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7

 

짧지만 힘 있는 작품이었다. 카뮈, 도스토예프스키, 카프카가 섞인 느낌. 문체는 전반적으로 건조한 편인데 신기하게도 묘사들이 생생해서 그림이 잘 그려짐. 은근히 시적인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은데 번역된 게 이것 말고는 없네.

 

 

 

여자 아나운서는 남색 상의에 살짝 파마를 한 단정한 이미지였는데 말은 속사포였다. 총알 한 상자를 쟁여두고 사방으로 쏘아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틀린 발음 하나 없었다. 분명 오랜 훈련을 받았을 터였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녀가 어떤 뉴스를 전하더라도 머리를 거치지 않은 채 입만 움직이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기쁜 소식이든 슬픈 소식이든, 분통 터지든 무덤덤하든 상관없이 그녀는 모든 사건에 대해 엄숙한 태도를 유지했다.(99p)

 

 

여행, 노동, 전쟁, 섹스 등 인간 세상의 모든 일에 육신과 시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가로막는 장벽이 있다. 그러나 여기, 아무 할 일 없고 무슨 일이 있어도 금방 끝내버릴 이 좁은 감옥에서, 나는 항상 시간이 팔을 활짝 벌린 채 다가오는 것을 똑똑히 바라봤다. 시간은 엄청난 위력을 가졌으며 빈틈이 없고 모든 곳에 존재한다. 육신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있을 감정이 없다. 너의 참회를 듣지도 않고 너의 슬픔을 봐주지도 않는다. 그저 산사태나 만조의 파도처럼 온 방 안을 가득 메우며 너를 파묻고 능지처참시킨다. 그것이 너를 파묻어 온몸이 그 무게에 짓눌릴 떄 그것은 한 덩어리였고, 그것이 너를 능지처참하여 피부 곳곳을 칼로 도려낼 때 그것은 예리했다. 그것은 저항할 수가 없으며, 당신을 지극히 천천히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

죽음은 번개나 감탄사가 아냐. 순식간에 다가와 사납게 찌르는 검 같은 게 결코 아니란 말이다. 그건 하나의 과정이야. 모든 기관이 차례로 고장이 나고, 온수팩이 얼음이 되어가는 과정 말이다. 그것이 천천히 다가오는 걸 감내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구나. 얘야,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건 누군가 맞은편에 누워 나랑 같이 죽는 거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그런 일이 벌어진 경우는 거의 드물지. 내가 보고 있는 건 건강하고 성장하는 너희들이다. 너희는 억지로 눈썹을 찌푸리고 눈물을 흘리지만, 사실 너희는 뼛속까지 경쾌하고 활발한 기운을 내뿜고 있지. 너희 몸 어디 하나 비 온 뒤 새싹처럼 생기발랄하지 않은 곳이 없어. 나는 이미 쇠약해졌다. 너희가 오면 이 사실을 가중시킬 뿐이야. 너희는 나를 감방에 가두고, 자신은 바깥에서 유치원 꼬마들처럼 둘러앉아 노닥거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 노니는 웃음소리가 거대한 쇠절구로 변하여 하늘에서 조금씩 내리누른 결과 나는 바닥에서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너희는 나에게 수치를 안겨줬어. 우리 사이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다들 꺼져. 아니면 총으로 나를 죽여버려라.(137-139p)

 

 

가면서 뒤돌아보니, 콩제의 모친은 응석받이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었다. "딸아, 내 딸아." 주위 사람들이 부축해 일으켰지만 그녀는 울고불고 난리를 멈추지 않았다. 이 모든 게 일종의 의식처럼 진행되었다. 그녀는 이 정도 소란도 피우지 않으면 엄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순수한 고통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순수한 고통은 딸의 초상만 남겨진 텅 빈 공간에 홀로 있을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고, 오장육부가 모두 사라진 것 같은 공허만 마주하게 된다.(156-157p)

 

 

"그렇다면 자신을 충만하게 할 다른 의미 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 보는 건 어땠을까요." 재판장이 말했다.

"시도는 해봤죠. 저는 초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사막에 물방울을 던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증발되어버리잖아요. 저는 항상 일이 시작될 때 그것의 피할 수 없는 결말을 봐버립니다. 예를 들어 사과를 먹으면 결국 쓰레기통에서 나뒹굴 씨가 떠오르고요, 축배를 드는 장면에서는 가득 쌓인 설거지거리와 텅 빈 식당을 고독히 오가는 고양이가 눈에 그려집니다. 사랑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공중으로 쏘아올린 불꽃 같은 거죠. 발기부전 상태로 섹스를 염원하며 하늘 저편에 아직 빛이 있다고 자신을 속여보지만, 불꽃이 스러진 자리엔 사실 암흑뿐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육신은 결국엔 삭고 쇠약해져, 자기 똥오줌도 못 가릴 정도로 존엄이 사라집니다. 그러다 결국 죽게 되겠죠. 우리가 죽은 미래의 어느 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땅에서 썩은 뼛조각을 파내어 입에 물고 뛰어 다니겠죠. 바로 우리의 뼛조각을요."

(...)

전 그저, 몸은 젊은데 노쇠한 영혼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말하려는 겁니다. 이미 저는 그 무엇도 믿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기러기가 시적 감성과 아무 상관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기러기가 왜 그렇게 납니까? 돼지랑 다를 것도 없죠. 그냥 추위를 피해서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는 거잖아요.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동물보다 고차원적인 이유는 동물들처럼 혐오스러운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들과 똑같이 혐오스러운 일을 한다는 걸 인간은 의식합니다. 우리는 음식을 탐하고 땅을 빼앗고 자원을 파헤치고 원시적인 성욕에 좌지우지됩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다 하면서, 그저 수치를 위해 의미를 발명했습니다. 속옷을 발명하는 과정이나 다를 게 없죠. 그런데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의미라는 단어 자체도 무의미해지죠.“

"어쩌면 잘못되었을지도 모를 이 깨달음 때문에 저는 냉담하고 무기력해져 어떤 일을 해도 시들해지기만 하더군요. 저의 생명은 이 때문에 흐물흐물 풀어져 중풍 환자처럼 멍하니 누워 있기만 했습니다. 날이 바뀌어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제와 똑같은 변함없는 하루였습니다. 시간은 응고되어 천천히 흐르다 못해 거대한 시멘트를 뒤집어쓴 꼴이었습니다. 매일 그 속에 잠겨 숨을 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습니다. 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졌을 때 결심했죠. 나 스스로 처리할 수 없다면 당신들이 처리하도록 넘기자.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면 당신들이 선택하도록 모두 넘기자. 당신들은 쫓고, 나는 도망치고, 이 얼마나 간단합니까. 저는 원시 사회에서 먹이사슬의 말단에 위치한 동물처럼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미친 듯 날뛰며 무의식의 충만감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생명이란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돌아갈 것, 뭘 하든 안 하든 마찬가지로 소멸할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최소한 저는 그걸 통해서 시간과의 독대를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나 자신과 시간 사이에 어떤 장막을 세우고 싶었습니다.(186-189p)

 

 

그들 또한 결국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 살인 사건을 해석하고들 있겠지. 이를테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도둑질하려다가, 대입 스트레스 때문에, 사회적 차별이 원인이 되었다는 등등의 사회에 공표할 만한 적당한 해석을 하나 찾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알게 되는 걸 원치 않는 것이다. 너무나 무료한 한 사람이 고작 쥐와 고양이 게임을 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이 사건을 기획하면서 만든 최초의 계획은 고작 네 문장이었다.

 

목적: 충만감

방식: 도망

수단: 살인

자금: 일만 위안

 

이것이 내 유서의 전부다. 당신들 역사에 이러한 한 사람이 존재했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안녕.(191-192p)

 

 

 

ㅡ 아이, <도망자> 中,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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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0

 

 

재미없다.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에요. 그 부인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욕망 때문에, 혹은 관습에 따라 결혼했어요. 아이를 하나 낳았고요.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는 안도 알잖아요."

"너보다는 잘 모를 것 같은데. 하지만 거기에 대해 아는 건 있지." 안이 비꼬았다.

"그리고 그 아이를 키웠어요. 부인은 바람을 피우지는 않았을 테니 그런 유의 불안이나 문제는 알지 못했겠죠. 그녀는 많은 여자들이 간 길을 따랐고 알다시피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죠. 젊은 시절 중산층 아내이자 어머니가 되었고 그 상황에 안주해 거기서 벗어나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어요. 그 부인은 이것도 하지 않고 저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뭔가를 성취하지 않았다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다고요."

(...)

"요즘 유행하는 생각이구나. 하지만 그건 가치가 없어." 안이 말했다.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나는 내 생각을 말했지만, 사실 그건 내 견해라기보다는 어딘가에서 들은 말이었다. 어쨌든 나의 삶, 아버지의 삶은 그런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안은 그것을 경멸함으로써 내게 상처를 주었다. 사람은 뭔가 대단한 가치에 목표를 둘 수도 있지만 경박한 가치에 집착할 수도 있다.(50-51p)

 

 

엘자는 며칠 동안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 주가 빠르게 흘러갔다. 유일하게 행복하고 유쾌한 칠 일. 우리는 가구를 새로 들인다거나 시간표를 짠다거나 하는 복잡한 계획을 세웠다. 그런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듯 아버지와 나는 무모하게도 빡빡하고 실행하기 어려운 계획을 짜면서 즐거워했다. 우리가 그런 계획을 실제로 실행할 것이라고 믿기나 했던가? 매일 낮 12시 반 같은 장소로 가서 점심을 먹고,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그런 다음 외출하지 않고 집에 머물러 있는 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아버지는 믿었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가볍게 포기하고 질서로, 품위 있고 체계적인 중산층의 생활로 들어가는 것을 격찬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나에게 그랬듯이 아버지에게도 공중누각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했다.(70-71p)

 

 

나는 사랑받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고 나 자신과 화해하고 싶었다. 아버지와 안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는 사랑의 밤이 기다리고 있었고, 내게는 베르그송이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려고, 나 자신을 측은히 여기려고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이미 나는 안을 측은히 여기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패배시키리라는 것을 확신한 사람처럼.(82p)

 

 

"그들이 하는 말이 얼마나 단조롭고······ 뭐라고 해야 좋을까······? 조잡한지 깨닫지 못했니? 계약이니, 여자들이니, 파티니 하는 얘기들이 지루한 적 없었어?"

"알다시피 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십 년을 보냈어요. 그들은 행실에 단정한 면이라곤 없는 사람들이고 그 점이 여전히 매력적이에요.“

그것이 마음에 든다는 말까지는 차마 하지 못했다.

"이 년이나 지났는데······. 그건 논리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란다. 감수성이나 직감력의 문제지······." 그녀가 말했다.(154p)

 

 

그제야 안은 얼굴을 들었다. 여느 때의 모습은 간곳없이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안은 울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공격한 대상이 하나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개체였음을. 그녀는 조금 내성적인 어린아이였다가 사춘기 소녀였다가 이윽고 여인이 되었을 터였다. 그녀는 마흔 살이었고 혼자였으며 한 남자를 사랑했고 그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고자 했다. 십 년, 어쩌면 이십 년을. 그런데 내가······. 그 얼굴, 지금 그녀의 그 얼굴, 그 얼굴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차 문에 기대어 온몸을 떨었다.(174-175p)

 

 

 

ㅡ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中,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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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9

 

 

동유럽의 프루스트라 불린다는데 내가 프루스트는 안 읽어봐서 그건 잘 모르겠고, 좀 덜 난해한 제발트나 올가 토카르추크 느낌.

 

 

 

빛이라면, 그것을 사진으로 포착해 보존하려는 안쓰러운 시도나마 해볼 수 있다. 혹은 모네처럼 같은 성당을 하루의 여러 시간대에 그려볼 수도 있다. 모네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ㅡ성당은 전략일 뿐, 빛을 포착하기 위한 덫일 뿐이었다. 하지만 냄새라면, 그런 비결이 우리에겐 없다. 필름도 기록 장비도 없으며, 수천 년 동안 그런 도구는 발명된 적이 없다. 인류는 이것을 어떻게 간과할 수 있었을까?

향을 기록하는 장비가 없다는 사실이 진정 놀랍지 않은가? 실은 하나가 있긴 하다. 기술보다 앞서 존재한 단 하나의 도구, 가장 오래된 아날로그 도구. 그것은 물론 언어다. 당분간은 언어 말고 다른 도구가 없으므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여러 향기를 말로 포착해 또다른 노트에 추가해야 한다. 우리는 묘사해봤거나 비교해본 향기만을 기억한다. 놀라운 점은 이런저런 냄새에 대한 이름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느님 혹은 아담은 일을 제대로 끝마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빨강, 파랑, 노랑, 보라 등등의 이름이 있는 색깔과는 다르다. 향기는 우리가 직접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향기는 언제나 비교를 통해, 묘사를 통해 인식된다. 제비꽃 냄새가 난다. 토스트 냄새가, 해초 냄새가, 비 냄새가, 죽은 고양이 냄새가····· 하지만 제비꽃, 토스트, 해초, 비, 그리고 죽은 고양이는 향기의 이름이 아니다. 이 얼마나 부당한가. 아니 어쩌면 이 불가능성 아래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다른 징조가 숨어 있는지도·····(73-74p)

 

 

치아의 고고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치아의 필링과 사용된 재료의 종류에 따라 시대를 십 년씩 명확히 구분하는 일은 분명 가능할 것이다. 오호, 나의 치과의사는 항상 말한다. 환자분 치아는 90년대의 간략한 역사로군요. 당시의 혼란, 위기, 메탈세라믹에 대한 의기양양한 첫 실험, 신경치료의 대중화, 비뚤어지게 박은 치아 기둥, 완전한 악몽이에요. 치과의사가 고고학자라면·····(105p)

 

 

나는 기억의 텅 빈 굴에서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것은 향기의 기억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후각이 일찍 형성되는 감각이기 때문일 테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은 맨 마지막에, 머리를 땅에 처박고 냄새를 킁킁거리는 작은 동물처럼 떠나간다.(121p)

 

 

나는 도망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다른'세상에서 돌아왔고, 시간을 뒤섞어버렸다. 그런 경우에는 치료를 중단하고 퇴원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사람이 직접 퇴원을 요청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바깥에서는 실제 시간이 흐르는데 여기에서는 우리가 중고 제품 같은 과거를 그들에게 속여 팔고 있다고 말하는 상황을 상상했다. 공동체에 입소하면 환자들(적어도 병의 단계가 초기인 환자들)과 그들의 가족은 이것이 실은 치료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실험의 순도를 위해서는 다른 현실의 입자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는 편이 더 나았다. 환경이 다른 시대에 오염되지 않도록 멸균 상태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도망자가 공동체로 돌아온 뒤 한 행동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저녁식사 후 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바깥의 도시에서는 모두가 어떤 실험 대상이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람들이 미래에 사는 척 연기하고 있더라고, 자네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귀에 전선을 연결하고 손에는 작은 텔레비전을 든 채 걸어다니면서 화면에 눈을 박고 고개를 들지도 않아. 돈을 엄청 쏟아부어 SF 영화를 찍고 있거나, 아니면 앞으로 오십 년 뒤에 삶이 어떻게 될지 실험을 하고 있나봐. 그것이 도망자가 공공연히 밝힌 결론이었다.(136-137p)

 

 

과제는 다음과 같았다. 미래에 심각한 결손이 발생할 때 우리는 어떻게 내일을 위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벌 수 있을까? 간단한 대답은 바로, 약간 뒤로 가는 것이었다. 뭐든 확실한 게 있다면 그것은 과거다. 오십 년 전은 지금부터 오십 년 후보다 더 확실하다. 이십, 삼십, 혹은 오십 년을 뒤로 간다면 딱 그만큼 앞서게 된다. 맞다, 그것은 이미 살아본 시간, '중고' 미래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미래는 미래다. 그래도 지금 우리 앞에 입 벌린 무보다는 낫다. 미래의 유럽은 이제 가능하지 않으므로 과거의 유럽을 택하자. 간단하다. 미래가 없을 때는 과거에 투표하는 것이다.(184-185p)

 

 

얘기가 거기서 살짝 옆길로 샜다. 용서하시길, 하지만 과거는 샛길과 일층의 작업장과 분필로 표시한 패턴과 복도로 가득하다.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들에 대해 여백에 쓴 메모들ㅡ나중에 가서야 우리는 과거라는 거위가 바로 거기에,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음을 문득 깨닫게 된다.(253-254p)

 

 

나는 궐기대회의 세부 처리가 상당히 절묘했다는 점을 떠올렸고 그 정도의 말을 해주었더니 뎀비는 꽤 기분이 좋은 듯했다. 스피커 소리를 갈라지게 한 게 좋았어. 일부러 그런 거지?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음향 상태 확인 과정의 실수 말이야. 음향 기사가 욕하고····· 사람들은 그런 걸 기억해. 내 말 믿어도 돼, 하나같이 똑같았던 사회주의 시절의 무수한 궐기대회에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정확히 그런 거야, 그런 실수. 그리고 지금 그걸 재현해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때로 곧장 돌아가는 거지.(290-291p)

 

 

어떤 나라가 가진 유일한 자산이 불행이라면 왜 불행을 단념한단 말인가ㅡ그들에게 슬픔이라는 원유는 유일하게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 깊이 팔수록 더 많이 채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국가적 불행의 무한한 매장고. 민족과 국가가 저마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생각은 거대한 환상이자 자기기만이다. 행복은 실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견디기도 힘들다. 그런 휘발성 물질, 깃털처럼 가벼운 그런 환영, 바로 코앞에서 터저버려 눈에 매운 거품이나 튀길 비눗방울을 갖고 뭘 하겠는가?

행복이라고? 행복은 볕에 내놓은 우유처럼, 겨울날의 파리나 초봄에 핀 크로커스처럼 금방 부패한다. 행복의 등뼈는 해마의 등뼈처럼 연약하다. 훌쩍 등에 올라타 멀리 내달릴 수 있는 튼튼한 암말이 아니다. 교회나 국가의 기틀이 될 주춧돌이 아니다. 행복은 역사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거기에는 전투, 집단 학살, 배반, 어느 대공의 유혈 낭자한 살해 따위만 들어갈 수 있다) 연대기나 실록에도 실리지 않는다. 행복이란 독해 책과 외국어 숙어집, 그중에도 초급 교본에나 나올 뿐이다. 행복은 언제나, 아마도 문법적으로 가장 쉬워서겠지만, 현재시제로 이야기된다. 오직 현재에서만 모두가 행복하고 태양은 빛나고 꽃은 향기롭다. 우리는 해변에 가는 중이에요, 여행에서 돌아오고 있어요, 실례지만 근처에 좋은 레스토랑이 있을까요·····

검劍은 행복을 벼려 만들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원료는 연약하고 부스러지기 쉽다. 행복은 웅장한 소설이나 노래나 서사시에 적합하지 않다. 노예의 사슬도, 함락된 토로이도, 배반도, 날이 무뎌진 검과 부서진 뿔피리를 지닌 채 언덕에서 피 흘리는 롤랑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늙은 베어울프도 없다·····

행복의 깃발 아래로는 군단을 불러모을 수 없다·····

실로 어떤 나라도 불행을 단념하려 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지하 저장고에서 잘 익어가는 와인과 같은 불행을. 국가적이고 전략적인 불행의 비축. 하지만 지금(최초로) 행복을 선택할 순간이 왔다.(331-333p)

 

 

추측하자면, 1968년에는 1968년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누구도, 어이, 이봐, 우리가 지금 살며 경험하는 이것 말이야, 이게 역사에 길이 남을 그 위대한 68이야, 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발생한 지 오랜 뒤에야 발생한다····· 이미 생겨났다고 추정되는 어떤 일이 정말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지연되어 발생한다. 사진을 인화할 때 이미지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나타나듯이····· 1939년도 1939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불확실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두통을 느끼며 깨어나는 아침들이 있었을 뿐.(334p)

 

 

프라하의 봄 이후 파멸의 여름이 찾아왔고, 삶이 부서질 때 늘 그렇듯 모든 것은 자리를 바꾼다. 거리를 행진하던 이들은 그해 여름과 그뒤 모든 여름의 추운 그늘 속으로 사라지고 고분고분한 이들이 밖을 기웃거리다 불려 나와 비어버린 자리를 차지한다. 당신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충돌, 깨진 창문, 망명자, 수감자, 폭행과 강간 피해자, 심지어 살해된 자가 아니라, 훗날 어느 오후에 거리에서 웃고, 함께 어울리고, 당신을 오래 삶에서 내쫓을 그 똑같은 체제 안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 볼 때 미묘하게 찾아오는 오싹한 허무감이다. 역사에는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이 있으니 오륙십 년 정도는 망쳐도 별 탈이 없다. 역사에게 그 정도는 고작 일 초나 될까 말까 한 시간이다. 하지만 역사의 일 초가 일생인 인간-하루살이는 무엇을 해야 하나? 68에 뒤이은 그 오후들 때문에 프라하는 60년대를 선택하고픈 마음이 없었다.(349-350p)

 

 

 

 

 

ㅡ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타임 셸터>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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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0

 

카레르가 3주만에 쓴 데뷔작이라고 한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계속 읽으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여러 번 끊어 읽었다. 책의 완성도는 나무랄 데 없지만 정신적으로 상당히 몰아가는 책이라 힘들었다. 왕국이나 리모노프도 언젠가는...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사무실이나 집에서 그를 정신병자 수용 시설에 처넣지 않고 없었던 일로 하면서 전처럼 다시 시작하자고 암묵적인 합의를 하면, 아마 삶은 다시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영원히 망가져 버릴 것이다. 이 일에 대한 기억 때문만이 아니라 대화 도중에 이 끔찍한 일이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는 위험, 사건의 후유증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 때문에 말이다. 그가 두 사람의 공통된 기억, 어떤 사람 혹은 물건에 대해 아무 뜻 없이 언급할 때 아네스가 창백해지면서 입술을 깨물고 한참 말이 없는 것만 봐도 <또 시작이구나>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다시 와해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지뢰밭 위에서의 생활, 언제 다시 우르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채 더듬더듬 앞으로 나가는 생활, 이런 생활을 어느 누가 견딜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을 상대로 음모가 꾸며졌다는 터무니없는 가정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도망쳤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ㅡ 엠마뉘엘 카레르, <콧수염> 中,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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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6

 

 

'자기만의 방'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그때도 느꼈지만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 자체가 사건 중심의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빨리 읽으려고 하면 쉽게 지치는 것 같다. 인내심을 가지고 최대한 소설 속에서 수시로 바뀌는 등장 인물의 내면에 감정이입을 하니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이유에는 가독성 높은 번역의 덕도 있을 듯하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덜 낯설어서일 수도 있겠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파도', '등대로', '세월' 중 한 권 정도는 더 읽어봐야지.

 

 

 

 

군중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원한 국가의 상징인 국왕과 말을 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 존재가 누군지는, 후에 시간의 잔해들을 면밀히 조사하는 호기심 많은 골동품 연구가들만이 알 수 있으리라. 그때 런던은 풀이 웃자란 오솔길일 것이고, 이 수요일 아침 인도를 따라 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결혼반지를 낀 뼈다귀와 금이빨밖에 남지 않은 채, 먼지에 덮여 있으리라. 그때서야 자동차 속의 얼굴이 누구인지 알려지게 되리라.(27p)

 

 

하지만 흐르는 시간이 두려웠다. 브루턴 부인의 얼굴, 그 무표정한 돌 같은 얼굴 위에서 시곗바늘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 해 한 해 베어져 나간 그녀의 인생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그 남은 시간도 젊은 시절처럼 삶의 색과 맛과 분위기를 만끽하며 보낼 순 없으리라. 젊었을 땐 어느 방에 들어가면 그 방이 자신으로 가득 차는 듯했다. 그래서 들어가기 전 문턱에서 잠시 머뭇거릴 때면, 종종 황홀한 전율을 느끼곤 했다. 발아래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잠수부처럼, 무언가를 부술 듯 위협하다 부드럽게 표면 위로 솟구치는, 진주빛 수초를 뒤집었다 덮었다하는 파도를 내다보는 심정으로.(47p)

 

 

지금까지 수백만 번이나 거울을 들여다봤지만, 그럴 때마다 늘 얼굴에 약간의 경련이 일었다. 그녀는 거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입술을 오므렸고, 그러면 날카롭고, 화살같이 뾰족하고, 명확한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은 자신의 바람을 그러모은 모습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양립할 수 없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존재인지는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세상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라도 만남의 장소를 제공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찬란한 빛을 제공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존재였다. 그녀의 도움을 받는 젊은이들에겐,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다른 면모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결점이나 질투심, 허영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찬에 초대받지 못해 들끓는 감정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감정은 정말 비열하다고 (마침내 머리를 빗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 옷은 어디 있지?(57p)

 

 

"내게 진심을 말해줘, 진심을." 그가 아무리 계속 그렇게 말해도,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돌처럼 굳어버린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심을 말해달라고." 그는 되풀이해 말했다. 그때 갑자기 <타임스>지를 든 늙은 브라이트코프가 불쑥 나타나더니, 입을 벌린 채 그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냥 가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진심을 말해줘." 그는 되풀이해 말했다. 딱딱한 것에 부딪혀 으스러지는 심정으로. 그녀의 표정은 온화하지 않았다. 강철 같고, 부싯돌 같았다. 뼛속까지 뻣뻣해 보였다. 그는 몇 시간이나 눈물을 흘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마침내 그녀가 "소용없어요, 소용없어. 이게 마지막이에요"하고 말했을 때,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떠나버렸다.(94-95p)

 

 

늙는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보상은 바로 이거야. 열정은 여전하지만 지난날의 경험을 천천히 불빛 아래 돌려 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존재에 최상의 향기를 더해주는 힘이지.

끔찍한 고백이지만ㅡ그는 다시 모자를 썼다ㅡ쉰세 살이 되고 보니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필요치 않았다. 인생 그 자체, 인생의 순간순간, 그것의 방울방울, 여기, 이 순간, 지금 이 햇빛 속에, 리젠트 공원에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정말이지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힘이 남았다 해도, 인생의 참맛을 보기에는 남은 인생은 너무 짧을 것이다. 그 남은 세월 동안 생의 기쁨을, 생이 지닌 그늘을 미묘하게 추출해내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그것들이 전보다 더욱 견고해 보이고, 더 이상 개인적이지 않게 다가올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클라리사가 준 고통도 예전만큼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115-116p)

 

 

언제나 똑같았다. 하루가 지나면 다른 하루가 찾아왔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야만 했고, 하늘을 쳐다봤고, 공원을 거닐었고, 휴 휫브레드를 만났고, 그러고 집에 돌아오니 갑자기 피터가 찾아왔다. 또 리처드가 저 장미를 가져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러다가 죽음이 온다니, 언젠가는 끝이 오고야 만다니,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녀가 인생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 모든 순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178p)

 

 

그녀는 아픈 사람들으 좋아했다. 킬먼 양이 당신 세대 여성에게는 모든 직업이 열려 있다고 했으니, 의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장주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동물들도 종종 아프니까, 1천 에이커쯤 되는 땅을 가지고 사람을 부리는 농장주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자신이 부리는 사람들이 사는 오두막에도 찾아가볼 것이다. 이게 서머실 하우스구나. 나는 아주 훌륭한 농장주가 될거야. 이런 생각이 든 것은 킬먼 양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거의 전적으로 서머싯 하우스 때문이었다. 그 커다란 회색 건물은 너무나도 화려하고 장중했다.(198-199p)

 

 

그는 혼자 있어야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야 울 수도 있었다. 이런 묘한 감수성 때문에, 그는 인도의 영국인 사회에서 파멸했다. 적당한 때에 울거나 웃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런던의 우체통 옆에 서 있는 그는, 지금도 자기 안에 울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 그리고 오늘 하루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클라리사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 오늘 하루의 무게가 강렬한 더위로 더욱 무거워졌고, 뒤이어 런던에서 받은 이런저런 인상이 한 방울, 한 방울, 아무도 모르는 그만의 지하실 바닥에 괴어 그를 피곤하게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 완전하고 침범할 수 없는 은밀함 때문에, 인생은 깜짝 놀랄 만한 구부러진 길과 후미진 곳으로 가득 찬 비밀의 정원인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놀래키고 숨 막히게 만드는 것이다. 대영박물관 건너편 우체통 곁에 서 있을 때도, 그는 바로 그런 순간을 맞은 것이었다. 즉 앰뷸런스로 인해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그는 마치 감정의 세찬 흐름에 빨려 높은 지붕 위까지 올라간 것 같았다. 그리고 빨려가지 않은 남은 몸뚱이는, 하얀 조개들이 흩어져 있는 해안가에 벌거벗은 채 남아 있는 듯했다. 바로 그런 감수성이, 인도의 영국인 사회에서 그가 파멸하게 된 원인이었다.(220-221p)

 

 

그녀는 또한 섀프츠버리 거리를 올라가는 그 버스에 앉아서, 자신이 모든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었다. 의자 등받이를 탁탁 치며 '여기, 여기, 여기'가 아니라 모든 장소에 내가 있는 것 같다고 손을 휘두르며 말했었다. 저 모든 것이 나 자신이라고, 때문에 나를, 아니 그 누구라도 제대로 알려면, 그를 완성시켜준 사람들이나 장소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사람들, 예를 들어 거리를 지나가는 여인이나 카운터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심지어는 나무들이나 헛간 같은 것에서도 이상한 친근감을 느낀다고 했었다. 그것은 결국은 초월적인 이론이 되었고, 거기에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작용하여 그녀는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을 (회의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믿게 되었다. 혹은 믿는다고 말하게 되었다. 우리의 외양, 즉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 부분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덧없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부분만이 널리 퍼져 나가 계속 살아남아서, 죽음 뒤에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달라붙거나 어떤 장소들에 출몰하게 될 것이라고. 아마도, 아마도.

거의 30년 동안 그녀와 우정을 유지했던 그에게, 그녀의 그런 이론은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떠나 있기도 했고 여러 일들로 방해도 받았기에(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도 그가 막 클라리사와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을 때, 다리가 긴 망아지 새끼같이 날씬한 엘리자베스가 말없이 들어왔었다) 그들의 실제 만남은 짧고, 파편적이며, 때때로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만남들이 그의 삶에 미친 영향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신기할 정도로.(221-222p)

 

 

사실 그는 가끔 나타나서 맴돌다가 쏜살같이 내려와서 단숨에 먹이를 잡아채는 매나 솔개처럼, 즉 스스로 자족하는 고독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여러 개의 열쇠들과 서류들을 분류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물론 그는 어느 누구보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었다(조끼의 버튼을 채웠다). 그것이 그의 파멸의 원인이었다. 그는 흡연실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고, 대령들과 어울리긴 좋아했고, 골프와 브리지 게임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여자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과의 교제는 아름다웠고, 그들의 사랑은 성실하고 대담하고 위대했다. 비록 장애물들이 있었지만(봉투들 위에는 머리카락이 까만,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삶의 절정에서 피어나는 귀하고도 눈부신 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조차 전적으로 만족할 수 없었고, 언제나 상황을 살폈다(클라리사가 그에게서 무언가를 영원히 앗아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데이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기질상 그는 질투심으로 크게 화를 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묵묵한 헌신에 아주 쉽게 싫증을 냈고, 다양한 사랑을 원했다.(230-231p)

 

 

샐리의 목소리는 그 옛날처럼 황홀한 울림도 없었고, 눈빛도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그래도 클라리사의 눈엔 시가를 피우던 샐리가, 스펀지가 들어 있는 가방을 가지러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복도를 가로지르던 샐리가 눈에 선했다.

(...)
그냐는 대담하고 무모해서 모두를 집중시키며 야단법석을 떠는 타입이었기에, 그런 일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그녀가 죽을 거라고, 순교자처럼 죽을 거라고, 끔찍한 비극으로 인생의 막을 내릴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놀랍게도 결혼식 때 상의에 커다란 꽃 장식을 달았던, 맨체스터에 큰 방직 공장을 가지고 있는 대머리 남자의 부인이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게다가 아들을 다섯이나 낳았다니!(264-265p)

 

 

우리는 계속 살아가겠지(그녀는 다시 손님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방들은 여전히 붐볐고, 새로운 손님도 계속 오고 있었다). 우리는(그녀는 하루 종일 부어턴을, 피터를, 샐리를 생각했었다) 계속 늙어가겠지. 그녀에게도 지켜내고 싶은 중심의 무언가가 있었지만, 그것은 쓸데없이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잡담에 파묻히고 거짓말에 더럽혀지기도 하며 녹아 없어졌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중심을 지켜냈다. 죽음은 그것을 지켜내려는 저항이었다. 죽음은 그 중심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소통의 시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신비하고도 자꾸만 손에서 빠져나가는 삶의 중심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점점 더 그 중심에서 멀어져가, 거기에 접근하면서 느꼈던 황홀감도 잊어버린다. 그렇게 황폐해져가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믿을 수 없이, 클라리사는 요즘처럼 행복해본 적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을 천천히 즐기고 싶었다. 의자들을 바로 놓고 책꽂이에 책을 꽂으며,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젊은 시절의 즐거움을 상실한 채, 일상에 파묻혀 자기 자신을 잃으며 살아가다가, 문득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큰 희열에 휩싸였다. 부어턴에서도 사람들이 모두 떠들고 있을 때, 혼자 밖으로 나가 하늘을 쳐다보곤 했었다. 런던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에도,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하늘을 보려고 창가로 걸어 나갔었다.(269-271p)

 

 

 

ㅡ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中,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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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30

 

 

'필경사 바틀비'는 예전에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세부가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읽었다. 생각보다 웃긴 부분이 있는 소설이었다. 처음 읽은 '선원 빌리 버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것을 묘사할 때 종교적,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 명확하게 이해가 가능한 장황한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 정도. 물론 몰라도 내용 이해에 크게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놓치는 부분들이 있겠지. 이 시기에는 이런 정보는 기본 교양으로 깔고 갔던 건가 싶기도 하고. 가령 아래와 같은 식이다.

 

 

그렇지만 클래거트의 질투는 통속적인 형태의 질투가 아니었다. 빌리 버드에 대한 그의 질투는 불안한 마음으로 다윗이라는 잘생긴 청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사울 왕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든 근심에서 나온 질투 같은 것과도 완전히 달랐다.(147p)

 

함장의 준엄한 눈길을 잠시 벗어난 클래거트는 묘한 표정으로 함장의 안색을 지켜봤다. 자신의 전략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고, 막내 요셉을 질투하던 형제들의 대표가 상심한 아버지 야곱을 속이려고 염소 피가 묻은 외투를 보여 주며 지었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182p)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그 사건에 관한 정보를 사건 발생 현장, 즉 후갑판 함장실 내부로만 한정시켰다는 사실은 러시아 야만의 황제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수도의 왕궁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던 비극적인 사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채택한 방침과 어느 정도 비슷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196p)

 

빌리의 야만성은 현재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면 로마의 게르마니쿠스 장군을 위한 개선식에서 살아 있는 전리품으로서 행진에 포함됐던 동족인 영국인 포로들의 야만성과 비슷했다.(225p)

 

 

앞으로도 내가 살면서 모비딕을 읽을 일은 없을 듯한데 짧은 소설로나마 허먼 멜빌을 느껴본 걸로 만족한다.

 

 

 

 

 

맨 처음 저의 감정은 순수한 우울함과 진지한 연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틀비 군의 외로운 처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면서 그 우울함은 서서히 공포로 바뀌었고, 연민은 혐오로 변해 갔습니다. 비참한 정황을 직접 목격하거나 그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 그 정도가 일정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만 애정을 느끼게 되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더 이상 애정이 우러나지 않게 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실망스러운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성에 내재한 이기심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현상은 오히려 과도한 기질적 질환을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절망감에서 기인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연민이 곧 고통인 경우가 흔합니다. 그리고 그런 연민이 실질적인 구원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면, 그 연민을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이 상식에 맞는 일입니다.(41-42p)

 

 

마침내 저는 제가 직업상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제가 사무실에 두고 있는 이상한 존재와 관련해 의아해하며 수군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상당히 우려스러웠죠. 그러고는 이 친구가 장수할 가능성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습니다.(59p)

 

아 진짜 뻘하게 터졌네. 이 아저씨 재밌는 사람이네 ㅋㅋ

 

 

그렇게 지어낸 일화는 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사건에 깃들어 있는 수수께끼를, 그게 무엇이든 간에, 다소 흥미로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데 써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런 식의 일화는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앞으로 전하게 될 사건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그 원인은, 그 근본 자체에서 보자면, 천재적인 괴담 작가 앤 레드클리프가 지어낸 「우돌포의 비밀」이란 작품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에 들어 있는 것에 못지않을 만큼 신비하고 원초적인 요소로 가득차 있다.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즉각적이고 깊은 적개심을 느낀다. 이런 적개심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 있을까?(140p)

 

 

어쨌든 이런 사악함은 야만성이라는 비천한 속성의 덩어리가 전혀 들어 있지 않고 일관되게 지성에 의해 좌우되는 종류의 사악함이기 때문에 대표적인 사례를 구하려면 다른 곳을 찾아봐야 한다. 문명은, 특히 금욕적인 종류의 문명은 자연적인 사악함의 좋은 토양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그것은 점잖음이라는 망토 속에 몸을 숨긴다. 이런 사악함을 조용히 도와주는 부정적인 덕목들도 있다. 또한 자연적인 사악함은 술이 그 안에 들어오도록 경계를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그 자체에 속하는 자그마한 악이나 죄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런 유의 사악함은 그런 사소한 악이나 죄악 같은 것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데서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돈을 추구하거나 탐욕스럽지 않다. 간단히 말해, 여기서 말하는 사악함이란 비천한 것이나 감각적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종류의 사악함이다. 그것은 진지하며, 그렇다고 냉소적이지도 않다. 인간에 대해 아첨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폄훼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대표적인 본보기에서 이 예외적 본성을 잘 드러내주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자연적인 사악함을 가진 사람은 안정된 기질과 신중한 몸가짐을 보이며, 그래서 그 사람을 이성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르는 마음의 소유자로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실제 마음속에서는 이성의 법칙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고자 몸부림치고 있으며, 이성을 사용하더라도 오직 비합리적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교묘한 수단으로서만 사용하는 선에서 그친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사람이 현명하고도 건전한 그리고 차분한 판단을 동원해서 이루려 하는 목적은 그 터무니없음의 정도에서 광기가 개입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성격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다. 그것도 가장 위험한 부류의 미친 사람들이다. 이들의 광기는 연속적이지 않고, 어떤 특정한 것에 촉발되어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 광기는 거의 자폐적이라 할 정도로 잘 보호되어 은밀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가장 활발하게 작동할 때조차 보통 사람들은 이를 제정신과 구별하기 어렵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어떤 것이 되었건 그 목적이 절대로 발설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 그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과 실제 드러나는 달성 과정은 언제나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143-144p)

 

 

이미 성숙한 나이의 선원이라도 특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서툰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165p)

 

 

한 무명 작가는 이런 구절을 남겼다. "전투가 벌어진 뒤 사십 년이 지나서 비전투원이 그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했는지를 논하기는 쉽다. 자욱한 포연 속에서 쏟아지는 총탄을 무릅쓰며 그 전투를 실제로 지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현실적 측면과 도덕적 측면 모두를 고려해야 하고, 게다가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꼭 필요한 다른 위기 상황과 관련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안개가 짙을수록 쾌속 증기선은 그만큼 더 위험해지며, 그렇기에 누군가를 치어 죽일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속도를 높여야만 하는 것이다. 선실 안에서 아늑하게 앉아 카드 게임이나 하고 있는 사람들은 잠도 못 자고 함교를 지키는 사람들이 느끼는 부담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법이다."(213p)

 

 

 

 

ㅡ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선원 빌리 버드>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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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2

 

 

문장이나 문체로 승부를 보는 작가는 아닌 듯.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쏟아내는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할머니는 아무것도 거들지 않고 산모 스스로 분만할 것을 주장하는 '늙은 산파'였어요. 과실이 익으면 절로 떨어지는 것처럼 훌륭한 산파는 산모를 달래고 격려하면서 아이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가위로 탯줄을 자르고 생석회를 발라 잡아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인기가 별로 없는 산파였어요. 사람들 모두 할머니를 게으른 산파라고 말했거든요. 사람들은 안팎을 뛰어다니며 수선을 떨고 고함지르며 산모와 함께 땀을 흥건하게 흘리는 '늙은 산파들'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29p)

 

 

 

ㅡ 모옌, <개구리> 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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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어떻게 하면 자극적으로 쓸 수 있을까 기를 쓰고 노력하는데 존나 재미없다. 올해 본 최악의 소설이다. 모든 추리물이 이런 식인가.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우라시마라는 모든 시간선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초월적인 인물이나, 딱 5시간이라는 시간 역행이나, 분기된 모든 시간선의 연쇄나 참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편리한 설정이다. 그 연쇄라는 작용도 어떤 일은 연쇄적으로 다른 모든 시간선에 영향을 주지만 어떤 일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가령 누군가가 죽으면 다른 시간선의 그 누군가도 같은 시간에 죽는다. 그런 식이라면 어떤 시간선의 누군가가 임신을 하면 다른 시간선의 누군가는 왜 임신을 하지 않나? 적어도 신체 내부의 반응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아야지.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죽는 일이 특정한 시간선에서만 일어나도 다른 시간선의 같은 인물이 똑같이 칼에 찔려 죽으면서 왜 임신이라는 상황은 연쇄적으로 적용되지 않나. 

 

 

 

 

 

ㅡ 시라이 도모유키, <엘리펀트 헤드> 中, 내친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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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22

 

 

소세키의 미완성 유작. 소세키의 어느 작품보다 분량이 많아 두어번 시도했다가 포기하곤 했었는데 이번 주말에 마음 먹고 읽었다. 읽어 본 소세키 소설 중 가장 심리묘사에 치중하고 관념적이었다. 소세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를 좋아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각 인물들이 본론을 얘기하기까지 말을 빙빙 돌리는 게 지나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질질 끈달까. 기존의 소세키 소설이 남성 화자의 심리만 묘사되고 상대방의 심리는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낼 뿐이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화자의 아내인 여성의 심리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게 특기할 만한 점.

 

 

실제로 세상에 나가서 단적인 사실과 격투를 하며 일한 경험이 없는 숙부는 한편으론 당연히 어두운 인생비평가여야 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매우 예리한 관찰자였다. 그리고 그 예리한 부분은 모두 그의 어두운 곳에서 파생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그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덕택에 기발한 말을 하기도 하고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지식은 풍부한 대신에 조잡하였다. 그래서 그는 많은 문제에 참견을 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방관자의 태도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의 위치가 그를 제약할 뿐만 아니라 그의 성질이 그를 그쪽으로 몰아넣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어느 정도의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혹은 방법이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팔짱을 끼고 그대로 있고 싶어 했다. 일종의 노력가임과 동시에 일종의 게으름뱅이로 태어난 그는, 결국 활자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운명의 소유자에 지나지 않았다.(57p)

 

 

"그렇게 싫은가? 나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게.“

실제로 그렇게 싫었던 츠다는 이 말을 듣자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반대의 결단을 외부로 나타냈다.

"그럼 마시자."(91p)

 

 

 

ㅡ 나쓰메 소세키, <명암> 中,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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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11
 
 
소설의 전 과정을 바쳐 뜸 들이는 것에 비해 결과로 드러내는 비밀은 겨우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돌아 돌아왔나 싶어 허탈하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되고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시절이었다."(51p)
"단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다."(283p)
 
이렇게 깔아 놓고 뭐 대단할 것 없는 얘기로 끝난다. 이야기의 전말을 다 알고 사후적으로만 이해함 직한 문장을 작품 전체에 흩뿌려놓는 것도 그냥 과시적 기교 뽐내기로 보인다. 두 번 읽으라고? 독자들이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걸 복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쓸데없이 빈번하며 직접적이다. 이렇게 말하면 완전 말도 안 되는 완성도의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허접한 책은 아니다. 꽤나 공들인 노작이다. 읽는데 인내심을 제법 요구하지만 아름답고도 시적인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 나는 그래서 덜 좋았지만...
 
 
 
 
라헬은 공항 라운지에서 빈 의자 쪽으로 걸어가는 승객처럼 결혼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냥 자리에 앉는다'는 기분으로.(34p)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좌절은, 그가 발견한 나방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지 않은 일이었다.(74p)
 
 
벨리아 파펜은 아들에게 주의를 주려 애썼다. 그러나 벨리아는 자신이 왜 심기가 불편한지 딱 짚어낼 수 없었기에 그의 혼란스러운 걱정을 벨루타는 오해했다. 벨루타는 자신이 짧게나마 받았던 교육과 타고난 재주를 아버지가 시샘한다고 생각했다. 벨리아 파펜의 선의는 곧 잔소리와 언쟁, 그리고 부자간의 불화롤 변질되었다. 벨루타는 집에 가는 것을 피해 그의 어머니를 크게 실망시켰다. 늦게까지 일을 했다.(110p)
 
 
큰 꿈과 작은 꿈이 있다. "'큰 사람 랄타인' 사히브, '작은 사람 몸바티'" 하고 늙은 비하르인 쿨 리가 소풍 때문에 기차역에 온 에스타 학교의 아이들을 보고 (변함없이 매년) 꿈에 대해 하곤 했던 말이다.
'큰 사람'은 '랜턴', '작은'사람은 '촛불'.
'거대한 사람은 플래시라이트', 그가 미처 못한 말이다. 그리고 '작은 사람은 지하철역'.
그가 아이들의 짐을 가지고 뒤에서 터벅터벅 걷는 동안 '선생님들'이 그와 값을 흥정했는데, 그의 휘어진 다리는 더 휘어졌고, 잔인한 아이들은 그의 걸음걸이를 흉내냈다. 아이들은 그를 '괄호 안의 불알'이라고 불렀다.
'가장 작은 사람은 정맥류', 그는 그 말을 하는 것은 완전히 잊은 채, 요구했던 금액의 반도 못 되는, 실제로 받아 마땅한 금액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돈을 들고 휘청휘청 자리를 떴다.(127-128p)
 
 
어린아이였을 때, 그녀는 읽으라고 받은 '아빠 곰 엄마 곰' 이야기를 곧 무시하게 되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아빠 곰'은 '엄마 곰'을 놋쇠 꽃병으로 때렸다. '엄마 곰'은 조용히 체념하고 그 구타를 겪어냈다.
암무는 크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무서운 거미줄을 잣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는 손님들에겐 매력적이고 세련된 사람으로 처신했고, 손님들이 어쩌다 백인일 때는 거의 아첨에 가깝게 행동했다. 그는 고아원과 나환자 진료소에 기부를 했다. 자신을 교양 있고 관대하며 도덕적인 사람으로 대중에게 알리고자 상당히 애썼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뿐일 때면 엄청나게 의심 많고 흉포하고 교활하게 변했다. 그들은 구타를 당했고 모욕을 당했으며,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를 두었다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부러움을 받아야만 했다.
(...)
더 자라면서 암무는 이 차갑고 계산적인 잔인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부당함을 용서하지 않는 고결한 판단력을, 그리고 '누군가 큰 사람'에게 평생 괴롭힘을 당해온 '누군가 작은 사람'에게서 나타나기 마련인 고집스럽고 무모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다툼이나 대립을 피하기 위한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러한 것을 찾아냈고, 어쩌면 즐기기까지 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251-252p)
 
 
‘위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들은 것이고 다시 듣고 싶은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든 이야기로 들어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것이다. 스릴과 교묘한 결말로 현혹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내용으로 놀래키지도 않는다. ‘위대한 이야기들’은 지금 사는 집처럼 친숙하다. 혹은 연인의 살냄새처럼, 결말을 알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귀기울인다. 언젠가 죽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대한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누가 살고, 누가 죽고, 누가 사랑을 찾고, 누가 사랑을 찾지 못하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알고 싶어한다
그것이 ‘위대한 이야기들’의 신비이자 마법이다.(319p)
 
그렇다면 이 소설은 위대한 소설은 아니라 하겠다.
 
 
벨루타는 필라이 동지의 몸이 문간에서 흐릿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실체는 없는, 높은 목소리만이 남아 슬로건들을 외쳤다. 텅 빈 문 입구에서 깃발들이 펄럭였다.
(...)
그리고 또 늘 같은 이야기였다. 스스로에게 등을 돌리는 또하나의 종교. 인간의 정신이 만들고 인간의 본성이 훼손하는 또하나의 체계.(394p)
 
 
 
 
 
1. 전체적인 느낌 및 감상
2.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인상적인 구절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3. 이 책의 구조는 비선형적이며 시간 순서에 따라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 구조가 여러분이 책을 이해하거나 감정을 느끼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해봅시다.
4. 이 책에는 복잡한 내면을 가진 여러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 중 특히 베이비 코참마의 말과 행동으로 사건이 파국으로 치닫는데요. 이 인물이 그런 행동을 한 동기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보기.
5. 이 책에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제목의 일부이기도 한 '작은 것들의 신'과 '작은 것'과 관련된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이 단어의 의미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만일 그가 그녀를 만지면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없었고, 그가 그녀를 사랑하면 떠날 수가 없었고, 그가 말을 하면 들을 수가 없었고, 그가 싸우면 이길 수가 없었다.
그는, 외팔이 남자는 누구였을까? 누구일 수 있었을까?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소름과 문득 떠오르는 미소의 신?’ '시큼한 쇠냄새ㅡ버스의 쇠난간 그리고 그 난간을 잡았던 버스 차장의 손냄새 같은ㅡ의 신?'(303p)


그는 누구였나? 그는 누구일 수 있었나? ‘상실의 신’. ‘작은 것들의 신’. ‘소름과 문득 떠오르는 미소의 신’. 그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었다.
그녀를 만지면 말을 걸 수 없었고, 그녀를 사랑하면 떠날 수 없었고, 말을 하면 귀 기울일 수 없었고, 싸우면 이길 수 없었다.(450p)

6. 이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후각과 관련된 서술이 종종 등장하며 소설의 특이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한몫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냄새나 향기는 기억이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해봅시다.

어떻게 그애는 그 냄새를 견딜 수 있었을까? 못 느꼈어요? 저들에겐 특이한 냄새가 있어요, 저 파라반들에겐.(355p)


'두 번째 교훈'.
그래도, 냄새는 난다.
역겨운 달콤함.
바람에 실려 오는 오래된 장미향 같은.(423p)

 
 
 
ㅡ 아룬다티 로이, <작은 것들의 신> 中,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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