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17

 

 

향기에 반하는 것은 향기를 피워올린 그 순간뿐이고, 술맛에 감동하는 것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찰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충동에도 그와 같은 순간이 존재한다고 믿네. 별다른 감정 없이 그 단계를 지나 상대에게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친밀함은 느껴지지만 이성을 향한 촉각은 점점 마비되는 것 아니겠나.(190~191p)

 

자네, 아직도 기억하는가? 내가 언젠가 자네에게 이 세상엔 나쁜 사람이라고 정해진 인간은 없다고 한 말을. 대부분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한순간에 나쁜 사람이 돼버리니 방심하면 안 된다고 한 말을 말이네. 그땐 자넨 내가 흥분하고 있다고 지적했지. 그리고 어떤 경우에 선량한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변하냐고도 물었지. 내가 한마디로 ‘돈’이라고 대답하자 자넨 영 석연찮다는 표정을 지었잖나. 나는 그때의 자네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네. 지금에서야 털어놓네만, 그 말을 하면서 난 작은아버지와의 일을 떠올렸던 거야. 내 대답은 ...사상 문제를 깊숙이 탐구해 나가려는 자네가 듣기엔 시시했을지도 모르지. 너무 진부한 대답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냉철한 두뇌로 새로운 발견을 입에 담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원리를 이야기하는 편이 살아 있는 것이라고 믿네. 피가 돌아야 몸이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니까 말이야. 진실을 담은 말은 의미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보다 강한 힘을 갖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지.(196~197p)

 

술은 끊었지만 일을 할 생각은 없었지. 일이 없으니 다시 책을 펴드는 수밖에 없었네. 하지만 끝까지 독파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책을 덮기 일쑤였지. 아내는 가끔씩 내게 그렇게 공부를 해서 뭘 할 거냐고 물었네. 나는 슬쩍 웃어 보이기만 했어. 하지만 속으로는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날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하니 씁쓸했지. 이해시킬 방법은 있지만, 이해시킬 용기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슬퍼졌네.(331p)

 

ㅡ 나쓰메 소세키, <마음> 中, 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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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16

 

 

이 책을 읽음으로써 산시로, 그 후, 문으로 이어지는 소세키의 전기 3부작을 다 읽게 되었다. 완벽하게 이어지는 소설들이 아니고 각 작품들이 독립적으로 훌륭하지만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어차피 다 읽을거라면 저 순서대로 읽는 게 훨씬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이스케가 스스로 놋쇠가 되는 것을 감수하게 된 것은 갑작스레 엄청난 파란에 휘말려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심기일전하게 되었다는 등의 멜로드라마와 같은 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다이스케 특유의 사색과 관찰의 힘으로 스스로 조금씩 도금을 벗겨온 것에 불과했다. 다이스케는 그 도금의 대부분은 아버지가 덮어씌운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금으로 보였다. 많은 선배들이 금으로 보였다.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은 모두 금으로 보였다. 그래서 자신의 도금이 고통스럽게 여겨졌다. 한시바삐 금이 되고 싶어서 안달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금으로 가려져 있던 다른 사람들의 바탕쇠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들여다보고 나니 갑자기 이제까지 매달려 왔던 것이 부질없는 짓으로 생각되었다.(99p)

 

“그럼 극히 고상한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지. 진부한 이야기지만,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어. 오다 노부...나가가 어느 유명한 요리사를 고용했는데, 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처음으로 먹어보고 너무 맛이 없어서 심한 잔소리를 했다는군. 요리사로서는 최상급의 요리를 만들었는데 야단을 맞자 그 다음부터는 적당히 이류 내지는 삼류의 요리를 주인에게 만들어주었더니 내내 칭찬을 받았다고 하네. 그 요리상의 경우를 보게. 생활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점에서는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자신의 기술인 요리 그 자체를 위해서 일한다는 점으로 봐서는 매우 불성실한, 즉 타락한 요리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108p)

 

영웅의 명성이란 그만큼 변화무쌍한 것이다. 그건 결국 대부분의 경우 영웅이란 그 시대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인 고로, 이름만으로는 대단한 것 같지만 본래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중요한 시기를 넘기면 세상은 그 자격을 점점 빼앗으려 든다. 러시아와 한창 전쟁 중일 때야 폐색대란 중요한 것이었지만, 평화를 되찾은 새벽이 되면 백 명의 히로세 중령도 완전히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세상은 이웃 사람에 대해 아주 타산적이지만 영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251p)

 

그는 원래 태도가 불분명한 편이었다. 누구의 명령도 그대로 따른 적이 없는 대신에, 그 누구의 의견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저항해 본 적이 없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약삭빠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처럼 보이기도 하는 태도였다. 그 자신조차도 그 두 가지 비난 중 어느 쪽을 들어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주된 원인은 약삭빨라서도 우유부단해서도 아니고 오히려 그가 융통성 있는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이제까지 외곬으로 돌진하려는 용기를 상실하곤 했다. 그래서 다가가지도 물러나지도 않은 채 그대로 현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현상을 유지하려는 그의 태도가 생각이 부족해서가아니라 오히려 명백한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그가 평소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과감한 태도로 신념을 밀고 나갈 때 비로소 자각할 수 있었다. 미치요와의 경우가 바로 그 적절한 예였다.(304p)

 

 

ㅡ 나쓰메 소세키, <그 후>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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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11

사놓고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읽었다. 아쉬운 점은 영화를 통해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 상태로 봐서 몰입도가 조금은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책은 다른 매체이고 다 읽은 뒤의 감상으로는 책과 영화 모두 흥미로웠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언 매큐언 소설들(토요일, 체실 비치에서, 속죄)의 특징은 주제를 점층적으로 쌓아올리는 방식이다. 그래서 읽다가 중도에 포기하면 의미가 없다. 끝까지 읽어야 한다(다른 책이야 안 그렇겠냐마는). 게다가 묘사가 끝도 없이 길어지는 경우도 있고, 속죄 같은 경우에는 분량도 만만찮아서 초반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난 내용과 반전(?)을 제외하고도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책이다.


그녀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선과 악, 영웅과 악당이라는 피곤한 투쟁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세 사람 중에는 악한 사람도 특별히 선한 사람도 없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었다. 굳이 교훈이 있어야 할 까닭도 없었다. 단지 타인의 마음도 똑같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애써 기억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살아 숨쉬는 각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든 마음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이 지녀야 할 유일한 교훈이었다.(66~67p)

언젠가 손님들을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무슨 분야인진 몰라도 과학을 가르친다는 어느 교수가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으로 큰 장식촛대들 위를 날아다니는 벌레 몇 마리를 가리키며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이 벌레들을 빛 속으로 유혹하는 것은 빛 너머에 있는 더 깊은 어둠이라고 했다. 벌레들은 잡아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빛의 가장자리에 있는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가려는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곤충들 눈에 보이는 빛 속의 어둠은 착시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그의 이런 설명은 궤변처럼, 단지 설명을 위한 설명처럼 들렸다. 어느 누가 곤충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단 말인가? 세상 모든 것에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데도 그것들을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세상사를 그르치는 일이며 쓸데없는 짓일 뿐 아니라 화를 부를 수도 있다. 어떤 일들은 정말로 그렇다.(215p)

ㅡ 이언 매큐언, <속죄>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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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4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31p)

“난 진심으로 제인이 성공하기를 바라거든. 그리고 제인이 내일 그분과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열두 달 동안 그분 성격을 연구한 뒤에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결혼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려 있어. 서로의 취향을 아주 잘 알거나, 혹은 서로 아주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둘의 행복이 더 커지는 건 결코 아니야. 취향이란 건 계속 변하게 마련이라 나중엔 누구든 짜증이 날 만큼 달라지게 마련이야.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의 결점은 될수록 적게 아는 것이 더 나아.”(35p)

그가 한 말이 겨우 그날 저녁 ...비가 오고 있고 장마철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는 것뿐이었음에도, 앉자마자 너무나 붙임성 있게 대화를 시작한 덕분에 엘리자베스는 아무리 평범하고 닳고 닳은 주제도 말하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흥미로운 게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109~110p)

“좋다. 이제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네 어머니께서는 네가 그 청혼을 수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신다. 그렇지 않소. 여보?”
“그럼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신 저애를 보지 않겠어요.”
“아주 불행한 선택이 네 앞에 놓여 있다, 엘리자베스. 오늘 이후로 너는 부모 중 한 사람과 남남이 되어야 한다. 네가 콜린스 씨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너를 다시는 안 볼 것이고, 만일 네가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한다면 내가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161p)

전에도 가끔씩 느낀 바지만, 조바심치며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더라도 예상한 만큼의 만족을 오롯이 얻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진짜 행복의 출발점으로 다른 시기를 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의 소망과 희망이 이루어질 그 시점을 정하고, 다시 그것을 기대하는 즐거움을 누림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고, 또 다른 실망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330p)

한 가지 즐거움만은 확실했으니, 마음 맞는 여행 동반자와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건강한 체질, 즐거움을 더해 주는 명랑한 성격, 밖에서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 간에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애정과 슬기를 포함하는 것이었다.(333p)

ㅡ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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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2

 

나오키상 수상작 



이십 년 전 옛날 일을 바로 어제 일처럼 되새기는 건 죽은 시어머니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거품 속에 몸을 묻고 있으려니 메구미는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착각이 가능했던 그 시절의 자신이 지독히 슬프게 느껴졌다.(109p)

그러고 보니 요즘은 한참이나 부부 싸움도 하지 않았다. 싸우지도 않는 관계에서는 무엇을 밑천으로 화해를 시도해야 할지 알 수 없다.(202p)

행복하게 해주겠다니, 그런 무책임한 말은 대체 어디서 배웠나? 그런 말은 제대로 먹고살게 해준 다음에 해야지. 행복이란 과거형으로 말해야 빛이 나는 거 아닌가. 앞일은 섣불리 입 밖에 내지 말고 묵묵히 행동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208p)

ㅡ 사쿠라기 시노, <호텔로열> 中,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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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19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다. 마지막이라고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다. 그냥 필립 로스 소설이다. 얄짤없이 드라이한 묘사로 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157p)

하느님 이야기를 하자면, 인디언 힐 같은 천국에서 하느님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1944년 여름 뉴어크에서는―혹은 유럽이나 태평양에서는―그렇지 않았다.(179p)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의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그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243p)

“그 친구는 앵글우드 학군에서 일자리를 얻었어. 부인하고 애들을 데리고 그리고 올라갔지. 아니, 나는 그 친구를 만나지 않네.” 그러더니 그는 침묵으로 빠져들었고, 그가 자신에게 없는 것은 그냥 없이 산다고 금욕적으로 주장했음에도 그렇게 많은 것을 잃은 것에 그가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았으며, 이십칠 년이 지났음에도 일어났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여전히 궁금해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 더없이 분명해졌다―그 가운데는 자신이 지금쯤 위퀘이크 고등학교 체육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271p)

그러나 세상에서 망가진 착한 소년만큼 구원하기 힘든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자신만의 상황 감각을 키워왔기 때문에―또 간절하게 갖고 싶어했던 모든 것을 갖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내 힘으로는 그가 자기 삶의 끔찍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몰아낼 수도 없고 그와 그 사건의 관계를 바꾸어놓을 수도 없었다. 버키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었고―똑똑했다면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결코 태평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대체로 재미가 없는 사람이었으며, 의사 표현은 정확했지만 재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평생 풍자나 아이러니가 섞인 말은 해본 적도 없었고, 우스개나 농담을 던지지도 않았다―대신 가혹한 의무감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의 힘은 거의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시간이 갈수록 그의 불행을 강화하고 치명적으로 확대하는 이야기에 아주 심각한 의미를 부여해 큰 대가를 치렀다. 챈슬러 놀이터와 인디언 힐 양쪽에 초래된 대재난은 그의 눈에 자연의 악의에 찬 부조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저지른 큰 범죄로 보였고,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한때 소유했던 모든 것을 내놓고 인생을 망쳤다. 버키 같은 사람의 죄책감은 남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지만, 사실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구제 할 수 없다. 그가 하는 어떤 일도 그가 안에 품은 이상에는 이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책임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절대 모른다. 그는 절대 자신의 한계를 믿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고통에 체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선을 천성적으로 짊어지고 있어, 자신에게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반드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구인 남편을 얻는 것을 막는 데서 가장 큰 승리감을 맛보며, 그녀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을 부인하는 것은 영웅적 행동이 된다.(273~275p)


ㅡ 필립 로스, <네메시스>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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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8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소세키의 소설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겠지만 소세키의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이 소설로 시작하는 게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소설이긴 하지만 소세키의 자전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아서(소설 속 주인공인 겐조와 현실의 나쓰메 소세키를 거의 동일시 해도 될 정도) 그 점을 생각하면서 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그는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자마자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 6조의 좁은 다다미방에는 언제나 겐조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일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훨씬 강하게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연히 그는 언제나 안절부절못했다. (...) 그를 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신경쇠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런 상태를 단순히 자신의 성격 탓이라 믿고 있었다.(12p)

그는 독선가였다. 처음부터 아내에게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그 점에서는 남편의 권리를 인정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남편의 권리를 인정하는 반면,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만이 있었다. 매사에 우격다짐으로 나오는 남편의 태도는 결코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왜 좀더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가 하는 서운함이 항상 그녀의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재주나 기량을 자신이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무관심했다.(41p)

그는 좀처럼 울지 않는 성격이면서도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사람,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일이 왜 자신에게는 없을까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내 눈은 언제라도 울 준비가 되어 있는데.’(171p)

‘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멀어지지만, 함께 있으면 설령 원수지간이라 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지. 결국 그것이 인간이니까.’(177p)

‘그러나 지금의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겐조는 불가사의함을 느꼈다. 그 불가사의함에는 주변 상황과 끝까지 잘 싸워냈다는 자부심도 꽤 섞여 있었다. 그리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이미 만들어진 것처럼 여기는 의기양양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았다. 과거가 어떻게 현재로 발전해왔는지 의심해보았다. 그러나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신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와 시마다의 관계가 끊어진 이유는 현재 때문이었다. 그가 오쓰네를 싫어하는 것도, 누이나 형과 동화할 수 없는 것도 이 현재 때문이었다. 장인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도 현재 때문이 틀림없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현재를 만들어 낸 겐조는 참 딱한 존재였다.(247~248p)

‘당신은 아이를 가져서 행복할 거야. 그러나 행복을 다 누리기도 전에 당신은 이미 많은 희생을 치렀어. 앞으로도 당신이 알아차리지 못할 희생을 얼마나 치러야 할지 몰라. 당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참 딱한 사람이야.’(253p)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278p)

ㅡ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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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4

곱씹어볼수록 대단한 소설이다. 소재의 참신성과 특이성이 전부가 아니다. 특히, 처음 읽었을 때는 결말이 흐지부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어볼수록 마지막 부분이 좋다. 에드워드가 그일 이후의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마침내 그때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회한은 너무나도 쓸쓸했다.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의 집사와 켄튼 생각도 났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함의하는 것처럼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한 시간의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속에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어떤 부분까지 내보이며 이야기해야 하는가? 나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내가 의도한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같은 상황에서의 남녀의 생각이 이렇게도 판이할 수 있는가? 와 같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여러 층위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흥미로웠다.


늘 그랬듯이, 플로렌스는 가족에게 자신의 감정을 감쪽같이 숨겼다. 딱히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내색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늘 그냥 방을 나와버렸고, 나중엔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심한 말이나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는 밤새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자신이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늘 스스로에게 상기시켰고, 그렇게 자신을 속임으로써 더 완벽하게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흔히 아주 심하게 싸운 뒤에도 곧 화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요령을 몰랐다. 그녀는 분위기를 일시에 바꿔놓을 수도 있는 그런 싸움을 할 줄 몰랐고, 심한 말이 취소되거나 잊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믿지 못했다. 뭐든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최고였다. 그녀는 신문 만화에 등장하는, 귀에서 김을 뿜어내는 만화 캐릭터처럼 열이 올라올 때조차 그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65p)

그녀는 거짓말을 한 적도 없었지만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아준 적도 없었다.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남들과 공유한 적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묘한 느낌을 맛보았다. 자신이 혼자라는 그 느낌을.(105p)

그녀는 갑자기 그들의 문제가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너무 예의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제나저제나 의견 차이가 날까봐 두려워했고, 이제 그의 분노가 그녀를 그런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있었다. 그와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그녀는 그의 감정을 해치고 싶었고 혼내주고 싶었다. 그것은 그녀 안에 깃들어 있는, 파괴의 쾌감을 향한 너무도 낯선 충동이었고, 그녀는 그것에 전혀 저항감이 일지 않았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고, 그를 증오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말하기 전까진 살면서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이 무자비하고 경이로운 말들을 할 참이었다. 그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녀를 비난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엄을 총동원하고 있었다.(174~175P)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그 여자를 자신이 그렇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이제 그는 그녀의 자기희생적인 제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도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묻히고, 그녀의 모습이 창백한 여명 속에서 빛나는 쭉 뻗은 광활한 자갈밭 길의 흐릿한 한 점으로 사라져갈 때까지.(196~198P)

ㅡ 이언 매큐언, <체실 비치에서>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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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30

소설리스트에서 김중혁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로 알게 된 책이다. 줄리언 반스는 부커상을 수상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알게 되어 이런 저런 책을 찾아봤는데 “10 1/2 장으로 쓴 세계 역사”를 대충 살펴보고는 그 후로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이 책은 제목부터 땡겨서 보게 됐다. 구성은 간단하다. 한명의 독자를 가정하고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같은 사건들을 겪은 인물들이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일견 전형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만드는 점이 바로 줄리언 반스의 능력이겠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빛나는 유머들로 자주 즐거웠고, 가끔씩은 슬프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감상은 생략하고 아래의 인상적인 구절들로 갈음한다.

담배? 아, 당신은 분명히 담배를 안 피우겠지. 내가 담배 피워도 괜찮겠나? 물론, 나도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담배를 좋아하는 이유다. 맙소사. 우리는 방금 만났다. 그런데 당신 표정을 봐라. 뭔가 단단히 잘못 씹은 듯한 표정이다. 도대체 내가 담배 피우는 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인가? 50년 후면 나는 죽고 없을 것이다. 물론 당신은 그때 건강 샌들을 신고 빨대로 요구르트를 쭉쭉 빨고, 더러운 물을 홀짝거리는 원기 왕성한 도마뱀이 되겠지. 그리고? 물론 난 내 쪽이 더 좋다.(20p)

사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에 본래 능숙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 그래서 난 혼자 스토크 뉴잉턴에 작은 아파트를 구했고, 직장에 다녔고, 때로는 외로움에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소위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말도 더 많이 하고 내가 그들을 좋아한다는 걸 보여 주고 이런저런 질문도 던지고 그러는 대신, 마치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지도 않는 듯, 그들이 나에게 흥미로운 존재가 못 된다는 듯이 굴며 입을 닫아 버리고 만다. 그러면-아주 당연하게도-그들은 내가 충분히 흥미로운 존재가 아님을 곧 발견한다. 그러고 나서 난 이런 내 약점을 깨닫지만, 다음부터 좀 더 잘 처신하겠다고 결심하기는커녕, 또다시 얼어붙고 만다. 세상 사람 중 반은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쪽 반에서 저쪽 반으로 건너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감이 있으려면 먼저 자신만만해야 한다. 그건 악순환이다.(35~36p)

“인생도 은행일 같았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은행일이 쉽고 간단하다는 말은 아냐. 어떤 일은 굉장히 복잡하지. 그러나 열심히 하면 결국 이해할 수 있어. 아니면 어딘가에 그걸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지. 설사 일이 다 끝난 뒤,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말이야. 인생을 사는 데 문제는,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는 거야.”(55p)

내 경험으로 보건대, 걱정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드는 녀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십이라는 고성능 스피커를 타고 방송되는 골칫거리가 된다.(61p)

나는 그 단어를 사랑한다. 지금.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그때는 사라졌다. 내가 부모님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 자신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이해시킬 수 없었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때였고, 그때는 사라졌다. 지금은 지금이다. (...) 과연 이런 가정들이 존재할까? 텔레비전을 보면 괴팍히기 이를 데 없는 늙은 숙모와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흥미롭게도 성격이 다양한 어른들로 가득한 재미있는 가정들이 늘 나온다. 가족은 기복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협력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가 되던 간에 <가족 편>에 선다. 하지만 인생은 정말이지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가족은, 그 숫자가 적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어떤 때는 누가 죽어서, 어떤 때는 이혼으로, 대개는 의견 차이 또는 권태로 헤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구도 <가족>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좋아하는 엄마, 그들이 미워하는 아빠, 또는 그 반대가 있을 뿐이다.(73p)

밀월, 혹시 당신이 어원에 밝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 말하자면, 이 말은 최근에 와서는 단지 면세품 구입과, 똑같은 장면을 담은 사진을 잔뜩 찍는 결혼 휴가를 뜻한다.(86p)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때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 그렇잖은가? 음악이 멈추고 갑자기 서로의 눈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따위의 극적인 순간 같은 건 없다고. 물론, 어떤 사람한테는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아냐. 아침에 잠이 깼는데 같이 잔 남자가 코를 골지 않는 걸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어. 그게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잖아? 진짜같이 들리긴 하지만.(97p)

외모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은 외모에 관심이 있다. 누구나 다 관심이 있다. 문제는 형편없는 외모인데도 자신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오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외모가 엉망인 것은 자기 정신이 차원 높은 것에 열중하기 때문이며, 워낙 바쁘다 보니 머리 감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며, 당신이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모습 또한 사랑할 것이라고 건방을 떤다.(135p)

고작 감기 든 걸 가지고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고 극구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지를 놈은 나에게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인간들은 말한다. “나, 지독한 독감에 걸렸어.” 오, 천만에. 당신은 독감에 걸린 게 아니다. 단지 콧물이 조금 흐르고 약간의 두통이 있으며 귀가 좀 멍할 뿐으로, 그건 지독한 독감이 아니라 가벼운 감기일 뿐이다. 지난번과 같은, 그리고 그전에도 걸렸던 가벼운 감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171~172p)

<사랑, 그리고>. 이 주장은 단순하다. 세상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인생의 목적, 기능, 기초, 그리고 주된 선율은 바로 사랑이며, 그리고 다른 모든 것-다른 모든 것-은 그저 <그리고>, 즉 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첫 번째 범주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 불행한 대다수 사람들은 사랑보다도 주로 인생의 <그리고>를 믿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은, 그것이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일지라도 일시적인 젊음의 광풍일 뿐이며,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의무로 향해 가는 시끄러운 서곡일 뿐이다. 그들은 실내 장식품보다 더 확실하고 불변하며 견고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나누는 유일한 방법이다.(177p)

“엄마, 난 규칙이 있는 줄 알았어.” (...) 사람들은 결혼하면 으레 하는 소리처럼 결혼이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요. 그 애가 그런 말을 믿을 만큼 고지식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의해-적어도 잠시 동안이라도-어떤 식으로든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거나 그냥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나이 이제 오십이 넘었고, 만약 당신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가지는 생각해 낼 수 있어요. 남자들이 나이 많은 여자 때문에 아내를 떠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이걸 빼고는, 어떤 일이든지 다 있을 수 있고 다 정상이랍니다.(211p)

당신 자신의 행복은 당신 책임이야-행복이 소포 뭉치처럼 문 안으로 굴러 들어오기만 바랄 수는 없으니까. 이런 문제는 현실적으로 대처해야 해.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언젠가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야>하고 생각해. 하지만 <왕자님들 환영>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지 않으면 다 소용없어.(218p)

“불행을 안고 떠나면, 과거의 한때는 모든 게 완벽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264p)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평생의 진리가 되는 것이 간혹 있답니다. 그런 진리들은 뼈에 사무치도록 당신을 짓누르지도 않아요. 그리고 한 번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해 볼 여지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그런 진리를 두 번 경험한다면, 그 진리는 날 짓눌러 숨 막히게 할 겁니다. 난 <이게 진리다> 따위의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하고 싶진 않아요.(278~279p)

난 이제 사랑받는 일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포악하고 비열한 황제가 될 계획을 세웠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고의적으로 비열하게 군 적은 없는 사람이다. 그건 내 체질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건 말건 그런 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옛날의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동의를 얻는 데 애를 썼다. 요즘은 이렇건 저렇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286p)

그는 저녁 내내 모든 걸 좋게 만드는 데 아주 능숙해. 하지만 항상 다음 날 아침이 있다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나는 그이가 행복하니까 기쁘다, 나도 행복하다. 이 정도면 부러울 게 없어,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아. 안 그래? 행복하면서도 현실적이어야 해. 그게 진리라고.(308p)

사랑, 존경, 남성적 매력. 이 세 가지 모두를 스튜어트에게서 얻었다고 생각했어. 이 세 가지 모두를 올리버에게서 구했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 셋을 한꺼번에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314p)

ㅡ 줄리언 반스, <내 말 좀 들어봐>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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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5

 

톨스토이의 작품 중 처음으로 읽은 책. 많은 분량이 아니라 부담도 덜했고 소설도 만족스러웠다. 이 책을 썼을 당시 톨스토이의 나이가 60대라고 들었는데 노년기에 이른 대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사족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에도 죄와벌을 읽고 흥미가 일어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사놨는데 올해 안에 읽었으면 한다.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바로 거짓이었다. 거짓말, 어찌된 연유인지는 몰라도 모든 이들이 받아들인 거짓말, 그는 죽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 아플 뿐이라는 거짓말, 마음을 차분하게 먹고 치료를 받으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라는 거짓말, 이것이 그를 가장 괴롭혔다. 그는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고 고통만 더 심해지며 결국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의 거짓말 때문에 괴로워했고, 사람들이 자기네들은 물론 그도 알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그의 끔찍한 상태를 고려하여 그를 속이려 들고, 그마저 그 거짓말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것 또한 그를 괴롭혔다. 거짓말, 거짓말, 그가 사망하기 전날 밤에도 쏟아진 이 거짓말, 끔찍하고 엄숙한 죽음의 의식을 한...낱 방문, 커튼, 저녁식사에 올려질 철갑상어 등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만 거짓말은 이반 일리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79~80p)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린 후 어느 순간 이반 일리치는 고백하는 게 지독히 창피했지만 누군가 자기를 병든 어린애처럼 불쌍히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는 누군가 살살 어린애를 달래듯 자기를 어루만져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길 원했다. (...) 그러나 직장동료인 세벡 판사가 찾아오자 눈물과 토닥거림에 대한 소망을 감추고 대신 진지하고 엄숙하며 깊이 사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타성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확고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그 자신과 그 주위의 거짓이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망쳤다.(81~82p)

그녀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모든 걸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야만 믿어질, 바로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을 자기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고 있노라고 말했다.(89p)

결혼······. 뜻하지 않게 찾아왔었고 이어진 실망, 그리고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그리고 이 생명이 없는 직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일 년, 이 년 그리고 십 년, 이십 년, 항상 똑같았던 삶. 계속되면 될수록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삶. 산에 오른다고 상상했었지. 그런데 사실은 일정한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어. 그래 그랬던 거야.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산에 오르고 있었어. 근데 사실은 정확히 그만큼 내 발아래에서 삶은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98~99p)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다 써. 일해서 갚으면 되니까. 난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기다리게 한 후 명세서를 내밀고는 벌금을 물리는 짓거리 따위는 안 해. 우린 정직을 신조로 하지. 나를 위해 일을 하면 나 몰라라 하는 법은 없다, 이 말씀이야.”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니키타에게 정말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앉았다. 그는 이처럼 자신 있게 말할 줄 알았고 니키타를 비롯하여 그에게 금전적으로 매여 있는 이들 모두 그가 자신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 돌봐주고 있다고 그를 확신시켜주었다.
“압니다요. 바실리 안드레이치. 소인도 친아버지를 모시듯 잘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지요. 암요, 알다마다요.”
니키타가 대답했다. 그는 바실리 안드레이치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그와 명세서를 놓고 따져봐야 부질없고, 다른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148~149p)

ㅡ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中,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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