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4

곱씹어볼수록 대단한 소설이다. 소재의 참신성과 특이성이 전부가 아니다. 특히, 처음 읽었을 때는 결말이 흐지부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어볼수록 마지막 부분이 좋다. 에드워드가 그일 이후의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마침내 그때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회한은 너무나도 쓸쓸했다.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의 집사와 켄튼 생각도 났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진부한 표현이 함의하는 것처럼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한 시간의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간 속에서 서로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어떤 부분까지 내보이며 이야기해야 하는가? 나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내가 의도한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같은 상황에서의 남녀의 생각이 이렇게도 판이할 수 있는가? 와 같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여러 층위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흥미로웠다.


늘 그랬듯이, 플로렌스는 가족에게 자신의 감정을 감쪽같이 숨겼다. 딱히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내색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늘 그냥 방을 나와버렸고, 나중엔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심한 말이나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는 밤새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그녀는 자신이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늘 스스로에게 상기시켰고, 그렇게 자신을 속임으로써 더 완벽하게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흔히 아주 심하게 싸운 뒤에도 곧 화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요령을 몰랐다. 그녀는 분위기를 일시에 바꿔놓을 수도 있는 그런 싸움을 할 줄 몰랐고, 심한 말이 취소되거나 잊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 믿지 못했다. 뭐든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최고였다. 그녀는 신문 만화에 등장하는, 귀에서 김을 뿜어내는 만화 캐릭터처럼 열이 올라올 때조차 그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65p)

그녀는 거짓말을 한 적도 없었지만 그들의 오해를 바로잡아준 적도 없었다.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남들과 공유한 적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묘한 느낌을 맛보았다. 자신이 혼자라는 그 느낌을.(105p)

그녀는 갑자기 그들의 문제가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너무 예의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제나저제나 의견 차이가 날까봐 두려워했고, 이제 그의 분노가 그녀를 그런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있었다. 그와는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그녀는 그의 감정을 해치고 싶었고 혼내주고 싶었다. 그것은 그녀 안에 깃들어 있는, 파괴의 쾌감을 향한 너무도 낯선 충동이었고, 그녀는 그것에 전혀 저항감이 일지 않았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고, 그를 증오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처음 말하기 전까진 살면서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이 무자비하고 경이로운 말들을 할 참이었다. 그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녀를 비난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엄을 총동원하고 있었다.(174~175P)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그 여자를 자신이 그렇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물론, 이제 그는 그녀의 자기희생적인 제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도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묻히고, 그녀의 모습이 창백한 여명 속에서 빛나는 쭉 뻗은 광활한 자갈밭 길의 흐릿한 한 점으로 사라져갈 때까지.(196~198P)

ㅡ 이언 매큐언, <체실 비치에서>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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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30

소설리스트에서 김중혁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로 알게 된 책이다. 줄리언 반스는 부커상을 수상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알게 되어 이런 저런 책을 찾아봤는데 “10 1/2 장으로 쓴 세계 역사”를 대충 살펴보고는 그 후로 엄두가 나지 않던 차에 이 책은 제목부터 땡겨서 보게 됐다. 구성은 간단하다. 한명의 독자를 가정하고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에 대해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같은 사건들을 겪은 인물들이지만 당연하게도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일견 전형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이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만드는 점이 바로 줄리언 반스의 능력이겠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빛나는 유머들로 자주 즐거웠고, 가끔씩은 슬프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감상은 생략하고 아래의 인상적인 구절들로 갈음한다.

담배? 아, 당신은 분명히 담배를 안 피우겠지. 내가 담배 피워도 괜찮겠나? 물론, 나도 흡연이 건강에 나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담배를 좋아하는 이유다. 맙소사. 우리는 방금 만났다. 그런데 당신 표정을 봐라. 뭔가 단단히 잘못 씹은 듯한 표정이다. 도대체 내가 담배 피우는 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인가? 50년 후면 나는 죽고 없을 것이다. 물론 당신은 그때 건강 샌들을 신고 빨대로 요구르트를 쭉쭉 빨고, 더러운 물을 홀짝거리는 원기 왕성한 도마뱀이 되겠지. 그리고? 물론 난 내 쪽이 더 좋다.(20p)

사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에 익숙지 못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에 본래 능숙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 그래서 난 혼자 스토크 뉴잉턴에 작은 아파트를 구했고, 직장에 다녔고, 때로는 외로움에 밤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소위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말도 더 많이 하고 내가 그들을 좋아한다는 걸 보여 주고 이런저런 질문도 던지고 그러는 대신, 마치 그들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지도 않는 듯, 그들이 나에게 흥미로운 존재가 못 된다는 듯이 굴며 입을 닫아 버리고 만다. 그러면-아주 당연하게도-그들은 내가 충분히 흥미로운 존재가 아님을 곧 발견한다. 그러고 나서 난 이런 내 약점을 깨닫지만, 다음부터 좀 더 잘 처신하겠다고 결심하기는커녕, 또다시 얼어붙고 만다. 세상 사람 중 반은 자신감이 있는 것 같지만, 나머지 반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쪽 반에서 저쪽 반으로 건너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자신감이 있으려면 먼저 자신만만해야 한다. 그건 악순환이다.(35~36p)

“인생도 은행일 같았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은행일이 쉽고 간단하다는 말은 아냐. 어떤 일은 굉장히 복잡하지. 그러나 열심히 하면 결국 이해할 수 있어. 아니면 어딘가에 그걸 이해하는 누군가가 있지. 설사 일이 다 끝난 뒤,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말이야. 인생을 사는 데 문제는, 이미 때가 늦은 뒤라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는 거야.”(55p)

내 경험으로 보건대, 걱정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드는 녀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십이라는 고성능 스피커를 타고 방송되는 골칫거리가 된다.(61p)

나는 그 단어를 사랑한다. 지금.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그때는 사라졌다. 내가 부모님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 자신을 실망시켰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이해시킬 수 없었던 것은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때였고, 그때는 사라졌다. 지금은 지금이다. (...) 과연 이런 가정들이 존재할까? 텔레비전을 보면 괴팍히기 이를 데 없는 늙은 숙모와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흥미롭게도 성격이 다양한 어른들로 가득한 재미있는 가정들이 늘 나온다. 가족은 기복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협력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가 되던 간에 <가족 편>에 선다. 하지만 인생은 정말이지 결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가족은, 그 숫자가 적고 각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어떤 때는 누가 죽어서, 어떤 때는 이혼으로, 대개는 의견 차이 또는 권태로 헤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구도 <가족>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좋아하는 엄마, 그들이 미워하는 아빠, 또는 그 반대가 있을 뿐이다.(73p)

밀월, 혹시 당신이 어원에 밝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 말하자면, 이 말은 최근에 와서는 단지 면세품 구입과, 똑같은 장면을 담은 사진을 잔뜩 찍는 결혼 휴가를 뜻한다.(86p)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때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 그렇잖은가? 음악이 멈추고 갑자기 서로의 눈이 처음으로 마주치는 따위의 극적인 순간 같은 건 없다고. 물론, 어떤 사람한테는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아냐. 아침에 잠이 깼는데 같이 잔 남자가 코를 골지 않는 걸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어. 그게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잖아? 진짜같이 들리긴 하지만.(97p)

외모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은 외모에 관심이 있다. 누구나 다 관심이 있다. 문제는 형편없는 외모인데도 자신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오만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외모가 엉망인 것은 자기 정신이 차원 높은 것에 열중하기 때문이며, 워낙 바쁘다 보니 머리 감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며, 당신이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모습 또한 사랑할 것이라고 건방을 떤다.(135p)

고작 감기 든 걸 가지고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고 극구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지를 놈은 나에게 깨닫게 해준다. 그런 인간들은 말한다. “나, 지독한 독감에 걸렸어.” 오, 천만에. 당신은 독감에 걸린 게 아니다. 단지 콧물이 조금 흐르고 약간의 두통이 있으며 귀가 좀 멍할 뿐으로, 그건 지독한 독감이 아니라 가벼운 감기일 뿐이다. 지난번과 같은, 그리고 그전에도 걸렸던 가벼운 감기.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171~172p)

<사랑, 그리고>. 이 주장은 단순하다. 세상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인생의 목적, 기능, 기초, 그리고 주된 선율은 바로 사랑이며, 그리고 다른 모든 것-다른 모든 것-은 그저 <그리고>, 즉 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첫 번째 범주다. 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 불행한 대다수 사람들은 사랑보다도 주로 인생의 <그리고>를 믿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은, 그것이 아무리 기분 좋은 일일지라도 일시적인 젊음의 광풍일 뿐이며, 기저귀를 갈아 주는 의무로 향해 가는 시끄러운 서곡일 뿐이다. 그들은 실내 장식품보다 더 확실하고 불변하며 견고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나누는 유일한 방법이다.(177p)

“엄마, 난 규칙이 있는 줄 알았어.” (...) 사람들은 결혼하면 으레 하는 소리처럼 결혼이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지요. 그 애가 그런 말을 믿을 만큼 고지식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의해-적어도 잠시 동안이라도-어떤 식으로든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거나 그냥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나이 이제 오십이 넘었고, 만약 당신이 결혼의 변할 수 없는 규칙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한 가지는 생각해 낼 수 있어요. 남자들이 나이 많은 여자 때문에 아내를 떠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이걸 빼고는, 어떤 일이든지 다 있을 수 있고 다 정상이랍니다.(211p)

당신 자신의 행복은 당신 책임이야-행복이 소포 뭉치처럼 문 안으로 굴러 들어오기만 바랄 수는 없으니까. 이런 문제는 현실적으로 대처해야 해. 사람들은 집에 앉아서 <언젠가 나의 왕자님이 오실 거야>하고 생각해. 하지만 <왕자님들 환영>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지 않으면 다 소용없어.(218p)

“불행을 안고 떠나면, 과거의 한때는 모든 게 완벽했다고 생각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264p)

단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평생의 진리가 되는 것이 간혹 있답니다. 그런 진리들은 뼈에 사무치도록 당신을 짓누르지도 않아요. 그리고 한 번쯤 과연 그럴까, 하고 의심해 볼 여지도 있고요. 하지만 만약 그런 진리를 두 번 경험한다면, 그 진리는 날 짓눌러 숨 막히게 할 겁니다. 난 <이게 진리다> 따위의 경험을 두 번씩이나 하고 싶진 않아요.(278~279p)

난 이제 사랑받는 일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포악하고 비열한 황제가 될 계획을 세웠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고의적으로 비열하게 군 적은 없는 사람이다. 그건 내 체질이 아니다. 그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건 말건 그런 것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옛날의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동의를 얻는 데 애를 썼다. 요즘은 이렇건 저렇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286p)

그는 저녁 내내 모든 걸 좋게 만드는 데 아주 능숙해. 하지만 항상 다음 날 아침이 있다고.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나는 그이가 행복하니까 기쁘다, 나도 행복하다. 이 정도면 부러울 게 없어, 하고 생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아. 안 그래? 행복하면서도 현실적이어야 해. 그게 진리라고.(308p)

사랑, 존경, 남성적 매력. 이 세 가지 모두를 스튜어트에게서 얻었다고 생각했어. 이 세 가지 모두를 올리버에게서 구했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이 셋을 한꺼번에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아.(314p)

ㅡ 줄리언 반스, <내 말 좀 들어봐>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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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5

 

톨스토이의 작품 중 처음으로 읽은 책. 많은 분량이 아니라 부담도 덜했고 소설도 만족스러웠다. 이 책을 썼을 당시 톨스토이의 나이가 60대라고 들었는데 노년기에 이른 대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사족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에도 죄와벌을 읽고 흥미가 일어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사놨는데 올해 안에 읽었으면 한다.   


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바로 거짓이었다. 거짓말, 어찌된 연유인지는 몰라도 모든 이들이 받아들인 거짓말, 그는 죽어가는 게 아니라 조금 아플 뿐이라는 거짓말, 마음을 차분하게 먹고 치료를 받으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라는 거짓말, 이것이 그를 가장 괴롭혔다. 그는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고 고통만 더 심해지며 결국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예의 거짓말 때문에 괴로워했고, 사람들이 자기네들은 물론 그도 알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그의 끔찍한 상태를 고려하여 그를 속이려 들고, 그마저 그 거짓말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것 또한 그를 괴롭혔다. 거짓말, 거짓말, 그가 사망하기 전날 밤에도 쏟아진 이 거짓말, 끔찍하고 엄숙한 죽음의 의식을 한...낱 방문, 커튼, 저녁식사에 올려질 철갑상어 등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만 거짓말은 이반 일리치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79~80p)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린 후 어느 순간 이반 일리치는 고백하는 게 지독히 창피했지만 누군가 자기를 병든 어린애처럼 불쌍히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는 누군가 살살 어린애를 달래듯 자기를 어루만져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길 원했다. (...) 그러나 직장동료인 세벡 판사가 찾아오자 눈물과 토닥거림에 대한 소망을 감추고 대신 진지하고 엄숙하며 깊이 사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타성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확고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그 자신과 그 주위의 거짓이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망쳤다.(81~82p)

그녀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모든 걸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에게 입장을 바꿔 생각해야만 믿어질, 바로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을 자기는 자기 자신을 위해 하고 있노라고 말했다.(89p)

결혼······. 뜻하지 않게 찾아왔었고 이어진 실망, 그리고 아내의 입 냄새, 애욕, 위선! 그리고 이 생명이 없는 직무, 그리고 돈 걱정, 그렇게 보낸 일 년, 이 년 그리고 십 년, 이십 년, 항상 똑같았던 삶. 계속되면 될수록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삶. 산에 오른다고 상상했었지. 그런데 사실은 일정한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어. 그래 그랬던 거야.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산에 오르고 있었어. 근데 사실은 정확히 그만큼 내 발아래에서 삶은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98~99p)

“필요한 게 있으면 가져다 써. 일해서 갚으면 되니까. 난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기다리게 한 후 명세서를 내밀고는 벌금을 물리는 짓거리 따위는 안 해. 우린 정직을 신조로 하지. 나를 위해 일을 하면 나 몰라라 하는 법은 없다, 이 말씀이야.”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니키타에게 정말 은혜를 베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앉았다. 그는 이처럼 자신 있게 말할 줄 알았고 니키타를 비롯하여 그에게 금전적으로 매여 있는 이들 모두 그가 자신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 돌봐주고 있다고 그를 확신시켜주었다.
“압니다요. 바실리 안드레이치. 소인도 친아버지를 모시듯 잘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지요. 암요, 알다마다요.”
니키타가 대답했다. 그는 바실리 안드레이치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그와 명세서를 놓고 따져봐야 부질없고, 다른 일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148~149p)

ㅡ 레프 톨스토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 中, 작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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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0

 

마더 나이트 이후로 보네거트의 작품을 오랜만에 봤다. 한결 같은 풍자와 유머를 이 작품에서도 볼 수 있겠다. 


“미국인이 자기 노력으로 부자가 되는 건 아직도 가능해.”
“그럼요. 어렸을 때 누군가가 ‘돈 강이란 것이 있다, 그건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 성실한 노동, 능력 본위, 정직 같은 헛소리는 죄다 잊어버리는 게 좋다, 그 강으로 가라’고 말해준다면 가능하겠죠.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해주겠어요. ‘부자와 권력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의 방식을 배워라. 그들에게 빌붙어도 되고, 겁을 줘도 된다. 그들에게 엄청난 호감을 주거나 엄청난 두려움을 줘라. 그러면 어느 칠흑 같은 밤에 그들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소리 내지 말라고 경고할 것이다. 그런 다음 어둠을 뚫고 인간이 발견한 가장 넓고 가장 깊은 부의 강으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당신은 강둑에서 당신의 자리를 소개받고, 당신만의 양동이를 넘겨...받을 것이다. 원하는 대로 양껏 퍼마시되, 퍼마시는 그릇을 떨어뜨리진 마라. 가난한 사람이 들을지 모르니까.’”(139~140p)

“그러게, 가난은 창피한 게 아니야.” 이 말은 인디애나 출신의 유머작가 킨 허버드가 오래전에 한 유명한 농담의 절반이었다.
“그래.” 다른 남자가 나머지 반을 말했다. “하지만 차라리 창피한 걸로 끝나는 게 낫지.”(250p)

“새로운 건 한 사람이 오랫동안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익한 인간에 대한 우리의 증오, 그리고 그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에게 가하는 잔인한 행위가 반드시 인간의 본성 탓은 아니라는 겁니다. 엘리엇 로즈워터라는 본보기 덕분에 수백 수천만 사람들이 누구를 만나든 서로 사랑하고 돕는 법을 배울 수 있지요.”(288p)

ㅡ 커트 보네거트,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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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9

처음 말했듯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요. 지행합일이라고 아는 바를 행동하면 사람은 바뀝니다. 그런데 아는 걸 행동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이젠 책을 더 안 읽어도 될 정도로 아는 것은 무척 많은데요, 머릿속의 그 아는 것들은 저를 조금도 바꾸지 못해요. 현미밥에 채소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잖아요. 하지만 매일 그렇게 먹어야 바뀌는 거죠. 매사에 정직한 삶이 좋은 삶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죠.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 한은 그대로예요.(154p)

‘역대 영웅 군왕들이 다 잠시 소유하다가 두고 간 땅을 놓고, 자신도 두고 갈 일이 애달파서 눈물 흘리는 일은 어질지’못한 게 분명하리라. 그러니 꽃이 피면 그 한 조각 같은 봄이나마 즐기면 되는 일이지, 봄이 짧은 것을 굳이 서러워할 일은 아닌 듯하다.(188p)

피는 꽃이 좋았던 시절에는 그 꽃잎들이 지는 걸 굳이 지켜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나도 나이가 들고, 이제는 지는 꽃은 모두 화려한 옛 시절을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두보의, 또 임방울의 가슴을 흔들었던 ‘낙화소식’은 수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날 청춘의 가슴도 똑같이 뒤흔든다. (...)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알지 못해서 몰랐던 게 아니라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모르는 척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것.(191p)

ㅡ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中,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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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13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라”.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시대의 황금률로 여겨지고 있지만 나는 여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나를 구성하는 자잘한 취향들만 봐도 그렇다. 어떤 것은 대놓고 으쓱거리며 자랑하지만, 어떤 것은 너무 저질스러워 남에게 들통 날까 걱정되어 죽겠다. 그 스펙트럼 사이에 여러 종류의 취향들이 흩어져 있다. 나는 이들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중 일부가 남의 취향이라고 해서 내가 그걸 다르게 평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왜 그들이 취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 대상에서 벗어나야 할까? 취향은 그렇게 신성한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나는 내 모든 취향을 옹호하거나 변호할 생각이 없다.(91p)

지금과 같은 시대에 지구의 나이가 6천 년밖에 안 된다고 믿는 얼간이들이 위험할 정도로 많이 존재한다는 걸 생각해보라. 과학업적이 쌓이는 것과 사회 구성원이 그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무지가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날 수 있다.(213p)

어처구니없다고 모두 틀리다는 말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처음에는 헛소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조악하고 유치해서 삼류 SF작가들의 헛소리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위의 리스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자.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믿는 어처구니없는 것들 대부분은 어처구니없는 엉터리다. 우리가 어쩌다가 정곡을 찌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곡을 찌른 운 좋은 소수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254p)

ㅡ 듀나, <가능한 꿈의 공간들> 中, 씨네21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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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6/2

2020/10/9


독서모임이 있어서 다시 읽었는데 역시 좋다.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문체와 늘어짐 없는 내용 전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측면과 가독성까지 흠 잡을 곳이 없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흥미 있게 읽었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인 “나를 보내지마”도 좋아할 것 같다. 감상은 책을 읽으면서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던 구절들로 갈음한다.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게 마련이다.(23p)


여러분을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혹시 아십니까? 여러분의 그 고상한 직관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 의도는 선량하지만 순진하기 짝이 없는 공론들이었죠.(132~133p)


익살이란 그 자체의 속성상, 예상되는 다양한 반응들을 제대로 따져 볼 새도 없이 입으로 내뱉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필요한 기술과 경험을 먼저 습득해 놓지 않으면 온갖 부적절한 말들을 내뱉게 될 위험이 엄청나게 크다.(165p)...


그러니 관심의 초점을 현재로 맞춰야 한다. 또한 과거에 이룬 것들을 가지고 자기 만족에 빠지지 않게 경계해야 한다. 지난 몇 달을 돌아볼 때 달링턴 홀의 상황이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175p)


“엄청나게 어리석은 짓이기도 하죠. 이제 그 처녀는 금방 실망하게 될 거예요. 인내하고 견뎠더라면 훌륭한 인생이 펼쳐졌을 텐데. 1~2년 지나면 어디 작은 저택에 총무 자리라도 알아봐 줄까 했었는데․․․․․․. 그건 너무 무리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스티븐스씨, 지난 몇 달 동안에 그 애가 얼마나 발전했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지금 와서 그걸 송두리째 내던졌어요. 그 모든 걸 아무 소득 없이.”(195p)


그러나 이런저런 순간에 다르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고 앉아 있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음만 심란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전환점’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켜 볼 때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날 그런 상황들을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순간들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켄턴 양의 관계에서 엉뚱한 것들을 솎아 낼 수 있는 날이, 달이, 해가, 끝없이 남아 있는 줄만 알았다. 이런저런 오해의 결과를 바로잡을 기회는 앞으로도 무한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모든 꿈을 영원히 흩어 놓으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221p)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 나라의 중대한 결정들을 여기 이 사람과 그의 동류인 수백만 대중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의회 제도에 묶여 있는데도 수많은 난제의 해결책을 찾아내지 못한다는 게 좀 놀랍지 않습니까? 뭐, 전쟁캠페인이라도 기획하신다면 ‘어머니 연맹 위원회’에 물어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245p)



ㅡ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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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2

유치하다고 말한 게 미안해서 그건 엄마 취향도 아니잖아, 했을 때 너의 엄마는 아니다, 엄만 이런 옷이 좋아, 입을 수 없었을 뿐이다, 했다.(17p)

아주 옛날부터 엄마 입에 붙은 말이잖아. 내가 묻고 싶어, 대체 엄마가 왜 오빠한테 미안한데?(88p)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공손한 말씨를 쓰다가도 아내에게만 오면 말투가 퉁명스럽게 변했다. 가끔은 이 지방 사람들만이 쓰는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당신은 공손한 말투는 아내에게 써서는 안된다고 어디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랬다.(148p)

ㅡ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中,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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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9

“그냥 일일 뿐이니까. 어떤 영화든 출연료를 준다는 것은 다 맡지.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거야. 물론 가끔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영화를 만날 수도 있지만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잖아? 공짜로 일하는 게 아니니까. 나는 예술가들을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 기법이니 방식이니 하는 것들도 잘 몰라. 그냥 서라는 곳에 서서 대사를 읊고는 끝나면 집에 가는 거지. 그냥 연기일 뿐이야.”(23p)

“싫지는 않아. 이렇게 오랫동안 해온 일에 대해서 그 정도만 말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는 거지.”(24p)

지난 2년 동안 스카이다이빙과 베이컨 축제, 회원 활동을 유지하기도 벅찰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인터넷 가상현실사회에 관한 기사들을 써온 버스터는 탈진한 끝에 글 쓰는 일을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은 직접 경험해보면 애초에 품었던 기대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일들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꿀 만한 굉장한 경험이라고 거짓 기사를 써야 했다. 사륜차를 타고 사막을 달리는 것은 그로서는 이제껏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지만 골연 그가 꿈꾸던 일로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후 그는 사륜차 운전이 즐거움을 주는 행위보다는 전문적이고 복잡한 일이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참을성 있게 사륜차를 운전하는 법, 속도를 높이는 법을 설명하는 강사 옆에 앉아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를 운전하려 고생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차라리 집에 돌아가 사륜차를 몰고 다니며 해변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해결하는 탐정소설을 읽는 편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자동차를 뒤집어엎고 난 후 운전연습장에서 쫓겨난 그는 바로 호텔로 돌아와 한 시간 만에 뚝딱 기사를 써 재낀 다음 마리화나를 피우다 곯아떨어졌다.(34~35p)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세상을 올려다보며 이젠 더 이상 내려갈 데 없이 견고한 맨바닥 위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애니의 발밑이 한 번 더 꺼져 내렸다.(140p)

이 집안의 누군가 한 사람은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비록 제대로 내린 결정은 요란한 폭발이나 비명, 절규, 심리적 상처 같은 것으로 끝나지 않아 좀 시시하더라도 말이다.(218~219p)

부모가 그들의 인생을 망쳐놓은 것도 사실이고 그들을 자신들의 집에 거두어준 것도 사실이었다.(223p)

“당신은 마치 모든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날이 올 것처럼 말을 하지만, 이제까지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고려해보면 그런 날이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건 별로 상관없다는 거예요.(350p)

정신적 외상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작용하는 것인가? 직접 외상을 겪었던 당사자들은 현장에 함께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에서 의미를 찾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잃게 된다.(368p)

ㅡ 케빈 윌슨, <펭씨네 가족> 中,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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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11

권태가 생겨나게 되는 필수조건 중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상상하게 되는 지금보다 바람직한 상황과 현재 상황의 대조에 있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사람은 권태를 느끼게 된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적에게서 도망치는 일은 불쾌한 일이지, 분명 권태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초인적인 담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사형을 당하는 순간 권태를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64p)

사회적 계층이 높을수록 자극의 추구는 점점 강렬해진다.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고, 가는 곳마다 춤도 추고 술도 마시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이유에선지 늘 새로운 곳에서 이런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한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사람들은 근무시간 중에는 권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일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도 권태롭지 않은 삶을 이상으로 여긴다. 그것은 멋진 이상이며, 나도 그것을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다른 이상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상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 그런 이상을 달성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전날 밤의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아침의 권태는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결국 중년 시절도 오고, 노년 시절도 올 것이다. 스무 살 때는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은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 쉰여덟 살이 된 나로서는 그런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생각은 인생이라는 자본을 금전적인 자본처럼 소비하는 것으로 결코 현명하지 못하다.(67p)

나의 행동은 내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며, 결국 내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또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아무리 큰 슬픔도 이겨낼 수 있다. 마치 인생의 행복을 끝장나게 할 것처럼 보이던 심각한 고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사그라져, 나중에는 그 고민이 얼마나 강렬했는지조차 거의 기억할 수 없게 된다.(81p)

명예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폴레옹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부러워했고,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를 부러워했으며, 알렉산드로스는 틀림없이 실재하지 않는 인물인 헤라클레스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어떤 일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는 질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역사나 전설 속에는 늘 당신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대부분 착각이겠지만 자신보다 훨씬 행복할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버릇을 버려라.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다.(98p)

모든 사람이 마술처럼 상대방의 생각을 훤히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거의 모든 친구 관계가 깨지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멋진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친구 한 명 없는 세상은 도저히 참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서로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숨기기 위한 눈속임을 할 필요 없이, 서로를 좋아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들이 단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서 똑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자신을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아무런 결점도 없는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결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 당연한 사실을 지나치게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다.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124p)

인간에 대해서 따뜻한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소유하기를 원하며, 언제나 명확한 반응이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랑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사랑은 불행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많다. 행복을 가져오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하고 개인들의 특성 속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랑이며, 만나는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거나 열광적인 찬사를 받아내려고 하는 대신, 그들의 관심과 기쁨의 폭을 넓혀주려고 하는 사랑이다. 이런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원천이 될 것이며, 그 대가로 친절을 되돌려받을 것이다.
중요한 관계든 사소한 관계든,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그 사람 자신의 흥미와 사랑을 만족시켜준다. 그는 호의를 베풀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도 거의 없지만,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남의 신경을 거슬러 격분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하는 이상한 인물조차도 점잖은 재밋거리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 같으면 오랫동안 애를 써도 손에 넣지 못한 성과도 굳이 애쓰지 않고 충분히 달성할 것이다.(169p)

사랑을 얻기 위해서 유달리 친절한 행동을 하는 데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그렇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그 동기가 상대방에게 간파되기 쉬운데, 인간의 본성은 사랑을 조르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사랑을 베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절한 행동의 대가로 사랑을 사려고 애쓰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인간의 배은망덕을 경험하면서 환멸에 빠지게 된다. 그는 자신이 대가를 치러서라도 얻으려고 애쓰는 사랑이 자신이 베푸는 물질적 혜택보다 훨씬 값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지만, 사실상 그의 행동은 이런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191p)

자녀 양육도 큰 문제다. (...) 결국 이 여성은 엄청난 양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치이게 되고, 얼마 가지 않아 모든 매력을 잃고 지성의 4분의 3을 잃게 된다. 그렇게 살면서도 매력과 지성을 잃지 않는 여자가 있다면, 퍽이나 운이 좋은 여자다.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뿐인데도 이런 여성들은 남편에게는 따분한 아내, 자녀에게는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저녁이 되어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낮에 겪었던 이런저런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여자는 따분한 여자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여자는 얼빠진 여자다. 자녀들과의 관계를 보면, 이 여성은 자녀를 위해서 자신이 치러야 했던 여러 가지 희생들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게 되기 쉽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몸에 배어 쩨쩨하고 까다롭게 굴게 된다. 이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부당한 대접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가족들 옆에서 충실하게 의무를 수행한 대가로 가족의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여성이 가족을 소홀히 여기고 쾌활하고 매력적인 생활을 유지했다면 아마 가족들은 이 여성을 사랑했을 것이다.(204~205p)

사소한 문제들이 생겼을 때 참을성 있게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런 사소한 문제들은 자칫 그대로 놓아두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기차를 놓쳤다고 씩씩거리고, 저녁 식사가 맛이 없다고 노발대발하고, 연기를 뿜는 굴뚝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세탁소에 맡긴 옷이 분실되면, 전체 경제체제에 대해 앙갚음을 하겠다고 별러댄다. 만일 이들이 사소한 문제에다가 퍼붓는 정력을 좀 더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제국을 세우고 다시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 개인적인 일의 실패나, 불행한 결혼 생활의 고통을 참아낼 수 있게 하는 것은 비개인적이며 원대한 희망에 집중하는 태도다. 이런 태도를 가지면 기차를 놓치거나 진창 속에 우산을 떨어뜨렸을 때도 참을성 있게 버틸 수 있다. 이것은 성격이 까다로운 사람이 성격을 고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걱정의 지배에서 벗어난 사람은 늘 짜증을 내던 때에 비해서 인생이 훨씬 즐겁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것이다. 예전 같으면 비명을 지르고 싶게 만들던 친구들의 개인적 특성들도 이제는 그저 재미있게 여겨질 것이다. 아무개가 티에라델푸에고 섬의 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삼백마흔일곱 번째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는 이번에 들으면 몇 번째나 듣는 걸까 헤아리며 재미있어 할 뿐, 쓸데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서 말을 가로채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타려고 서둘러 가고 있을 때 구두끈이 끊어지는 일이 있어도, 그는 몇 마디 투덜거리고 나서는 우주의 광대한 역사에 비추어보면 이런 일쯤은 너무나 사소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청혼을 하고 있는 중요한 순간에 성가신 이웃이 찾아와 훼방을 놓더라도, 그는 이 정도의 재난은 아담 말고는 모든 인류가 겪어온 것이니 자신이라고 문제가 없겠느냐고 생각한다.(255~257p)

ㅡ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中, 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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