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
이런 석조 요새들 가운데 어딘가에서 삶이 다할 때까지 지나간 시간과 지나가는 시간을 연구하는 일에만 파묻혀 산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진실로 자기 안에만 틀어박혀 살 수는 없으며, 우리 모두는 언제나 크든 작든 의미 있는 일을 계획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에, 마지막 몇 해를 아무런 의무에도 매이지 않고 살고 싶다는 내 안에 떠오른 꿈 이미지는 벌써부터 오후를 뭐라도 하면서 보내야겠다는 욕망에 밀려나버렸다. 그리하여 어찌 된 영문인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모장과 연필, 입장권 한 장을 손에 들고 페슈 미술관 로비에 들어와 있었다.(10p)
누가 그들을 기억하겠는가, 누가 대관절 기억이라는 것을 하겠는가? 피에르 베르토는 삼십 년 전에 이미 인류의 변화를 내다보면서, 기억과 보관과 유지는 주거지의 밀도가 낮은 시대에만, 즉 우리가 만들어낸 물건들이 많지 않은 데 반해 공간만은 넉넉했을 시대에만 삶의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에는 기억과 보관과 유지 중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었고 그건 죽은 뒤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누구든 한 시간이면 족히 타인에게 갈 수 있고 대체 가능한 존재로 사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인구 과잉에 기여하는 20세기 말 도시의 삶은, 불필요한 것을 지속적으로 내다버리는 것으로,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 모두, 가령 청소년 시절, 유년 시절, 출생, 선조와 조상을 남김없이 잊는 것으로 귀착된다. 최근 각별한 사이였던 사람들을 웹상에서 매장하고 방문할 수 있도록 온라인에 개설된 이른바 ‘추모 공원’은 한동안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 묘지 역시 얼마 지나면 대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고, 과거 전체는 형체도 알아볼 수도 없는 말 없는 덩어리가 되어 녹아 없어지리라. 그러면 우리는 기억이란 것을 알지 못하는 어느 현재를 살아가면서, 또 아무것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는 미래를 마주하면서, 종국에는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또는 가끔씩이라도 되돌아오고 싶은 마음조차 품지 못한 채 삶 자체를 놓아버리게 되리라.(42-43p)
어두운 과거가 있는 정치 공동체에서 그 공동체 건립에 선행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려는 의지는 새로운 질서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 질서의 존립 여부는 과거를 현실이 아닌 것으로 부정하고 승자와 동일시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121p)
아메리는 연민과 자기연민 둘 다를 억제하는 ‘절제understatement'라는 일반적인 전략을 활용한다. 이는 니덜랜드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박해 피해자들이 쓰는 글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자기에게 가해진 고문을 전하는 아메리의 보고 역시 고통의 파토스보다는 그의 몸을 상대로 진행된 절차의 어마어마한 광기를 강조하는 어조를 띠고 있다. “벙커의 둥근 천장에는 끄트머리에 강철 갈고리가 달린 사슬이 도르래에 달려 있다. 나는 그 장치로 끌려갔다. 갈고리는 등뒤로 묶인 양손 수갑에 연결되었다. 다음으로 사람들은 내가 매달린 그 사슬을 위로 잡아당겼다. 내가 바닥에서 1미터 정도 떠 있게 될 때까지 말이다. 인간은 그렇게 서서, 아니 그렇게 등뒤에 묶인 두 손에 매달려서, 반쯤 기울어진 채 근력에 의지해 아주 잠깐 버틸 수는 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마지막 힘까지 쓰고 나면, 이마와 입술에 땀이 맺히고 숨은 헐떡거리고,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가 없게 된다. 공모자는? 주소는? 접선 장소는? 이런 말들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단 하나의 신체 부위, 즉 어깻죽지에 모인 생명은 반응하지 않는다. 그 생명은 안간힘을 쓰느라 완전히 바닥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신체적으로 강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라 해도 오래 버틸 수 없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꽤 빨리 포기해야 했다. 그러자 내 몸이 지금 이 시각까지 잊지 못하는, 부서지고 빠개지는 소리가 어깨에서 났다. 어깨 양쪽에서 구관절이 튀어나왔다.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탈구를 일으킨 것이다. 어깨가 완전히 탈골되어 허공으로 툭 떨어진 내 몸은 머리 위 뒤쪽으로 높이 치들려 묶인 두 팔에 매달려 있었다. 라틴어 토르구에레torquere에서 온 고문tortur이란 말은 ’탈구되다‘라는 뜻이다. 어원학적으로 얼마나 명쾌한 실물교육인가!”
기묘하게 객관적인 말투로 보고하던 문단을 도발적이게도 유머 비슷하게 전환하며 마무리하는 마지막 말은, 아메리로 하여금 그토록 극단적인 경험을 복기할 수 있게 해준 무감각의 태도가 여기에서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흔들릴지도 모르는 지점에서 아이러니라는 수단을 꺼내든 것이다. 그는 스스로가 언어적 전달 능력의 극한에서 작업하고 있음을 안다. “자신의 신체적 고통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고문자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문을 받을 때 인간이 어떻게 완벽히 “고깃덩이로 전락”하는지, “우리 육체성이 어떻게 상상 가능한 최고의 강도로 고조되는지” 추상적으로 성찰하는 것뿐이다. 극한의 고문, 그리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고통의 감각을 아메리는 “다른 논리적 방법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죽음에의 접근 과정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그날 이후 어디나 죽음을 끌고 다니는 사람이 출발점으로 삼는 학문이다. 아메리는 고문이 “지워지지 않는 성격을 띤다”고 말한다. “한번 고문을 당하면 영원히 고문당한 사람으로 남는다.” 이렇게 아메리는 자신의 사례를 일말의 비감도 섞지 않고 간단명료한 인식으로 전달한다.(178-179p)
아메리는 페터 바이스처럼 이런 위기 상황에서 빠져나와 동시대 문학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언어의 정밀성에 무사히 도달함으로써 그렇지 않았다면 접근 불가능했을 자유의 공간을 쟁취했다. 하지만 아메리의 경우 이렇게 다시 얻은 언어적 능력만으로는 그 불행을 완전히 몰아내기에 충분히 않았다.
(...)
그리고 우리를 명료함의 위로로 채워주는 것처럼 보였던 그 단어들은 스스로의 불치 상태를 적시한 것일 따름이었고, “소통될 수 없는 두 세계”사이를, 즉 “죽음의 감각을 지닌 사람과 그런 감각을 전혀 지니지 않은 사람 사이를”, 그리고 “한 순간만 죽을 뿐인 사람”과 “죽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사이를 가르는 선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기록 행위는 죽음을 모면한 자가 더이상 살아 있지 않다고 깨달을 수밖에 없는 순간 해방이 되기도 하지만 해방의 무효화가 되기도 한다.
죽음을 경험했는데도 그 죽음을 넘어 연장되어버린 실존의 중심에 자리한 감정은 죄책감, 저 생존의 죄책감이다.(188-189p)
문학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문학의 소용은, 아마도 어떤 인과적 논리로도 해명할 수 없는 특별한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파악하는 법을 배우는 것, 단지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닐까.(285p)
시행에서 죽음의 경계를 가로질러 두루 조망하는 시선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지만, 동시에 크나큰 불의를 당한 사람들에 대한 묵념을 통해 빛을 받고 있다. 글쓰기의 형식은 많고 많다. 하지만 오직 문학적인 글쓰기에서만이 사실을 등록하고 탐구하는 것을 넘어 재건하려는 노력이 그 관건으로 대두한다.(286p)
ㅡ W. G. 제발트, <캄포 산토> 中,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