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15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대화다. 그런데 왜 안 되냐고? 이 책을 보면 알겠지만 이런 식의 대화는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법이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도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에 도달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오스카는 레베카와 그 많은 이메일 대화를 주고 받은 후 처음과는 달리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봐야 여전히 '개자식'이다. 때때로 상대를 향해 분노를 터뜨릴지라도 애정에 기반하여 상호이해가 가능한 길을 모색하는 과정을 누리는 호사를 우리는 경험할 수 있을까? 일단 나부터 먼저 대화를 시도해봐야겠지?
남자들이 나를 이전만큼 좋아하지 않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덜 느낀다는 점이 문제이지요. 당신들은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길을 가지 못합니다. 언제나 돌봐주고, 안심시키고, 이해해주고, 도움을 주거나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하지요. 남자 하나를 부양하는 데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요. 젊은 여성들 말이 맞습니다. 당신들의 남성성은 너무 취약합니다.(43p)
조에가 정신적 피해를 호소할 예정이라는데, 예전에 제가 조금 끈질기게 치근덕거린 일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책이 출간된 시점이었고, 길어 봐야 삼 개월이었죠. 무엇이 되었든 간에 조에에게 무언가를 억지로 강요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남자아이처럼 조용히 굴었어요.
(...)
제가 한 최대한의 열정적 행위는 작별 인사를 하다가 딱 한 번 뺨이 아닌 입술에 입을 맞추려 한 일입니다.(53p)
사건을 요약해볼게. 너는 그 사람한테 반했어. 상냥한 성격에 비난받을 행동은 하지 않았지. 너는 진짜 괜찮은 남자인데, 어떤 미친년이 너를 엿 먹이려고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말이지? 여기서 첫 번째 문제는 그게 너희 업계에서 여자를 괴롭히는 모든 강간범이 똑같이 떠들어대는 레퍼토리라는 거야. 너희 같은 작가들은 그저 결백하다고만 하는데, 한편에는 무수한 피해자가, 다른 한편에는 자신이 맞닥뜨린 게 뭔지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제적 남자들이 있어.(59-60p)
당신 친구 중에 나이든 사람들이 있겠죠. 노화가 당신 일이 되면, 거울을 피하는 법 같은 걸 언제든 배울 수 있어요. 하지만 가까운 이들이 노쇠해지는 일은, 당신 세계를 이루었던 것을 당신이 잃어버렸다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친구들은 자신만의 매력이나 지혜, 유머, 호기심으로 당신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람이니까요. 나는 옷가지에 그다지 흥미가 없고, 언제든 즉시 쓸 수 있는 돈을 확보하고 있는 게 좋아요.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건 좋아하지 않고, 집에 가구도 몇 점 없을뿐더러 책도 소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나를 둘러싼 사람이 전부인 셈이에요. 내 인생에 주목할 만한 구석은, 내가 전적으로 감탄하며 우러러보던 사람이 내 주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 성공이 바로 그것이었죠.
(...)
나이의 역사에는 어떤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오십 세에 쓰러집니다. 우리가 동경하던 성격적 특징은 왜곡되고, 오만함은 회한으로 변하며, 유머에는 요실금 환자의 지린내가 나고, 매력은 변질되어 버립니다. 청소년기의 변화와 비교할 수 있겠으나 더 비참하죠. 목소리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사유의 융통성이 그대로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랜 친구들을 보석처럼 간직하세요. 여전히 함께 있을 때 편한 사람을요. 점점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더 지혜로워지거나 더 흥미로워지거나 더 관대해진 사람들이죠. 끔찍한 난파 사고의 생존자라도 되는 양 곁에 그들을 잡아두세요.(70-72p)
우리의 어린 시절은 오늘날 젊은이들 시대와 굉장히 달랐습니다. 우리는 실망스러운 일을 평범하게 넘겼죠. 부모님은 집에 잘 계시지 않았어요. 그들은 젊어서 우리 남매를 낳고도 자신만의 일상이 따로 있었습니다. 저를 돌보는 일은 종종 누나 차지였죠. 누나가 핸드볼을 하러 가면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집에 혼자 남겨졌어요. 그 시절 모두가 그렇듯 그걸 평범하게 넘겼습니다.
제게는 열두 살짜리 딸이 있어요. 어느 수요일 오후 클레망틴을 혼자 내버려둔다면, 아내는 경찰을 불러서 무책임한 아빠를 아이와 격리해달라고 요청할지도 모릅니다. 딸은 저희 집 바로 아래편에 내려주는 버스를 타는데, 친구들에게는 제가 자기를 아프가니스탄 노새 취급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더군요. 그 나이에 저는 놀러 나가기 위해 통블렌에서 8킬로미터 거리를 자전거로 달렸는데 말이죠. 그때는 부모님을 안심시키는 용도의 휴대전화도 없었고, 부모님은 걱정할 생각도 안 했어요.(78-79p)
제 책과 세계를 연결해주던 여성과 사랑에 빠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조에는 온갖 기분 좋은 소식을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끊임없이 전화해서 스케줄이 비었는지 묻고, 집 바로 아래 택시를 댄 채 저를 기다리고, 몇 시간 동안 제 앞에서 제 이야기를 했어요. 물론 그게 당시 그녀의 업무였죠. 하지만 저는 단단히 착각하고 그녀에게 빠졌습니다. 그녀의 배려, 제게 일어난 모든 일을 향한 열광적 반응이 일의 일부임을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제멋대로 흥분했습니다. 그녀가 예쁘다거나 매력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야말로 제 인생의 운명이라고 생각했거든요.(104-105p)
피해자의 말을 신성시할 생각은 없어요. 여성들도 이따금 거짓말을 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건 말건,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하건 말건 상관없이 말이죠. 하지만 날조를 일삼는 피해자는 미미한 반면, 남성 인구 중 강간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나면 당신들 남성의 퇴락을 스스로 환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친구 중에 강간범이 있어도 자신은 아니니까 그러한 비난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다니, 남성들에 대한 분노를 감출 수 없습니다. 그 지점에서 뭐랄까····· 아무리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보려고 해도 당신들을 동정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113p)
그 후로, 대다수 프랑스인이 좁은 아파트에 복닥복닥 살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 두 명이 평소 휴가를 보내는 별장으로 떠난 걸 두고 사람들이 분노를 뿜어내는 반응을 접하고 있습니다. 유사시에는 도로에서 두 시간 운전한 일이 굉장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은 이래요. 최상위 계층을 미워히지는 않는 이러한 편집증적 열기가 이상하다고요. 그저 당신의 이웃, 언제든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있는 그런 사람만 골라가며 증오합니다. 진짜 안전지대에서 보호받는 사람들이 아니라요.(177-178p)
당신이 청춘 시절에 대해 느끼는 그리움을 이해해요. 하지만 그 시기는 끝났고, 우리는 이제 열네 살짜리 아이가 아니에요. 행복한 재발이라는 건 없습니다. 그걸 알아보려고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늘 중독자와 어울리며 지냈는데, 그중 누구도 "다시 시작하니까 얼마나 행복하던지!"라고 고백하지 않았어요.(265-266p)
나는 홀로 싸우는 사람들과 항상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주할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한다면 그 친구를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저 문자 메시지를 보내 탁구나 치러 가자, 테라스에서 만나자라는 말뿐이에요. 그저 지나가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 있어주는 거죠. 우리의 친구에게 여전히 다음이 있기를 기도하면서 말이죠. 때를 기다리면서요.(272-273p)
그런데 당신 딸은 사람이에요, 당신의 버팀목이 아니라. 단약을 하는 과정이 딸에게 죄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281p)
자, 어머니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어. 그렇다고 엇나간 어린 시절을 지겹게 되풀이하며 평생을 살 수는 없어. 익숙해지라고, 진저리나는 행동은 그만두고.(290p)
"그땐 누난 나보다 서너 배는 덩치가 컸는데, 틈만 나면 날 때렸잖아.“
"진짜 그렇게 생각해, 동생아? 다 잊어버렸어? 네가 딱 두 가지 일에 집착하고 다른 건 신경도 안 썼잖아. 나를 꼬집고 내 물건을 훔치는 일에만 몰두했어. 학교에 내다 팔기 위해 가끔 훔치는 수준이 아니라, 자리를 비우는 족족 훔쳐다 버렸잖아. 주방 쓰레기통도 아니고 냅다 뛰어서 버스 정류장 쓰레기통에 버렸지. 넌 진짜 머저리였어. 그저 날 골탕 먹이려고. 네가 작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던 모습이 생생하네. 그때 여덟 살쯤이었지. 그래서 널 때린 거야. 같이 사는 게 그야말로 지옥이었어."
"난 하나도 기억 안 나."(293p)
그 순간 내가 그녀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약을 끊는 게 그 정도로 수월하다는 사실이 놀랍긴 했지만요. 저렇게 되고 싶다, 저렇게 쉽게 약을 끊으면 좋겠다, 필요할 땐 약에 취해 즐기면서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이게 진짜 내 모습입니다. 해시시를 단 한 모금만 빨아도, 위스키를 병째 비우고 해시시를 연달아 1그램이나 흡입하게 되겠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어울리면서요. 가서 즐겁게 놀지도 못하고 그저 진을 빼고 올 겁니다. 나는 중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내 모습이 괜찮습니다.(300p)
무엇보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라도 내가 느낀 그대로를 느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자, 누군가 강간당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자기 말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나타나서 그 사건을 결코 극복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는 나에게 분열 상태를 거론했습니다. 강간당한 여성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신체 증상처럼 자기분열을 겪는다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나는 여자예요. 어떻게 내가 분열되지 않은 존재이길 바라세요?" 나는 어릴 때부터 내 몸의 주인은 다른 이들의 시선이며, 순전히 나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어요. 매력이라는 것은 나를 분열시킵니다. 그러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살찌는 것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음식을 먹는 여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식욕과 자신이 당연히 분열되는데, 다른 것이라고 크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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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은 어떤 중요성도 띠지 않았습니다. 내 경험을 평가할 권한이 내게 없었어요. 그녀가 이미 앗아갔으니까요.(308-309p)
정신과 의사들이 형식적인 진료를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문제는 그들이 내 말을 듣고 응답할 때 일어납니다. 앞서 이야기한 어떤 민감한 단어를 그들이 전혀 듣지 않고 넘긴 걸 바로 알게 되거든요. 내 케이스를 보면, 예컨대 집요한 괴롭힘은 심각한 사안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내가 어렸을 떄 부적절한 방식으로 삼촌에게 추행당했다면, 의료진은 그 말을 주의 깊게 들을 겁니다. 나한테 바로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고 할 테고, 나는 몇 시간이고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페미니스트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이유로 집요한 사이버불링의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그들은 계속 다른 문제가 있는지 찾습니다. 나의 나약함을 정당화할 만한 어린 시절의 일을요. 내 케이스에서는 아무리 어린 시절을 들여다봐도 별다른 게 없습니다.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 문제는 정치적인 것입니다. 나를 치료하는 척하는 이들은 아버지가 내 숙제를 잘 도와줬는지 묻습니다. 그건 격리실로 보내져 춥고 배고프다고 말하는 정치범에게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스카프를 둘러주었는지 묻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312-313p)
그중 전형적인 프로필은 없습니다. 우리가 찾으려고 예상하는 사람은 여자를 만나 본 적 없는 도태된 남자나 못생긴 남자들이지만, 그 밖에도 수많은 가정의 아버지, 노인, 모든 분야의 모든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도시에 살기도 하고 시골에 살기도 하며, 문맹인 경우도 있으나 대학교수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보복도 받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고 온라인에서 원하는대로 자행합니다. 페미니스트를 괴롭힌 남성주의자가 강제 입원 명령을 받은 사례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모욕적인 답변을 받기라도 하면 그들은 몇 달 동안 항의합니다. 무리 지어 공격할 때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인물처럼 거칠지만, 우리 중 누군가가 맞설 답을 생각해내면 엄지공주처럼 쪼그라듭니다. 그들은 일말의 방해도 용인하지 못하며 자신의 영역을 사수합니다. 온라인에서 자신들의 취지에 맞는 콘텐츠만 양산하길 원하며 어떤 반대 의견도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관대합니다. 남자들에 대해, 우리는 낙태를 시키지 않을 것이며, 교육받을 권리를 빼앗지도 않을 것이며,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시키지도 않으며, 거리에서 죽이지 않을 것이며, 조깅할 때 죽이지 않을 것이며, 숲속에서 죽이거나 집으로 데려와 죽이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의 태생적 성별을 들어 수치를 주지 않을 것이며, 허기지게 만들지 않을 것이며, 강간하지 않을 것이며, 테이블 아래로 더듬지 않을 것이며, 섹스하고 싶어한다 해서 비난하지 않을 것이며, 공공장소에 나가지 못하게 금하지도 않을 것이며, 권력의 서클에서 배제하지 않을 것이며,
(...)
평등을 언급할 때 우리는 이런 평등을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걸 주장했다면 우리의 욕구가 불러일으킨 분노를 이해하기에 아주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겠죠. 하지만 그들은 너무 나약합니다. 자기를 방어하는 데 익숙하죠.(356-358p)
"그녀를 채용하지 않은 건 당연해, 그건 중요한 자리거든, 이 영상은 언제든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올 수 있어."
무슨 말을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던 걸까요. 그게 무슨 대수죠. 그냥 섹스 영상인데요. 영상에서 그녀가 난민을 고문한 것도 아니고, 노숙자에게 불을 붙인 것도 아니고, 죽어가는 아시아 커뮤니티를 협박한 것도 아니고, 히죽거리면서 나치식 경례를 한 것도 아닌데요. 아마 페니스를 빨거나 애무를 받고 있었거나겠지요. 혹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 네 명과 호텔에서 엑스터시를 하고 환희에 가득 찬 밤을 보내고 있었거나요. 동의에 의한 섹스를 한 거죠. 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요.(364p)
자매 여러분, 우리는 더 분발해야 합니다. 남자들이 저지른 것만큼이나 우리도 이미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다만 권력이 없죠. 우리는 남자들의 어리석은 회동을 따라 합니다. 거짓된 분노를 따라 하고, 감옥 같은 폭력을 따라 하고, 권위를 향한 사랑을 따라 합니다. 우리 말을 들어준다는 명분하에 아버지를 향해 열렬한 구애를 보내며 그의 정의를 따릅니다. 원한다면 그를 어머니라고 불러보세요. 그러면 금방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같은 게임이에요. 남자를 용서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당신들이 내게 한 일을 용서할 의향이 없습니다. 덜하거나 더하지도 않은 똑같이 좆같은 상황입니다. 오랜 시간 겪어보니 알아차리게 되더군요.(387p)
ㅡ 비르지니 데팡트,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中,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