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4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31p)

“난 진심으로 제인이 성공하기를 바라거든. 그리고 제인이 내일 그분과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열두 달 동안 그분 성격을 연구한 뒤에 결혼해서 행복해질 확률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결혼에서 행복이란 순전히 운에 달려 있어. 서로의 취향을 아주 잘 알거나, 혹은 서로 아주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둘의 행복이 더 커지는 건 결코 아니야. 취향이란 건 계속 변하게 마련이라 나중엔 누구든 짜증이 날 만큼 달라지게 마련이야.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의 결점은 될수록 적게 아는 것이 더 나아.”(35p)

그가 한 말이 겨우 그날 저녁 ...비가 오고 있고 장마철이 시작될지도 모르겠다는 것뿐이었음에도, 앉자마자 너무나 붙임성 있게 대화를 시작한 덕분에 엘리자베스는 아무리 평범하고 닳고 닳은 주제도 말하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흥미로운 게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109~110p)

“좋다. 이제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네 어머니께서는 네가 그 청혼을 수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신다. 그렇지 않소. 여보?”
“그럼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신 저애를 보지 않겠어요.”
“아주 불행한 선택이 네 앞에 놓여 있다, 엘리자베스. 오늘 이후로 너는 부모 중 한 사람과 남남이 되어야 한다. 네가 콜린스 씨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너를 다시는 안 볼 것이고, 만일 네가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한다면 내가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161p)

전에도 가끔씩 느낀 바지만, 조바심치며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더라도 예상한 만큼의 만족을 오롯이 얻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진짜 행복의 출발점으로 다른 시기를 지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의 소망과 희망이 이루어질 그 시점을 정하고, 다시 그것을 기대하는 즐거움을 누림으로써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고, 또 다른 실망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330p)

한 가지 즐거움만은 확실했으니, 마음 맞는 여행 동반자와 함께한다는 점이었다. 마음이 맞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건강한 체질, 즐거움을 더해 주는 명랑한 성격, 밖에서 실망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 간에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애정과 슬기를 포함하는 것이었다.(333p)

ㅡ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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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3

매일 대하는 그 많은 책들이 담고 있는 언어가, 단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것들이 내 나날 속으로 전혀, 한치도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 스스로 돌연한 영감이라 여겼던 것이 실은 헛된 언어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나날이 낡아가는 상상력처럼 그 깨달음도 서서히 왔습니다. 작가라는 사람들의 책을 읽을 때면 어찌 이리도 용감한가, 싶을 때가 점점 잦아졌습니다. 그 부류에 내 이름을 보태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훌륭한 소설도 없지 않았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자각 정도는 제게 있었습니다. 물론 허망 했습니다. 요트 여행, 그 오랜 꿈이 좌절된다면 남편도 허무해지겠지요. 그렇지만 곧 잊고 살아갈 것입니다. 꿈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요.(29p)

ㅡ 서하진, <요트>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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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2

 

나오키상 수상작 



이십 년 전 옛날 일을 바로 어제 일처럼 되새기는 건 죽은 시어머니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거품 속에 몸을 묻고 있으려니 메구미는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착각이 가능했던 그 시절의 자신이 지독히 슬프게 느껴졌다.(109p)

그러고 보니 요즘은 한참이나 부부 싸움도 하지 않았다. 싸우지도 않는 관계에서는 무엇을 밑천으로 화해를 시도해야 할지 알 수 없다.(202p)

행복하게 해주겠다니, 그런 무책임한 말은 대체 어디서 배웠나? 그런 말은 제대로 먹고살게 해준 다음에 해야지. 행복이란 과거형으로 말해야 빛이 나는 거 아닌가. 앞일은 섣불리 입 밖에 내지 말고 묵묵히 행동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208p)

ㅡ 사쿠라기 시노, <호텔로열> 中,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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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1

“표를 사려고 기다리시는 중인가요?”
나는 “아니요, 그냥 줄을 더 길게 만들려고 여기 서 있답니다”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물론 “그런데요”라고만 대답했다.(94p)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멍청하게 집안을 돌아다니며 농구공이나 큰아이가 달리기 대회에서 탄 트로피, 오래 전의 명절 때 찍은 사진 등을 쳐다보는, 그리고 그 물건들을 통해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을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가장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아들이 여기 없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예전의 그 아이도 영영 가고 없다는 갑작스런 깨달음이었다. 아들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삶은 계속되며, 아이들을 자라서 집을 떠나기 마련이다. 아직 이것을 모르시는 분이 있다면 내 말을 믿으시기 바란다. 아이들이 집을 떠날 날은 여러분이 상상했던 것보다 빨리 온다.(151p)

ㅡ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中,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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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31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가 수용하고 보듬을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논리로도 감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모순투성이라는 것.(234p)

ㅡ 서하진, <비밀> 中,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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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24

어디선가 이탈리아에 움베르토 에코가, 미국에는 빌 브라이슨이, 일본에는 츠지야 켄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일어 읽었다. 읽고 난 생각은 저 얘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시답지 않은 에세이를 재미있게 읽은 거로 됐다.

 


환자는 병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서 가슴이 벅차게 된다. 마치 아내가 “말할 게 있다.”며 곁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심정이다.
의사 앞에 다가갈 때에는 아내가 “거기에 앉아.”라고 할 때처럼 불안과 긴장감이 고조된다.(99p)
...
더 이해할 수 없는 명령문도 있다. 위독한 상태에 있는데 ‘죽지마!’,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살아 있어 줘!’라고 부탁 받는다거나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이번에는 딸을 낳아 줘!’하고 명령받았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것이다. 말도 모르는 갓난아이에게까지 ‘자라. 착한 아기야!’하고 명령하고 있다.(108p)

실패를 피할 수 없는 이상 실패를 직시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교육부터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는 매일 부모나 선생님으로부터 ‘이거 해라.’, ‘이런 인간이 되어라.’는 말을 듣고 있다.(나는 지금까지도 듣고 있다.) 그 내용도 ‘게임을 하지 마라.’, ‘손수건을 잊어버리지 마라.’, ‘거짓말을 하지 마라.’ 등 어른이라도 이룰 수 없는 목표뿐인 것이다.
목표를 나타내는 것은 좋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고 인간은 결점투성이라는 것도 가르쳐야만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이는 어려운 문제에 자신감을 잃고 거짓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개의 부모나 교사는 완벽한 인간을 연출하고자 한다. 10년 동안 스포츠센터에 다니면서 체중을 200g도 줄이지 못하는 여자가 ‘결정한 것은 꼭 끝까지 해내세요.’하고 어린이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로 봐서는 어린이가 신뢰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다음의 남동생과 그 아들의 대화를 참조. “링컨은 네 나이 때에 10마일정도나 되는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장작을 패고, 촛불로 공부를 했었단다.”, “케네디는 아빠 나이 때에 벌써 대통령이었어.”)
오히려 나는 부모나 교사가 자기의 결점이나 실패를 여러 사람에게 보이고 주변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른이라도 실패할 수 있고, 결점이 고쳐지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가르치는 것이다.(165p)

어쨌든 낫또를 좋아한다. 특히 겨자소스랑 날계란을 넣어서 뒤섞고, 그것을 따뜻한 밥에 섞지 않고 밥만 먹는 것을 좋아한다. 또 낫또에 된장과 새순을 무쳐, 딸기 얹힌 쇼트케이크에 두껍게 바른 것을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게다가 그 낫또가 든 쇼트케이크를 먹고 있는 사람한테 멀리 떨어져서 비프스테이크를 먹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198p)

 


ㅡ 츠지야 켄지, <홍차를 주문하는 방법> 中, 토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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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22

읽음

ㅡ 기타노 다케시, <다케시의 낙서 입문>,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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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19

필립 로스의 마지막 소설이다. 마지막이라고 뭔가 특별한 것을 기대할 필요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다. 그냥 필립 로스 소설이다. 얄짤없이 드라이한 묘사로 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157p)

하느님 이야기를 하자면, 인디언 힐 같은 천국에서 하느님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1944년 여름 뉴어크에서는―혹은 유럽이나 태평양에서는―그렇지 않았다.(179p)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의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그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243p)

“그 친구는 앵글우드 학군에서 일자리를 얻었어. 부인하고 애들을 데리고 그리고 올라갔지. 아니, 나는 그 친구를 만나지 않네.” 그러더니 그는 침묵으로 빠져들었고, 그가 자신에게 없는 것은 그냥 없이 산다고 금욕적으로 주장했음에도 그렇게 많은 것을 잃은 것에 그가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았으며, 이십칠 년이 지났음에도 일어났거나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여전히 궁금해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그 수많은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 더없이 분명해졌다―그 가운데는 자신이 지금쯤 위퀘이크 고등학교 체육 프로그램의 책임자가 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271p)

그러나 세상에서 망가진 착한 소년만큼 구원하기 힘든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혼자 자신만의 상황 감각을 키워왔기 때문에―또 간절하게 갖고 싶어했던 모든 것을 갖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내 힘으로는 그가 자기 삶의 끔찍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몰아낼 수도 없고 그와 그 사건의 관계를 바꾸어놓을 수도 없었다. 버키는 똑똑한 사람도 아니었고―똑똑했다면 아이들에게 체육을 가르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결코 태평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대체로 재미가 없는 사람이었으며, 의사 표현은 정확했지만 재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평생 풍자나 아이러니가 섞인 말은 해본 적도 없었고, 우스개나 농담을 던지지도 않았다―대신 가혹한 의무감에 시달리면서도 정신의 힘은 거의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 시간이 갈수록 그의 불행을 강화하고 치명적으로 확대하는 이야기에 아주 심각한 의미를 부여해 큰 대가를 치렀다. 챈슬러 놀이터와 인디언 힐 양쪽에 초래된 대재난은 그의 눈에 자연의 악의에 찬 부조리가 아니라 그 자신이 저지른 큰 범죄로 보였고, 이런 생각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한때 소유했던 모든 것을 내놓고 인생을 망쳤다. 버키 같은 사람의 죄책감은 남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지만, 사실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 사람은 구제 할 수 없다. 그가 하는 어떤 일도 그가 안에 품은 이상에는 이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책임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절대 모른다. 그는 절대 자신의 한계를 믿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고통에 체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엄격한 선을 천성적으로 짊어지고 있어, 자신에게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반드시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불구인 남편을 얻는 것을 막는 데서 가장 큰 승리감을 맛보며, 그녀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가장 깊은 욕망을 부인하는 것은 영웅적 행동이 된다.(273~275p)


ㅡ 필립 로스, <네메시스>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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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15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듯이 쾌남의 자세로 솔직하게 지르는 글쓰기가 일품이다. 역자가 후기에서 말하듯이 어느 누구의 심기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아무런 정치적 입장도 견해도 없이 쓴 글이라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하며, 그런 글이 있다고 한들 과연 글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만 봐도 기함하며 쓰러질 것이다. 본디 유머란 누구나 풍자와 희화화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희화화는 원래 'fair'하지 않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 글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코미디다. 유럽 여행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으려고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얼른 내려놓고 다른 책을 찾아보는 게 옳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에서 유럽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었...고 카프리 같은 경우는 꼭 가보고 싶기도 하다.

움베르토 에코는 워낙 글을 화려하게 쓰고 곳곳에 인문학적인 레퍼런스와 비유가 많지만, 빌 브라이슨은 아주 쉽게 쓴다. 빌 브라이슨의 대표적인 대중교양서인 ‘거의 모든 것의 역사’외에도 여행기를 빙자한 ‘투덜 에세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출간되어 있으므로(절판이 많아서 빌려 읽어야 하겠지만) 더 읽어봐야겠다.

함메르페스트는 준비 운동치고는 다소 오래 걸린 감이 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할 참이다.(나에게 본격적인 여행이란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 여행을 말한다.) 나는 돌아다니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영국에는 도저히 들어오지 않을 영화의 포스터도 구경하고 움라우트(독일어의 특수 기호)와 세디유(대개 c 밑에 붙는 s 모양의 기호)가 잔뜩 붙은 각종 상품과 상점 안내문, 그리고 주차금지 표지판 비슷하게 생긴 문자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그 나라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전혀 히트할 가능성이 없는 대중가요도 듣고, 나와는 평생 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전화 박스 사용법부터 저 식품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 도무지 친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국적인 곳에 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어리둥절해하는가 하면 매료되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근사한 대륙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한 시간만 가면 주민들의 말도, 음식도, 업무 시간대도 다르고, 주민들은 한 시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면서도 묘하게도 비슷한 곳, 나는 이런 근사한 대륙의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p57)

나는 흐르는 물을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383p)

ㅡ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中,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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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8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소세키의 소설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겠지만 소세키의 소설에 관심이 있다면 이 소설로 시작하는 게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소설이긴 하지만 소세키의 자전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아서(소설 속 주인공인 겐조와 현실의 나쓰메 소세키를 거의 동일시 해도 될 정도) 그 점을 생각하면서 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

 


그는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자마자 곧장 서재로 들어갔다. 6조의 좁은 다다미방에는 언제나 겐조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일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훨씬 강하게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자연히 그는 언제나 안절부절못했다. (...) 그를 아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신경쇠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런 상태를 단순히 자신의 성격 탓이라 믿고 있었다.(12p)

그는 독선가였다. 처음부터 아내에게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그 점에서는 남편의 권리를 인정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남편의 권리를 인정하는 반면, 마음속에는 언제나 불만이 있었다. 매사에 우격다짐으로 나오는 남편의 태도는 결코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왜 좀더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가 하는 서운함이 항상 그녀의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편의 마음을 열게 하는 재주나 기량을 자신이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에는 무관심했다.(41p)

그는 좀처럼 울지 않는 성격이면서도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사람, 정말 눈물이 나게 하는 일이 왜 자신에게는 없을까 생각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내 눈은 언제라도 울 준비가 되어 있는데.’(171p)

‘떨어져 있으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멀어지지만, 함께 있으면 설령 원수지간이라 하더라도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지. 결국 그것이 인간이니까.’(177p)

‘그러나 지금의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겐조는 불가사의함을 느꼈다. 그 불가사의함에는 주변 상황과 끝까지 잘 싸워냈다는 자부심도 꽤 섞여 있었다. 그리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이미 만들어진 것처럼 여기는 의기양양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았다. 과거가 어떻게 현재로 발전해왔는지 의심해보았다. 그러나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신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와 시마다의 관계가 끊어진 이유는 현재 때문이었다. 그가 오쓰네를 싫어하는 것도, 누이나 형과 동화할 수 없는 것도 이 현재 때문이었다. 장인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도 현재 때문이 틀림없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현재를 만들어 낸 겐조는 참 딱한 존재였다.(247~248p)

‘당신은 아이를 가져서 행복할 거야. 그러나 행복을 다 누리기도 전에 당신은 이미 많은 희생을 치렀어. 앞으로도 당신이 알아차리지 못할 희생을 얼마나 치러야 할지 몰라. 당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참 딱한 사람이야.’(253p)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278p)

ㅡ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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