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에 해당되는 글 17건

  1. 휴가기 2018.08.01
  2. 여름의 조각들 2018.05.14
  3. 일기 2018.04.26
  4. 잡기 2018.04.12
  5. 3월 결산 2018.04.02
  6. 일기 2018.03.05
  7. 일기 2018.02.27
  8. 일기 2018.02.22
  9. 잡기 2018.02.07
  10. 일기 2018.01.21

휴가기

from Life 2018. 8. 1. 13:04

휴가를 다녀왔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여행의 재미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으며 오히려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생각해왔고, 이번 여행은 일정이 빠듯하기도 하고 귀찮음이 폭발해서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여의치 않으면 여행지에서 살 요량으로 짐도 최소화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아무렇지도 않다가 몇 시간 정도 지나자 갑자기 눈 윗부분을 칼로 긁는 듯한 통증으로 인해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여행에서도 부위는 다르지만 귀 통증으로 굉장히 힘들어했던 순간이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아무렇지도 않고 멀쩡한데 혼자만 이러고 있으니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이비인후과에 꼭 한 번 들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통증이 가라앉은 지금 시점에서 실천에 옮길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시작이 좋지 않다고 느꼈으나 숙소에 짐을 풀고서부터 시작된 휴가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기억나는 순간은 스쿠버 다이빙과 스노클링으로 물고기 및 바다 구경을 한 것으로 시력이 좋지 않아서 그것들을 선명하게 볼 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긴했으나 그럼에도 역시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프리다이빙이나 스쿠버다이빙을 배워보는 것도 수영과는 또 다른 취미 활동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도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다가 지겨워지면 수영을 하려고 책도 몇 권 챙겨갔는데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물에서 놀기 바빠서 누워서 책을 읽을 생각이 조금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가 기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휴가 말미에는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었을 텐데 다음 휴가에나 해보는 걸로 했다. 휴가지에서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그에 따라 떠나야할 순간이 점차 다가오자 장강명이 쓴 책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 구절로 휴가의 마지막 감상을 갈음한다.

 

 

 

그렇게 말하고서 HJ는 한숨을 쉬었다.

“왜 한숨을 쉬어?”

“이렇게 여행 구상을 해도 막상 가보면 또 실수할 거 같아서. 큰 구조는 비슷하다 해도 세세한 디테일은 다르잖아. 예를 들어 우리가 코타키나발루의 어느 호텔을 가게 되면, 거기에는 또 나름의 특성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부딪치게 되겠지. ‘아니, 여기 왜 이래?’, ‘어라, 여기에 이런 길이 있었네?’, ‘아 이 수영장은 아침에 와야 그늘이 져서 좋구나’, ‘이 수영장은 오후에 한가하구나’ 이런 걸 4일째에야 겨우 알게 될 텐데, 그러면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지.”(195p)

 

ㅡ 장강명, <5년 만에 신혼여행> 中,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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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조각들

from Life 2018. 5. 14. 11:33

여름의 조각들

 

러닝타임도 짧고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 알고 있었던 사실은 감독이 예전에 영화배우 장만옥과 함께 작업(이마 베프, 클린)을 하기도 했고, 그 인연이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 물론 금방 헤어졌고 현재는 영화감독 미아 한센 러브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 또 이 영화에 예술품이 등장한다는 정도였다. 영화를 보고나서 알게 된 사실은 이 영화가 오르세 미술관 20주년 기획 영화이며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예술품은 실제로 미술관 소장품이라는 것. 또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에 들어가려던 중에 실제로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했고, 그로 인해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이다.

 

두 가지 생각

1. 유산을 놓고 세 남매의 의견이 갈린다. 첫째는 어머니의 집과 예술품을 유지하며 후대까지 이어가자는 의견, 둘째와 셋째는 현실적인 여건상 팔자는 의견. 이 상황에서 갈등을 보여주는 가장 쉬운 방식은 한쪽이 옳고 다른 한쪽은 나쁘다는 식으로 연출을 하는 것일 텐데, 이 영화는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첫째의 의견에 심정적으로 동의가 되었고 그 의견이 일리가 있지만, 마찬가지로 둘째와 셋째의 의견도 현실적이며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한국영화였다면 틀림없이 감정 과잉으로 흘렀을 부분을 담담하게 연출해서 마음에 든다.

 

2. 예술품이 실제 생활에서 쓰임새를 가지고 그에 걸맞은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실생활과 분리해서 엄정한 관리 하의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게 좋은가. 쓰면서 드는 생각은 전자가 적절한 것 같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 영화의 결말까지 보고 난 후에 조금은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이 생각을 적용해서 해석해보았다. 엔딩에서 작중의 배경이 되는 집을 그대로 유지(생활과 유리되어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이 창조적으로 변용(실제 생활에서 쓰임을 가지고 존재)해서 새로운 공간으로 이용한다. 이를 통해 예술품이 실생활에서 계속해서 쓰이며 존재하는 게 낫다는 감독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고 예술이 그러하듯 그것을 사용하는 세대도 계속해서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ps. 클린은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던데 이마 베프는 어떨지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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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from Life 2018. 4. 26. 01:42

1. 주말에 부산 아트페어를 다녀왔다. 그림을 보러 여러 곳을 다닐 필요 없이 한 장소에서 다양한 화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어찌나 나에게 딱 맞는 기획인가 생각하며 내년에도 꼭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영화의 전당과의 연계로 관련 영화를 보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영화는 크게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봤던 영화를 재관람하는 시간도 함께 가졌다. 영화 제목은 빅 아이즈. 영화의 만듦새는 그저 그랬지만 대작과 예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특히나 후자인 예술에 대해.

컴퓨터로 많은 영화를 봄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나면 드는 생각이 있다. 역시 좋은 시설에서 영화를 보는 게 영화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크게는 영화의 인상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좋은 영화는 조악한 기기로 봐도 훌륭함이 드러난다지만 어두운 공간과 조용한 공간에서 커다란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으면 조금은 별로인 영화라 할지라도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알고 있으니 인물보다는 배경에 집중해서 봤는데 두 번째 관람이라 처음에 놓쳤거나 몰랐던 것들이 많이 보였다. 피사로라거나 캠벨 수프 같은 것들. 이런 걸 생각하면 영화와 같이 단위시간 당 정보량이 많은 매체는 배경지식에 따라 사람마다 같은 시간 안에 볼 수 있는 여지가 다르기도 하고 같은 이유로 시간이 흘러 반복관람을 하면 처음과는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모든 예술이 그런 건 아니겠으나 어떤 예술은 어떻게 포장하고 영업을 하느냐에 따라 예술의 지위를 누리기도 하고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혼자만의 예술이 되기도 한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듯이 탁월한 재능을 뽐내는 사람이라면 사술을 부리지 않고도 종국에는 메인스트림에 입성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나, 그런 선택받은 초특급 천재 예술가가 아니라면 역시 관건은 마케팅일까. 킨의 작품이 당대에 그렇게나 잘 나갔다는데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이름조차도 모를 정도가 되는 게 재밌기도 하고, 현재 잘 팔리고 유명한 많은 것들도 몇 십 년의 세월만 지나면 절대다수가 잊힐 거라는 점에 불현듯 슬퍼져서 무상한 느낌과 쓸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뱅크시가 만든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와 함께 관람하면 현대 예술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겠다. 영화 속 미술평론가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데 그걸로 마무리 한다.

 

낮춰서 맞추는 게 예술이 아니라 위로 끌어올리는 게 예술이다.”

 

 

2. 무기력하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기도 하고. 이러니까 원래는 되게 부지런하게 사는 줄 알겠지만 평소에도 그렇지 않은 데 바닥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느낌. 잡다한 일이야 언제든 일어나는 것이니 그 때문이라는 핑계는 우습고 그냥 이럴 때도 있는 거지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대관절 인생에 무슨 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남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살고 싶어 하는 지도 궁금하다. 뭘 해도 재미도 없고, 술도 먹기 싫은데 그걸 먹는 걸로 풀어서 엄청 먹어대고 살이 찌는 듯하다. 징징거리는 거 되게 싫어하는 데 몇 평 되지도 않는 비슷비슷한 집구석에서 10년 넘게 사는 것도 지겹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인생이 나아질까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을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우울해진다. 무슨 이유로 앞으로의 내 삶에 장미 빛으로 가득한 탄탄대로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기에는 적어도 나는 너무 많이 살았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그런 마음을 먹는 게 문제라고 너무나 쉬운 말로 응수하겠지만 모든 게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나는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적이 없었던 삶이 앞으로는 왜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을 맞이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고진감래라 했던가. 과연 그럴까.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희망을 가져야 하니까? 현실을 직시하면 살 수가 없으니까? 그저 지금까지 살아왔던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반경 하에서 삶은 이어질 것이고 그렇게 살다가 죽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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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from Life 2018. 4. 12. 13:26

1. AI니 사물인터넷이 등장하는 최첨단 과학시대에 아직도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 믿는 자들이 세를 불려가고, 평평한 지구를 믿는 자들의 컨퍼런스가 공공연하게 열리고 있는 걸 보면 과학업적이 쌓이는 것과 사회 구성원이 그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무지가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공교육이 철저히 실패했다는 명백한 증거 아닐는지. 과학사를 다루는 어떤 책을 들여다봐도 지구가 구 형태라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을진대, 난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나의 길을 가겠다고 우기는 걸 보면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아니, 조금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네들이 뭘 하건 내 알바도 아니고 크게 관심도 없다. 문제는 이들이 혼자만 그러거나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이뤄 살다가 죽는 게 아니라 굳이 사회일반에 등장하여 해악을 끼치기 때문에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 양반들은 정도라는 걸 모르기 때문인데 조금 있으면 지구평평설도 교과서에서 함께 가르치라고 주장하고 있을 모습이 상상이 되는 것이다. 이게 단순한 기우가 아닌 게 미국에서도 자칫했으면 진화론과 더불어 창조론을 가르치게 될 뻔했다.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다원화된 시대에 걸맞은 교육과정이 운영될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무산되어 얼마나 안타까운지.

멍청하면 가만히라도 있거나, 배울 자세를 보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노오력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왜냐하면 모두가 평균 이상의 지적능력과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평균이상이라면 어느 누군가는 평균이하라야 평균이라는 말이 성립한다는 사실과 자기가 평균이하에 속할 수 있을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는다.

'과학은 항상 틀릴 수 있을 수 있으며 잠정적 결론에 불과하다는 말'을 오독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오해하기 딱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절대 불변하는 어떠한 진리도 없으니 아무 것이나 믿고, 우기며 시간을 뭉개고 있으면 언젠가는 사실이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아주 만약이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과학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빼액빼액 소리만 지르며 억지주장만 할 게 아니라 기존의 입장이 왜 틀렸는지 그 근거를 들며 조목조목 반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이비과학이나 유사과학을 신봉하는 자들은 주장만 하고 왜 그런지에 대한 근거를 절대 들지 않지. 하긴 갖다 댈 근거가 있어야 들지. 이게 내가 자연이라는 가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신성시 여기는 자들과 혈액병 좀비, 사이비과학 및 유사과학 신봉자 등을 언제나 비웃는 이유다.

 

 

2. 나는 눕는다고 해서 바로 잠들지 못한다. 일이 그렇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략 중고등학생 때부터 수면에 좋지 않은 습관이 생겼다. 자기 전에 항상 이어폰을 귀에 꽂고 무언가를 들으며 잠을 청한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음악과 라디오, 대학 때는 강의 오디오 파일, 지금은 잡다하게 듣는다. 근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조금 바뀌긴 했다. 스마트폰에 이어폰이 꽂힌 채로는 그 기기의 거의 유일한 기능인 알람을 이용하기 어렵다. 혹시라도 알람을 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금요일이나 토요일과 같이 다음 날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는 날을 제외하고는 불안해서 뭔가를 들으며 잘 수가 없다. 이게 또 문제인데, 그렇다고 해서 오지 않았던 잠이 금방 쏟아지진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잘 수 없는 없는 상황에서 눈을 감은 채로 이것저것 생각한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삶을 살다보니 생각이라는 걸 할 시간이 거의 없는 내게 언제부턴가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하루를 떠올려본다. 일어난 일에 대해 내가 다르게 대응했다면 어땠을 까라고 생각해보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사건을 전개 해보기도 한다. 읽은 책이나 영화를 떠올려보기도 하며 내일 일어나서 해야 할 것이나 내일의 업무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머리는 맑아지며 날이 밝아 온다.

 

 

3.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에 비해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동일한 음식량을 섭취해도 살이 찌게 된다. 요즘 들어 새삼 느끼고 있는데 나는 한 술 더 떠 동일한 양을 먹는 것도 아니라 부쩍 살이 찌고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외관상 살이 빠져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 걸 보면 체중에 큰 변화가 없더라도 근육량이 줄고 지방이 늘어났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역시 사람들은 타인의 변화에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을지도. 크게 활동적이진 않더라도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는 습관과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몸에 배서 살면서 큰 체중변화는 없었는데 덜 움직이고 더 먹는 시간이 누적되니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난 밥도 얼마 안 먹는데 왜 이렇게 살이 찌는거지라는 말을 하며 돌아서서 쿠크다스 100개씩 먹는 사람을 비웃었는데 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 확실히 담배는 덜 피우게 되는데 담배를 끊을 생각이 없는 내게 이게 무슨 효용이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관성이 된 군것질을 어떻게 해야겠다. 일단 하나만 더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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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결산

from Life 2018. 4. 2. 11:32

근자에 지인과의 대화에서 그가 매 달 결산을 남긴다는 얘기를 들었다. 좋은 생각이었고 나도 해볼까란 마음이 들었다.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으나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부지런을 떨어보는 건 괜찮을 것이다. 왜냐하면 연말 정산은 꿈에라도 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여력이 있다면 약간의 감상도 함께 올리겠다. 적으며 느낀 거지만 한 달 동안 정말 하는 거 없어 보인다.

 


<책>

1.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금정연, <아무튼, 택시>

3. 오르한 파묵, <하얀 성>

4. 가즈오 이시구로, <파묻힌 거인>

5. 황여정, <알제리의 유령들>

6.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막 좋았던 책은 없었고 그럴 정도로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네. 점점 책을 안 읽는 거 같다.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은 꽤나 재밌었다. 고흐 편지를 읽으며 고흐의 생애를 한 번 훑어 보기도 했고 인상파 위주의 그림들도 다시 한 번 살펴봤다. 그나저나 금정연의 신간이 반가운 반면에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서서비행’과 ‘난폭한 독서’를 뒤져보기도 했다.

 

 

<영화>

1. 스탠리 큐브릭,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2. 스티븐 스필버그, <더 포스트>

3. 션 베이커, <플로리다 프로젝트>

4. 기예르모 델토로, <셰이프 오브 워터>

5. 조 라이트, <다키스트 아워>

6. 루카 구아다니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7. 마이크 리, <해피 고 럭키>

8. 클로드 바라스, <내 이름은 꾸제트>

9. 폴 킹, <패딩턴2>

10. 아만도 이아누치, <더 데스 오브 스탈린>

11. 임상수, <그때 그 사람들>

12. 스티븐 스필버그, <레디 플레이어 원>

13. 조나단 데이톤, 발레리 파리스, <미스 리틀 선샤인>

14. 폴 토마스 앤더슨, <팬텀 스레드>

15. 조너선 러바인, <50/50>

16. 크레이그 길레스피, <아이, 토냐>

 

-미스 리틀 선샤인의 감독이 빌리 진 킹의 감독이었는지와 감독이 한 명이 아니라 부부라는 사실을 영화를 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한국영화를 한 편, 그것도 예전에 봤던 영화를 봤네. 3월만 그런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4월도 비슷할 것 같은데 문화사대주의를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3월의 한국영화 개봉작을 보고 오길 바란다.

-본 영화중에서 크게 후졌던 영화가 없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 3, 4>

-급 생각이 나서 봤다. 기억이 흐릿해서 1, 2 시즌 줄거리를 유튜브로 복습하고 3, 4시즌을 봤다. 지금 5시즌 1화에서 멈췄는데 또 손이 안가네.

 


<음악>

offonoff, <boy.>

-누가 서른살까지 들었던 음악을 거의 평생 듣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동의가 된다.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음악을 찾아 듣는 게 귀찮아서 들어왔던 장르나 이미 알고 있는 아티스트의 새 앨범 정도나 찾아 듣는다. 가끔 운 좋게 귀를 사로잡는 음악을 발견하게 된다. 오프온오프의 앨범에서는 ‘춤’이 가장 좋다. 오프온오프 말고는 스마트폰의 랜덤플레이 리스트, 영화의 ost와 책 읽을 때 아주 가끔씩 유튜브로 클래식 음악을 들은 게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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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from Life 2018. 3. 5. 22:22

시발 왜 김어준 또 나와서 꽃뱀이니 공작이니 뭐니 하며 쌉소리 해봐. 그저 참담함 밖에 안 느껴지는 폭로를 보고 또 그 지지자들이 삼성 사건을 덮는 용도다, 역시 김어준이다, 공작이다 같은 소리나 하고 앉아 있으니 실로 김어준의 해악은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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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from Life 2018. 2. 27. 04:29

김어준 얘기를 해볼까. 황우석 사건 때 미국의 음모라는 둥 잊히지 않을 어록을 남겼던 양반이 나꼼수와 파파이스를 거쳐 어느새 새 시대의 진정한 진보언론인으로 완벽히 자리 잡은 걸 보고 있자니 놀랍다. , 물론 그 놀라움에는 혐오가 반이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인기 요인을 물어본다면 아무도 몰랐던 정치적 사안에 대해 쉽고도 정밀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뿐만 아니라 웃음 포인트까지 있다는 점을 들 것 같다.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김어준은 조금 다르다. 그는 게으른데다가 논리적인 문제제기를 피곤해하고, 감정적인 음모론과 선동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구미에 딱 맞는 캐릭터다. 유유상종일까. 게다가 일단 특정 인물을 지지하기로 마음먹으면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든 끝까지 믿어주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네 동포들의 성향에도 완벽하게 부합한다. 어떻게 인기가 없을 수 있을까. 그게 더 이상하겠다. 가려운 곳을 팍팍 긁어주는 것도 같고,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된 소수의 정치적으로 각성한 사람이라는 착각도 들 테니 말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나만 정치적 비밀을 깨닫고 민족을 위해 한 몸 바치는 진보투사라는 망상에 빠져들게 해주기도 한다. , 매력적이다.

이런 이유로 그를 비판하기란 쉽지 않다. 그를 비판하면 패턴은 거의 비슷하다. 진보를 공격하는 프레임이라거나 질리지도 않을 그 놈의 음모론 타령을 한다. 그게 아니라도 괜찮다. 엘리트주의로 몰면 된다. 제발 부탁인데 음모론자들은 자기들만의 소규모 공동체를 만들어 모여 살거나 공안에서 잡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전방위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미투 운동을 보수진영이 공작의 방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거라는 그의 발언은 놀랍지 않다. 역시나 대쪽같이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해롭긴 하다. 그의 발언으로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한 미투운동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향력 있는 진보 인사에 대한 미투운동이 그럴 것이다. 성추문 문제에서 진보나 보수나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일 텐데 누군들 자유로울까. 진보인사만 특별히 올바른 성관념이 잡혀있고 고결해서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까. 나도 김어준이 그렇게 멍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걸 알고 자기편을 감싸주기 위해 미리 치는 연막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치졸하고 저열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성범죄를 저질렀는지의 여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피해자들이 김어준과 아이들이 무서워서 어디 밝힐 수나 있을까. 피해자가 고민을 거듭하고 자신의 인생을 걸어 폭로한 사실을 공작 운운하거나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오라거나 생난리를 칠게 벌써부터 훤히 보인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가해자의 입장에 감정이입했다고 볼 수 있을 텐데, 그들은 미투운동으로 수많은 성범죄자들이 까발려지는 와중에서도 여전히 억울할 수 있을 한 남자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정말로 최선을 다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억측과 거짓으로 희생되는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사소하지 않다. 시시한 루머와 달리 성범죄 루머는 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방향이 잘못됐다. 그런 경우라고 해도 여전히 미투운동을 비판할 이유가 없다. 허위폭로자나 허위보도를 한 사람을 강력 처벌할 일이지 실제 피해자들이 용기를 낸 미투운동의 의도를 자의적으로 훼손하여 물타기를 할 이유가 없다. 정말이지 뭔가 켕기는 게 있지 않은 이상 지금 대중들의 반응이나 댓글 반응이 더 이상하다.

그렇지 않나? 내가 비상식적인가. 이건 마치 도로교통법을 지키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교통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인 모든 운전자들에게 아예 운전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도로교통의 안전을 위해 도로를 정비하고, 신호등을 설치하고, 경찰을 배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운전을 막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리고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통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교통법규를 지켜가며 성실히 운전했던 운전자를 비난할 건가? 이건 진보나 보수의 정치적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상식의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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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from Life 2018. 2. 22. 16:44

1. 내가 얼마나 못 참는 인간인지 느낀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훨씬 어렵고 노력을 요하는지는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이 조리 있게 말을 한다면 그건 누가 지적할 필요도 없이 듣는 사람이 알아서 주의 깊게 듣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데 경청하는 분위기라면 그건 많은 경우 다들 최대한의 인내력을 발휘하여 참고 있는 것이다. 그게 성숙한 시민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라면 더 정진이 필요할 듯하다.

 

 

2. 술 취해서 아무 소리나 지껄이는 거 말고, 상호간 의견 대립이 있을 경우에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는 걸 왜 그토록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화의 수준이라는 게 쉬이 짐작 가능해서 더 못 듣고 있겠다는 판단이라면 나도 이견이 없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각자의 의견이 얼마나 말이 되는지, 얼마나 논리를 갖추고 있는지를 따져 묻는 과정을 싫어할 필요가 없지 않나. 내가 틀릴 가능성은 늘 염두에 두며 의견의 다름을 인정한다. 단지 그러기 위해서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되겠지. 이러면 꼭, 항상, 언제나, 늘 대충 눙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냥 다 좋은 게 좋은 건가. 도대체 누구에게 좋은 건지. 하나도 좋지 않은 것 같은데. 황희로 빙의해서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고 하는 걸 누군들 못할까. 그건 한글을 깨친 누구나 할 수 있다. 맞히는 걸 아무나 못하는 것처럼 틀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다. 하긴 언제 자기 의견을 말하고, 주장이라는 걸 해봤어야 틀려보기라도 하지. 그래서 극도로 수비적인 자세로 어느 면에서도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어떤 의견도 자기 생각도 없는 사람은 재미없다. 평생을 남의 의견만 좇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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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

from Life 2018. 2. 7. 13:38

https://www.youtube.com/watch?v=yewjuezPa00&feature=youtu.be

 


페미니즘과 여성혐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남자들은 지겹도록 같은 패턴의 질문이나 문제제기를 한다. 위 영상은 그렇게 반복되는 질문들에 대해 논리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문답을 소개.

 

Q: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야. 왜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하냐? 난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여혐을 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나 이런 것도 한 적이 없었고, 몰카 야동을 본 적도 없고, 몰카를 찍은 적도 없다. 근데 나 정말 억울하고 성평등을 위해서 정말 노력하는 사람인데 내가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나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게 싫다.

 

A:모든 사람들은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취급받으면서 살아간다. 항상!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기 때문에 길거리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감시를 하고, 우리를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보기 때문에 공항의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동안 이렇게 숱하게 잠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아 왔으면서 여성들이 이러한 부분에서 목소리를 낼 때만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그냥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기 싫으니 말을 하지 말라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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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from Life 2018. 1. 21. 09:08

술 처먹고 개진상 부린 게 하루이틀이겠냐마는 그 다음날 새록새록 떠올라서 너무 부끄럽고 죽고 싶다. 동석한 사람은 무슨 죄인가.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나라면 타인에게는 극도로 엄격하고 자신에게 무척 관대한 나 같은 꼬인 부류와 어울리지 않겠지만, 이런 미성숙한 나를 감내하고 놀아주는(글자 그대로) 그들에게 고마우면서도 언제까지나 이런 식이면 결국에는 지쳐 떨어져 나갈 거라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헛소리로 자위하며 최소한의 반성도 하지 않고 같은 짓거리를 또 할 걸 생각하니 한심하고, 이 글을 적는 와중에도 내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어떤 레퍼런스가 있을까 떠올리는 내가 다시 한 번 한심하다. 술이 술을, 말이 말을 부르는 자기애의 바다인 술자리에서 자중하자. 고치기 힘들지라도, 내가 보려고 기록한다. 뜨끔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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