 

ㅡ 알레산드로 바리코, <이런 이야기> 中,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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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3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9p)

 

 

 

ㅡ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中, 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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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1

 

 

 

제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저 스스로 일신의 안녕을 챙겨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과 그의 처의 마음에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들이 저를 불쌍히 여기고 아껴주었기 때문입니다. 고아들이 살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스스로를 챙겨서가 아니라 완전히 남인 여인의 마음에 사랑이 있고,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챙겨서가 아니라 사람들 마음에 사랑이 있기에 살아갑니다.

(...)

하느님은 사람들이 개인으로 살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 주시지 않는 겁니다.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를 원하시기에 하느님은 그들 모두에게 공동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 주시는 겁니다.(252p)

 

 

까사쯔끼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1840년대 인물 유형에 속했다. 즉 자기 자신에게는 부도덕한 이성 관계를 의식적으로 허용하고 마음속으로도 비난하지 않는 반면 아내에게는 이상적이고 천사 같은 순결을 요구하며, 자신이 속한 사회 계층의 모든 여자가 그러한 최고의 순결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고 그들을 그렇게 대했다. 그런 시각에 남자들이 스스로에게 방탕함을 허용하고 조장하는 그릇되고 유해한 요소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자와의 관계를 보자면 그런 시각(여자를 짝을 찾는 암컷이라고 보는 요즘 젊은이들의 시각과는 확연히 다른)은 유익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한 신격화를 접하면 처녀들은 여신이 되려고 어느 정도 노력하는 법이다.(329p)

 

사람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대하자. 신격화도 뭐도 좀 하지 말고.

 

 

기분이 괜찮을 때는 그런 생각이 괴롭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때 회상을 하면 그는 그 유혹이 뿌리쳤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러나 문득 삶이 어둡게 느껴질 때면 자신이 믿게 된 원칙에 대한 확신을 잃고 기억에 사로잡혀, 말하기도 끔찍하지만, 삶의 방향을 튼 것을 후회하는 것이었다.(335p)

 

 

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고독에서 떼어 놓을 때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제 그는 고독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는 찾아오는 사람들에 치이고 그들 때문에 지쳤지만 영혼 깊은 곳에서는 그들이 찾아오는 걸 기뻐하고 자신을 에워싼 찬사를 즐기고 있었다.(361p)

 

 

난 대령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소. <분명히 내가 모르는 뭔가를 대령은 알고 있는 거야. 그가 아는 걸 나도 안다면 내가 본 걸 납득할 수 있겠지. 그리고 그 광경 때문에 더 이상 괴로워할 일도 없을 테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령이 알고 있는 게 무엇인지 난 이해가 되지 않았소.

(...)

자, 여러분은 내가 그때 본 게 추악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하오? 전혀 그렇지 않소. <그 일을 그처럼 확신에 차서 실행했다면, 그리고 모두가 불가피한 일이라고 인정했다면, 그들은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한 바였고, 난 그걸 알아내려고 노력했다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때나 그 이후에도 알아낼 수가 없었소. 그리고 그렇게 이해가 안 되니 군대에서 복무할 수가 없었소. 그 전까지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말이오. 그리고 군대만이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하지 못했고, 그러니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오.(406p)

 

 

 

ㅡ 례프 니꼴라예비치 똘스또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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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7

 

 

좀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발췌본일 줄은 몰랐다. 전체의 약 20%를 발췌한 거라고 하니까 읽었다고 하기도 좀 그러네.

 

 

 

 

우선 할머니에 대한 얘기를 끝내도록 하자. 그다음 날 할머니는 완전히 몽땅 다 날리고 말았다. 그건 그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거다. 한번 이 길로 들어서면 눈 덮인 산에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것과 똑같이 가속도가 붙어 점점 더 빨리 그 길로 굴러떨어지게 된다.(132p)

 

 

맹세컨대 나는 폴리나가 측은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어제 내가 도박판에 손을 대던 그 순간, 돈다발을 긁어모으던 그 순간부터 어쩐 일인지 나의 사랑은 부차적인 일처럼 뒤로 밀려났다. 지금은 이런 얘기를 다 하고 있지만, 그때는 나도 이 모든 사정을 명백하게 알지는 못했다. 내가 정말 노름꾼일까?(162-163p)

 

 

은화로 60휠던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고는 제로를 더 선호했다. 한 번에 5휠던씩 제로에 걸기 시작했다. 세 번째부터 갑자기 제로가 나오기 시작했다. 175휠던을 받아 쥐고는 좋아 죽는 줄 알았다. 10만 휠던을 땄을 때에도 이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다. 즉시 100휠던을 빨강에 걸어 땄다. 200을 몽땅 빨강에 걸어 또 땄다. 400을 몽땅 검정에 걸어서 땄다. 800을 망크에 걸어 또 땄다. 처음 돈과 함께 계산을 해보니 1700휠던이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 바로 그 순간이 되면 과거의 모든 실패를 깡그리 잊게 되는 것이다!(178-179p)

 

 

사실 인간이란 자기보다 잘난 친구가 자기 앞에서 비하되는 것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바로 이런 모욕감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우정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것은 현명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오래된 진리입니다.(182p)

 

 

러시아인들은 아름다움을 꽤 예민하게 구별할 수 있고, 또 미를 갈망합니다. 하지만 영혼의 아름다움과 개성의 독창성을 구별하려면 우리 러시아 여인들은 훨씬 더 많은 독립심과 자유를 가져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러시아의 어린 처녀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러니 폴리나 양도ㅡ죄송합니다만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으니까요ㅡ그 파렴치한 드 그리외 놈보다 당신을 더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아직도 아주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당신을 높이 평가하고, 당신의 친구가 되고, 당신에게 자기 마음을 다 열겠지만, 여전히 증오스런 파렴치한에게 추악하고 치사한 고리대금업자 드 그리외가 그녀의 가슴을 지배할 겁니다.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라도 아마 그는 그녀의 가슴속에 계속 그렇게 남아 있을 겁니다. 바로 이 드 그리외라는 작자가 언젠가 고상한 후작, 환멸을 느끼는 자유주의자, 영락한(마치 그렇기다라도 한듯) 사람의 후광을 띠고 그녀에게 나타나, 그녀의 가족과 경박한 장군을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모든 간계가 드러났지만 그런 것은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지금 중요한 건 예전의 드 그리외를 내놓으라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그녀가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드 그리외에 대한 그녀의 미움이 커져 가면 갈수록, 이전의 드 그리외, 비록 그것이 그녀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하더라도, 이전의 드 그리외에 대한 그녀의 그리움은 더욱 더 커져 가는 것입니다.(187-188p)

 

 

 

ㅡ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도박사> 中, 지식을 만드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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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4

 

평범한데? 오르부아르를 기대한다.

 

 

 

어떤 애들은 레미를 멀리서만 알고 있었지만, 그는 벌써 모든 어른들의 아들처럼 되어 버린 것처럼 모든 아이들의 동생이 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86p)

 

 

동이 텄을 때, 그는 자신이 에밀리와의 그 일을 통해 스스로를 심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은 교도소에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가 미리부터 혐오해 마지않던 삶을, 그가 끔찍이 여기는 모든 것들로 이루어진 삶을 보내는 것이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 곁에서, 그가 증오하는 환경 속에서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그의 형벌이었다. 그의 삶 전체를 내놓는 대가로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죗값을 치르는 것이었다.

아침에 앙투안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285p)

 

 

 

ㅡ 피에르 르메트르, <사흘 그리고 한 인생>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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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0

 

치사하고 찌질한 우리네 이야기. 중국 소설은 아직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루쉰도 그렇고 위화도 그렇고 어느 정도 비슷한 중국의 정서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든가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항상 같이 있는 것이다.(20p)

 

 

두 사람 모두 대학을 졸업했고, 둘 다 성취욕도 강했다. 서로 열심히 노력하면서 밤에는 등불을 밝혀 공부했고, 웅대한 이상도 갖고 있었다. 관공서의 처장이나 국장, 또는 사회의 크고 작은 기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얼굴을 한 군중의 새까만 대열 속에 빠져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당신도 두부를 사고 출퇴근을 하고, 밥 먹고 잠자며, 빨래를 하고 가정부까지 다루고, 아이를 돌보다 보면, 저녁이 되어도 책 한 장 뒤적이고 싶지 않게 되고, 웅장한 꿈이나 이상이라는 것은 개방귀 같은 소리고 철없던 때의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모두들 이렇게 섞여서 한 평생 사는 것이 아닌가? 큰 뜻이 있으면 어쩔 거고, 설사 꿈이 있다면 또 어쩌겠다는 것인가? 그 많던 장군과 재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모두 황폐한 무덤의 풀숲 아래에 있을 뿐이다. 한 세대만 지나면, 누가 누굴 알겠는가?

(...)

도리어 참을 수 없는 것은 ‘두부 상하는 것’ 같은 일상의 작은 일들이다.(21-22p)

 

 

그는 예전에는 축구를 무척 좋아했다. 축구를 보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심장이 뛰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의 이름도 모두 꿰고 있었다. 그때는 축구를 보는 것이 인생의 제일 큰 목적인 것 같았다.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인데, 인생에 4년이 몇 번이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나중에 직장을 갖고 결혼하자, 점점 축구를 보지 않게 됐다. 축구를 본다고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남이 아무리 공을 잘 차도, 자기 자신의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의 문제는 집, 아이, 연탄, 가정부, 그리고 고향에서 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소란스런 세상에 대해,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85p)

 

 

그가 정부 기관에서 5~6년을 보냈는데, 관공서의 수법을 모를 리 없었다. 일은 처리하기 쉽다고 말하면 쉽다. 내일 그가 팽에게 말 한마디만 하면, 그녀가 루즈 칠할 시간이면 그 문건을 그녀의 손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 처리하기 어렵다고 말하면 어렵다. 만약 낯선 사람이 공식적으로 팽을 찾아가거나, 팽이 기공을 하고 있는데 그녀를 귀찮게 하거나, 혹은 다른 일로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이 문건은 처리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이 문건의 온갖 문제점을 다 찾아내고, 국가의 각종 규정과 심사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상대가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그 문건 자체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88-89p)

 

 

왕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장을 괜찮은 친구로 생각했는데, 막상 결정적인 때가 되자 다르게 행동했다. 모두 당신더러 지모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했지만, 정작 당신은 친구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전에 무엇 때문에 그와 함께 원 국장을 반대했느냐? 적이라는 원 국장은 오히려 병문안을 왔는데, 당신의 옛 친구는 왜 그림자도 보이지 않느냐? 아내에게 이런 말까지 듣자, 왕은 침대를 치면서 연신 한탄했다.

바로 그때, 부국장 방이 과일 바구니와 통조림 그리고 분유를 들고 온 것이다. 왕은 좀 놀랐다. 방 역시 자기와 적대 관계가 아니었던가? 도대체가 결정적인 때가 되자 친구는 오지 않고, 적들이 온단 말인가? 세상의 이치야말로 참으로 복잡한 것이다. 혁명의 대열은 정말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대립하는 양쪽 진영조차 도무지 분명하지 않으니 말이다. 적군 속에 아군이 있고, 아군 속에 적군이 있는 것이다.(122-123p)

 

 

그 가운데서 가장 웃기는 사람은 류였다. 류는 이미 예순넷이라 은퇴를 4년이나 넘긴 상태이므로, 이번에 누가 권력을 잡든 반드시 퇴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감은 여전히 퇴임하기 싫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그는 여론조사를 한다는 소식을 남들보다 하루 먼저 알았다. 그래서 사방으로 직원들을 찾아가 활동을 했다. 그는 내일 여론조사를 하니 이번에 모두 자기 이름을 적기 바라며, 국장으로 적어도 되고 부국장으로 적어도 된다고 암시했다. 그는 표를 얻기 위해 얼굴에 웃음을 띠며, 기관에 막 들어온 스무 살 먹은 대학생에게도 ‘형님’ ‘아우’ 소리를 해서, 사람들을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했다.(179-180p)

 

 

자넨 아직도 그걸 모른단 말인가? 내가 보기엔 그 대머리가 합당하게 처리한 걸세. 지난달까지 자네가 누구였나? 국가 기관의 상무 부국장이었다구! 그때만 해도 자네는 대머리에게 쓸모가 있었지. 그래서 자네를 필요로 한 거지.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자네는 이제 국장도 아니고 발령이나 기다리는, 한마디로 사회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구! 대머리에겐 자네가 필요 없어진 거지. 그가 왜 자네를 보살펴야 하는가? 자네가 그 대머리에게 다시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꾹 참고 있다가 다른 국의 국장이 되어야 하네. 그러면 자네에 대한 대머리의 태도도 분명히 다시 변할 것이네.(194p)

 

 

ㅡ 류진운, <닭털 같은 나날> 中,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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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14

 

 

권력을 주물렀던 이들이 권력은 빼앗기고 목숨을 부지했어···. 그런 삶은 도대체 어떨까?(154p)

 

 

내가 보기엔 도덕주의자야말로 가장 쓸모없고 경멸스러운 존재들이야. 쓸모없는 이유는 지식을 얻기보다 판단을 내리는 데 에너지를 쏟기 때문이지. 단순히 판단은 쉽고 지식은 어렵기 때문에 말일세. 경멸스러운 까닭은 그들의 판단은 자신의 이미지를 투영하고 무지와 오만의 힘으로 세상에 강요하려 하기 때문이라네.(171-172p)

 

 

섹스투스 폼페이우스가 패한 후 평화가 가능할 줄 알았네. 그렇게 압도적 승리가, 오히려 우리 정부의 안정은 물론 시민들의 영혼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 치명적인 패배라면 흔들리지 않고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네. 여전히 미래의 가능성과 희망이 남아 있으니까. 그런데 그 희망이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진 걸세.(172p)

 

 

두 아들 가이우스와 루키우스가 죽었다. 가이우스는 아르메니아에서 부상을 당하고, 루키우스는 병이란다. 어떤 병인지는 모르지만 스페인으로 가는 도중, 마르세유 도시였다는데 편지를 읽는 도중 갑자기 만사가 심드렁해졌다. 아무래도 그만큼 충격적이었다는 얘기겠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막상 슬프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서 마치 타인처럼 내 삶을 들여다보며 슬픔과 멀어진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보았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이제 완전히 슬픔이 끝난 것이다. 자아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무슨 대수겠는가. 다만 사랑했던 사람들마저 개의치 않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런데 이제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알량한 호기심마저 그저 담담하고 무의미 할뿐이다.

(...)나는 율리아, 옥타비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딸이다. 나는 루키우스 마르쿠스와 가이우스 사비누스가 집정관에 등극한 해 9월 3일, 로마 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스크리보니아이며, 외삼촌은 섹스투스 폼페이우스, 다시 말해서 내가 세 살배기일 때 로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아버지가 살해한 약탈자 해적이다.

이런 식의 시작이라면 아테노도루스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200-201p)

 

 

시인들 말이 맞는다면, 젊음은 피가 뜨겁게 들끓는 나날이다. 사랑하는 시간이자 열정의 순간이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지혜로 냉수 목욕을 하면 젊음의 열병이 치유된다 했던가? 다 개소리다. 인생이 종국에 달해 더 이상 사랑을 잡을 수 없을 때까지 난 사랑이 뭔지 알지 못했다. 젊음은 무지하고 열정은 모호할 뿐이다.(228p)

 

 

티베리우스를 좋아해본 적은 없다. 한 번도. 이유는 몰랐지만. 나중에 깨달은 사실은, 그가 남의 눈 속에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243p)

 

 

공상은 기대를 먹고 자라고 기대는 다시 공상의 양분이 되었다.(291p)

 

 

나도 냉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죽음이 전혀 슬프지 않았다. 관습이기에 슬픈 표정을 하기는 했으나 느낌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 마르쿠스 아그리파는 좋은 사람이었다. 싫어해본 적은 없고··· 어쩌면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298p)

 

 

결국 그 글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 듯하구먼. 모두 거짓말투성이야. 내 말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으리라 믿겠네. 자넨 무슨 뜻인지 알 게야. 어느 책이나 솔직하고 사실 관계가 잘못된 곳도 거의 없지만 그래도 거짓말이야. 저 멀리 평온한 다마스쿠스에서 최근 몇 년간 연구를 하고 마무리를 지었을 테니 자네도 내 말을 이해하겠지?

그 책들은 읽고 내 글을 적다 보니, 문득 이름은 내가 맞는데 나도 모르는 남자 얘기를 하는 것 같더군. 이상한 얘기겠지만 지금은 그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 힐끔 일견이라도 하려 하면 안개 속으로 들어가 아무리 눈을 부라려도 흐릿하기만 하니 하는 말일세. 행여 그가 나를 본다면 지금의 이 모습은 알아볼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희화화된 모습을 알아볼까? 아니, 알아보지 못할 걸세.(354-355p)

 

 

다행히, 젊음은 자신의 무지를 보지 못한다네. 도저히 감내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지. 무지에 눈을 감고 그래서 후일 자신의 삶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되는 것도 필경 피와 살에 닮긴 본능 덕분이겠지?(358p)

 

 

거의 육십 년 전 일이네만 그날 오후 연병장에서 율리우스의 피살 소식을 들었을 때가 선명하게 기억나는군. 마에케나스도 함께 있었지. 아그리파와 살비디에누스도. 어머니의 하인이 편지를 가져왔을 때 난 그 소식을 읽고 아픈 사람처럼 엉엉 울고 말았다네.

하지만 니콜라우스 그 순간, 사실 아무 감정도 없었어. 고통스러운 울음도 마치 타인한테서 흘러나오는 것 같더군. 그러다가 순간 마음이 차가워지는 거야. 그래서 친구들한테서 떨어져 나왔다네. 내가 느끼고 느끼지 못한 것들을 들키고 싶지 않았네. 그렇게 혼자서 연병장을 어슬렁거리며 어떻게든 슬픔과 상실감을 끌어올리려는데, 갑자기 그 반대로 힘이 샘솟는 게 아닌가. 그래, 야생마를 타고 질주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어. 말은 힘이 넘쳐 주인을 시험하려 들지만 기수는 이미 이 미천한 짐승을 어떻게 다룰지 알고 있던 걸세. 그래, 친구들한테 돌아갔을 때 난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네. 과거의 내가 아니었어. 드디어 운명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물론,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내 친구였다네.(358-359p)

 

 

육십 년 전 그날 오후 아폴로니아에서 나를 사로잡은 건 운명이었네. 난 운명을 피하지 않기로 다짐했지.

하지만 세상을 바꿀 운명이라면 먼저 자신부터 변해야겠지. 그 사실을 이해한 것도 지식보다 거의 본능에 가까웠네. 운명에 복종한다? 그럼 무엇보다 자신과 타인, 심지어 내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세상에 무관심할 수 있어야 하네. 자신의 내면에서 단호하고 은밀한 본성을 찾거나,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해. 물론 지금의 욕망은 물론, 개조하는 동안 발견하게 될 본성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야 할 걸세.

그들은 내 친구였네. 더욱이 그들을 포기해야 하는 그 순간에조차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었지. 인간이란 얼마나 모순된 동물인지. 가장 아끼는 대상을 거부하거나 단념해야 하다니! 군인은 직업으로 전쟁을 선택하면서 평화를 갈망하고, 태평성대에는 검이 부딪는 소리와 전장의 혼란과 피비린내를 그리워한다네. 노예 또한 타고난 굴레가 싫어 돈을 주고 자유를 사들여놓고 결국 전주인보다 더 가혹하고 악랄한 주인한테 묶이지. 심지어 애인을 차버린 다음 그 애인을 이상화해놓고 꿈속에서조차 그리워한다지 않던가.

물론 나 자신도 이런 모순에서 자유롭지 않다네. 어렸을 때라면 고독과 비밀이 운명적이라고 말했을 걸세, 글쎄, 터무니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때 내 삶을 선택했네. 막연하나마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운명을 꿈꾸며 그 꿈속에 살기로 결심하고, 대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가능성을 버린 거야. 너무도 당연해서 거론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아무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식의 인간관계 말일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고민하지 않네. 그보다 그 결과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지. 나 역시 결정의 결과를 가슴속에 품고 사네만, 그 상실감의 무게가 이렇게 클지는 예상하지 못했어.(360-361p)

 

 

경기장에서 막사로 돌아온 뒤 검투사의 모습을 본 적이 있네. 땀과 먼지와 피를 뒤집어썼건만 오히려 사소한 일에 여자처럼 흐느껴 울더군. 그러니까 기르던 매가 죽거나 애인의 절교편지를 받거나, 아끼는 외투를 잃어버렸을 때처럼 말일세. 귀부인들의 모습도 가관이긴 마찬가지였지. 불운한 검투사를 죽이라고 소리칠 때는 얼굴까지 흉측하게 일그러뜨리면서, 집에 돌아가서는 더없이 정숙한 척 아이들을 돌보고 하인들에게도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더군.(371p)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의미가 없어질수록 세월을 버텨낸 힘에 대해서까지 점점 회의가 든다네. 인간이야 운명을 향해 발버둥친다지만 신들은 분명 그런 미천한 존재들한테 관심조차 없다네. 신탁도 모호하기 짝이 없기에 결국 그 예언도 직접 뜻을 헤아려야 하지. 사제 노릇을 할 때도 난 짐승 수백 두를 잡아 내장과 간을 실험했고, 그 결과 설령 신들이 실존한다 해도 인간사에 개의치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네. 그래서 내가 사람들한테 로마의 고대 신을 따르라 부추겼다면 그건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필요 때문이었다네. 그런 힘 따위는 오히려 개개인에게 넘쳐나네···. 그래, 친애하는 니콜라우스, 어쩌면 결국 자네 말이 맞겠어. 신이란 단 하나밖에 없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네는 그 신 이름을 잘못 지었네. 신의 이름은 우연이고 사제는 분명 사람일 거야. 당연히 사제의 유일한 제물 또한 자기 자신이겠지. 자신의 분열된 자아.(382-383p)

 

 

내 생각은 이렇다네. 누구나 살다보면,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있을 걸세. 이해 못 할 수도 있고 형설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다네. 아무리 초라하다 해도 본질을 넘어선 그 누구도 되지 못해.(384p)

 

 

 

ㅡ 존 윌리엄스, <아우구스투스> 中, 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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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

 

번역, 번역, 번역. 진정 내 문해 능력의 부족함 탓인가, 아니면 번역의 문제인가. 생각에 관한 생각도 구판으로 보고 있는데 이럴 때는 참 원문으로 볼 수 있는 영어 능력이 부럽다.

 

 

설령 아무 사고 없는 여행이라 해도, 자기 노선의 어딘가를 비행하는 조종사는 단순한 풍경 속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대지와 하늘의 빛깔, 바다 위로 남겨지는 바람의 흔적, 석양 무렵의 황금빛 구름, 조종사는 그것들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자기 농지를 한 바퀴 돌며 수많은 징후로 봄이 오거나 냉해가 발생하거나 비가 올 것을 예측하는 농부와도 같이, 직업 조종사 역시 눈의 징후, 안개의 징후, 행복한 밤의 징후들을 해독해낸다. 처음에는 기계가 인간을 자연의 커다란 문제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더욱 더 혹독하게 그 문제들에 종속시키고 만다.(34-35p)

 

 

오랜 친구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한 그토록 많은 추억들, 함께 겪은 수많은 고된 시간들, 그토록 잦았던 다툼과 화해, 마음의 움직임, 그런 보물만큼 값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우정은 다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떡갈나무를 심어놓고 곧바로 그 그늘 아래 몸을 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헛된 일이다.

삶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 우리는 풍요로웠고 여러 해 동안 나무를 심었지만, 시간이 그 작업을 해체하고 나무를 베어내는 그런 시기가 온다. 동료들은 하나씩 우리에게서 자신의 그늘을 걷어낸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에는 늙어간다는 말 못할 회한이 서린다.(40-41p)

 

 

이별, 부재, 거리, 회귀의 관념들은 비록 그 단어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더라도 더 이상 동일한 현실을 담고 있지 않다.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의 삶이 우리의 본성과 더 잘 부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그 삶이 우리의 언어와 더 잘 부합되기 때문이다.

매번 발전할 때마다 우리는 습득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습성들로부터 조금 더 멀리 밀려났고, 그리하여 우리는 아직 자신들의 조국을 세우지 못한 진정한 이민자들이다.(58p)

 

 

멀리 떨어져 있음을 가늠하게 해주는 것은 거리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집의 정원 담벼락 하나가 중국 만리장성의 벽보다 더 많은 비밀을 담고 있을 수 있으며, 사하라의 오아시스들이 모래 두께로 보호되는 것보다 어린 소녀의 영혼이 침묵에 의해 더 잘 보호되기도 한다.(77-78p)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수도원에 들어가 담을 쌓고서 우리가 모르는 규칙에 따라 생활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 티베트의 오지의 고독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며 그 어떤 비행기도 우리를 내려주지 못할 먼 곳에 있는 것이다.(88p)

 

 

그는 유대인 노점 앞을 어슬렁거렸고, 바다를 보았으며 이제 자신은 자유로우므로 어느 방향이든 마음대로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유가 그에게는 씁쓸해 보였다. 왜냐하면 그 자유는 무엇보다도 얼마만큼이나 그가 세상과의 연관성이 없는가를 깨닫게 했기 때문이었다.(121p)

 

 

우리가 강렬한 배고픔을 느끼듯이, 그는 사람들 틈에서의 한 사람이 될 필요를 느꼈고 사람들과 엮인 사람이 될 필요를 느꼈다. 아가디르의 무희들은 바르크 영감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는 왔던 것처럼 수월하게 그녀들과 작별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랍 카페의 종업원, 길거리의 행인들, 그들 모두 자유인으로서의 그를 존중했고, 그와 함께 평등하게 자신들의 햇빛을 나누었지만, 그 누구도 그가 필요하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유로웠지만, 무한히 자유로워 더 이상 대지 위에서 무게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에게는 걸을 때 거치적거리는 인간관계의 무게, 눈물, 작별, 비난, 기쁨, 사람이 어떤 몸짓을 할 대마다 아껴주거나 고통을 주게 되는 그 모든 것, 그를 다른 사람들과 묶어 무겁게 만드는 수많은 관계들이 없었다.(123p)

 

 

 

ㅡ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中,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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