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24

 

정확히 10년 전 이맘때쯤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10년 전 대학교 1학년 때 내게 이 책은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의 20대 초반은 대학생이라면 으레 그래야 당연하다는 듯 사회의 제문제에 관심과 열정이 충만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담아낼 만한 지식이 부족했다. 생경한 용어가 수시로 나오고 사회에서 당연시하던 용어, 관념, 사고방식 등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사유하도록 끊임없이 촉구하는 이 책은 내게 잠깐이나마 일상생활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게 만들고 내 생활 전체를 반추하게 했다.

 

이번에 읽었을 때는 어땠을까? 10년의 세월이 흐른 탓도 있고, 내가 그때보다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 많아졌는지 그때만큼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슬픈 건 일부 개정되었으나 무려 10년 전 이 책에서 논의했던 문제들 대부분이 해결되긴커녕 오히려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며, 낡아 보여야 마땅할 이 책이 2016년의 현재를 사는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새로울 책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이 책에 대한 칭찬이 결코 아니다. 당대의 현실, 과학기술 등을 다루는 책은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낡아 보이고 그래야 마땅하다. 가령 뇌과학을 다루는 책은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1년 전의 연구 성과를 담은 책을 1년 후에 읽어보면 옛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노예제라는 당대의 현실 문제를 다룬 책도 그 시대에는 첨예한 논쟁을 낳았겠지만, 지금이야 ‘인권’이라는 개념 아래 한 인간이 인종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인간을 노예로 삼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동의한다. 사회가 변화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그에 걸맞게 바뀌는 것이 당연할진대 10년 전의 논의가 지금도 유의미하게 언급되고 쇄를 거듭하여 읽힌다는 사실은 사회에도 우리 자신에게도 결코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없다.

 

최근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남자들의 반응을 보자니 도대체가 이천십몇 년의 문명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사회의 무시와 냉대로 인한 열등감과 열패감으로 여자를 수차례 찔러 죽여 놓고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죽였다.’고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처음에는 인터넷 댓글만 그런가 했더니 직접 그 장소까지 방문하여 ‘여자들 조심하라, 남자가 화나면 이렇게 힘으로 보여 준다.’ 같은 포스트잇을 붙이는 자가 내 주변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만 아연해진다. 살인자의 정신병력만 문제 삼아 단순히 정신이상자의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치부하는 것은 너무 안일한 처사이며, CCTV를 보면 누가 봐도 여자로 대상을 정하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명백한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한 살인을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불러야 하나.

 

 

 

혁명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재정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6p)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을 때는 다른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 한 가지 목소리마저도 알기 어렵다. 의미는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하며, 인식은 경계를 만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44p)

 

완벽한 어머니 일 수행의 합격선은 어머니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도달 불가능하다.(66p)

 

 

 

ㅡ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中,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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